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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를 통해 본 악랄무쌍 제국주의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1. 5. 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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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최근 카다피의 과격한 행보를 감안할 때 2003년 리비아와 협상을 벌여 핵과 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한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공이었다고 평가했다. ‘무장해제 후 침략’이라는 자신들의 작전이 주효했음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를 통해 본 악랄무쌍 제국주의


동북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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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사태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넘었다. 리비아 반정부 시위는 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등 일련의 중동 반정부 시위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난한 서민과 부유한 상류층의 대립으로 촉발된 ‘계급투쟁’의 성격보다는 동부 와르팔라 부족을 위시한 일부 부족이 서부 친카다피 부족에게 맞서는 ‘부족대립’의 측면이 강했던 리비아 사태는 정부군과 반란군이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내전 성격에 더해 미국과 유럽 등 나토군이 카다피 세력을 폭격하는 외부 침략 성격이 더해진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 이상 리비아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향을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의 리비아 정책을 살펴보자.


‘관계개선’을 미끼로 ‘무장해제’를 요구한 미국


리비아와 미국은 오랜 기간 적대관계를 유지했다. 1969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카다피는 이듬해 리비아 주둔 미군, 영국군을 철수시켰고 1973년에는 모든 외국인 소유 석유 재산을 국유화하였다. 이후 카다피는 이슬람 사회주의를 추진하였으며 반미, 반이스라엘 혁명세력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카다피의 정치철학인 이슬람 사회주의 제3세계 보편이론이 담긴 ‘그린북(1977)’


미국은 리비아가 급격히 반미 사회주의 노선으로 기울자 카다피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1979년 테러지원국 지정, 1981년 단교, 1986년 경제제재 추가와 카다피 관저 폭격, 1996년 이란-리비아 제재법안 의결 등으로 리비아를 압박했다. 하지만 리비아군의 전력이 무시 못할 수준이기에 전면전을 감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2004년 미국이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면서 점진적인 관계개선에 들어갔다. 2006년 5월 15일 미국은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25년 만에 외교관계를 전면 복원한다고 발표하였다. 2008년 9월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리비아를 방문하여 카다피와 회담을 가졌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리비아에 미국 무역사무소를 세웠다.


▲라이스와 카다피 회담 장면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이러한 관계개선을 명목으로 리비아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하였다는 점이다. 2004년 1월 23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관리였던 플라인트 레버렛은 리비아가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미국이 확실하고 응당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유혹하였다. 미국은 리비아의 미사일과 생화학무기 전력을 감축하는 것을 관계개선의 대가로 요구하였다.


미국이 무장해제를 요구한 이유는 뻔하다. 리비아군을 무장해제 시켜놔야 리비아를 마음껏 요리할 수 있고 또 말을 안 들으면 전면전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는 의외로 순순히 무장해제에 동의했다. 리비아는 무장해제로 인한 손해보다 관계개선으로 얻는 이익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국의 리비아 제재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리비아는 미국과 관계개선에 나서면서 미사일과 핵기술, 생화학무기를 착실히 제거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형식적인 약속 이행에 머물었다. 작년에 공개된 위키리크스 문서에 따르면 2009년 미국과 리비아 사이에 마지막 남은 고농축우라늄 제거협상을 벌이고 있을 때 카다피의 아들 사이프가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리비아가 1억 달러 이상의 폭탄제조 기술을 넘겨줬지만 미국은 리비아에 대한 무기판매 금지 조치를 유지하는 등 미국의 보상 이행이 너무 느려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는 것이다.


▲2009년 유엔 총회에서 미국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카다피


미국이 원한 건 리비아 장악이지 관계개선이 아니었으므로 보상 이행이 더딘 건 당연한 일이다. 결국 미국은 리비아와 관계개선에 나선 지 10여 년 만에 리비아 공습을 단행했다. 리비아의 ‘협상’이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정책을 꺾는 ‘협상’이 아니라 ‘관계개선’을 위해 자기 노선을 수정한 ‘협상’인 이상 리비아의 시련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1일 최근 반정부시위로 궁지에 몰린 카다피의 과격한 행보를 감안할 때 2003년 미국과 영국이 리비아와 협상을 벌여 핵과 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한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공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협상을 주도한 로버트 조셉 전 미 국무부 차관은 “당시 무기를 제거하지 않았더라면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이 지난 8년간 얼마나 발전했을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장해제 후 침략’이라는 자신들의 작전이 주효했음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대량살상무기가 사라진 이라크와 리비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역설적인 현상은 제국주의의 교활하고 악랄한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 카다피 세력 육성에 집중하였던 미국


그렇다면 미국은 리비아와 관계개선에 나선 10여 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


지금의 리비아 사태는 리비아 동부에 위치한 인구 100만 규모의 와르팔라 부족이 주도적으로 일으켰다고 한다. 수도 트리폴리 인근의 서부 리비아에 거주하는 부족은 지금도 친 카다피 입장을 보이는데 반해 벵가지 등 동부지역 부족이 반 카다피로 돌아선 것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부부족과 동부부족이 대립하는 것은 리비아 사태가 경제적 원인보다 정권을 둘러싼 권력다툼이 주원인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리비아 정부군과 반란군은 동서로 대립하고 있다


미국이 관계개선 이후 집요하게 정치공작을 벌였을 가능성은 도처에서 드러난다.


의심스러운 지점은 2월 15일에 벵가지 시위가 일어나자 일주일도 채 못 된 2월 21일에 아브라힘 다비시 유엔 리비아 부대사가 “카다피를 전쟁범죄자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압둘 모넴 알후니 아랍연맹 주재 리비아 대표도 카다피를 비난하며 사임하였고 무스타파 압둘 잘릴 법무장관도 사퇴, 무하마드 쿠사 외무장관이 망명하는 등 카다피 정권이 급속하게 이완되었다는 사실이다. 대중투쟁의 영향력이 아무리 막강하다해도 시위 한번에 1주일도 못되어 주요 정치인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경우는 없다.


이들의 ‘변절’이 과연 이들 주장처럼 카다피의 독재, 테러지원, 전쟁범죄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동안은 왜 카다피 치하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었을까? 실제로 영국에 망명한 쿠사 외무장관의 경우 1988년 팬암기를 폭파시킨 로커비 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알려져 있어 영국 입장에서는 처벌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한다.


한편 이들 중 일부는 곧바로 2월 27일에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라는 자기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즉시 산하에 리비아 인민군을 조직하고 자유리비아 공군을 두는 등 군대를 모집하고 내전에 나선다. 그리고 미국에 망명 중이던 전 리비아 육군 대령 하프타가 급히 리비아로 돌아가 반란군 지휘관이 되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3월 10일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 대표들과 만나 합법성을 인정해주었다


대중시위 1번 이후 12일 만에 과도정부를 수립하고 군대까지 창설하는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의 속전속결은 이들이 2월 15일 벵가지에서 시위가 일어나기 전부터 정권탈취를 위한 사전모의를 해왔다는 것을 강력히 피력한다. 누군가의 일사불란한 조직지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리비아 내에서는 그러한 작전 지휘부를 찾을 수 없다. 2월 22일 CNN은 봉기를 지휘하는 단일한 지도부는 없다고 보도하였으며 BBC는 부족장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면 안 된다고 분석하였다.


지휘부는 리비아 내부보다 서방에서 찾는 게 빠를 것이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의 의장을 맡은 압둘 잘릴은 스스로 “유럽, 아랍국가들과 공식 접촉이 있었으며 이들이 대표성을 인정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수니파인 모하메드 알 타예브는 2월 26일, 서방은 리비아를 지원하라고 공개요구를 하였다. 또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가 수립된 지 이틀만인 3월 1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반정부군을 무한지원하겠다고 밝혔다. 3월 6일, BBC 취재팀은 영국 외교팀이 벵가지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접촉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리비아 정치세력 상당수가 일시에 카다피로부터 떨어져 나와 서방진영에 도움을 요청하고 미국이 과도정부 수립 이틀 만에 무한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서방진영이 사전에 다년간 이들과 접촉하면서 저변을 넓혀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쪽에서는 관계개선을 하면서 뒤에서는 반란세력을 키우는 미국의 교활한 모습이야말로 제국주의 국가의 진면모라 하겠다.


개입의 명분은 ‘인권’과 ‘민주주의’


관계개선을 미끼로 리비아를 구워삶았다 치더라도 미국의 리비아 사태 개입은 엄연한 내정간섭이며 국제법 위반이다. 이 경우 미국이 내정간섭 논란을 불식시킬 방안으로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 있다. 바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삼는 것이다.


벵가지 시위 직후인 2월 20일 수전 라이스 미 유엔대사는 “리비아군이 평화적 시위대에 발포하였다는 보도에 대해 미국 정부는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3월 4일에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카다피를 반인도범죄로 기소하면서 체포영장을 발부하였다. 카다피의 아들에 대해서는 벵가지 시위 진압을 반 인도주의 범죄로 규정하며 관련수사에 착수하였다. 이어 미국은 수십 년 전의 로커비 사건을 다시금 끄집어 내 재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리비아 정부는 유엔이 직접 들어와 조사를 해보라며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였다. 일부 언론들도 리비아 사태가 심각하게 과장, 왜곡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리비아 사태에 대한 언론조작을 주장한 중국의 ‘제4언론’ 홈페이지


미국은 상대국에 개입할 때 걸핏하면 인권과 민주주의를 앞세운다. 이라크를 침공할 때도 그랬다. 하지만 미국의 인권논리, 민주주의 논리는 매우 정치적이어서 그 위선이 금방 폭로되기 일쑤이다. 미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반미성향의 정부에만 국한된다. 미국은 자국 내의 인권문제, 그리고 친미정권의 인권과 민주주의에는 언제나 침묵한다. 미국은 관타나모 수감자에게 불법구금과 고문을 자행하며 부시 행정부 시절 대통령이 직접 ‘고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무법천지의 나라이다. 미국은 80년 5월 광주에서도 공수부대의 시민학살을 두둔하였으며 최근 중동 친미국가들이 반정부 시위를 강경진압하는 것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행태에 대해 전 영국 정보기관 간부인 애미 매천은 러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인도적 조치는 결국 대규모 침공을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리비아식 ‘급변사태’와 북한 ‘급변사태’설


내부의 돌발사태를 매개로 통치체제가 이완되면 외부 세력이 낯짝 두껍게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들이대며 전면적으로 개입하는 방식. 이는 최근 한반도에 회자되는 ‘북한 급변사태’와 맥락을 같이 한다. 북한 내부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미국은 작전계획 5029에 따라 ‘북한 급변사태’를 선포하며 북한주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다며 침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리비아 사태를 통해 “급변사태” 대응 방안의 실효성을 점검해보았다고도 할 수 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리비아의 경우 미국은 10여 년에 이르는 관계정상화 기간 동안 반 카다피 세력을 구축하였지만 북한의 경우는 미국의 내부개입 과정이 사실상 없으므로 온갖 탈북자들, 고향이 북한이었던 반북단체들을 규합해 북한정권에 대응하는 과도정부를 수립하는 정도일 것이다.


미국은 오랜 기간 암중모색하면서 조금씩 카다피 정권을 갉아 먹어왔다. 10여 년에 달하는 잠복기는 보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는 그만큼 제국주의가 집요하고 끈질기다는 점을 보여준다.


리비아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정책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관계정상화 10여 년 만에 각종 제재가 부활하고 공중폭격도 재현되었다. 리비아 전쟁의 전후 과정을 보면 카다피 정권이 미국에게 속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제국주의 탐욕에 대비하는 안전장치는 미국의 관계개선 서명이 아니다. 해당국들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 관리들이 그 나라들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당국들이 미국과 맞붙을 힘이 있기 때문이다. 반미자주 노선을 걷는 국가들이 미국과 맞붙을 힘이 떨어질 때, 미국은 침공을 단행한다.


미국이 승인하는 연락사무소, 대사관 하나만 바라보고 총을 내린 리비아는 결국 침략을 당하고 말았다. 50년이 넘게 관계정상화를 주장하면서도 미국의 무장해제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은 리비아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오스트리아 빈 대학 북한 전문가인 루디거 프랭크 교수는 북한전문 웹사이트 ‘38 North’에 기고한 ‘북한의 리비아 교훈’이라는 글에서 “북한은 이번 리비아 사태에 경계심을 가지면서도 그들의 노선에 대해 틀림없이 만족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이 한반도의 전쟁을 억제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겠다. (20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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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독자들의 요청으로 그동안 매주 금요일 발표해온 <금요칼럼>을 확대하여 매주 화(火:)요일과 금(金:)요일에 <불철주야>란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주제 또한 동북아, 한반도 정세 분석에 국한하지 않고 국제정세, 국내정세는 물론 사회과학이론분야까지 다양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진보와 통일, 평화와 번영을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동북아의 문에서 발표하는 글들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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