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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분단을 생각한다

10전11기

by 붉은_달 2011. 3. 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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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아니 당시 대학을 다니지 않았어도 누구나 기억할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연대항쟁’입니다. 수천 명의 대학생들을 경찰이 포위하여 무려 9일간 원천봉쇄를 하고 헬리콥터로 특수부대까지 투입한 끝에 총 5848명을 연행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1996년 8월. 분단을 생각한다


1996년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아니 당시 대학을 다니지 않았어도 누구나 기억할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연대항쟁’입니다. 언론에선 흔히 연대사태라고 하지요. 연세대에서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조국통일범민족대회(이하 범민족대회)라는 연례 통일행사를 했다는 이유로 수천 명의 대학생들을 경찰이 포위하여 무려 9일간 원천봉쇄를 하고 헬리콥터로 특수부대까지 투입한 끝에 총 5848명을 연행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3341명이 불구속 입건, 즉심은 373명, 훈방 1672명, 최종 구속자는 462명이었으니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10년 전인 1986년에 건국대에서 있었던 <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 사건(1290명 구속)을 흔히 건대항쟁이라 부르는데 이와 유사한 성격과 규모의 사건이라 학생들은 연대항쟁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당시 너무 많은 학생들이 연행, 구속되는 바람에 한다하는 운동권 학생들은 다 잡혀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 두 번째 연행이 연대항쟁이었느냐면 그건 아닙니다.


당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울에 가지 않고 대전의 학교에 있었던 저는 언론과 PC통신에 올라오는 속보들을 보며 사태가 예상 외로 커졌음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에도 범민족대회는 수차례 있었고 거의 매번 탄압을 받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아직 학생들이 연세대에 갇혀있는 동안 대전에 남아있던, 혹은 서울에서 내려온 부상자들(당시 경찰의 진압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들은 대부분 머리나 팔다리에 붕대를 감고 후송된 이들이었습니다)이 모여 이대로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 뭐라도 하자,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리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일단 사람이 많지 않아 두 팀으로 나눠 대전 중심가에서 선전활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학생회장들이 남아있질 않아서 당시 총학생회 간부였던 제가 한 팀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급히 준비하느라 유인물이나 피켓 하나도 없이 다들 맨 몸으로 나섰습니다. 할 수 있는건 ‘소리통’이라는 건데 한 사람이 연설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복창을 해 큰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휴대용 앰프가 귀하던 시절이라 인간 확성기가 되는 셈이지요.


그러나 정부는 연대항쟁의 진실을 알리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팀이 대전 최고 번화가 앞에서 소리통을 하고 있는데 봉고차를 타고 온 전경들이 우르르 내려 우리를 포위하더니 잠시 후 연행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경찰서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고 즉결심판에 넘겨진 우리는 수십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충남대학교 근처에서 사회과학서점을 운영하던 얼굴도 모르는 선배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수차례 선전활동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집요한 방해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1996년 뜨거웠던 여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왜 그렇게 학생운동을 죽일듯이 달려들었을까요? 그 해 말에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를 앞두고 학생운동이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고, 집권 하반기 가장 위협이 되는 학생운동을 사전에 괴멸시키려는 의도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직접적 이유는 당시 남과 북, 해외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통일을 논의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통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남과 북이 한 자리에 만난다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곤 합니다. 남북이 만나는 게 바로 통일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대항쟁은 제게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통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과는 화해해도 북한과는 못해!?


우리 사회에는 통일에 대한 4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는 무작정 통일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공산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북한에는 ‘공산당’이 없고 ‘노동당’이 있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특이하게 항상 ‘공산당’이란 표현에 애착을 갖더군요.


둘째는 비슷한 입장인데 승공통일, 흡수통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체제로 통일하자는 것인데 아마 가장 흔한 입장일 것입니다.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람들도 은연중에 흡수통일의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경제도 어려운데 통일이 좋기만 하겠냐는 신중론입니다. 둘째 입장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데 통일이 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은 보통 점진적 통일, 장기간에 걸친 느린 통일을 주장합니다.


넷째는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며 분단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사실 남북관계를 결정적으로 전환시킨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의 기본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첫째 입장은 흔히 반공 입장이 철저한 사람들, 한국전쟁으로 직접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가족을 죽인, 재산을 빼앗은 철천지원수이므로 절대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것이지요.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미군이나 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어떡합니까? 지금도 미군이나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새로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어려운 얘기지만 결국 한 민족끼리 있었던 비극은 지금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지 않고는 결코 풀리지 않고 후세에 무거운 짐을 계속 떠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은 고사하고 남남갈등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피해자인데 왜 서로 싸워야합니까? 저도 개인적으로 보면 가까운 친척 어른이 좌익 청년들에게 구타당한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지만 그것 때문에 누굴 원망하거나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나와 우리 후손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일제는 36년 간 우리 민족을 노예처럼 부렸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부려먹었습니다. 전장에, 노역장에 끌려간 사람들,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가 아직 해결도 안 됐는데 우리는 일본과 너무 가깝게 지냅니다. 셔틀외교, 경제협력, 문화교류는 물론이고 월드컵도 공동 개최하더니 이제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에 일본 자위대를 불러들여 부산 앞바다에서 군사훈련도 합니다.


일본에는 이토록 관대한데 한 민족인 북한에게는 왜 그토록 악을 쓸까요? 뭔가 이상합니다.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런 상황을 조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누굴까요? 미국과 극우세력, 독재정부의 합작품입니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한·미·일 삼각동맹체제를 구축해야 하는데 한국의 반일감정이 걸림돌입니다. 따라서 한·일 사이가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또 동북아 장악의 주요 수단인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려면 한국에 반북감정이 지속돼야 합니다. 극우세력, 독재정부도 반북여론이 들끓어야 자신들의 지지기반도 튼튼해지고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도 무마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전 국가안보회의(NSC) 의장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쓴 <거대한 체스판>을 보면 미국은 ‘한국 통일을 향한 어떠한 운동도 미군의 계속적인 남한 주둔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안정적인 한·일 동반관계는 역으로 극동지역에서 미국 세력의 계속적 임재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 심지어는 한국 통일 이후에까지’라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미국은 극동지역(동북아시아지역)의 영향력을 위해 한일관계 증진과 남북관계 후퇴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 경상대 유낙근 행정학 교수도 <제국주의와 한국사회>라는 책에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한미군 주둔과 한반도 분단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한국에 장기간 안정적인 친미반공보수정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이들의 여론몰이에 의해 우리들은 36년 간 우리를 괴롭힌 일본과는 쉽게 화해하면서 3년 간 싸운 북한과는 원수처럼 지내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누구와 먼저 화해해야 할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그것이 문제로다?


두 번째 입장은 상당히 폭넓게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됩니다. 극우인사들처럼 탱크 타고 평양으로 북진하자는 주장부터 북한은 곧 망하니 정권 인수를 준비하자는 사람, 별다른 고민 없이 통일은 당연히 자본주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통일국가의 상이 바로 자본주의 단일체제 국가라는 점입니다. 사회주의는 이미 실패했고 따라서 수용할 수 없으며 당연히 자본주의 방식으로 체제를 흡수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통일방안과 주로 관련 있는 문제입니다.


한국의 통일방안은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정책’, 박정희 정부의 ‘선건설 후통일론’, 전두환 정부의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등이 있습니다.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이후 정부가 새롭게 발표한 통일방안은 없습니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야시절 ‘평화통일 3단계론’을 주장했으나 집권 후 이를 공식화하지는 않았고 대신 6.15공동선언을 통해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통일을 실현할 것을 합의하였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6.15공동선언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서 정부의 통일방안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고 기껏해야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과도기로 남북연합 단계를 거친 후 총선거를 통해 단일국가를 건설한다는 방안입니다. 남북연합이란 유럽연합처럼 둘 이상의 국가가 연합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형태입니다 유럽연합은 각 나라가 번갈아가며 의장국을 맡고 있으며 헌법 성격의 공동 규범도 있고 유로화하는 공동 화폐도 사용합니다. 그러나 각국은 독립적인 정치제도, 헌법, 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도 필요에 따라 유럽연합의 이름으로 한 나라처럼 나설 때도 있고 각국이 따로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남북연합 방식으로 통일을 하면 어떤 경제체제로 통합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과 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유지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북연합은 밖에서 보기에 단일국가로 보이지도 않고 언제든 쉽게 연합을 탈퇴하고 별개국가로 갈 수 있기에 (유럽연합도 가입국이 탈퇴하면 그만입니다) 통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남북연합 다음 단계로 체제통합 단계를 둡니다. 총선거를 통해 단일국가를 이룬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체제 통합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남이든 북이든 자기 체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통합 과정에서 상당한 마찰과 충돌이 예상됩니다. 게다가 통합 방식이 선거라서 더 위험합니다. 선거라는 방식이 공평하고 민주적인 듯하지만 인구수가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선거로 통합하자면 과연 북한이 동의할까요? 이런 문제로 사실 체제 통합은 전쟁 등 강제적 방법을 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남과 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계속 유지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실현하는 게 가장 무난합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는 건 뒤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어쨌든 자본주의로의 체제 통합을 염두에 둔 흡수통일은 올바른 생각도 아니고 현실적인 고민도 아닙니다. 제가 특히 우려하는 건 흡수통일을 반대하는 일부 개혁적, 진보적 인사들이 내면에서는 흡수통일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 예가 2010년 북한의 후계체제 공개에 대한 입장에서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후계 문제는 북한의 내정이므로 간섭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한 민족이고 통일의 상대방인데 어떻게 남 보듯 하느냐’고 반박합니다. 물론 북한은 한 민족이고 통일의 상대이기에 중국이나 영국, 일본 대하듯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정치체제 문제, 사회나 국가 지도자를 어떤 식으로 세우는가 하는 문제는 통일과 무관하게 북한이 자체로 할 일이지 우리가 간섭할 문제가 아닙니다. 거꾸로 북한이 우리에게 ‘대통령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내각제로 바꿔라’고 주장하면 어떨까요? 대통령제가 좋든 싫든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며 항의하겠지요.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대통령제를 이해하지 못하며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는데도 사회가 유지되는 걸 신기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은 북한을 바꾸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서로 상대를 자기 입맛대로 고치려고 해서는 결코 통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잣대를 가지고 북한을 재단하고 민주화니 인권이니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북한의 민주화 정도나 인권 상황이 어떤가 사실 여부와는 별도로 이 자체가 북한을 자극하여 대화를 가로막을 것입니다. 결국에 가서는 사회주의 나라와는, 자본주의 나라와는 통일 못 한다고 서로 등 돌리고 말 것입니다. 서로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뒤에야 통일이 가능합니다.


통일이 밥 먹여주나?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다시 돌아와서 셋째 입장을 살펴봅시다. 워낙 요즘 경제가 어렵다보니 모든 것을 경제 위주로 생각하게 되고 통일도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나 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다들 통일의 경제적 영향을 우려하다보니 통일이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연구결과 또한 많습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반통일부로 역할을 바꾼 통일부의 누리집만 들어가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경제 때문에 통일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유는 통일에 대해 오해하거나 간과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분단비용입니다. 흔히 통일에 들어가는 돈만 생각하기 쉽지만 통일을 하지 않았을 때 들어가는 분단비용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특히 분단비용은 통일이 될 때까지 계속 들어가기 때문에 통일이 늦어질수록 누적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분단비용으로 가장 크게 들어가는 것은 국방비입니다. 현재 우리는 국가예산 가운데 약 15조 원을 방위비로 쓰고 있으며 주한미군에 들어가는 돈도 약 4조 원 가까이 됩니다. 1년에 20조 원 가까운 돈을 분단 때문에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통일이 되면 이를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분단이라는 불안요소 때문에 국내 자산가치가 저평가되고 투자 기피를 유발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효과도 있으며, 분단으로 인한 사회갈등 때문에 낭비되는 경제적 손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분단 65년 동안 누적된 분단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통일을 실현해야 합니다.


둘째는 흡수통일을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대표적인 흡수통일이었던 독일의 통일과정을 예로 들면서 우리 경제가 파국을 맞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정부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통일비용’도 흡수통일에 필요한 비용입니다. 하지만 흡수통일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서로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통일을 이룬다면 ‘통일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셋째는 통일비용을 투자비용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투자금은 사라지는 돈이 아니라 더 큰 경제적 효과를 불러오는 씨앗입니다. 따라서 통일비용이 들어간다고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꾸로 통일 투자가 얼마나 경제에 도움이 될지 계산해보는 게 정상입니다. 참고로 2010년 11월 20일자 <한겨레>에 실린 중앙대 신창민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통일비용은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6.0~6.9%인데 현재 분단비용은 4.35~4.65%이며 이 통일비용으로 인해 통일 후 연간 11.25%의 국내총생산 성장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당연히 투자해야 하겠죠?


넷째는 북한의 경제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현재 ‘경제강국’을 건설하겠다는 목표 아래 경제에 국력의 상당부분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과가 적지 않다는 게 방북인사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런 북한의 경제 현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북한은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 아프리카 오지의 극빈국 같은 나라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렇다보니 통일을 하면 독일처럼 북한에 경제지원을 하다가 우리 경제까지 거덜날 것으로 예상하는 것입니다.


2001년 경 제가 직장 동료들과 식사를 하다가 통일에 대한 얘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6.15공동선언으로 인해 당장 통일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직장 동료들은 통일이 되면 토목학과 학생들이 떼돈을 벌 것이다, 북한은 사회간접자본도 엉망이고 토목건축기술도 엉망이라 다 다시 건설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 북한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 몇 층이나 되냐고 묻기에 제가 평양에 있는 류경호텔은 백 층이 넘는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침묵이 흐르더군요.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 크레인이 없어 사람 힘으로만 건물을 짓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통일의 이정표 6.15공동선언, 통일의 원칙 7.4공동성명


이제 마지막 입장, 6.15공동선언의 기본 정신과 일치하는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게 바로 6.15공동선언 제2항이 이야기하는 통일방안입니다.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살리는 통일 방안을 합의했던 것입니다. 연합제는 앞서 살펴봤으니 이제 낮은 단계 연방제안이 뭔지 알아야겠습니다.


원래 연방제란 미국처럼 하나의 연방정부 아래 자치정부들이 존재하는 국가형태입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연방헌법, 연방법원, 연방의회, 연방군대가 있어서 분명 하나의 국가지만 각 주별로 주정부를 구성하여 주지사를 뽑고 주법이 있으며 주방위군도 있습니다. 국가연합과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대외적으로 하나의 국가이며 가입, 탈퇴의 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 독일, 영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인도, 아랍에미리트, 벨기에, 스위스 등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연방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럼 낮은 단계 연방제란 뭘까요? 연방을 구성하는 자치정부의 권한이 더 큰 형태를 얘기합니다. 자치정부의 권한이 줄어들수록 ‘개별국가 > 국가연합 > 낮은 단계 연방국가 > 연방국가 > 단일체제 국가’가 된다고 할 수 있겠고, 낮은 단계 연방국가부터 하나의 국가가 되므로 ‘통일국가’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6.15공동선언은 국가연합과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을 살리자고 했으니 그 구체적 형태는 계속 연구와 협의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에 대한 여러 입장을 살펴봤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남과 북의 정상이 직접 만나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실현하여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줄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겠습니다.


끝으로 6.15공동선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7.4남북공동성명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1972년 박정희 정부 시절 남과 북은 양측 정상의 뜻에 따라 7월 4일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민족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원칙을 밝힌 것입니다. 7.4공동성명이 소중한 건 남북 정부가 합의한 첫 작품이며, 통일의 기본 원칙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남쪽 정부가 합의한 덕에 국가보안법이 무시무시한 감시를 하는 속에서도 우리가 통일의 3원칙을 합법적으로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보수세력이 그토록 싫어하는 ‘자주’를 보수세력이 그토록 좋아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부가 합의한 건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민족자주가 왜 중요한가. 이건 통일의 본질과도 관련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의 본질은 분단의 원인과 맞닿아있습니다. 분단의 원인으로는 크게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을 꼽습니다. 외적 요인은 미국과 소련의 합의에 의해 우리 민족의 뜻과 무관하게 분단이 됐다는 것이고, 내적 요인은 당시 좌우로 분열한 정치세력들 때문에 분단이 됐다는 것입니다. 외적 요인이 주된 요인이라면 통일을 이루기 위해 외세를 배제하고 우리 민족끼리 협상을 해야 할 것이며, 내적 요인이 주된 요인이라면 남북이 체제를 하나로 통합해야 통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럼 분단의 주된 요인은 무엇일까요?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면 금방 알 수 있는데 내적 요인이 아닌 외적 요인이 결정적입니다. 38선을 제안한 게 미국이며 소련도 이에 동의했고 우리 민족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해방 직후에 우리나라는 좌우 대립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와 친일파를 배제하고 민족 구성원 전체가 힘을 모아 인민정부 형태의 자주독립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민족의 분열보다는 외세의 의도로 분단되었기 때문에 통일을 이루려면 먼저 외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자주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민족자주의 원칙은 6.15공동선언의 제1항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으로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평화통일의 원칙은 전쟁이 아닌 협상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평화통일’과 ‘평화공존’을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쟁은 피해야겠고 통일은 언제 될지 모르니 남과 북이 통일을 추진하기 전에 일단 위기관리를 통해 평화 상태를 유지하는데 힘을 쏟자는 게 평화공존입니다. 남측의 정부나 정치인들, 개혁적인 인사들이 많이 하는 주장으로 얼핏 들으면 합리적인 주장 같습니다. 하지만 분단 자체가 위기를 불러오므로 통일되기 전까지 궁극적인 평화 상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즉, 통일을 이루기 전까지 평화공존에 들이는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이며 결국 통일은 한정 없이 미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같은 평화라도 ‘평화공존’이 아닌 ‘평화통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민족구성원이라면 사상, 정견, 종교, 빈부, 성별 등 모든 차이에 앞서 통일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족대단결을 실현하자면 정부 사이에 공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민간 사이의 교류와 협력도 중요합니다. 통일은 남과 북이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믿는 과정입니다. 이는 정부끼리의 접촉으론 불가능합니다. 민간교류가 계속 확대되면 통일도 금방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정부들은 통일논의를 정부가 독점하면서 민간교류를 제한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나마 6.15공동선언이 발표되면서 민간교류는 폭발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는 당국간 대화도 중단해버렸고 민간 교류도 차단해버렸습니다. 민족대단결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입니다. 이러니 각계에서 반통일 정권이라 비난하는 것이지요.


이명박 정부 들어 통일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통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원래 함께 살던 한 민족이고, 함께 살아야 평화롭게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 그것은 생각만큼 그리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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