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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다시 보는 금강반야바라밀경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1. 5. 1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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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한없이 작은 존재이나 개인의 힘이 집적된 사회는 무량대수의 힘을 갖는다. 진정 자신이 옳고, 실력이 있다면 높은 자리나 차지하려 하기보다 더 어렵고 힘든 역할을 맡아서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러한 반야를 가질 때 바라밀을 이루게 된다...


오늘에 다시 보는 금강반야바라밀경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기원 전 6세기~5세기 경 네팔과 인도 국경 부근의 한 지방에 거주하던 샤키아족 우두머리인 정반왕의 아내 마야 부인이 한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의 성은 고타마, 이름은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뜻의 싯다르타였다. 싯다르타는 왕자라는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오랜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으며 불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샤키아족의 성자라는 뜻으로 샤키아무니라 불렀으며 중국에 전파되며 석가모니(釋迦牟尼)로 변형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흔히 ‘깨달은 자’라는 뜻의 ‘붓다’로도 부르는데 이 역시 중국에 전해지며 불타(佛陀) 혹은 부처라 부르게 되었다. 석가모니는 불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불교의 주요 경전 가운데 석가모니의 제자인 수보리와 주고받은 문답 형식의 대화를 기록한 금강반야바라밀경, 줄여서 금강경이 있다. 금강반야바라밀이란 금강석처럼 단단한 지혜(반야)를 얻어 열반에 이른다(바라밀)는 뜻이다. 금강경 6장 ‘바른 믿음은 드물다(正信稀有)’를 보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 4상에 집착하면 안 되며 여기서 벗어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문구가 나온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4상을 오늘에 맞게 해석해보고자 한다.


나를 버려야 참다운 나를 찾을 수 있다


먼저 아상(我相)은 ‘나’, ‘자기’라는 고집을 말한다. 즉, 자신의 재산, 지식, 가문, 권력, 외모, 힘 등을 믿고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빠져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는 모습을 말한다. 그리고 인상(人相)은 ‘남’이라는 고집, 즉 나와 남을 구분하는 고집을 말한다. 인상에 빠지면 자신의 기준에서 남을 바라보며 비교, 차별, 경멸하려고 한다.


아상과 인상은 하나로 묶어 생각해볼 수 있다. 보통 아상으로 인해 인상이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아상과 인상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개인주의, 개인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


개인주의, 개인이기주의는 집단에 앞서 자신만 생각하는 경향이다. 사람은 원래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회와 개인의 관계 문제가 중요하게 나선다. 사람은 사회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기에 개인보다 사회가 더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고 따라서 자신보다 집단의 이익과 운명을 앞세우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개인의 이익이나 운명을 무시해도 되는 건 물론 아니다. 사회는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운명을 보장해야 한다. 즉, 개인은 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사회는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라 하겠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것은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다. 그 전 시대만 해도 개인주의는 특권층이나 누릴 수 있었고 서민들은 서로 도와가며 끈끈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출현하면서 자본가들은 지주에 예속된 농민들을 노동자로 만들어야 했다. 시민혁명을 통해 확보된 개인의 ‘자유’는 개인의 삶을 개인이 책임지는 ‘자유’, 즉 개인주의적 ‘자유’를 말한다. 영국의 경제사가 토니(Richard Tawney)는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1926)에서 자본주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 가운데 하나로 자립과 절약의 윤리를 지닌 개인주의 정신을 꼽았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개인주의, 개인이기주의도 팽배해졌으나 개인의 삶은 결코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오늘날 개인주의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 옆집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건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 옆집 사람이 죽은 지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도 몰랐다는 뉴스도 종종 접한다. 사람들은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고 사회는 흉흉해진다. 사람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에 나서기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도서관에, 일터에 틀어박히기를 선택한다. 그 결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쌓여가고 소수의 성공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삶도 불행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말세야, 말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행복은 사회와 괴리된 개인보다 사회적 관계가 긴밀한 사람이 더 크게 느낀다. 심지어 대가족을 이룰수록 식욕 등 생존 욕구가 커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혼자 먹는 밥이 맛없다는 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개인주의에 맹목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킬 것이 아니라 공동체문화, 집단주의 문화를 유지,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자신이 우월하다면 더 아래로 들어가 더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개인이기주의도 문제이지만 집단이기주의도 문제다. 자기 집단이 더 우월하고, 따라서 자기 집단이 다른 집단 위에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은 전체 사회의 화합을 깨는 주된 요인이다. 개인주의의 극단적 형태는 전체주의다. 한 개인이 자기가 최고이며, 따라서 자기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다른 모든 이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는 게 바로 전체주의다. 집단이기주의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는다.


정치에서 다른 정당을 무시하고 독단을 부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 서민생존권 보장,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세력들의 야권연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몇몇 정당, 정치인들 속에서 자기가 옳기 때문에 자기가 야권연대를 주도해야 한다거나, 자기 당이 단일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작년 지방선거 가운데 서울시장 선거, 올해 4.27 재보궐선거 가운데 김해을 국회의원 선거를 꼽을 수 있다. 전자는 진보신당이 끝까지 단일화를 하지 않았고 후자는 국민참여당이 고집을 부려 단일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그 결과 모두 여당에게 승리를 넘겨주었다. 이처럼 집단이기주의는 결코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으며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진보개혁적 단체들끼리 연대, 연합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다른 단체를 이해하고 배려하기보다는 자기 단체가 더 옳고, 더 원칙적이고, 더 힘 있고, 더 실력 있다고 내세우며 연대, 연합을 주도하려는 단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상과 정견 등이 다른 단체들끼리 연대, 연합하는 데 이런 집단이기주의적인 모습은 혼란과 난관을 조성할 뿐이다. 진정 자신이 옳고, 실력이 있다면 더 어렵고 힘든 역할을 맡아서 할 생각을 해야지 높은 자리나 차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개인주의, 집단이기주의를 버릴 때 아상, 인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사회도 더욱 발전할 것이다.


본능보다 사상의식을 앞세워야 인간성을 찾을 수 있다


다음으로 중생상(衆生相)은 중생으로서 본능적 고집, 즉 재미있고 호감 가는 것만을 본능적으로 취하는 모습을 말한다. 중생상에 빠지면 즐겁고 좋은 것만 취하고, 귀찮고 힘든 일은 남에게 미루려 한다. 또한 스스로를 못난 존재라 여기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것도 중생상이다.


오늘날 중생상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바른 문화를 키우고 수양에 부지런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문화를 보면 온통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것들밖에 없다. 우리 문화가 원래부터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태가 된 데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일제 강점과 미군정 시기, 그리고 이후 미국의 관리에 들어간 속국 비슷한 상태로 백여 년을 지나며 퇴폐적인 미국식, 일본식 문화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조차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주의의 고유 속성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재정권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른바 3S(Sport, Screen, Sex) 정책, 즉 영화, 스포츠, 성산업을 활성화하여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정치에서 관심을 돌리게 하는 우민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속하고 퇴폐적인 향락문화가 판을 치다 보니 우리 사회는 건전하고 성실한 사람들,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은 뒤떨어진 사람으로 업신여김 당하며, 부동산 투기나 복권, 도박 같은 불로소득으로 신분 상승을 한 사람들이 대접받는 기형적인 사회가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문화를 키워야 한다. 저질 문화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땀 흘려 일한 사람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또한 저질 문화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들어 폐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신 수양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의 정신 수양은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면벽수련 같은 것을 하는 게 아니다. 정의와 진리를 탐구하고 위인들의 명언을 곱씹으며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는 것도 정신 수양이다. 또 친구, 동료들을 만나면 흥청망청 놀기보다 산이나 강으로 자연을 벗 삼아 가며 인생을 논하는 것도 좋다.


둘째, 비관론과 패배주의를 버리고 낙관론을 취해야 한다.


강에 바람이 상류 쪽으로 불면 일시적으로 강물이 위로 흐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표면의 물결만 위로 갈 뿐 바로 아래 눈에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강물은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마찬가지로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 역사도 사실은 언제나 묵묵히 전진해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시계가 거꾸로 흐른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주권의식은 오히려 성장했다. 옛날처럼 정부와 언론이 떠들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그리고 이제 누가 정의로운 세력이며 누가 불의한 세력인지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사상의식에 따라 행동한다. 배가 고프면 눈앞의 밥을 먹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 같다. 하지만 무언가를 요구하며 단식을 하는 사람은 배가 고파도 눈앞의 밥을 거부한다. 이는 본능보다 사상의식의 힘이 더 크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사상의식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사상의식을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행동 전반을 좌우한다. 난 해도 안 된다는 비관론과 패배주의에 젖어있는 사람은 실제로 뭘 해도 안 된다. 반대로 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낙관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 뭘 해도 잘 된다.


이렇게 중생상에서 벗어날 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육체적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끝으로 수자상(壽者相)은 생명에 대한 고집으로 자기는 늙지 않으리라는 생각, 죽지 않으리라는 생각, 재산, 지식 등 자신의 소유가 영원하리라는 생각을 말한다. 또 거꾸로 나이를 먹고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갖는 것도 수자상이다.


오늘날 수자상에 빠지지 않으려면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적, 정치적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사람이 자기 육체적 생명에 집착하면 추해진다.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반대로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여기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물론 육체적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으로 본능적 현상이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은 본능보다 사상의식의 힘이 더 큰 존재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조선 독립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 있다. 이처럼 역사에 길이 남는 위인들은 대부분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쳤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있어 인류 역사가 발전해왔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얼마나 사회에 많은 공헌을 했느냐를 기준으로 한다. 사람이 죽을 때도 자신을 돌아보며 사회에 공헌한 만큼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만족하지, 개인의 쾌락을 얼마나 즐겼는지 돌아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기 삶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개인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지 말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야 한다.


금강경에 나오는 4상 문제는 결국 자기를 버리고 사회와 인류를 향해 더 큰 눈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개인은 한없이 작은 존재이나 개인의 힘이 집적된 사회는 무량대수의 힘을 갖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도 인간으로서 가치를 갖게 된다. 이러한 반야를 가질 때 바라밀을 이루게 된다. 석가탄신일에 생각해본다. (20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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