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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성 3호를 통해 본 북한의 과학기술 면모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5. 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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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다시보는 광명성 발사 4
우리사회연구소


북한이 광명성 3호를 목표한 궤도에 올려놓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자체 기술력으로 실용 인공위성을 개발했다는 점과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로켓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과학기술력에 대한 재점검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일정 수준에 오른 인공위성 기술 

북한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광명성 3호는 지구관측위성이며 산림자원분포 정형, 자연재해 정도, 곡물 예정 수확고, 기상예보, 자원탐사 자료를 수집하는 실용위성이다. 또한 지상에서 위성을 조종하여 사진촬영을 하며 사진기의 분해능은 100m라고 한다. 전원은 태양전지판이다. 



일단 지상에서 위성을 조종하며 형태가 직육면체인 점으로 보아 과거 발사한 광명성 1호와 달리 자세제어 기능을 갖춘 위성임을 알 수 있다. 무중력 공간에서 자세제어를 하기 위해서는 로켓 추진 방식이나 회전안정화 방식, 3축 안정화 방식을 이용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식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이와 관련된 일정한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진기 분해능이 100m인 점으로 보아 광학 분야의 기술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천리안 위성은 해양탑재 시스템의 공간해상도가 500m, 기상탑재 시스템의 공간해상도는 가시광선 1km, 적외선 4km 수준이다. 해양관측이나 기상관측은 넓은 범위를 관측하기에 보통 해상도가 낮다. 아리랑 1호의 경우 전자광학 사진기의 해상도(흑백)는 6.6m, 해양관측 사진기의 해상도는 1km다. 아리랑 2호는 흑백 1m, 천연색 4m의 해상도를 지니고 있다. 아리랑 시리즈의 사진기는 미국, 이스라엘 업체와 공동 개발했다고 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광명성 3호의 무게가 100kg에 불과하다며 시험위성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국제적 추세는 대형위성보다 소형위성 개발에 있으며, 북한 역시 2008년부터 시작된 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에서 20대 주력 연구사업 가운데 하나로 극소형 자원위성 개발을 꼽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같은 성능이라면 가벼울수록 발사체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더 좋은 인공위성이라 하겠다. 

더욱 향상된 은하 3호 기술 

인공위성에 비해 우주발사체 로켓은 더욱 발전된 과학기술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인공위성을 자체로 개발할 수 있는 나라는 수십 개에 달하지만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나라는 10여 개 국에 불과하다. 

북한은 은하 3호의 발사중량이 91톤, 1단 로켓 추력은 120톤, 직경은 2.4m라고 밝혔다. 무게 대비 추력이 1.3배 정도 된다. 대표적인 로켓 추력을 비교해보면 아래 표와 같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은하 3호는 대형 우주로켓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위성연구소 부소장은 외국 기자 참관단에게 앞으로 정지위성, 우주비행선도 개발해 발사할 것이라고 했으며 400톤까지 늘릴 것이라고 하였다. 400톤이 무게를 말하는 것인지, 추력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위의 표를 토대로 볼 때 추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대형 우주로켓을 개발할 계획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은하 3호는 1단계 로켓이 약 135초 가량 추진하고 분리되었으며, 약 106초 후 최대 고도인 151.4km까지 상승했으며, 약 286초 후에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대 고도까지 올라간 시간인 241초보다 더 긴 286초를 추락하다가 폭발했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151.4km에서 자유낙하한다면 지상까지는 176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공기저항을 고려해도 오차가 크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군에서 은하 3호를 추적하는 중간에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아마도 150km 지점이 전리층 지대라서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즉, 151.4km 이후로도 계속 상승을 하다가 중간에 낙하하였고 궤도이탈이 확인된 후에 자동 혹은 수동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북한이 2009년에 발사한 은하 2호의 1단계 로켓에 비해 추진시간이 약 15초가량 늘어났다는 점과, 1단계 로켓 분리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4월 19일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담화를 통해 실패 원인을 이미 규명했다고 밝혔다. 

로켓 개발을 위해서는 높은 열에 견디는 소재를 개발해야 하며, 강한 진동에 견디는 정밀 기계가공 기술, 연료와 산화제를 개발할 수 있는 화학공학, 초고속으로 비행하는 로켓의 자세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 등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총동원해야 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 

북한은 1959년 9월 10일 자연과학도서편집부 편으로 <인공위성>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인류가 첫 인공위성을 발사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았고 한국전쟁을 치른 지 6년 밖에 되지 않은 때에 이런 책을 1,5000부나 발간한 것은 그만큼 북한이 오래 전부터 인공위성에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인공위성 개발에 착수한 것은 80년대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위성연구소 부소장은 80년도부터 인공위성 개발 기조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한국에 비해 10여 년 일찍 시작한 셈이다.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 첫 분수령은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였다. 이후 북한은 인공위성 개발에 더욱 속도를 올렸으며 2001년부터 민간 우주로켓 발사장인 동창리 발사장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북한의 주요 전략 사업들이 그러하듯 인공위성 개발도 북한 지도부의 관심 아래 진행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방공업을 확고히 앞세우는 것과 함께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경제발전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였다. 국방공업 발전은 물론 전반 경제 발전에도 과학기술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물론 김일성 주석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해방 직후 전쟁까지 겪으면서 산업 기반이 완전히 붕괴한 북한은 자력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과학기술 개발에 힘을 쏟았다. 김일성 주석이 과학기술에 보인 관심은 1958년 북한의 첫 트랙터 조립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금성뜨락또르공장의 전신인 기양기계공장에서 만든 첫 트랙터가 시운전을 하는 과정에서 후진을 하고 말았다. 부품 조립 실수로 전진과 후진이 바뀐 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일성 주석은 일단 뒤로라도 가니 됐다, 앞으로 가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다며 기술자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이처럼 실패에 인색하지 않고 과학기술자들을 우대하는 북한 지도자의 전통은 이번 은하 3호 발사에도 이어졌다.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은하 3호 발사가 실패로 끝나자 관련 책임자들이 처벌을 받았다고 보도했으나 이들은 정작 며칠 후 있었던 최고인민회의에 등장해 고위직에 앉았다. 

아무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창한 ‘사회주의 강성대국’은 정치·군사·경제강국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한 방도로 내세운 3대 기둥에 ‘과학기술중시’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즉, 북한은 과학기술을 중시하여 그 힘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노선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북한은 1999년을 ‘과학의 해’로 규정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해 첫 현지지도로 과학원을 방문하였다. 또한 경제발전 계획보다 먼저 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1998년부터 시행하였다. 또 2006년 최고인민회의는 2022년을 과학기술강국 건설의 목표 시한으로 설정했다. 왜 2012년이 아닌가 의아할 이들도 있겠는데 원래 북한이 말한 2012년은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쉽게 말해 강성대국에 진입하는 해지 완성하는 해는 아니다. 따라서 2022년에 과학기술강국을 완성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최고지도부가 직접 챙긴 인공위성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히 관심을 쏟은 분야는 CNC(컴퓨터 수치제어)다. 2011년 북한의 송미란 노동신문사 논설원은 ‘장군님과 CNC’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이 책의 전체 내용이 노동신문에 20차례에 걸쳐 연재되었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 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CNC 개발을 위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2년 김책공대 연구사, 기술자들로 CNC 기술개발집단을 꾸리도록 하였고 이들은 1995년 초 4축 CNC 시제품을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에 접어든 북한에서 이 소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되지 못했다. 몇 달 지난 후에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시제품이 전시된 곳을 우연히 지나다 CNC 시제품을 알아보고 개발자들을 불러 연하기계관리국 책임자로 임명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북한을 대표하는 CNC인 연하기계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10년 북한은 세계 최고 수준인 9축 CNC 공작기계를 완성하였다. 

인공위성 개발에서 CNC 기계가 중요한 이유는 인공위성을 발사할 우주로켓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CNC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주로켓을 만들려면 초정밀 가공기술이 필요하며 이는 사람이 손으로 금속을 깎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CNC 공작기계가 있어야 설계도를 입력한 그대로 정밀한 기계부품을 깎아낼 수 있다.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은하 3호는 물론 4월 15일 열병식에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겉면을 보면 ‘ㅈ’으로 시작하는 일렬번호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이러한 로켓, 미사일이 대량생산되고 있음을 말해주는데 이 역시 CNC 공작기계가 있기에 가능하다. 

김정은 최고사령관 역시 인공위성 개발에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위성연구소 부소장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아직 후계자로 대외에 공개되기 전인 2006년 6월 19일에 동창리 우주발사장에 방문해 현지지도 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후계자 내정 혹은 활동 개시 시점을 보통 2008년으로 추정하고 빨라야 2007년으로 추정하는데 그 이전에 이미 우주발사장을 현지지도한 것으로 보면 그만큼 인공위성 개발에 높은 관심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2009년 광명성 2호 발사 당시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방문했다. 당시 일부 나라들이 광명성 2호를 요격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만약 실제로 요격을 한다면 함선과 요격제계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북한 언론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당시 반타격 사령관으로서 육해공군을 지휘했다고 보도했으며 “적들이 요격으로 나오면 진짜 전쟁을 하자고 결심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최고지도부가 직접 챙긴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은 국가적 투자 속에 상당한 기술력을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이번에 광명성 3호 발사는 실패했지만 조만간 2차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으며 북한이 필요한 각종 인공위성을 계속해서 발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주변국들의 반대 목소리는 상당히 옹색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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