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998년 5월. 학생운동을 생각한다

10전11기

by 붉은_달 2011. 9. 20. 09:00

본문


 

요즘은 5월이면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대학생축제를 하는데 예전에는 한총련 출범식이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수 만 명의 대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총련 출범을 축하하는 광경, 특히 새벽녘에 진행되는 한총련 의장 옹립식은 그야말로 장관이입니다. 심지어 출범식을 한 번 하면 주변 지역에 현금이 엄청나게 풀리기 때문에 지역 상인들이 출범식 유치를 바라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마치 월드컵이나 올림픽 유치하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죠.


‘내가 바로 한총련?’


하지만 한총련에 공안탄압이 집중되면서 한총련 출범식도 더 이상 대학생 축제 마당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출범식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전국 집중 투쟁의 자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출범식에 참여하려면 지역 터미널과 역의 검문을 뚫고 서울에 올라와 또 경찰의 탄압을 피해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녀야 했으며 이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8년 5월, 전국의 대학생들이 한총련 출범식을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집결했습니다. 저도 지침에 따라 몇몇 대학생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 광장에 들어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하철 출구를 나서자 엄청난 수의 경찰들이 집결해서는 불심검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경찰의 요구에 순순히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가방에 유인물을 가득 담고 있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저항하다 걸리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갑자기 경찰 한 명이 제 가방을 낚아채더니 내용물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유인물이 보이자 곧바로 연행했습니다.


물론 경찰이 제 동의도 없이 가방을 뒤진 건 당연히 불법입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법도 인권도 보장받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의 불법행위는 묵인되고 걸린 사람만 재수 없게 연행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연행된 학생들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서울 모 경찰서로 끌려간 저는 조사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담당 형사가 “너는 저번 달 대의원대회 때도 나타나더니 출범식 하니까 또 나타나고, 한총련만 나타나면 너도 나타나는데, 네가 바로 한총련이냐?” 하더군요. 그때 갑자기 당시 유행하던 ‘내가 바로 한총련’이라는 구호가 떠올라서 어찌나 웃기던지. 조사가 끝나고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갔는데 한 달 만에 또 연행됐으니 이번엔 별 수 없이 구속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또 풀려났습니다. 옆방에 있던 후배는 구속되고 저만 풀려나니 미안한 생각까지 들더군요.


노동자, 농민, 그리고 청년학생은 진보운동의 주력 집단


한국 학생운동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됐습니다. 멀리 일제 강점기 광주학생운동이 1929년이었고, 1960년 4.19혁명도 학생들이 중심이었으며,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 등 한국 진보운동의 주요 계기마다 학생들이 앞장에서 진출로를 열었습니다. 또한 통일운동의 불도 학생들이 지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이 워낙 폭넓게 일어나다 보니 6.3세대, 386세대 같은 말도 생겼습니다.


원래 예로부터 젊은이, 청년들은 낡고 부정적인 것을 싫어하며 새롭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해왔습니다. 또한 정의롭고 과감한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 부조리를 보면 참지 않고 진보운동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진보운동을 추진하는 주력 집단에는 청년학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자, 농민들도 진보운동을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노동자란 노동력을 제공하여, 그 보수로 받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가 투자한 자본으로 원료와 기계, 노동력을 사 상품을 만들고 이를 팔아 수익을 얻는 경제활동이 기본인 사회입니다. 자본가는 언제든 노동력을 사고 팔 수 있으므로 자본가가 우위에 있는 사회입니다. 노동자는 언제나 자신이 일한 만큼의 충분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일부를 자본가에게 빼앗깁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100원을 받고 10시간 일해 상품을 만들어 판 순이익이 200원이라고 합시다. 자본가가 월급을 두 배 올려줄 테니 두 배로 일을 하라고 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손해가 아니겠죠? 그런데 200원을 받은 노동자가 20시간을 일해 상품을 두 배로 만들어 팔면 순이익도 두 배인 400원이 됩니다. 가만있던 자본가 역시 두 배의 순이익을 남긴 것입니다. 신기하죠?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애초에 자본가가 얻은 순이익이 바로 노동자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노동자는 근본적으로 자본가에게 자신의 몫을 빼앗기기 때문에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나아가 한국 경제가 미국에 얽매여 있다 보니 한국 기업이 얻은 이윤의 일부는 다시 미국에 넘어가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기업은 노동자 몫을 더 빼앗게 됩니다. 2중 착취 구조인 셈이지요. 그래서 한국 노동자들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 노동자들에 비해 더 열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진보운동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가 그만큼 더 크다는 뜻도 됩니다.


농민 역시 진보운동을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 농민들은 과반수는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임차농가는 62.2%, 자작농가는 37.0%로 임차농가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땅 주인은 가만히 앉아서 놀고먹으면서 임대료를 받고 있지만 농민들은 일 년 내내 뼈빠지게 농사지어도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특히 논의 경우 쌀값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임차료율이 2010년 기준 37.7%에 달한다고 합니다. 쌀 3가마니 수확하면 1가마니가 땅 빌린 몫으로 날아간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자작농가는 다를까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농민들의 소득은 도시 노동자 가구 소득의 66%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은 ‘농업말살정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정부의 농업정책이 불러왔습니다. 특히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수입 농산물로 인해 농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최근 우후죽순 체결되는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한국 농업의 붕괴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2008년 기준으로 25.3%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이 대부분 국산임을 생각하면 대체 쌀 외에 국산 농산물에는 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니 농업이 붕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농민들은 자연히 진보운동의 주력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처럼 노동자, 농민들도 청년학생과 마찬가지로 진보운동의 주력 집단입니다.


사람은 사상, 의식이 있기에 짐승과 다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노동자, 농민들만 진보운동의 주력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보는 시각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고 농민은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계급이므로 진보운동의 주력 집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청년학생은 착취당하는 계급이 아니므로 주력 집단이 아니라 중간층에 불과하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현실을 무시하고 이론에만 집착한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진보운동 역사를 보아도 청년학생들은 항상 주력 집단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청년학생들이 사회 진보를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청년학생운동이 축소된 것은 사실입니다. 학생운동에 집중된 공안탄압과 각종 악선전들, 극단적인 개인주의 문화가 주된 원인이겠지요. 그렇다고 청년학생운동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농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농촌에 가면 젊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농민은 이제 주력 집단이 아니라고 섣불리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청년학생운동이 일시적으로 어렵지만 청년학생은 여전히 진보운동의 주력 집단이며 노동운동, 농민운동을 비롯한 진보운동 전체가 도움을 주어 다시 키워야 할 뿐입니다.


청년학생운동을 포기하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진보운동의 미래기 때문입니다. 청년학생은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레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사회인이 됩니다. 이들이 진보적이면 사회 전체가 진보하지만, 이들이 보수적이면 사회 전체가 보수화의 정서로 가득 찹니다. 청년학생운동이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자 지금 노동자, 농민 운동도 새로운 인물들로 보충이 안 돼 힘들어합니다. 여러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에도 진보운동 하겠다고 찾아오는 젊은이가 없어 노령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진보운동이 고령화 사회가 될 판입니다. 그래서 청년학생운동을 어떻게든 흥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청년학생들이 착취당하는 계급, 즉 피착취 계급이 아님에도 진보운동의 주력 집단이 되는 이유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그가 속한 계급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노동자면서도 노동조합이 파업하는 것을 두고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이야기하며 비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소속은 노동자지만 노동계급의 이익보다 자본가의 이익을 더 걱정하는 꼴이죠. 이는 자본가를 비롯하여 기득권층이 유포한 선전 내용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그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고 눈앞에 먹을 게 있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일단 먹고 봅니다. 하지만 단식투쟁에 나선 사람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눈앞에 산해진미가 있어도 결코 단식을 풀지 않습니다. 단식투쟁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상의 힘이 그 만큼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짐승과 달리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지 않고, 또 처해진 조건에 의해서만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집단 역시 그 집단이 대체로 어떤 사상을 가지는가에 따라 집단의 성격, 역할이 결정되겠지요. 물론 여기서 그 집단이 어떤 계급적 처지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착취하는 계급은 착취자의 사상을 가지게 마련이며, 착취당하는 계급은 피착취자의 사상을 가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중간층의 경우는? 중간층은 그 집단의 특성을 따라가겠지요. 청년학생의 경우 삶이 안정되고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신의 운명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 관계로 새 것을 좋아하고, 진취적이고,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과감하게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이런 집단의 특성에 따라 청년학생은 진보운동의 주력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청년학생 말고 또 앞서 설명한 노동자, 농민 말고 누가 진보운동을 지지하고 동참할까요?


국민의 대다수는 진보운동의 동력


진보 성향의 양심 있는 지식인 집단도 중요한 진보운동의 힘입니다. 교수, 과학자, 변호사, 의사, 언론인들은 사회를 보는 눈이 날카롭고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진보 성향의 양심 있는 이들은 진보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자영업자들도 진보운동의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자본을 가지고는 있지만 많지 않고 주로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악덕 기업들의 틈바구니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SSM 논란이나, 얼마 전 롯데마트 ‘통 큰 치킨’ 논란을 봐도 잘 알 수 있죠. 그래서 이들은 진보운동을 지지하게 됩니다.


빈민들 역시 진보운동의 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빈민이 되는 경로는 대략 비슷합니다. 과거에는 ‘농업말살정책’으로 인해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도시 변두리에서 빈민촌(이른바 달동네)을 형성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노숙자가 되거나 운이 좋아 퇴직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했다가 경제위기로 파산하여 결국 빈민 대열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안전망 미비로 인해 병이나 장애를 얻고 치료비나 재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도 많죠. 이들은 대체로 기득권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으며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반대합니다.


양심적인 민족자본가들도 진보운동을 지지합니다. 민족자본가라고 하면 대체로 외국자본과 결탁하지 않고 이들의 경제 활동이 온전히 국익이 되는, 보통 중소기업가 형태로 존재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원래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는 국익을 지키기 위해 민족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반대로 외국자본과 손을 잡은 재벌들에게 특혜를 몰아주어 민족자본가들이 몰락하도록 방치합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 민족자본가들은 외국자본이나 재벌들의 횡포에 밀려 만성적인 경영난을 겪고 있으며 대기업에 흡수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들은 재벌 위주의 경제 구조에 불만이 많으며 또 민족경제에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민족자본가들이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진출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종교인들도 진보운동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보아도 주변국들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종교인들이 이에 항거하여 싸워왔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종교인들이 미국의 부당한 간섭을 반대하고, 또 민주주의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직자들의 활동은 많은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군인은 어떤가요? 군사쿠데타 경험이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군인은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4.19혁명을 통해 독재정부를 무너뜨렸지만 5.16쿠데타로 뒤집어진 역사를 돌이켜보면 군대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진보운동이 승리할 수도 있고, 승리했다가도 좌절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군 상층과 달리 일반 사병이나 중하층 장교들은 노동자, 농민의 자식들이거나 청년학생 출신입니다. 이들은 당연히 진보운동을 지지합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진보운동을 지지하고 또 함께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개인을 놓고 보면 진보운동을 반대하고 외세의 앞잡이가 되거나 독재정권과 재벌의 편에 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으면서 진보운동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진보운동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문제는 더 많은 이들이 진보운동을 지지하고, 또 함께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들이 실제 힘이 되려면 대중단체를 만들고 여기에 참여해야 합니다. 청년학생들이 아무리 진보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거 전대협, 한총련, 그리고 지금의 한대련 같은 대중단체가 없었다면 뿔뿔이 흩어진 힘을 모아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진보운동의 승패는 전체 국민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힘을 얼마나 많이 모을 수 있느냐로 판가름 난다 하겠습니다. (2011.9.20)



<10전11기 목록>

1996년 4월.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1996년 8월. 분단을 생각한다

1997년 2월. 신자유주의를 생각한다

1997년 8월. 경제주권을 생각한다

1998년 4월. 집권을 생각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