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경수로 압력용기가 드디어 설치되었다
2012년 1월 6일 미국에서 발행되는 <원자과학자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녕변 경수로 공사 진척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공사현장을 시기별로 촬영한 위성사진 아홉 장을 실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북측이 공사 중인 경수로 구조물 바로 옆에서 작업을 개시한 반구형 덮개지붕(dome) 제작현장을 찍은 촬영날짜가 2011년 6월 13일이고, 반구형 덮개지붕이 완성된 모습을 찍은 촬영날짜가 2011년 11월 3일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북측이 2011년 하반기에 약 4개월에 걸쳐 반구형 덮개지붕을 공사현장에서 완성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 상업위성이 녕변 경수로 공사현장을 촬영한 또 다른 위성사진은, 2012년 8월 16일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 누리집에 실린 보고서에도 나온다. <원자과학자 회보>에 실린 2011년 11월 3일에 촬영한 위성사진과 마찬가지로, 과학국제안보연구소 보고서에 실린 2012년 6월 24일에 촬영한 위성사진도 압력용기가 들어갈 경수로 구조물 좌우에 대형 탑식 기중기(tower crane)가 각각 한 대씩 설치되어 있고, 그 구조물 바로 옆에 반구형 덮개지붕이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이 두 위성사진이 말해주는 것은, 북측이 반구형 덮개지붕을 완공한 2011년 11월 초부터 2012년 7월 초까지 약 7개월 동안 그 덮개지붕을 공사 중인 경수로 구조물 옆에 놓아두었다는 사실이다.
북측은 경수로 구조물 골조공사를 완공하였으면서도 왜 반구형 덮개지붕을 덮지 않고 구조물 옆에 놓아두었을까? 그 까닭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포착하지 못하는 다른 지역의 지하공장에서 제작한 경수로 압력용기를 초대형 화물차에 실어 공사현장으로 운반해서 아직 지붕을 덮지 않은 구조물 상층부를 통해 들여놓으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지붕을 덮지 않은 경수로 구조물 상층부를 통해 압력용기를 들여놓으려면 당연히 기중기가 필요한데, 위성사진에 나타난 대형 탑식 기중기 두 대가 바로 거기에 사용한 대형 기중기다. 다시 말해서, 북측은 대형 탑식 기중기를 사용하여 압력용기를 경수로 안에 들여놓은 다음, 맨 나중에 반구형 덮개지붕을 들어올려 경수로 상층부를 덮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세계 각국의 분석가들이 북측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지만, 녕변 경수로 공사가 보여주는 특이한 건축공법도 역시 이해하기 힘든 경우에 속한다. 다른 나라 같으면, 압력용기를 들여놓기 위해 건물 외벽 한 쪽 면을 터놓았다가 그곳으로 압력용기를 들여놓는 것이 일반적인데, 북측은 그런 일반적인 방식으로 공사를 하지 않았다. 북측은 지붕을 덮지 않고 나머지 골조공사를 완공한 다음에, 대형 탑식 기중기를 사용하여 압력용기를 들여놓는 독특한 방식으로 공사를 하였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경수로 골조공사 중에 터놓은 외벽을 통해 압력용기를 들여놓는 공법보다 지붕을 덮지 않은 경수로 건물 위쪽을 통해 압력용기를 들여놓는 공법이 더 힘들다. 북측은 왜 쉬운 공법을 마다하고 일부러 힘든 공법을 택하였을까?
이 물음에 해답을 주는 실마리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바로 그 곳 녕변 핵시설단지에서 있었던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2년 4월 어느 날, 미국군 정찰위성이 녕변지역을 촬영한 위성사진에 건축공사현장이 나타났다. 미국은 위성사진 판독을 통해 북측이 녕변에서 핵시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공사진척도를 정밀분석한 결과 핵시설 공사가 이미 3년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아냈다.
그런데 1982년 4월에 촬영한 위성사진에 나타난 녕변 흑연감속로 건설공사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바로 그 곳에서 진행되는 경수로 건설공사와 매우 흡사하였다. 30년 전 녕변 핵시설단지에서는 축구장 두 배만큼 큰 직사각형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북측은 놀랍게도 그 건물의 지붕을 일부러 덮지 않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부러 지붕을 덮지 않았으므로, 두꺼운 벽으로 차단된 수많은 격실(cell)들이 거대한 직사각형 건물 안에 들어찬 모습이 위성사진에 노출되었다. 위성사진을 통해 그 격실의 모습과 배치상태를 정밀분석한 미국은, 그 거대한 직사각형 건물이 플루토늄을 분리하여 추출하는 격실을 배치한 건물이라고 판단하였다.
30년 전에 흑연감속로를 건설할 때 일부러 지붕을 덮지 않았던 것이나, 오늘 경수로를 건설하면서 7개월 동안 일부러 지붕을 덮지 않은 것은, 북측이 미국에게 공사진척상황을 보여주려는 의도적인 노출이다. 만일 북측이 처음부터 지붕을 덮고 공사를 하였더라면, 미국군 정찰위성이 그 건물 내부를 촬영할 수 없으므로 미국은 그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북측은 지붕을 덮지 않는 독특한 공법을 택함으로써 경수로 공사진척상황을 미국에게 보여주는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측이 미국에게 베푼 그러한 ‘친절’은 결코 친절한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시시각각 진척되고 있는 경수로 건설상황을 미국군 정찰위성에 일부러 노출함으로써 미국을 시시각각 옥죄어가는 기상천외한 대미압박공세인 것이다. 1982년 녕변 흑연감속로를 건설할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시하였던 기상천외한 대미압박공세는 30년이라는 시간간극을 뛰어넘어 오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30년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도 북측은 녕변 원자로 건설공사로 미국을 시시각각 옥죄가고 있으니, 북측에서 대를 이어 계속되는 대미압박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30년 전의 대미압박과 오늘의 대미압박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30년 전 북측은 미국의 일방적인 핵공격위협에 재래식 반격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비해, 오늘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한 북측은 미국의 핵공격에는 반드시 섬멸적인 핵공격으로 대응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당당하고 단호한 태도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 관계자가 전한 말을 인용한 <교도통신> 및 <후지TV> 2012년 7월 12일 동시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경수로 구조물 바로 옆에 7개월 동안 놓아두었던 반구형 덮개지붕을 2012년 7월 초에 기중기로 들어올려 그 구조물 상층부를 덮었다. 북측이 반구형 덮개지붕을 제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경수로 구조물 안에 압력용기를 들여놓고 덮개지붕을 덮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2012년 7월 초 북측은 녕변 이외의 다른 지역에 있는 지하공장에서 완성한 압력용기를 대형 화물차에 싣고 가서 경수로에 설치한 다음, 반구형 덮개지붕을 덮은 것이다. 그런 사실을 위성사진으로 파악한 미국과 일본은 경악하였을 것이다.
녕변 경수로 건설현장 책임자는 2010년 11월 12일 녕변 핵시설단지를 방문한 미국의 핵과학자 식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에게 2010년 7월 31일에 시작한 경수로 건설을 2012년까지 완공할 것이라고 말했고, 2012년 3월 26일 <교도통신> 특파원과 대담한 북측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리기성 교수는 녕변 경수로가 2012년 말까지 완공될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미국 전문가들 가운데 녕변 경수로가 2012년 말까지 완공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를테면, 식프릿 헥커는 2011년 12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 강연자로 출연하여 “북측이 2012년까지 경수로를 완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였다. 또한 2012년 5월 <AP통신>은 미국 존스합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 한미연구소의 평가발언을 인용하여 녕변 경수로는 2014~2015년에 가서야 완공될 것으로 예측하였고, 2012년 8월 16일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위성사진을 검토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하여 녕변 경수로가 2013년 하반기에 완공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북측은 2012년 7월 초에 압력용기를 경수로에 설치하고 반구형 덮개지붕을 덮어놓음으로써 2012년까지 경수로를 완공할 것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행동으로 입증하였다.
수직적 핵확산의 재앙이 미국에게 밀려오고 있다
북측이 예상하는 완공시기인 2012년 말까지 녕변 경수로가 완공될 것인지 아니면 미국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처럼 2013년 하반기 또는 2014~2015년에 가서야 완공될 것인지는 두고 보면 알 수 있지만, 중요한 문제는 북측이 공사기간을 얼마나 단축하느냐 하는 게 아니라 북측이 미국의 예상을 뒤엎고 초고속으로 진척시키는 경수로 건설속도가 미국을 심하게 옥죄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측의 녕변 경수로 완공이 왜 미국을 옥죄는 엄청난 압박공세로 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의 정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라늄 235를 90%로 농축하면 무기급 우라늄(WGU)이 되는 데, 북측이 초현대식 우라늄농축설비를 자체로 만들어낸 고도의 우라늄농축기술을 확보하였으므로, 우라늄 235를 90%로 농축한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하는 것은 기술공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학국제안보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녕변 우라늄농축시설에서 가동 중인 2세대 원심분리기 2,000대가 한 해 동안 생산하는 무기급 우라늄 추정량은, 추산방법에 따라 편차가 나지만, 최대 34kg에 이른다.
그런데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측은 원심분리기 10,000대를 만들 수 있는 막대한 분량의 자재를 지난 10여 년 동안 확보하였다고 한다. 원심분리기 10,000대를 만들 수 있는 자재를 확보한 북측이 녕변 우라늄농축시설에 원심분리기 2,000대만 들여놓은 것은, 녕변 우라늄농축시설이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더 방대한 우라늄농축시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준다. 북측이 원심분리기 10,000대를 만들어 가동하고 있다면, 무기급 우라늄 연간 최대 생산량은 170kg에 이른다.
둘째, 북측이 녕변 경수로를 가동하는 경우, 무기급 플루토늄(WGP)을 생산할 수 있는데, 열용량이 100메가와트급(MWt)인 녕변 경수로는 연간 2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셋째, 북측은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뛰어넘어 핵탄두 극소형화 기술을 확보하였다. <연합뉴스> 2012년 5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1980년대 후반부터 내폭형 기폭장치를 집중적으로 개발해왔다. 한국국방연구원 자료를 인용한 <신동아> 2009년 7월호 관련기사에 따르면, 북측이 실시한 고폭실험은 무려 140차례 이상이다. 일반적으로 대형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고폭실험을 30~40차례만 하면 충분한데, 북측은 고폭실험을 왜 140차례 이상 실시하였을까? 핵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소형 핵탄두 제조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그처럼 수많은 고폭실험을 실시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핵탄두는 지름이 90cm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북측이 1999년에 방북한 파키스탄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A. Q. Khan)에게 실물로 보여준 핵탄두는 지름이 60cm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은 북측이 무게가 250~500kg밖에 되지 않는 소형 핵탄두를 개발하였음을 말해준다. <연합뉴스> 2009년 4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핵폭탄을 극소형화하는데 관심을 두었으며, 극소형 핵폭탄을 사용하는 전술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0년 11월 북측 외무성 리근 미주국장이 방북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인사에게 “우리는 소형화한 핵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소형화한 핵무기를 운반하는 기술도 이미 개발하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핵무기 제조기술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핵개발을 전담하는 정부부서인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는 소형 핵탄두 1발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플루토늄 최소량이 4kg이라고 밝혔으나, 북측이 2006년 지하핵실험을 통해 입증한 것처럼 북측은 플루토늄 2kg만 가지고서도 극소형 핵탄두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셋째, 무기급 우라늄 15kg으로 핵탄두 1발을 만들 수 있으므로, 북측이 녕변 우라늄농축시설과 그 밖의 다른 비밀농축시설들에서 무기급 우라늄 170kg을 생산하면, 해마다 핵탄두 11발씩 추가로 만들 수 있다. 거기에 더하여 녕변 경수로에서 해마다 2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면, 북측은 해마다 핵탄두를 10발씩 추가로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북측은 우라늄농축시설과 경수로를 가동하여 해마다 핵탄두를 21발씩 추가로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북측이 해마다 핵탄두를 21발씩 추가로 생산하는 것은, 핵확산금지체제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미국에게 ‘수직적 핵환산의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미국은 북측의 경수로 건설과 우라늄농축을 중단시키기 위해 대북관계에서 평소에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굴욕적인 외교행동마저 취해야 할 정도로 최악의 궁지에 몰린 것이다. 올해 2012년은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게 ‘고난의 시기’인 것이다.
미국 고위관리들의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 극비방문
녕변 경수로 건설상황과 관련하여 최근 북미관계에서는 오랜 침묵을 깨고 ‘조용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 사연은 아래와 같다.
<교도통신> 보도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2년 8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2012년 7월 10일경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를 찾아갔다. 언론보도에는 미국의 고위관리들이라고 기술했지만,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이라고 기술해야 한다.
‘뉴욕통로’로 알려진, 북측과 미국의 비공식 외교경로가 있는 데, 그 외교경로는 한성렬 유엔주재 북측 차석대사와 클리퍼드 하트(Clifford Hart) 미국 국무부 6자회담 특사 사이에서 전화통화로 상호연락하는 것이다. 북측과 미국이 그처럼 상호연락하는 ‘뉴욕통로’가 있는 데도, 미국 국무부는 ‘뉴욕통로’를 통하지 않고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에 고위관리를 보낸 것이다. 그 날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를 찾아간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누구였을까? 미국 국무부 6자회담 특사인 클리퍼드 하트를 비롯한 관리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디씨에서 일하는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이 뉴욕까지 가서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를 직접 찾아간 것은 전례 없는 이변이다. ‘초강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적국의 외교대표부를 찾아간 것은 미국이 지켜온 외교활동원칙을 스스로 어긴 굴욕적인 저자세 외교다. 미국이 북측 앞에서 자국의 외교활동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굴욕적인 저자세 외교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런 수치스런 이변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언론 취재망을 따돌리고 극비리에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를 방문한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극비방문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한 달 이상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외교관계에서 시종일관 거만한 태도로 일관해오던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왜 북측에게 그처럼 굴욕적인 저자세 외교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들의 비밀방문날짜에서 사연을 엿볼 수 있다.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이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를 찾아간 2012년 7월 10일경이라는 시점은, 북측이 녕변 경수로에 압력용기를 설치하고 반구형 덮개지붕을 덮은 2012년 7월 초에서 불과 3~4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북측이 녕변 경수로에 압력용기를 설치한 것을 보고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심리적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곧바로 국무부 고위관리들의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 극비방문을 추진했던 것이다.
위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 7월 10일경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에서 진행된 북미접촉에서 양측은 2.29 북미합의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 날 북미접촉에서 미국은 2.29 북미합의를 강조하면서 북측에게 우라늄농축과 경수로건설을 제발 중지해달라고 애걸하면서 6자회담을 재개하자고 간청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미국으로서는 ‘초강대국 체면’ 같은 것도 잠시 접어두고, 자기들의 외교활동원칙도 어기면서 북측에게 ‘간청외교’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다급한 처지에 몰린 것이다. 2011년 11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낸 국무부 정무차관 웬디 셔먼(Wendy Sherman)의 오만한 발언처럼, “6자회담을 재개하고 싶으면, 북측이 먼저 우라늄농축 중단을 포함한 비핵화 사전조치를 이행해야 한다”고 하면서 “북측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지켜볼 것”이라고 거만을 떨던 미국은 이제 우라늄농축과 경수로건설을 중지해달라고 북측에게 애걸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러면 북측은 미국의 그러한 ‘간청외교’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미국의 ‘간청외교’에 대한 북측의 반응을 알아보려면, 미국의 대북 ‘간청외교’가 있었던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7월 말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또 다른 북미비밀접촉을 살펴볼 필요가 었다. 대북관계에서 잔뜩 궁지에 몰려 다급해진 미국이 또 다시 만나자고 북측에게 ‘간청’한 끝에, 이른바 미국 외교가에서 ‘제2경로(track two)’라 부르는 북미접촉이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북미접촉, 모란봉 악단이 연주한 미국 동요
싱가포르 북미접촉에 관한 정보는, 2012년 8월 16일 미국의 외교전문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 누리집에 실린 단독보도 ‘미국과의 2005년 합의를 재고하겠다고 위협한 북측(North Korea Threatens to Reconsider 2005 Agreement with U.S.)’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싱가포르 북미접촉에 나선 북측 참석자는 한성렬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 차석대사와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이었고, 미국측 참석자는 국무부에서 15년 동안 핵문제를 담당했던 조엘 위트(Joel Wit)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상임연구원을 단장으로 하고 코리 힌더스타인(Corey Hinderstein) 핵위협발의(Nuclear Threat Initiative) 국제담당 부책임자를 포함한 6명의 미국인 전문가 집단이었다. 뉴욕 북미접촉에 참석한 한성렬 차석대사가 싱가포르 북미접촉에도 참석하였고, 평양에서 파견한 최선희 외부성 미국국 부국장도 참석하였으므로, 싱가포르 북미접촉에서 나온 북측 참석자들의 발언내용을 북측의 공식견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2012년 8월 16일 <외교정책> 누리집에 실린 단독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북미접촉에서 “(북측과 미국의) 양자관계의 미래에 관한 의제가 토론에 올랐을 때,” 북측 참석자들은 “우리는 2.29 북미합의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 9.19 공동성명까지 폐기할 것인지 내부적으로 고려하는 중”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미국이 먼저 양보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러한 발언내용은 북측이 미국을 옥죄었던 기존 압박수위를 뛰어넘는 초강경한 압박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훼손한 2.29 북미합의에 대해 북측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발언도 충격적이지만, 9.19 공동성명까지 폐기하는 문제를 북측 내부에서 논의한다는 것은 미국과의 모든 대화통로를 영구폐쇄하겠다는 뜻이므로 미국에게 더욱 충격적이다. 거기에 더하여, 이제까지 북측이 줄곧 미국에게 요구해온 동시행동원칙을 접고 이제부터는 미국이 먼저 양보행동을 취하라고 요구한 것은 미국에게 너무도 충격적인 발언이다.
뉴욕 북미접촉과 싱가포르 북미접촉을 전후로 하여 북측 외무성은 대변인 성명과 대변인 담화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였다. 그 대변인 성명과 대변인 담화가 뉴욕 북미접촉 및 싱가포르 북미접촉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측이 싱가포르 북미접촉에서 9.19 공동성명 폐기문제를 고려하는 중이라고 말한 것은,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2012년 7월 20일에 발표한 대변인 성명에서 “조성된 사태는 미국이 (줄임) 우리 공화국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언하고 조미가 서로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기로 한 9.19 공동성명의 기본조항들을 통채로 뒤집었다는 것을 실증해주고 있다”고 지적한 내용과 상통된다. 여기서 ‘조성된 사태’라는 것은 이른바 ‘동까모’ 같은 대북테러단체를 미국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지원해준 사태를 뜻한다. 그러므로 북측이 싱가포르 북미접촉에서 9.19 공동성명 폐기문제를 고려한다고 밝힌 것은, 미국이 대북테러단체에 대한 배후조종과 지원을 중단하지 않으면, 북측은 더 이상 미국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북측이 싱가포르 북미접촉에서 기존 동시행동원칙을 접고 이제부터는 미국이 먼저 양보행동을 취하라고 요구한 것은,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2012년 7월 25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은 말로만 우리에 대하여 적대의사가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아무런 구실이나 전제조건이 없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용단을 내리는 것과 같은 실천행동으로 그를 증명해보여야 한다”고 요구한 내용과 상통된다. 7.25 대변인 담화는 이런 문장으로 끝맺었다. “우리에게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문제를 푸는 방법도 있고 조선반도에서 전쟁의 화근을 송두리채 들어내여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는 방법도 있다. 선택은 미국이 해야 할 것이다.”
뉴욕 북미접촉이 진행되기 바로 몇 일 전인 2012년 7월 6일 평양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모란봉 악단 시범공연이 진행되었다. 시범공연이 후반부로 넘어갔을 때, 미국인들 누구에게나 익숙한 미국 동요 ‘이렇게 좁은 세상(It's A Small World)’이 연주되었다. 원래 이 동요는 미국의 저명한 영화음악 작곡가들인 로벗 셔먼(Robert B. Sherman)과 리처드 셔먼(Richard M. Sherman) 형제가 196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쿠바 미사일 사태로 핵전쟁 위기가 전 세계를 휩쓴 직후에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지었고, 1964년 4월 22일 뉴욕 플러싱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 초연되어 세계 각국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대표적인 동요다. 모란봉 악단 시범공연에서 왜 그런 특이한 사연을 지닌 미국 동요가 연주되었을까?
모란봉 악단 여성가수들은 영어원문과 다르게 번역된 동요가사로 노래하였는데, 북측에서 번역한 우리말 가사는 “지나고 보면 간단한 명제...너와 나 함께 함께 살고 있지 않어, 이렇게 좁은 세상”이라고 되어 있었다. 녕변 경수로 공사가 막바지에 올라 미국을 강하게 옥죄고 있는 지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동요의 우리말 번역가사에 담긴 뜻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그처럼 간단명료한 메시지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2012년 08월 20일
* 출처 : 통일뉴스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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