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란, 러시아 부정선거 시비의 교훈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6. 16. 16:01

본문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2012.6.8.


민족사적 대전환기로 일컬어진 2012년이다. 2012년은 한반도 차원에서는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될 중요한 분기점이며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6.15 공동선언에 입각한 남북통일이 실현되느냐, 군사대결의 갈등 속에 결국 전쟁으로 치닫느냐의 중요한 갈림길이다.

2012년의 첫 관문은 4월 11일 치러진 제19대 총선이었다. 그러나 19대 총선 이후, 통합진보당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당내 경선에서의 이른바 “총체적 부정선거” 갈등으로 인해 스스로 분열하고 있다. 여론으로부터 고립된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의 총공세와 정권의 직접 탄압에 무방비상태로 놓여있다. 민심을 잃은 통합진보당은 대중화에 커다란 암초를 만난 셈이다. 

현 상황에서 2009년에 있었던 이란 선거와 2012년의 러시아 선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부정선거 정황으로 시비가 불거졌다는 측면에서 2009년 이란선거와 2012년 러시아 대선은 닮았다. 집권당의 미숙한 폭력대응이 사태를 키우며 문제제기집단에 힘을 실어주는 현상은 이란 선거시비와 통합진보당 사태가 유사하다. 내부세력의 갈등을 조장하는 현상도 이란선거와 통합진보당 사태가 유사하다. 

이란 선거와 러시아 선거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주요국가의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선거결과를 좌지우지해왔으며, 그에 따른 여론을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개입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란에서 일어난 일

2009년 6월 12일, 이란에서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었다. 이 선거에서 반미자주노선을 확고히 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62.6%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친서방 개방노선을 취했던 무사비 후보는 33.7%의 득표에 그쳐 낙선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란 선거는 선거 직후 거센 부정의혹에 휩싸이고 말았다. 6월 12일 밤, 무사비 후보는 성명을 내고 불공정 선거행위가 이뤄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12일, 자신을 강하게 지지했던 지역인 타브리즈, 시라즈 등지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없어 많은 이들이 투표를 못했고, 일부 개표소에는 무사비 후보측의 참관인 입장이 허용되지 않아 공정하게 진행됐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무사비 후보는 성명을 통해 "투표과정에서 명백한 선거부정 행위가 있었다. 강하게 부정할 것"이라며 "부정 선거는 이란 정국을 혼란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단언했다.

선거에서 패한 무사비 후보의 지지자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규정하고 테헤란 시내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란 국영 라디오 방송의 발표에 따르면 당시 6월 15일, 테헤란 도심 시위에서만 7명이 사망했으며, 일부 언론들은 사망자가 12명이라고 보도했다. 

객관적 근거가 없는 “부정선거” 규정

이란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주장은 난무하였지만, 이란 대선이 “부정선거”로 규정될 객관적 근거는 없었다. 당시 미국 <AP> 통신은 "손으로 쓴 투표용지 4000만 장을 몇 시간만에 수동 개표해 승자를 선언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이란 대선에 제기되는 가장 핵심 의혹"이라며 부정선거 의혹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이란에서는 역대로 선거 때마다 3900여만 장의 투표 용지를 일일이 손으로 개표해왔으며 개표하는데 24시간 가량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2009년 이란 선거에서 실질적으로 걸린 시간은 12시간 남짓이었다. 이를 두고 관행선거였느니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껏 문제없이 치러지던 선거가 갑작스럽게 부정선거로 몰아붙여지는 행위는 분명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이비스에너지전략연구소는 미국 <AP>통신의 부정선거 가능성을 일축하는 흥미로운 여론조사결과를 제시하였다. 비영리기관인 'Center for Public Opinion' 의 켄 발렌(Ken Ballen)과 'New America Foundation'의 패트릭 도허티(Patrick Doherty)는 이란에서 대선 직전인 5월 11일에서 5월 20일까지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대선관련 여론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대선이 끝난 6월 15일 <워싱턴 포스트> 지에 실었다고 한다.

켄 발렌과 패트릭 도허티는 “우리가 선거 3주 전 수행한 전국적인 이란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가 2:1 이상으로 앞서고 있었다.”라고 밝힌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이란의 전체 30개 지방에서 우리가 수행한 과학적인 샘플링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가 훨씬 앞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이들은 무사비 후보의 지지층인 아제르바이잔인들 사이에서도 아마디네자드 후보가 2:1의 비율로 앞섰다고 밝혔다. 

이들은 야당 무사비 지지자들이 선거운동과 시위 조직과정에서 사용했다는 트위터, 인터넷 등 각종 통신장비들의 경우만 해도, 그런 장비를 가질 정도의 부유층과 인텔리는 이란 전체 인구에서 소수에 그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무사비가 아마디네자드를 앞서거나 경합을 벌인 유일한 집단은 대학생과 대학원생들, 그리고 소득이 높은 계층의 이란인들이었다. 우리가 조사를 하고 있을 때, 이란인의 1/3 가량이 아직도 부동층이긴 했지만, 우리가 여론조사 과정에서 밝혀낸 기본적인 분포도는 이란 당국이 선거 이후 발표한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이번 선거가 부정 선거의 결과가 아닐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이란 선거를 총평하였다.

개방과 친서방 노선을 추진한 무사비 후보는 이란의 부유층과 인텔리층의 지지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1200만명에 달하는 저소득층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빈민 지원 정책의 헤택을 보고 아마디네자드를 지지하였다. 이란은 전 인구의 50% 이상이 지방과 농촌지역에 거주한다. 그래서 아마디네자드가 50%가 넘는 득표율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예상한 이란 선거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었다. 대도시 중산층들의 인터넷 여론으로 이란의 전국적 여론을 진단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 선거의 부정혐의는 없었으며 그 대신 선거에서 패배한 무사비 후보가 “자체조사 결과 65%의 지지로 내가 당선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과 이란 젊은층의 3분의 1이 무사비를 지지한다는 정황이 있었을 뿐이었다. 실제 투표결과는 아마디네자드가 무사비 후보를 두 배가량 차이로 압도적으로 이겼다. 

만일 실제 투표결과에서 무사비 후보가 아마디네자드 후보를 앞섰는데 부정선거로 그 결과가 뒤집어지려면 이란 정부는 4800만 이란 총유권자 가운데 적어도 2천만장 가량의 투표용지를 없애야 하며 4만 7000곳에 달하는 개표소에서 무더기로 투표함을 갈취해야 했다. 그야말로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비견될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선거부정이 일어나야 가능한 것이다.

당시 이란정부가 국제감시기구의 선거 참관을 배제하였지만 그것이 부정선거의 근거로는 될 수는 없었다. 이란의 대선은 집권 세력으로부터 결코 독립적이지 않은 내무부와 헌법수호위원회가 주관한다고 하지만 이는 독립국가에서 당연하다. 한국사회에서도 총선과 대선은 이명박 정부로부터 결코 독립적이지 않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다. 그러나 한국선거에 국제감시기구를 상주시키지 않듯이, 이란선거에서도 국제감시기구의 참관을 허용해야 한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란 선거 결과에 대한 세계 각국들의 입장도 상반된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 등 서구국가들은 대체로 2009년 이란 선거결과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미국은 이란 정부에 모든 폭력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6월말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폭력과 체포, 일어났음직한 선거 부정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우리는 이란 당국이 평화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는 이란인들의 권리를 존중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며 무사비 후보측을 옹호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민주적 과정, 언론의 자유, 사람들이 자유롭게 반대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능력 등, 이 모든 것들은 보편적인 가치이며,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독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연이어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진상 조사와 평화로운 시위에 대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이란에 요구하며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무사비 지지층은 총체적 부정선거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였지만 전반적이 여론을 등에 업고 “부정이 전혀 없었다고 증명할 수 없다”는 논리를 고집하며 부정선거의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도 선거부정을 활용 

2012년 3월 4일, 러시아에서 있은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 시비는 또 다시 재현되었다. 러시아의 부정선거 시비는 개혁진영이 주도한 것으로 “강력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대통령에 복귀한 블라디미르 푸틴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3월 4일, 대통령 선거 개표를 완료한 결과 푸틴이 63.60%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그 뒤를 이어 최대 야당인 공산당 당수 겐나디 쥬가노프가 17.18%로 2위, 재벌 출신 무소속 후보 프로호로프가 7.98%로 3위,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 후보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가 6.22%로 4위, 중도 좌파 '정의 러시아당' 후보세르게이 미로노프가 3.85%로 5위를 각각 차지했다. 1위와 2위의 표차가 50%에 가까운 것으로 푸틴의 압도적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겨레 신문에 의하면 야당과 반정부 시위대는 선거 직후부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대선 결과를 부정하고 나섰다고 한다. 투표인 명부 조작, 회전목마 투표(신분 위장 중복투표) 등 부정행위 수천건이 보고됐다는 것이다. 

'유권자 동맹'은 기자회견을 통해 참관단의 집계에 기초한 자체 개표 결과 선관위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푸틴이 53% 득표율을 보였으며, 프로호로프가 16%를 득표했다고 주장했다. ‘유권자 동맹’은 일부 지역의 개표 결과 보고서가 위조되는 등 선거 부정이 저질러졌다며 이번 대선 결과를 정직하고 공정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3월 5일 저녁부터 크렘린궁 북쪽 푸시킨 광장에서 개최된 야권 연대 집회에는 2만 여명이 모였고, 참가자들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푸틴의 퇴진과 재선거 실시를 요구했다고 한다.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란 선거에서와 같이 서방에서도 러시아 선거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이 국무부 대변인 명의로 입장을 밝혔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모든 선거부정 보도에 대해 독립적이고 신뢰할만한 조사를 진행할 것을 러시아 정부에 촉구한다"면서 말했다. 다만 미국은 "선거 결과가 공인되고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한 뒤 당선자와 협력해 일하기를 고대한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산하 조직인 `민주제도 및 인권사무소' 감시단은 "이번 선거는 시작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서 "여러 조건이 푸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명백히 편향됐다"고 평가했다. 유럽평의회의원총회(PACE) 감시단도 이번 대선에 행정력이 동원됐다고 비판했다.

한겨레신문은 푸틴 반대 시위자들의 특징을 보도하였는데 이들은 평균 29-39세 사이의 남성이며 대학 이상의 교등교육을 받은 화이트칼라로 휴대전화와 개인용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으며 인터넷과 블로그 활동이 활발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란에서 친서방 개방노선을 주도한 무사비 후보 지지자들과 상당부분 겹치는 성향이다.

폭력행위로 고립된 아마디네자드

러시아의 푸틴은 부정선거의 즉각조사를 표방하면서 사태를 수습해나갔다. 그러나 이란의 대선 논란은 부정선거 문제로 촉발되었지만 이후 사태흐름은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부정선거의 진상을 가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테헤란 시내에서 연이은 선거규탄 시위 도중 시위군중이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폭력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6월 15일, 이란 관영 방송은 사망자가 7명이라고 밝혔지만 CNN은 19명이 숨졌다고 보도하였으며 심지어는 사망자가 150명에 이른다는 추측성 보도가 이어지기도 하였다. 이후 무사비 지지층들은 이란정권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면서 선거의 진상규명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마디네자드 정부는 부정선거를 외치는 무사비 지지자들을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폭력충돌이 일어났으며 이는 이란의 부정선거 논란을 더욱 복잡하게 꼬아버린 것이다. 

민간인이 사망하자 쟁점은 희생자 추모와 아마디네자드 규탄, 폭력행위 처벌로 중심을 옮겨갔다. 아마디네자드 정권의 폭력적 진압이 야권지지자를 사망케했으니만큼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과정에서 부정선거 문제제기는 시위대 총격사건으로 대체되었다. 아마디네자드 정권은 고립되었으며 여론은 아마디네자드 당선자를 압박하였다.

내부 권력 갈등이 이용당하는 구조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부정선거로 인해 친서방 개방진영으로부터 대대적 반격을 받은 것은 친서방 개방진영이 이란 정치권 내부의 권력갈등 양상을 교묘하게 이용하였기 때문이었다. 

1979년 팔레비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이란 공화국은 호메이니의 사상을 이어받은 하메이니가 종교의 최고지도자 자격으로 군통수권, 입법, 행정, 사법의 최고권력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메이니는 1980년 호메이니에 의해 이란에서 가장 권위있는 테헤란 금요예배 예배인도자로 지명되었으며 이듬해인 1981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89년 호메이니 사후 호메이니의 사상을 가장 잘 이어받을 자로 지목되면서 최고 종교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은 최고종교지도자로 하메이니와 대통령 아마디네자드가 이란을 통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 내부에서는 하메이니와 아마디네자드의 관계가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아마디네자드의 개혁이 종교회의의 반대에 부딪히는 형국이다. 아마디네자드는 이란 축구경기에서 여성의 관람을 허용하려 하였지만 종교계의 거센반발에 부딪혀 결국 이란여성의 축구경기 관람은 거부되었다. 아마디네자드는 또한 이슬람 복장을 착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물던 벌금을 완화하려 하였지만 이 역시 종교회의의 반발에 부딪혔다. 

2009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이니가 이끄는 12인 헌법수호위원회의 결정이 주목된다. 이들은 선거결과가 당선자를 변경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논리로 선거 무효화 또는 재개표를 거부하였다. 아마디네자드의 당선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헌법수호위원회는 일부 지역에서 선거부정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친서방 진영인 무사비 후보측 손도 들어 주었다. 결과적으로 아마디네자드와 무사비 양 진영을 다 살려주는 중립결정을 내린 것이다. 

친서방 진영인 무사비 진영은 세력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친 서방 진영은 부정선거 시비를 통해 아마디네자드 정권의 힘을 약화시켰으며 그들은 이제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와 이란 선거시비의 공통점

러시아와 이란 선거시비는 전국적 범위의 선거에서 일부 부정의혹 또는 부정사례를 제기하며 전체 선거를 무효화시키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울러 러시아와 이란 선거시비 모두,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며 개혁을 위시한 여론을 형성하는 중산층, 인텔리 층이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주도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권력구조 내부에 알력과 갈등이 있는 경우, 정치적 반대파를 묶어둠으로써 부정선거 시비는 더욱 확대될 수 있었다. 또한 폭력사건이 발생한 경우, 사안은 폭력규탄투쟁으로 확산되어 정치적 반대파를 더욱 고립시킬 수 있었다.

러시아와 이란의 선거시비가 이처럼 공통점을 띠는 것은 이들 선거가 미국 또는 친미세력의 사전 기획과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반 사태를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보기엔, 우연적 요소가 너무나 많이 발견된다. 

양대 선거 모두 이례적으로 미국 국무부가 선거결과를 평가하였다. 독립국가의 내정에 해당하는 선거결과에 대해 평하는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미국이 이처럼 외교적 결례를 벌이고도 아무런 지탄을 받지 않는 것은 이란과 러시아 내의 친미세력들이 여론의 이름으로 오바마행정부의 발언을 옹호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주요국가의 선거에 주도적으로 개입해 친미적 정치세력의 강화를 위해 힘쓸 것이다. 당장 눈앞에 6월에 치러질 그리스 선거에서 미국의 주도적 개입이 우려된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 러시아, 그리스의 경우보다 훨씬 더 집중하는 선거결과는 2012년 한국의 선거다. 북한의 핵보유와 중국의 부상, 미국의 경제위기가 겹쳐지면서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선거결과가 어떻게 왜곡될 것인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응해야 할 문제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