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반도는 북미협상의 진전과 남북관계 파탄이라는 상반된 모습과 함께 전쟁위기가 상존하는 복합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북한붕괴정책을 고집하는 미국과 군사력을 과시하는 북한 사이에서 어떤 협상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평가와 전망③]보이지 않는 진전 이룬 한반도 평화체제
동북아의 문
동북아의 문은 2012년 새해를 맞아 2011년 평가와 2012년 전망을 위한 기획글을 준비하였다. 국제 질서, 한반도 정세, 국내 정세에 대해 각각 평가와 전망을 하여 총 6편의 기획 연재를 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세 번째 순서로 2011년 한반도 정세에 대한 평가다.
2011년 한반도 정세를 돌아보면 북미협상에서 비록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몰려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으며, 여전히 전쟁 위기가 높았던 한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진전을 이룬 북미협상
2010년 말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공개하면서 북미협상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1월 중순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중-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합의하였다. 그 후 북미 사이에 일련의 비공식 접촉이 이루어졌다. 3월에 북한 경제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했고, 독일에서 북미 비공식 토론회가 열렸다.
4월이 되면서 중국이 남북대화, 북미대화, 6자회담 순으로 진행되는 6자회담 재개 3단계 구상을 발표하고 관련국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대화에 속도가 붙었다. 4월 말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이 방북을 했고 7월에는 마침내 오바마 정부 들어 첫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이어 10월에는 2차 고위급 회담이 열렸고 12월 3차 회담이 예정되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로 연기되었다. 다만 뉴욕채널을 통해 북미 접촉은 유지되었다. 이와 별도로 12월에는 로버트 킹 미국 대북인권특사가 중국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을 방문해 식량지원 문제를 비공개 협의했다.
▲1차 북미 고위급 회담
북미 사이에 공식, 비공식 대화가 이어졌지만 어떤 내용이 오고갔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전문가들마다 여러 분석들을 내놓지만 짐작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만 2차 회담이 끝난 후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1차 대화 때 합의한 데에 따라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신뢰구축 조치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면서 “일련의 커다란 전진이 있었다”고 밝혔고, 성김 주한미대사도 “북미 간 대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의 서거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고 하여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간 북한은 북미관계정상화를 주장하면서 북핵문제와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일괄 타결할 것을 요구해왔다. 지난 6자회담은 한반도 문제의 본질인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정상화를 미룬 채 북핵문제 해결에만 매몰되는 바람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다. 이에 비해 미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이 선핵폐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동시 행동의 원칙을 합의한 9.19공동성명의 정신에 정면 배치되는 이 주장은 6자회담 재개를 피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북미 고위급 회담들을 통해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면 북미가 적당한 절충점을 찾았다는 의미가 된다. 그 절충점은 대략 6자회담 재개 전에 북한이 일정한 행동, 예를 들어 핵실험 중단, 미사일 발사 훈련 중단,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등에 합의하는 동시에 미국도 이에 상응하는 식량 지원 등을 진행하며, 추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정상화를 일괄 타결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한다는 정도일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선 행동으로 6자회담 재개의 명분을 얻고, 북한 입장에서는 동시 행동과 일괄 타결이라는 실리를 얻는 셈이다. 이처럼 사실상 6자회담을 하지 않고도 6자회담에서 다뤄야 할 안건이 북미협상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3차 회담이 열렸다면 이런 합의들이 순조롭게 이행되었을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서거 당시 북미회담이 진행된 과정을 돌아보면 올해 1월이면 북미 회담이 다시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회복 불가능한 남북관계
북미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반면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면서 회복 불능이 되었다.
2011년 초만 해도 북한은 조국전선을 통해 국회회담을 제안하는 등 남북대화의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중-미 정상회담 직후에는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하여 실제로 진행도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고집하면서 대화는 결렬되었다. 4월에 이르러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비망록을 통해 “남측이 끝까지 외면한다면 우리는 대화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남북대화가 중단될 위기에 빠졌다.
그런데 4.27 재보궐 선거가 끝난 직후인 28일, 북한은 방북했던 카터 전 미국대통령을 통해 정상회담 제안을 하였다. 그것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친서를 통해서였다. 정황상 북한의 마지막 제안인 셈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5월 9일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선핵포기와 천안함, 연평도 사과를 주장하며 북한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북한은 5월 30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반공화국대결책동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거족적인 전면공세에 진입할 것”을 선포하였다.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다.
▲정상회담 로비사건의 주연이었던 김태효 비서관
여기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 6월 1일 터졌다. 이른바 ‘정상회담 돈봉투 로비사건’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지난 4월부터 이명박 정부가 정상회담을 ‘구걸’하며 ‘돈봉투’까지 건넸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하였다. 심지어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해 북한이 보기에는 사과가 아니고 한국이 보기에는 사과인 뭔가를 해달라는 황당한 요구까지 있었다고 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겉으로는 대북강경입장을 보이면서 속으로는 북한과 비굴한 접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회복불능 상태가 되었고 이명박 정부는 비공개 접촉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7월과 9월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간 접촉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북미 고위급 회담을 위한 사전 형식에 불과했고 남북대화 차원에서 유의미한 발전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11월에는 엘더스 그룹이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겠다며 긴급 방한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했다.
마침내 12월 30일 북한 국방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애도기간에 이명박 정부가 조문을 제한하고 긴장을 고조시킨 일을 거론하며 “이미 선포한대로 이명박 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 “끝까지 따라가 씨도 없이 태워버리는 복수의 불바다”, “보수언론들도 응분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며 초강경 입장을 천명했다. 이 기조는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남북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결국 회복 불가능한 파국을 맞게 된 주된 원인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과를 고집하고, 북한은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이상 남북관계는 결코 풀릴 수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내내 수차례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기회를 맞았음에도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집착하면서 모든 기회를 잃고 말았다.
덮을 수 없는 전쟁 위험
2011년 한반도 정세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쟁 위험이 증폭된 점이다.
위기 증폭은 주로 서해에서 이루어졌다. 연중무휴나 마찬가지로 지속된 한국군과 미군의 전쟁훈련도 주로 서해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작년 10월 말 진행된 호국훈련은 미 해군과 해병대 500여 명을 포함해 총 14만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쟁훈련이었는데 이 훈련 가운데 백령도 일대에서 육군과 해군, 공군 전력이 대규모 참가하는 서북도서 방어훈련이 있었다. 11월에도 서해 육해공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했는데 ‘지원세력까지도 단호히 응징’한다며 북한 지휘부에 대한 폭격 훈련까지 하였다.
연평도 포격 사건의 발단이 연평도에서 진행한 포사격 훈련이었음을 감안하면 이처럼 서해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지속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북한 역시 한미 군당국이 전쟁훈련을 할 때마다 정세를 긴장시키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 북한의 경고는 ‘청와대 불바다’, ‘단호하고 결정적인 대응조치’ 등 연일 강도가 올라갔다. 그리고 대응 성격의 군사훈련을 진행하며 자신들도 전쟁 준비가 되어 있음을 각인시켰다.
▲북한의 군사훈련 장면
북미협상이 전진하는 가운데서도 전쟁 위험이 증폭되는 모순된 현상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주로 기인한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 마디로 북한붕괴정책이다. 전쟁으로 점령하든, 경제봉쇄로 붕괴시키든,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든, 내부분열을 통해 무너뜨리든 어떤 식으로든 북한 체제를 전복하고 친미정권을 눌러 앉히는 게 기본 노선이다.
그런데 이 모든 시도가 지금껏 북한에게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미국의 군사 패권이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붕괴정책이 변한 것은 아니기에 전쟁 위기는 물론 경제봉쇄도 계속하고 내부분열을 위한 정치공세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은 경제위기로 인해 국방비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시아·태평양 주둔 미군 관련 국방비는 감축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마지막까지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카드를 버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2011년 한반도는 북미협상의 진전과 남북관계 파탄이라는 상반된 모습과 함께 전쟁위기가 상존하는 복합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북한은 연일 군사력을 과시하며 미국의 군사적 카드를 무력화하면서 동시에 경제건설에 힘을 쏟으며 경제봉쇄 카드까지 무력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북한붕괴정책에도 불구하고 북미협상은 갈수록 북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북미관계가 주목된다. (20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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