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비례대표 선거를 ‘총체적 부실, 부정 선거’로 규정한 진상조사보고서가 공개되었다.
그러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이번 사태의 핵심인 ‘부정선거 의혹의 실체, 책임 소재’라는 알맹이가 완전히 빠져 있다. 현 사태가 빚어진 출발점은 분명히 부정한 선거 조작에 의한 비례대표 순위 변경 의혹이었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그에 대한 답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애초에 진상조사의 범위가 사례 수집과 파악에 한정되었는지, 조사 과정에서 조사결과 발표의 수위, 범위가 조정되었는지 분명치 않아 보인다. 전자라면 진상조사위원회 급이 아니고 진상조사를 위한 기초 작업 정도로 했으면 될 일이다. 후자라면 진상조사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명백한 부실 조사이다.
온라인 투표에서 핵심적인 의혹은 누군가 소스코드를 변경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는지 밝히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 답을 하는 게 핵심이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그런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그와 같은 부정선거는 없었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이 중요하고도 명백해야 할 조사 결과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부정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의혹은 남아있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정리했다. 선거 관리, 투표시스템에 부실함이 있었다는 동어 반복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핵심은 비껴갔다.
동일IP 투표 집중 현상은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인 것을 명백히 가리고 부정 의혹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동일IP에서 다수 투표가 이루어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대학 학생회나 동아리, 노조, 농민회, 단체 사무실 등에서 많은 회원들이 투표하는 것은 일상이다. 그런데 진상조사위에서는 의혹이 큰 몇 개 사례의 샘플조사만으로 마치 ‘동일IP 다수 투표’ 전체가 부정인 양 몰아갔다.
조사가 아직 충분치 못했다면 그 한계를 밝히고 후속 과제로 넘기면 될 일이다. 단 몇 개 사례 조사를 내놓고는 온라인 투표 전체를 부정투표로 몰아가는 성급함과 부실함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가. 왜 당 전체를 부정집단으로 몰아가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들같이 행동하는가.
현장 투표에 대한 보고서 내용은 사실상 자료수집에 머물고 진상조사로는 한발도 나가지 못했다. 대체로 다 알려진 사실을 자료로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부정선거 조사의 핵심과 기본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규모의 부정을 저질러 결과에 얼마만한 영향을 끼쳤는가’이다. 여러 가지 한계로 해서 현장투표에서 광범위하게 관리 부실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차후 선거 관리를 개선하는 것 물론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 부실을 틈타고 발생한 실제 부정선거부터 찾아내야 한다. 부정선거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부실과 실무적 착오로 발생한 부실은 그 책임이 같을 수 없다. 이게 상식 아닌가.
진상조사보고서는 결국 부정선거의 실체와 책임소재를 회피하면서, 부정선거 의혹 대상자들이 아니라 관리책임자인 선관위와 당직자들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사가 충분치 않아 진상이 분명치 않음에도 각종 부실 사례를 장황하게 나열해 선정적 언론보도의 좋은 소재만 잔뜩 제공했다. 매우 무책임하다.
이미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보고서를 내놓은 조건에서 진상 규명을 더 철저하게 하는 수밖에는 없게 됐다. 부정선거 사례와 그로 인한 득표 영향, 그것이 순위에 미쳤을 영향까지 세세하게 조사해야 한다. 부실 관리를 틈탄 부정선거 기획, 실행에 대해서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사무역량의 부족 등으로 인한 일반적 관리 부실은 정상을 참작할 필요도 있다.
현 사태를 공명정대하게 풀어나가기 위한 기초는 오직 철저한 진상조사에 있다. 부실한 조사는 반드시 또 다른 반발을 낳게 되고 자칫 당을 분열시키는 심각한 해악이 될 수 있다.
진상조사의 첫 걸음은 공정한 진상조사단을 꾸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번에 진상조사보고서와 함께 진상조사위원이 발표되었는데 세상에 이런 엉터리가 있을 수 없다. 진상조사위원장과 간사를 제외한, 즉 실제 진상조사를 실행한 것으로 보이는 5명의 위원들이 모두 진상조사의 핵심 이해당사자인 비례대표 후보들(윤금순, 오옥만, 나순자, 이영희, 노항래 후보)의 관계자라고 한다. 진상조사의 대상이 진상조사의 주체가 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 진상조사의 객관성을 위해서 위원 명단도 공개하지 않았다는데, 비공개에 이런 꼼수가 있었던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부정선거의 실체와 책임소재를 전혀 밝혀내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선거관리 부실로 몰아가는 배경에 진상조사위 구성에 대한 의혹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조사를 받아야 할 의혹대상자들이 조사주체의 위치에 서서 선관위와 당직자들을 추궁한 꼴이다. 자기의 죄는 가리고 남의 죄는 키울 수 있는 구조가 됐기 때문에 합리적 의혹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이런 식의 진상조사기구 구성은 없다.
결론적으로 진상조사위 활동과 그 결과인 보고서는 ‘총체적 부실 조사’이며 ‘편파 조사의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진상조사기구를 공정하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진상조사를 원점에서 전면적으로 다시 해야 한다. 무책임하게 외부에, 언론에 발표부터 앞세우는 식의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당원들과 당직자들의 존엄과 운명이 관계된 문제들이기 때문에 진상조사는 철저히 하되 대외 발표와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기존 진상조사위원회는 현장투표함과 투표용지 등 제반 자료를 조금도 훼손, 변형시키지 말고 원상태 그대로 새로운 진상조사기구에 정확하게 이양해야 한다.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책임소재가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당지도부나 비례대표 사퇴부터 주장하는 것은 섣부르다. 명백하게 진상을 밝혀내고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 공명정대하게 해결, 처리함으로써 난국을 수습하는 것이 지도부의 책임이다.
우리 당 비례대표는 어느 당에서도 시행치 않는, 당원 직선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이다. 당대표와 계파 수장들이 밀실에서 헌금을 받고 비례대표를 공천하는 새누리당같은 보수정당과 비교도 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사퇴가 아니라 해체해야 할 정당이다.
당지도부와 비례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어려울수록 대중 속으로, 민생의 현장, 촛불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더 빨리, 더 강하게 재촉해야 한다. 대중 속에서 실천하고 투쟁하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답을 찾는 것이 진보정당 대표자들의 생활과 활동의 철칙이다.
이번 사태가 당의 혁신과 단결을 새롭게 강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모든 당원들이 높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2012년 5월 4일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 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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