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주변국들의 권력교체기인 2012년. 격렬한 충돌과 파국이냐, 위기 해소와 대타결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여기서 남북관계가 붕괴하면 결국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그만큼 축소될 뿐이다.
[평가와 전망④]전쟁이냐, 대타결이냐 기로에 선 한반도
동북아의 문
동북아의 문은 2012년 새해를 맞아 2011년 평가와 2012년 전망을 위한 기획글을 준비하였다. 국제 질서, 한반도 정세, 국내 정세에 대해 각각 평가와 전망을 하여 총 6편의 기획 연재를 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네 번째 순서로 2012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한다.
2012년은 한반도와 이를 둘러싼 주요국의 권력교체기다. 북한은 이미 작년 말 김정은 최고사령관 체제를 구축했다. 중국도 후진타오 체제에서 시진핑 체제로 전환한다. 러시아, 미국, 한국 역시 차례로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일 년 사이에 이처럼 많은 권력교체가 이루어진 해는 없었다. 이는 2012년이 한반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다 줄 것임을 암시한다.
북한의 김정은 최고사령관 체제는 본질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즉, 기존의 노선과 정책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경우 원칙과 실리를 저울질한다면 태자당(혁명원로 자제그룹) 출신의 시진핑 체제는 원칙에 더 비중을 둘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중-미 대립이 더욱 격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러시아의 경우 푸틴의 집권이 거의 확실한데 푸틴의 민족주의 성향을 놓고 볼 때 러-미 관계도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작년 총선에서 부정선거 시비가 일자 푸틴이 미국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런 전망에 무게를 더했다.
▲시진핑 부주석
미국은 오바마 재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더 깊이 관여하겠다는 노선을 밝히고 있어 이 지역 분쟁이 격화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총선, 대선이 함께 있어 정치 격변이 예상된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국의 변화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북한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2012년 미국과 동북아: 연속 또는 불연속’이란 논문에서 “다른 나라와는 달리 60년 동안 단 두 번째 권력교체 과정을 겪고 있는 북한변수가 중심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북한의 노선을 중심으로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전망해 본다.
북미관계 전망
올해 북미관계의 쟁점은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문제가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심각한 군사적 충돌도 예상된다.
북한의 기본 노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 관철로 볼 수 있다.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2012년 한반도 정세와 자주통일운동의 방향과 과제’라는 논문에서 북한의 대 한반도 정책을 “한마디로 선군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고 규정하면서 “선군에 기초한 북미관계 정상화 노선은 첫째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통해 대북 적대정책(정치적 군사적 압박과 공세)을 무력화시키며, 둘째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핵으로 하는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실현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실현한다”로 요약했다.
북한은 이미 작년 11월 30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자기 할 바는 하지 않고 남에게 일방적인 요구를 강박하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으며 우리의 평화적 핵활동을 비법화하거나 무한정 지연시키려는 시도는 단호하고 결정적인 대응조치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선핵폐기를 요구하는 데에 따른 북한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협상은 현재 3차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실무접촉을 계속 하고 있는 수준에 있다. 지난 1월 9일(현지시각)에도 미국의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을 통해 “우리(북한과 미국)는 새해 들어서도 뉴욕을 통해 전화통화를 가졌다”며 “그러나 아직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북미 뉴욕채널이 가동되는 유엔본부
이에 대해 북한은 1월 11일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2011년 7월에 시작된 조미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이 요구한 우라늄농축 임시중지를 비롯한 신뢰구축조치들을 우리가 취하는 경우 미국도 제재 임시중지 등 신뢰조성을 위한 조치들을 토의하는 동시에 식량제공조치도 취하겠다고 그들 스스로가 정치화하여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미국이 중간에 식량 제공량과 품목을 대폭 변경시켰기 때문에 미국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북미 사이에서 식량문제와 우라늄농축 임시중지를 놓고 협상이 진행 중이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6자회담의 궁극적 목표를 일괄타결하기 위한 사전 신뢰구축 단계로 볼 수 있다. 이 협상이 일단락되면 조만간 3차 고위급 회담을 갖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일괄타결, 6자회담 재개 등에 대한 입장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한 협상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쟁점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문제는 미국이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느냐에 달려있다.
우선 미국은 작년 11월 오바마 독트린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미국 군사전략의 최우선 순위로 지정하고 올해 1월 5일 새 국방전략에 이를 공식화하였다. 미국의 재정위기로 인하여 국방예산을 감축하는 상황에서도 해외 주둔 미군의 우선순위를 아시아에 두고 여기에 힘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우리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기 위해 동맹국 및 지역국가들과 효과적으로 협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유지할 것”이라면서 새 국방전략의 주요 대상 가운데 하나가 북한임을 밝혔다.
▲새 국방전략을 발표하는 오바마 대통령
또한 미국은 작전계획 5029에 따른 ‘급변사태’ 시나리오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작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와 이후 북한이 보여준 일사불란한 모습은 미국이 추구하는 ‘급변사태’ 시나리오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증명하였다. 홍익표 북한대학원대 겸임교수는 “2012년 김정은체제의 출범과 경제강국 건설 전망”이란 논문에서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국내외 분석과는 달리 상당히 안정적 체계적으로 후계체제가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면서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의 집단지도체제의 등장이나 장성택 또는 제3의 인물에 의한 섭정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분석을 지속하면서 북한에 빈틈이 생기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를 버리지 않는 이상 미국은 협상을 시간끌기용으로 활용하면서 군사작전을 대비하는 데 힘을 기울일 것이다.
이런 미국의 입장이 전면적으로 부각되는 지점이 바로 올해 초 예정된 키리졸브 훈련이다. 홍익표 교수는 앞의 논문에서 “금년도 남북관계 전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가 2월말에서 3월까지 열리는 한미 키리졸브훈련”이라면서 “북은 한미 합동으로 대규모 기동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북에 대한 위협행위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미국이 키리졸브 훈련을 연기 혹은 취소하지 않고 강행하면서 작전계획 5029를 적용한 훈련을 하면서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낸다면 북한은 작년에 언급한 “단호하고 결정적인 대응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올해 북미관계에서 2, 3월이 위기의 절정에 다다르는 시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파국적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위기가 수습된다면 이후 북미협상은 사전단계(식량지원과 우라늄농축 임시중단) 이행에 이어 본격적인 일괄타결 수순에 접어들 것이다.
남북관계 전망
올해 남북관계는 어두운 전망 속에서 상당한 진통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추도기간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12월 30일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이명박 정부와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신년사설에서도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저해하고 대결을 격화시키는 역적패당의 반통일적인 동족적대정책을 짓부셔버리기 위한 거족적인투쟁”을 언급하였다. 신년사설에서 ‘온 겨레가 새로운 신심에 넘쳐 조국통일의 문을 열어나가자’는 구호를 제시하였는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를 타격하여 6.15남북공동선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국회와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조국통일의 문’을 여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국상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히는 류우익 장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 2일 신년 연설을 발표했는데 북한에게 선핵폐기를 주장하고 북한의 ‘도발’을 언급하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하는 등 대북강경기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북한이 초강경 입장을 거듭 밝히자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1월 5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는 당장 흡수통일 하겠다거나 북한을 망하게 한다는 목표는 갖고 있지도 시도도 않을 것”이라고 했으며 류우익 통일부장관은 “(천안함, 연평도 사과문제는)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대화를 할 때 테이블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의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특단의 조치를 통해서 대화채널을 구축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대화를 하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것도 중요한 정책 수단 중의 하나”라고 하여 적극적인 대화를 추진할 뜻은 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 북한이 운영하는 인터넷 ‘우리 민족끼리’는 10일 ‘선임자의 전철을 밟고 있는 대결 척후병’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류우익 통일부장관을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하였고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건데 우리는 이미 남조선당국에 줄 수 있는 기회는 다 주었다. 하지만 역적패당은 기회의 창을 저들 스스로 꽉 막아버렸다”면서 “이제 다시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렇게 볼 때 올해 남북 당국 사이의 관계개선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하겠다. 민간교류의 경우 역시 이명박 정부가 극도로 통제하고 있기에 한계가 분명할 것이다.
올해 남북관계에서 유일하게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계기는 총선과 대선이다. 엄밀히 말해 대선은 연말에 있고 새 정부 취임은 내년이므로 대선 결과는 내년 남북관계의 향방을 가늠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총선이 유일하게 남북관계를 변화시킬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총선을 통해 6.15, 10.4선언을 지지하고 이행하는 정치세력이 대거 등장한다면 국회 차원의 남북대화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와 국회 사이의 갈등이 고조될 수도 있다.
올해 한반도는 격렬한 충돌과 파국이냐, 위기 해소와 대타결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여기서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넘어가면 결국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그만큼 축소될 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민족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관점도, 쓸 만한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간의 노력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20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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