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야권과 진보진영은 총선 결과의 파장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총선에서 어떤 교훈과 과제를 찾는가는 향후 야권의 대선 태세를 정비하는 내용적 기초가 될 것이다. 총선의 결과를 민심의 지향에 기초해 분석해야 정확한 교훈과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또한 온갖 부정협잡으로 선거판을 왜곡하고 야권연대 분열을 노린 총공세를 펴고 있는 집권수구세력의 책동에 경각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진보세력은 소모적인 내부정쟁에 치중하지 말고 대중 속에 들어가 민심의 지향과 요구, 그 실현 방법을 찾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MB심판, 새 정치 열망 민심이 변함없이 표출된 4.11총선
이명박 정권 4년차, 정권초기부터 타오른 촛불항쟁은 야권연대와 각종 대중운동, 선거투쟁으로 진화해 2010년 지방선거 이래 여러 차례 보궐선거 등을 거치며 정권심판 민심으로 형성되었다. 올해 총선에서도 반MB 민심은 변함없이 확인되었다. 또한 구시대 낡은 정치를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민의가 적극 반영되었다.
수도권에서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을 심판하려는 민심은 야권의 압도적 승리로 귀결되었다. 특히 서울지역20대 투표율이 60% 이상을 기록하는 등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 의지가 고양되고 2040세대의 진보개혁적 지향은 투표로서 거듭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보수일간지와 방송사들의 부정편파보도에도 불구하고 SNS와 팟캐스트는 수도권에서 보수언론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전체 유권자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의 민심은 정국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비록 새누리당의 압승에 가려졌지만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민주당과 진보당이 얻은 높은 지지는 이번 총선에서 확인된 가장 큰 성과의 하나이자 중대한 변화의 흐름이다. 이 지역에 놓인 교두보는 아직 좁아 보이지만 곳곳에서 전면 돌파할 날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고 늘 한발 앞선 선택을 했던 호남지역에서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민심의 열망이 뚜렷이 확인되었다. 호남에서 진보당의 선전은 수도권에서 진보당의 지역구 돌파와 함께 새로운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았다.
전국적으로 야권연대의 정당득표율과 후보득표 총합은 새누리당을 눌렀다. 박근혜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고 보수세력이 총결집한 반면 야권에는 뚜렷한 구심이 없고 야권연대에 미숙함이 컸던 것을 감안한다면 민심의 기본 지향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상대적으로 30,40대에서 투표율이 약간 저조했는데, 이들은 대체로 야당 성향임에도 기대에 못 미치는 야권에 실망해 적극성이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진보개혁세력이 정국 주도의 힘을 확실히 발휘하고 야권연대가 보다 진취적이고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면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열기는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MB심판, 진보개혁은 민심의 변함없는 대세이다.
민심이 왜곡되고 민의와 괴리된 총선 결과
4.11총선은 결과적으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야권의 과반수 획득,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달성이 이번 총선의 기본 목표였으나 결과에서는 오히려 새누리당에 과반수를 내주고 통합진보당은 13석에 그치고 말았다.야권연대가 부족했던 점을 감안해도 민심의 기본 흐름과 크게 괴리된 선거 결과는 부정선거의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보수세력이 이미 결집한 조건에서 야권 지지층이 선거 막판 결집되는 추세가 여론조사에서 확연했던 점, 야권의 ‘숨은 5%’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은 점, 출구조사에서 야권우세의 경합지역조차 대다수 새누리당이 승리한 점 등은 부정선거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이번 총선은 사실 투개표 이전부터 온갖 부정협잡선거가 판을 쳤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가 나서서 여당에 유리하도록 선거에 개입하고 군부대에서는 장병들에게 야당이 종북좌파라며 찍지 말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선관위는 새누리당에는 느슨하고 야당에게는 엄격한 이중잣대를 들이밀어 공정성에 의혹을 샀다. 조중동 등 유력 보수일간지와 공중파 방송은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야당 후보의 흠집은 연일 대서특필하는 식으로 노골적인 편파보도, 선거개입을 일삼았다.
엄격한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기해야 할 국가기관과 언론, 군대가 총동원되어 새누리당을 일방적으로 지원한 부정행위들이 전면적으로 자행된 것이다.
투개표에 대한 직접적 부정도 의혹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강남을에서는 다수의 투표함이 미봉인되는 등 비상식적인 사태가 일어났고 이런 사례가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후보가 서울 모든 구의 부재자투표에서 승리하는 기현상이 있었는데 부재자투표에 대한 의구심도 풀리지 않는다. 이번 선거부터 시작된 재외국민투표 역시 투표 관리에 허점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4.11총선 전날인10일 밤에 선관위 홈페이지가 또 다시 디도스 공격을 당했는데 어떤 음모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주목되는 것은 부산울산경남지역과 강원, 충청 지역의 경합선거구다. 초박빙으로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던 선거구가 상당했고 출구조사에서는 야권의 승리를 예측한 곳이 꽤 있었는데 거의 모두 새누리당 승리로 귀결되었다. 불과 10-20개 정도의 선거구였는데 여기에서의 결과들이 전국적인 승패를 갈랐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이 강남을인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일부 선거구에서도 어떤 부정이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직접 표에 손을 대는 부정이 과연 가능할까? 물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들은 청와대와 총리실, 국정원과 기무사를 총동원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그 증거를 파렴치하게 인멸하는 권력이다. 좌초가 명백한 천안함 침몰을 북한에 의한 어뢰폭침으로 조작하는 집단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리한 조건에서 압도적 우세 실현치 못한 야권과 진보세력
집권수구세력의 각종 부정협잡과 공세를 감안해도 야권이 선거에서 실패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세와 민심은 야권에 어느 때보다 유리해 압도적인 우세로 정국을 이끌고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전국 11개 선거구에서 1000표 이내로 승부가 갈렸고 불과 1000-2000표 차이로 야권이 석패한 선거구도 즐비하다. 젊은 세대의 표심을 조금 더 이끌어 투표율을 60%까지만 끌어 올렸어도 결과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방심과 안일, 나태는 진보의 적이다. 진보가 새 것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창조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이미 진보가 아니다. 야권은 정책연대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고 그에 기초해 선거연대를 실현했으나 사실 형식적인 것에 그쳤다. 후보 단일화 자체에 급급했지 연대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어낼 것인지 뚜렷하지 않았다. 선거 유세에 제한된 야권의 공조는, 야권연대가 민중의 긴급하고 절박한 삶에 힘이 되기보다는 야당 후보들의 당선을 위한 방법론에 머물렀음을 보여준다.
야권연대를 성사시키는 순간 한발 더 나가기보다는 그 자체에 안주해 자당, 자파의 당선만을 위해 몰두한 결과는 생각보다 뼈아프다. 진보당이 선전하고 민주당도 지난 총선보다 의석을 확대했지만 큰 싸움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했다. 민주당은 오만했고 진보당은 안일했다.
집권수구세력은 이번 총선에서 절치부심했고 필사적인 승부수를 띄웠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력전을 벌였다. 한미FTA 통과로 자신의 최종 임무를 완수한 한나라당은 작년 말부터 박근혜의 당으로 ‘환골탈태’했다. 한미FTA 날치기 직후 박근혜 중심 체제에 장애가 되는 친이계 실세들은 당에서 하나하나 제거되었다.심지어 저들에게 악재였던 돈봉투 사건, 선관위 디도스 공격도 정적 제거에 활용되었다. 당명을 바꾸고 강령을 개정하는 등 뻔뻔하지만 교활한 기만책도 일관되게 적용했다.
선거에 들어서는 보수언론과 뉴라이트, 공권력을 총동원해 진보당에 대한 도덕성 시비, 색깔론 공세를 펼치고 야권연대를 분열시키기 위한 공작에 화력을 집중했다. 이정희 대표를 기어이 주저앉히고 경기동부연합을‘제2의 종북사태’로 몰아갔으며 황선 후보 등 진보당 인사에 대한 색깔론 공격이 광기를 띠고 전개되었다. 선거 막판에는 김용민 후보에 대한 파상공세를 펼쳐 선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일정하게 성공했다.
선거 전 과정에서 야권은 보수세력에게 의제를 선점당하고 끌려다니며 방어에 급급한 양상을 벗어나지 못했다.오히려 내부에서 책임공방과 자중지란에 빠지는 동요를 보였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방법론에서 평가할 점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관점과 자세다. 유리한 객관조건과 후보단일화에 자만했고, 수구기득권세력에 대해서 불철저했으며, 단결과 연대는 유불리의 타산 앞에 공고하지 못했다.
대중운동, 대중투쟁이 저조했던 것은 이번 총선에서 진보진영과 야권연대가 우세를 점하지 못했던 주된 요인이다. 각종 권력을 절대적으로 점유하고 재벌과 언론, 군대와 정보 공안기관을 총지휘하는 수구세력에 대항해 밀리지 않고 힘의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대중의 힘에 기초해야 한다. 민중은 개별로 분산되면 저들의 힘을 당할 수 없다. 단결해서 투쟁하고 투쟁을 위해 의식적, 조직적으로 뭉쳐야 저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은 모두 대중투쟁의 열기와 힘에 기초해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2010년 지방선거의 승리는 2008년 강력한 촛불항쟁의 직간접적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한미FTA 반대투쟁으로부터 시작해 각계각층의 대중투쟁은 사안별, 지역별로 끊이지 않았다. 선거 시기에는 민간인 불법사찰이 폭로되어 국민적 항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야권은 의례적인 입장 표명 이외에는 이렇다 할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중투쟁을 폭발시키지 못한 지점에서 진보당은 민주당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 내부에 보수와 개혁이 공존하고 기득권체제에 상당 부분 편입된 민주당에게는 애초에 기대할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에서 소외된 민중의 힘에 기초하고 진보적 정치노선을 가진 진보당이 아니면 그 누구도 대중적 정치투쟁을 담당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엄중한 시기에도 진보당은 막연하게 ‘웃음을 드리겠다’는 가벼운 메시지를 전파에 실어 보냈다. ‘오락과 웃음’은 민중 속에 동거동락하면서, 민중과 어깨 건 투쟁의 장에서 빛나야 진정한 낭만과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총선에서 아쉬운 결과가 나왔지만 비관할 필요는 전혀 없다. 수도권에서 견고하게 형성된 정권심판과 야권연대의 흐름, 부산경남지역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야권의 약진, 전통적으로 역동적 정국 전환의 기폭제가 되었던 호남 민심의 건재, 이것이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대선 정국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통합진보당은 단결을 강화하고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면모를 갖춰나가며 야권연대를 한층 더 발전, 공고화시켜 나가야 한다. 모든 진보개혁세력은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민심에 적극 부응해 진보개혁을 가속화시키며 새 정치, 새 사회, 새 생활의 국민적 열망을 실현키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해나가야 할 것이다.
2012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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