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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논란은 21세기의 가치를 부정한다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7. 10.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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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요 몇 년 간 우리 사회에서는 남북관계에서 ‘평화공존’, 국내정치에서 ‘국민통합’이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대신 사상과 표현에 대한 ‘검열’이 판 치고 있다. 종북주의와 주사파로 대표되는 사회 일각에 대한 배제와 응징의 논리가 모든 담론을 압도하고 있다. 게다가 공영방송에서 북한 수뇌부를 향해 ‘개 ××’라는 표현을 구사하는 지식인이 출현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옹호하는 라디오 연설이 나왔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을 트위터에서 비하하였다고 하여 육사 출신 엘리트 장교를 군 검찰에서 기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군 정보기관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장병들을 기소하는 사태가 줄을 잇고 있는데, 그 정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정보기관의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과 감청 횟수도 확연히 증가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이념과 사상이 다른 사람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이 사태에서 필자는 18세기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떠올린다. 

18세기 말의 조선에서 천주교를 박해할 때 논리가 무엇이었나? 바로 조선의 지배이념인 성리학을 부정하고 제례를 지키지 않는 서학이야말로 조선 체제에 대한 전복세력이라는 것이다. 최근 현 정부가 진보진영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하다. 사실 개혁정치를 펼친 정조 임금은 서학에 관대했다. 천주실의를 읽고 나서 이것이 조선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관용정책을 폈다. 

타살로 보이는 정조의 급작스런 죽음은 천주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크나큰 불행의 시작이었다. 기득권 세력이며, 이념적으로 초강경파인 노론 벽파는 남인을 제거하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남인들이 기가 막힌 건수가 잡혔다. 남인 천주교인들은 로마 교황청의 교령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조상의 신주위폐를 불사라 버렸는데, 이를 기화로 본격적인 남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게 바로 1801년 의 신유박해다. 이 박해로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의 천주교도와 진보적 사상가들이 처형되거나 또는 유배되었고, 주문모를 비롯한 교도 약 100명이 처형되었으며 약 400명이 유배된다. 개혁과 진보, 관용의 정신이 무너지자 기득권 세력이 서학 척결을 기화로 다시 득세한 것이다. 

최근의 종북 사태가 당시와 같이 야만적인 방식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논리와 맥락에서 상당히 흡사하다는 점이 발견된다. 우선은 일차적인 책임은 소위 주사파, 그 중에서도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에게 있다. 18세기 조선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교황청이 제례를 거부하도록 무리한 지시를 내려 이를 너무 추종한 천주교 세력이 박해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근 통진당의 당권파는 그러한 빌미를 제공했다. 

북한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의 혐의가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혐의’이지만,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든지, 국가에 대한 강요된 충성을 거부하는 행태는 우리 사회 내 국가주의 이데올로그들에게 조선의 천주교도와 비슷한 이미지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당내 주요 당직의 독식과 부정선거로 후보를 선출했을 가능성은 마치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듯한 교조적 행태까지 더해져, 결국 나쁜 이미지란 이미지는 모조리 덧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18세기 천주교의 교조적 일면을 답습한 행태라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여기에 ‘척사위정’을 외치며 수 천 명을 학살한 조선의 고루한 지배층이 오직 한미동맹과 국가안보를 우상화하는 현재의 지배층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고루한 형식논리에서 출발하여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으로 나아가는 그 행태가 그렇다. 그 피해가 당권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진보 인사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천주교 박해와 전개 양상이 흡사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집권 초기에 촛불시위로부터 진보세력에게 적대감을 품어 온 이명박 정부에게는 이러한 종북 논란이야말로 정치보복의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이념적으로는 반공 우파, 경제적으로는 친 재벌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기득권 세력에게는 교조적 좌파와 북한 정권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확장하는 반사이익을 얻게 되었다. 더군다나 올해는 12월 대선이 있기 때문에 그 박해의 정도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그 피해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앞으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우선 이러한 보수의 공세는 남북관계의 전면 포기, 동북아 다자안보에 대한 지향 동력의 상실, 국민 분열과 이념 대립, 다수의 무고한 피해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사상과 양심을 억압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신념을 더욱 공고화하게 되는 역효과가 발생하며, 만일 순교자와 같은 이미지의 박해 사례가 드러날 경우 상황은 매우 심각하게 전개될 것이다. 

우리가 국가와 민족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매우 복합적이다. 이제껏 국가주의자들은 추상적 실체인 국가를 우상화하면서, 그 국가의 절대 구성원인 국민에 대해서는 관심을 거두어왔다. 반대로 민족주의자들은 추상적 실체인 민족을 우상화하면서, 그 민족의 절대 구성원인 민중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제법 세련된 논리를 구사하는 세계화론자들은 국경이 허물어진 글로벌 세계를 외치면서도 그 절대 구성원인 세계 시민의 현실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막았다. 

추상적 가치를 우상화하면서 형식논쟁에 매몰되는 것이 과거의 지배의 역사라면 21세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과 인간적 가치에 대한 재발견이다. 이보다 더 진보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는 아주 특별한 진보의 시대이며, 이러한 시대의 문턱을 넘는 시기에 작금의 종북 논란은 매우 퇴행적이다. 단지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국민의례를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국가의 적이라는 그 판단 자체가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면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다수 국가의 축구선수들이 자국 국가를 따라 부르지도 못하는 장면을 보라. 이 세상에는 국가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건강하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위해 살아가는 인간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할 것인가? 

더 중요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한계점이 노정되고, 한미동맹의 효용성이 크게 감소하는 이 시기에 우리가 새로운 미래 발전의 좌표를 찾아가려는 진보적 노력이 몽땅 함몰된다는 데 있다. 일본이 근대의 여명기에 탈아입구(脫亞入歐)을 외치면서 독자적 민족주의를 확립하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우리는 식민지의 뼈아픈 고통을 겪었다. 마찬가지로 현재 서방의 자유주의 금융질서와 군사적 헤게모니가 약화되면서 패권주의가 종식되는 현대적 상황에서 더 이상 냉전식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편협한 민족주의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더 새로운 진보적 관점이 요청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최근 종북 논란으로 과거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는 과거로의 회귀가 이어진다면, 이렇게 실기(失期)한 과오는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 출처 :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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