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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문화예속을 생각한다

10전11기

by 붉은_달 2011. 11. 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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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묶여 있어도 정신만은 자유롭다면 진정한 자유인이지만 몸은 자유로워도 정신이 묶여 있다면 노예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라도 마찬가지로 식민지 상태에서도 자주독립의식이 남아있다면 언젠가 주권을 회복할 수 있지만, 형식적인 독립국이라 해도 자주독립의식이 없으면 식민지나 다름없습니다.


2008년 9월. 문화예속을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간첩 행위가 된 민간교류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급격히 후퇴하고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공안당국은 진보운동, 통일운동에 대한 막무가내식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공안당국에게 쓸만한 구실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활발히 진행된 남북 민간교류였습니다. 민간교류 과정에서 만난 북측 인사들이 북한 공작원이라고 하면 민간교류를 진행한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간첩과 접선’한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측 인사가 공작원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저 국가정보원에서 공작원이라고 주장하면 끝입니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로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보수정권은 보통 이럴 때 대규모 간첩단사건 같은 무시무시한 사건을 터트려 국민들의 반정부 정서를 희석시킵니다. 당시 첫 타깃은 촛불시위에 불을 지폈다고 지목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였습니다. 실천연대가 촛불시위 초반에 활발한 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천연대로 인해 촛불시위가 폭발했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희생양이 필요했고 2008년 추석이 끝나자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2008년 9월 26일 실천연대 부설 한국민권연구소와 몇몇 단체가 공동으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토론회가 끝나고 토론회를 준비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밤새 뒤풀이를 했습니다. 아마 새벽 5시까지는 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데 아침 일찍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깜짝 놀란 저는 급히 커튼을 들춰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경찰이 건물 전체를 에워싸고 있더군요. 순간 저는 ‘아,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실천연대를 탄압하리라는 예상은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는 숙취에 괴로워하며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에게 끌려가야 했습니다. 9번째 연행이자 두 번째 구속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당시 전국에서 실천연대 간부 6명을 체포했고 무려 31군데 집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이전 정권에서 정상적이고 합법적으로 진행한 남북교류사업이 하루아침에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은 간첩 행위로 둔갑하는 현실을 보니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그리고 분단의 장벽을 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조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반민주 악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라는 주장에 아무런 반박도 못하는 국가정보원 수사관을 보면서 공안기관들을 뿌리부터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없겠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들어간 구치소는 참으로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물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난방도 되고, 선풍기도 있고, 운동시간도 늘어났고, ... 가장 인상적인 것은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녹화 방송만 틀어주지만 구치소에서 느리게만 흐르는 시간을 보내는 데는 그만큼 적당한 것도 없겠다 싶더군요. 교도관들도 텔레비전이 설치된 후 구치소 사고 건수가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텔레비전을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치소에서 보낸 6개월 동안 본 방송이 아마 지난 6년 동안 본 것보다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괜찮은 교양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시청률이 높은 오락 프로그램들은 제게 올바른 대중문화란 무엇인가 하는 심각한 고민을 던져주었습니다.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가”


우선 대중문화가 미국식, 일본식 문화로 넘쳐납니다. 일단 말부터 우리말이 없습니다. 온통 영어투성이입니다. 이른바 아이돌그룹이 부르는 노래에는 꼭 영어 가사가 섞여 있더군요. 게다가 우리말 가사조차 영어처럼 혀를 굴리며 발음하는 통에 자막을 보지 않으면 무슨 내용의 가사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연예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말에도 무슨 영어 단어가 그렇게 많이 섞여있는지.


연예계만 그런게 아닙니다. 보통 구치소에서는 가장 많은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냅니다. 그런데 학식 높은 교수님들이 쓴 책만 펼치면 온통 영어 단어와 한자어투성이 입니다. 우리말로 쓰면 쉽게 읽을 수 있는데 왜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조합해서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한 후배는 그러더군요. 영어와 한자어로 범벅을 해놔야 다른 사람들이 논문을 못 읽어 반박을 안 한다고.


언어는 인간에게 참으로 중요한 도구입니다. 옛날에는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기준을 언어에서 찾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언어를 자기 머릿속의 생각을 남에게 전하는 도구 정도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언어는 생각 자체의 도구입니다. 사과를 생각해 봅시다. 언어가 없다면 머릿속에 빨간 사과를 그려보는 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사과’라는 단어가 있다면 머릿속에 ‘사과’를 되뇌어보겠죠. 그렇다면 ‘행복’을 생각해봅시다. 언어가 없다면 머릿속에 무엇을 그려 넣어야 할까요?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장면을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장면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요. 하지만 언어가 있다면 자신이 인식하는 ‘행복’을 온전하게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언어가 있기 때문에 사람은 추상적인 사유가 가능해집니다. 언어가 없으면 복잡한 세계를 자유롭고 다양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언어는 생각의 도구이기 때문에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외국 책을 읽다보면 ‘아, 외국인들은 우리와 사고구조, 논리구조가 다르구나’하고 느낍니다. 외국말을 쓰다보면 외국인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자연스레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언어를 민족의 중요한 징표라고도 하고, 민족의 생명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고 우리 말과 글을 없애려고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이 모두 일본어를 하고 일본문자인 히라가나를 쓴다면 한국인들도 일본인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따라서 독립이니 자주니 하는 것들을 주장하지 않고 결국은 일본민족에 동화되리라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35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조상들이 피 흘려 지켜낸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금은 자발적으로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영어와 한자어를 섞지 않으면 대화도 잘 안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거리에 나가면 간판은 온통 영어 아니면 일본어입니다. 영어를 섞어 쓰면 유식한 사람이 되고 우리말로 쉽게 말하면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 영어 교육에 난리입니다. 돈 많은 아이들은 영어유치원으로 가고, 돈 없는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영어 수업을 듣습니다. 우리말도 제대로 배우기 전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는 당선되고 인수위원회 시절 영어몰입교육이란 것을 내놓고 국민들의 따가운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가수 신해철 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 국민이 영어를 하게 하고 싶으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가”라며 “자진해서 식민지가 되면 전 국민이 영어를 할 수 있다”고 비꼬았습니다.


30년 만에 300년 역사의 자본주의 퇴폐문화를 따라잡다


언어만 그런 게 아닙니다. 문화 전반이 미국식, 일본식으로 변해 있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상당수는 미국과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비싼 돈 주고 가져와 흉내 낸 것들입니다.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나 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노래 장르가 한국에서도 그대로 유행합니다. 한국의 인기 가수 비가 미국에서 공연하자 미국의 한 언론이 ‘마이클 잭슨을 흉내 냈을 뿐’이라고 폄하할 정도입니다. 먹는 것도 햄버거와 콜라에 점령당했습니다. 심지어 외모도 서구식 외모가 인기를 끌면서 성형과 염색에 매달립니다.


옷도 서양식 옷에 밀려 민족 고유의 한복은 평생 가야 몇 번 입을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 서울의 신라호텔에서 한복 차림으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여 논란이 된 적도 있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일본 전통옷인 기모노 차림은 출입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일본 만화영화를 보면 일본 전통옷을 입은 등장인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만화영화에 한복 입은 등장인물은 본 적이 없습니다.


대중문화에서 또 하나 심각하게 느낀 점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가수들이 떼로 몰려 나와서 발정난 고양이 같은 춤을 추는 것을 보면 이제 음란물을 몰래 구하는 시대는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드라마도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가 대세라 그런지 누가 더 충격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를 다루느냐로 경쟁을 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사람 팔다리 잘라내는 잔인한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도 상품이 되고 따라서 많이 팔려면 갈수록 선정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불과 3~40년 밖에 되지 않는 자본주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수백 년의 자본주의 역사를 가진 선진국들과 똑같은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역시 외국 문화가 무분별하게 유입된 결과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 고유의 문화가 사라졌을까요? 일제 강점기처럼 강제로 주입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친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치밀하고 집요한 ‘작업’이 숨어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주입된 코카콜라 식민지화


미국은 북한-중국-러시아를 견제하고 동북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자기 군대를 주둔시키는 게 결코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도록 만들고 그것만으로도 불안해서 한국 사회 전체를 친미 사회로 개조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한국인들이 반발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한국을 자신들의 전진기지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전국 곳곳에 미문화원을 두고 미국 문화를 전파했습니다. 또 수많은 한국인들을 유학생으로 받아 친미 인사들로 만들어냈습니다. 대규모 원조로 한국의 산업기반을 무너뜨리면서 동시에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는 나라’라는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문화가 우수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항상 미국은 악을 무찌르고 세계 평화를 지키는 평화의 사도입니다. 또 중독성이 강한 콜라를 수출해 입맛도 바꿔놓았습니다. 코카콜라를 통해 문화식민지를 개척하는 것을 두고 학자들은 코카콜라 식민지화(Coca-colonization)라는 용어까지 만들었습니다.


또 주한미군을 통해 미국의 하위문화들을 유포했습니다.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햄으로 부대찌개가 탄생하고, 미군기지에서 공연한 연예인들이 미국식 노래와 춤을 퍼뜨리고, 미군기지에서 나온 음란물들이 전국에 유통되고, 주한미군을 위한 방송을 통해 미국문화가 전파되는 식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한국의 문화가 변질되면서 동시에 한국인의 사상도 변화하였습니다. 미국이 바라던 대로 된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민족과 문화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며 외세의 지배와 간섭에 반발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대되는 현상들이 일반적으로 나타납니다.


심리적으로 내면화된 열등감


우선 우리 민족에 대한 비하와 허무주의가 만연합니다. 한국에서 민족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면 국수주의자로 매도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낙인찍힙니다. 심지어 뉴라이트는 일제가 식민통치를 통해 한국을 발전시켜줬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공공연히 떠들고 있을 지경입니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미국인의 국민성이 어쩌고, 일본인의 국민성이 저쩌고 하면서 한국인의 국민성을 비난합니다. 자기비하에 습관이 된 모습입니다.


다음으로 사대주의가 판을 칩니다.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한국군 작전지휘권까지 차지하고 있지만 이를 당연시 여깁니다. 심지어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은 미국을 ‘제2의 조국’이라 주장할 정도입니다. 현직 대통령을 두고 ‘뼛속까지 친일, 친미’라는 말이 나와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미국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미국 경제가 무너지는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미국의 품에 안기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이젠 거의 사이비 종교의 수준까지 올라간 것 같습니다.


또한 애국이 천대받고 매국이 당당한 황당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유학파 지식인들이 ‘애국’을 두고 전체주의니 파쇼의 잔재니 몰아붙이고 있는 사이에 매국노들은 ‘국익을 위해서’라면서 온갖 매국 행위들을 일삼고 있습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 전문들을 통해 언론사 간부부터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까지 수많은 이들이 미국에 국가의 주요 정보들을 보고한 사례들이 폭로되었지만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처벌은커녕 진실 규명도 되지 않았고 당사자 가운데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한 이도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자주독립의식은 갈수록 희미해집니다. ‘자주’를 이야기하면 ‘세계화시대에 무슨 놈의 자주냐’, ‘미국하고 등 돌리고 무슨 수로 사느냐’는 답변만 나옵니다. 일제 강점기 때도 그랬을까요? 제가 살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 우리말도 빼앗기고 이름도 빼앗기고 정부도, 문화도, 자치권도, 생사여탈권까지 다 빼앗긴 상황에서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은 것을 보면 자주독립의식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몸은 묶여 있어도 정신만은 자유롭다면 진정한 자유인이지만 몸은 자유로워도 정신이 묶여 있다면 노예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라도 마찬가지로 식민지 상태에서도 자주독립의식이 남아있다면 언젠가 주권을 회복할 수 있지만, 형식적인 독립국이라 해도 자주독립의식이 없으면 식민지나 다름없습니다.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는 2008년 8월 29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연재글 ‘고유문화의 해체와 식민지 문화의 형성’에서 인도나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식민지를 거치며 종주국 언어를 강요당했고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서양언어가 기득권을 갖고 공용어로 사용된다고 설명하면서 “서양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게 되면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양문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동화되며 서양적인 가치관을 갖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식민주의의 문화적 침략은 식민지인들의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뒤흔들어 놓고 파괴했을 뿐 아니라 유럽문화에 종속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식민지배로 인해 고유문화가 침탈됨에 따라 이는 자연히 식민지인들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하여 식민지인들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는” 특유의 심리상태가 만들어지며 깊은 열등감이 심리적으로 내면화된다고 합니다.


강 교수의 글은 유럽의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에 대한 설명이지만 절묘하게도 앞서 제가 이야기한 것과 정확히 맞아 떨어집니다. 한국이 문화적 측면에서 구 식민지들과 같은 처지라는 이야기지요. 이로부터 한국의 사상과 문화가 올바른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결국 문화의 한 측면만 바라봐서는 안 되고 사회 전체의 모순을 함께 해결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2011.11.22)


<10전11기 목록>

1996년 4월.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1996년 8월. 분단을 생각한다

1997년 2월. 신자유주의를 생각한다

1997년 8월. 경제주권을 생각한다

1998년 4월. 집권을 생각한다

1998년 5월. 학생운동을 생각한다

1999년 3월. 미군문제를 생각한다

2008년 8월. 정치예속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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