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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집권을 생각한다

10전11기

by 붉은_달 2011. 8.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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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에서 최초로 정권교체가 실현되었습니다. 오랜 민주화운동의 경력을 가진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많은 이들은 드디어 이 땅에서 독재가 사라지고 민주화의 봄이 찾아오는구나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특히 96년 연대항쟁을 거치면서 극심한 탄압을 받았던 학생운동은 과연 새롭게 등장한 김대중 정부가 학생운동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민의 정부마저...


학생운동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입장은 집권 첫 해인 1998년 4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의원대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한총련은 영남대에서 대의원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평화적 개최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영남대는 물론 대구 주요 대학을 원천봉쇄하고 역과 버스터미널까지 경찰병력을 투입해 삼엄한 분위기에서 검문, 검색을 하였습니다. 한총련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평화적인 방법만 동원하여 행사 진행을 시도하였지만 공안기관은 학내에 프락치와 폭력배들을 들여보내 각목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폭행하고 폭력사태를 유도했습니다.


행사가 계속 지연되자 대회 참가자들은 대구 시민들에게 평화적 행사 개최 의지를 알리고자 대구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참가자들은 시내에서 도로를 막고 연좌시위를 하며 행사 보장을 요구하였습니다. 물론 저도 다른 학생들과 함께 도로에 누워있었습니다. 설마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드러누웠는데 어쩌겠나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경찰들은 수백 명의 학생들을 모조리 뜯어내 연행해버렸습니다. 이렇게 제 다섯 번째 연행 경험이 시작됩니다.


사실 당시 대의원대회 개최를 막은 것은 공안기관의 논리로 봐도 모순이었습니다. 공안기관의 논리대로라면 애초에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지목한 것은 한총련 노선 때문이었고 따라서 매년 한총련 노선이 바뀌므로 매년 한총련의 이적성을 판단해야 합니다. 한총련이 이적단체인지 아닌지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통과된 총노선을 봐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안기관은 대의원대회 자체를 막아버렸습니다. 총노선이 통과되기도 전에 미리 이적단체로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학생운동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처사였습니다. 사실 한총련은 1997년 대선 막바지에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여 진보진영 내에서 비난을 받기까지 한 경험이 있어서 배신감은 더 컸습니다.


아무튼 이 과정을 통해 많은 이들이 김대중 정부가 과연 이전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려는 사실로 차츰 드러났습니다. 물론 과거사를 재평가하는 등 김영삼 정부에 비해 발전된 모습도 있었지만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통일운동 탄압 양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신자유주의를 급진적으로 도입하는 모습은 오히려 이전 정부를 능가하였습니다. 고질적인 부정부패 의혹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학생운동은 2000년에 이르러 김대중 정부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으며, 물러날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다 극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정부에 대한 입장도 변하였습니다.


저는 고향이 광주인지라 어려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극찬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대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한때 민주화운동을 했다지만 대통령이 되면서 180도 바뀌더니 김대중 전 대통령도 180도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각도 비틀어진 건 사실입니다. 왜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이 청와대만 가면 변하는가, 과연 개인의 신념 문제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독특하고 기형적인 한국 정치


한국 정치 지형과 환경, 뿌리는 서구 일반 국가들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일단 정권의 탄생부터 다릅니다. 유럽 나라들은 봉건사회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봉건귀족이 몰락하고 이 속에서 자본가가 노동자와 대립하면서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밟았습니다. 즉, 치열한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탄생하고 자본가 정권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시민혁명도, 계급투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들어선 과정을 살펴봅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였지만 조선총독부와 일본군은 한반도에 계속 남아서 통치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9월 8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고서야 일본군은 항복문서에 조인하고 미군에게 정권을 넘겨줍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에 걸린 일장기가 내려가고 미국 성조기가 올라가는 역사의 한 장면이 바로 이 당시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미군정 아래에서 주민들의 자치조직인 인민위원회는 모두 해산 당했고 미국의 통제 아래 분단정부가 세워져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집권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에 근대적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달리 계급투쟁이나 시민혁명 대신 일본, 미국과 우리 민족의 민족적 대립이 존재하였습니다. 계급 충돌 대신 민족 충돌의 과정에서 주입식으로 탄생한 한국 정부는 이처럼 태생부터 다른 서구 국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학생이 창의력이 부족하듯, 미국이 떠밀어 주입식으로 정권을 세운 이승만 정권 역시 독자적인 통치력을 발휘하기보다는 미국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오늘날 이라크에서 미군정 아래 이라크 자치정부가 들어섰지만 이라크를 일반적인 자주독립국가로 보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저 미국의 요구를 대리 집행하는 허수아비 정부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당시 이승만 정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고 헌법도 5번이나 바뀌어 지금은 제6공화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권 교체 과정도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87년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루기 전까지 한국은 쿠데타의 연속이었고 군부독재자들이 정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직선제 개헌 후에도 대통령 당선에는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였습니다. 미국의 지원 없이는 당선이 힘들었고 그래서 많은 후보들이 선거를 앞두고 미국에 달려가 지지를 호소하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당선 후에는 또 가장 먼저 미국에 달려가 사례를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서구 국가들은 독점자본가 출신이나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고, 대통령이 되며, 이들 사이에서 경쟁을 통해 정권이 바뀝니다. 선거는 형식에 불과하며 대체로 어떤 정치세력이 더 많은 독점자본을 지지·후원자로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석유탐사기업인 아버스토 에너지(Arbusto Energy) 설립자이며, 딕 체니 전 부통령은 세계 2위 규모의 석유 및 군수업체인 핼리버튼(Halliburton) 사장 출신입니다. 핼리버튼은 쿠바 관타나모에 포로수용소를 짓고, 이라크 석유시설 복구사업을 독점하여 110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부시 정권이 왜 이라크 전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금융기업의 엄청난 지원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당선 후 금융위기 속에서 정부 재정을 투입해 금융기업들에 많은 혜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처럼 정권교체 과정에서 보이는 차이점은 정부와 재벌의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물론 한국도 정부와 재벌의 관계는 돈독하고 온갖 유착관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정부는 재벌의 뒤통수를 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IMF 사태입니다. 당시 정부는 재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장악한 IMF의 요구에 맞춰 경영투명성 재고 등 각종 경제정책을 관철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재벌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무너져 미국 등 해외자본에 헐값으로 팔렸습니다. 이처럼 한국 정부는 재벌보다 미국의 요구에 더 충실합니다.


한국 정치의 이런 특수성은 결국 누가 대통령이 되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힘든 구조임을 말해줍니다. 미국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당선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요구에 밀려 여당의 반발까지도 감수하며 이라크, 아프간 파병을 강행하였고, 논란 속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습니다. 참여정부 인사들이 미국을 좋아하고 추종하는 친미인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을 두려워한 건 사실입니다.


국민이 주인 되는 정권이 필요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우리 정권을 세워야 합니다. 미국이 아닌 국민을 두려워하고, 미국이 아닌 국민을 섬기며, 미국이 아닌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정권을 세워야 합니다. 헌법 제1조의 내용처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국민주권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이를 실현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정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대통령 개인의 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정당이 주도하고 외곽 단체들이 지원해야 합니다.


현존하는 정당 가운데 이런 의지를 가진 대표적인 진보정당은 바로 민주노동당입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이 뜻은 좋은데 집권할 능력이 되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진보세력과 통합하여 힘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 진보정치대통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보세력이 힘을 모아 진보정부를 세우면 이 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여 자주를 실현하고, 정치·경제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노동자·농민·서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고,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런데 진보세력의 힘만 가지고 독자적으로 집권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그 과정에서 진보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외세와 수구세력의 방해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연립정부를 먼저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정치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폭넓은 세력과 연대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하면 진보세력의 힘을 빠르게 키울 수 있고 부분적으로 진보정책을 구현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먼저 진보세력들의 통합을 통해 진보대통합당을 만들고 다음으로 민주당과 연합하여 연립정부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연립정부는 진보정부에 비해서는 진보의 수위가 낮지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사회정치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고 통일을 실현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존재한 그 어떤 정부보다도 발전된 정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립정부를 세우는 데서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진보세력이 연립정부의 중심이 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연립정부는 쉽게 말해 진보와 개혁의 연합정권입니다. 그런데 과거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경험했듯 개혁정부들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미국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노동자·농민들의 편에서 정치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연립정부를 세우더라도 개혁세력이 중심이 되면 이런 오류는 여전히 반복될 것입니다. 자칫하면 진보세력이 들러리가 되어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연립정부를 세우더라도 진보세력이 충분히 힘을 키운 다음에 세워야 합니다. 그 전에는 정부에 참여하기보다 주로 국회에 진출하고 지방정부에 진출하여 정부가 잘 하는 것은 지지·지원하고 못 하는 것은 비판·견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 것입니다.


선거만 잘 하면 집권할 수 있나?


진보가 집권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더 필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외곽 지원 세력을 늘리는 것입니다. 정당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집권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역사를 봐도 그렇고 해외 역사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진보정당이 집권해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외곽 지원 세력이 없으면 외세와 수구세력의 공격에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이는 남미의 두 나라 칠레와 베네수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1970년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건설한 칠레 아옌데 정부는 1973년 미국이 사주한 두 차례의 쿠데타 끝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옌데 정부는 6개 좌파 정당이 연합한 정부였는데 집권 후 이들은 사분오열하였고 미국의 개입으로 경제가 파국의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아옌데 정부에 실망하기 시작했고 결국 쿠데타로 피노체트가 집권하고 독재정치가 시작되었지만 국민들은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반면 베네수엘라에서 빈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집권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2002년 4월 11일 미국이 사주한 쿠데타로 쫓겨났지만 대중봉기의 힘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볼리바리안 서클과 같은 대중단체들이 막강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볼리바리안 서클의 경우 2003년 기준 220만 명의 회원이 참가한 대중단체입니다. 베네수엘라 인구가 2700만 명 정도 되므로 거의 전체 인구의 1/10 가량이 참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막강한 대중조직이 혁명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베네수엘라는 외세와 수구세력의 저항과 쿠데타에도 끄떡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여러 진보적인 대중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등 거의 대부분의 계급계층에 진보적 단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국민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이런 진보적 대중단체와 접촉할 기회가 없습니다. 일단 이런 대중단체들이 활동을 잘 해서 더 많은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한 대중단체들이 따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연대·연합을 잘 해야 합니다.


진보를 지지하는 국민은 많습니다. 진보의 내용을 잘 해설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진보를 지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국민들이 진보적인 대중단체에 모여서 진보정부 건설에 힘을 더하고, 또 정부의 진보적인 시책을 적극 지지한다면 어떤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한 진보대통합정당을 만들고 이를 뒷받침할 진보적 대중단체들을 키우는 것, 이것이 바로 ‘진보집권플랜’입니다. (2011.8.23)



<10전11기 목록>

1996년 4월.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1996년 8월. 분단을 생각한다

1997년 2월. 신자유주의를 생각한다

1997년 8월. 경제주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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