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연구소
4.11 총선이 끝났다. 국민들은 변함없는 “MB심판”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국민의 “MB심판”은 미완의 승리에 머무르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깜짝 놀란 것처럼, 새누리당이 152석이라는 과반의석을 차지하였으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전국적 차원의 야권연대를 이루었지만 도합 140석이라는 미흡한 결과를 얻었다. 통합진보당은 13석에 그쳐 원내교섭단체 목표가 좌절되었다.
이로 인해 “이명박 반대”정서가 팽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죄악으로 얼룩진 이명박 정권에 심판의 철추를 내리겠다는 야권연대진영의 다짐은 당분간 저지되었으며 향후 대통령 선거에서 셈법이 복잡하게 되었다.
예상보다 낮았던 의석 수
총 득표에서는 야권연대진영이 더 우세하였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투표열기가 표출되었고 영남권에서조차 “MB심판”이 울려나왔다. 서울 20대의 투표참여율이 출구조사를 통해 무려 64.1%로 나타났다. 야권연대진영은 새누리당의 아성이라 일컬어졌던 부산에서 무려 40.2%를, 경남에서 36.1%를 득표하며 부산경남지역에서 박근혜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심지어 대구지역에서도 야권단일후보 김부겸 후보는 수성갑에서 무려 40.4%를 득표하였다. 전국적 차원에서 보수진영은 45.2%를 득표한 데 반해 야권연대진영은 47.2%를 득표해 2%를 더 앞섰다. 득표수로만 본다면 야권연대진영이 제1당이 되고 여소야대 국면이 열리는 흐름이었다. 국민들의 이명박 심판의지는 변함없이 표출되었다.
<전국적 차원의 야권연대는 이번 총선의 주요성과>
그러나 의석수를 살펴보면 민심과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새누리당이 오히려 152석을 얻었고, 야권연대진영은 140석에 그쳤다. 그 결과 박근혜는 실제 전국득표에서는 야권에게 2%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대선주자”로 부상한 반면, 야권은 박근혜보다 2%나 우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거패배 책임론이 대두하고 지도부 사퇴가 거론되는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총선 투표율이 54.3%로, 여권을 압도적으로 심판할 만큼 충분히 높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다. “MB심판” 민심이 하늘을 찔러도 그 민심을 투표장으로 온전히 끌어와야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권연대진영은 유리한 국면이었음에도 선거의 주도권을 쥐지 못해 추격을 허용하였다. 투표율이 2010년 지방선거 수준에 머물면서 초박빙의 승부처가 늘어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1000표차 이내의 초박빙 승부가 11곳이었다.
초박빙의 접전이 늘어나면서 선거과열, 부정선거가 잇따랐다. 특히,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경남지역에서는 7명의 당선자가 부정선거 혐의로 검찰의 수사대상이 올랐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 후보가 김성찬, 김태호, 강기윤, 조현룡, 여상규, 박성호 등으로 무려 6명을 차지하였다. 강남을에서는 미봉인된 투표함이 18개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강남갑, 구로, 부평 등 비정상적인 투표함은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야권이 추격을 허용한 결과, 선거법 위반사례, 부정선거사례가 속출하면서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충격적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원인 1 : 정치구호에 그친 “MB심판”과 “야권연대”
야권연대진영은 “MB심판”이라는 민심을 반영하고 “야권연대”라는 주요한 성과를 내세웠지만 그 뼈대위에 풍부한 정책적 내용을 덧붙이는데 실패하면서 앙상한 정치구호에 그쳐버리고 말았다.
2010 지방선거에서는 “이명박 심판”과 더불어 “무상급식”이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되면서 민심이 폭발적으로 호응하였다. 보수진영은 그야말로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보수세력”을 고집하였으며 천안함 사건을 악용한 5.24 조치는 그 절정이었다. 진보개혁진영은 “MB심판”과 더불어 “무상급식”을 제시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변화”를 제시한 결과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아쉽게도, 야권연대진영이 “MB심판”의 대안으로 진보적 의제를 제시하며 유권자를 진보적으로 이끌지 못하였다. 하다못해 19대 국회에서 야권연대가 과반의석을 획득하면 새누리당이 장악하고 있던 18대 국회에 비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려주는 "18대 국회와 19대 국회의 대차대조표”도 부각시키지 못하였다.
새누리당은 박근혜를 “미래권력”으로 제시하며 “MB심판” 이후 정책적 흐름을 제시하지 못한 야권연대진영을 “과거에 집착하는 세력”으로, 자신들을 “미래를 향한 세력”으로 포장하였다. 야권연대진영은 보수진영의 여론공세를 일격에 쳐 물리칠 “진보”적 가치를 휘둘렀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지,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대체로 언론공세에 수세적으로 대응하고 말았다.
민심이 원한 것은 정치인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록 밴드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민심은 정치인들이 “진보적 정책”을 펼치기 바랐을 것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이번 선거는 진보의 “이름”만 거창하고 “내용”이 안보였던 선거였다.
원인 2 : 선거운동에 휩쓸린 “한미 FTA”와 대중운동
야권연대진영이 풍부한 정책적 의제로 “MB심판”과 “야권연대”에 살을 붙이지 못하였다면, 진보단체들은 4.11 총선국면에서 선거운동에 휩쓸리며 위력한 대중운동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한 면이 있다.
“민간인 사찰” 문제가 불거져 통합진보당이 이를 “헌정사상 초유의 반인권 반민주만행으로 명백한 정권퇴진사안”이라고 규정하였다면 진보진영은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민주의식이 깨어있는 진보”를 자임한다면 “헌정사상 초유의 만행”을 두고 몇 사람이 되더라도 일단 뭉치고 모여서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강력하게 규탄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래야 국민들이 진보진영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다. 민주통합당 내에서도 “대통령 탄핵”이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통합진보당이 국회 제1법안으로 반값등록금 법안과 더불어 대통령 탄핵발의안을 상정하겠다고 약속하고 대통령 탄핵 이후의 양상을 설명하며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 일관된 정치행보라고 본다.
또한 민주통합당이 어렵사리 “한미 FTA 폐기”를 당론으로 확정지었을 당시에도 진보진영이 민주통합당의 결정을 등에 업고 “한미 FTA 폐기”를 위해 전면적으로 뛰어들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진보진영이 그 동안 “한미 FTA가 체결되면 나라경제가 파탄난다”고 주장해왔다면, 선거운동을 하더라도 총선에서 한미 FTA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진보진영의 진정성도 알릴 수 있고 한미 FTA도 실질적으로 폐기시킬 수 있다.
대통령은 불법사찰로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있고 한미 FTA로 국가경제는 파탄나고 있는데도 여느 선거와 다름없이 선거운동을 하며 명함을 건네면 제 아무리 “진보정치”라 하더라도 민주통합당을 견인하기 어렵고 민심의 문을 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원인 3 : 집권세력의 무차별적 불법행위
야권연대진영이 “MB심판”과 “야권연대”를 정책적으로 풍부히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집권세력은 무차별적 불법행위를 전방위적으로 자행하며 민심을 왜곡하였다.
보수진영은 모든 정부기관과 언론이 총동원되어 새누리당을 옹호하고, 불법선거를 자행하는데 골몰하였다. 특히 초박빙의 승부로 당선이 판가름되는 한국의 선거방식에서는 오차범위에 불과한 20-30표 정도의 영향력이 20-30가지 방식으로 자행된다면 총 투표에서는 400-900표의 영향을 주어 전체 당락을 바꿔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방부는 지난 2월, 장병정신교육 지침에 통합진보당을 “종북주의자”로 규정하며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였다. 한겨레신문은 최근 선거를 앞둔 4월에는 군단, 군사령부 단위에서 중대장급(대위) 정신교육교관 경연대회를 완료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군대 내의 정신교육에서는 “종북주의자”를 통합진보당, 민주노총, 전교조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더불어 4년 전의 촛불시위 배후세력, 최근 제주도 강정기지 반대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정치권도 종북주의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부재자투표자인 장병들을 대상으로 야권연대진영을 직접적으로 “종북주의자”라고 공격하며 명백한 불법선거운동을 자행한 것이다.
검찰은 경남지역의 새누리당 후보 6명과 민주통합당 후보 1명에 대한 부정선거 혐의를 포착하고 있으면서도 “선거에 영향을 끼칠까봐” 수사를 미루다 총선 이후에야 압수수색을 실시하였다. 이는 검찰이 경남지역 새누리당의 불법행위를 암묵적으로 묵인해준 것과 같다.
기획재정부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확정한 복지 관련 266개 총선공약을 모두 실행한다고 가정할 경우 앞으로 5년간 최소 268조원, 연간 53조6000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된다”고 말해 ‘보편적 복지 확충’을 내건 야권연대진영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러다보니 기획재정부가 새누리당을 위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선거관리위원회는 19대 총선에 홍보예산으로 총 110억 3천 700만원을 책정해 18대 총선 당시 집행된 123억 200만원에 비해 13억원 가량을 삭감하였다. 총선 홍보예산을 18대 총선보다 10%를 더 줄인 것이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선거기간 내내 총선관련 정책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상대후보를 흠집내는 행태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유권자들을 선거에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저들은 “노무현 정부 때도 있은 일”이라는 철면피한 주장으로 대응하였다. 이후 보수언론은 김용민 후보의 8년전 발언을 물고 뜯으며 총선을 “김용민 선거”로 이끌어갔다. 정작 투표당일이 되자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총선투표관련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개표과정에서는 강남을 지역에서 총 55개 투표함 가운데 18개가 훼손되어 심각한 부정선거의혹이 제기되었다. 테이프로 봉합되지 않은 것이 2개, 날인이 찍히지 않은 것이 9개 등 총 11개이며, 재외국민 우편투표함 역시 테이프에 날인이 찍히지 않은 것 3개와 자물쇠로 봉합되지 않은 것 1개 등 4개가 발견된 것이다. 여기에 안쪽 투입구가 봉인되지 않은 투표함 3개도 추가로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강남갑에서도 10개의 투표함이 문제되었으며 구로, 부평 등 비정상적인 투표함은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대선 앞둔 세 가지 과제
첫 번째로 야권의 자기성찰은 분명 필요하다. 입법기관으로 중앙정치세력을 결정짓는 총선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적 흐름과 안목, 진정어린 행보를 보여주지 못한 야권연대진영의 행보는 혁신되어야 한다.
집권을 하겠다면 집권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집권능력의 핵심은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현실과 다소 괴리된 개혁정책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이겨내고 야권을 지지하려면, 야권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해법은 야권연대의 진정성이며 그 방법론이 바로 통합진보당의 우선 실천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도 진보진영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보진영이 정책적 일관성으로 신뢰를 주고, 진정어린 실천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진보가 전진하고 비약해야 한다.
두 번째로 진보진영의 선거운동방식도 혁신해야 한다. 진보운동 단체들은 자기단체의 위치와 활동방식에 맞게 선거에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진보단체들이 총선기간에 맞춰 자기의 요구를 전면화하고 여론전을 펼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학생단체들은 총선기간에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마찬가지로 노동단체들은 총선기간에 비정규직 관련 투쟁에 집중하고 농민단체들은 총선기간에 한미 FTA 문제를 집중 부각시킨다면 기득권이 없는 진보진영이 보다 효과적인 선거를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정권과 보수언론은 이미 자기의 영역에서 각 기관의 활동을 가지고 선거에 총동원되고 있다. 진보진영이 후보논리에 빠져 선거운동에 매몰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정권과 보수언론이 총동원되는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는 흐름일 수 있다.
세 번째 과제로 부정선거가 두 번 다시 재현되면 안 된다. 이번 총선에 드러나는 부정선거의 양상은 각 부정행위가 전체 총선 결과에 규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보기 어렵지만 그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이를 합치면 전반적 선거에 영향을 충분히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진영은 일단 부정선거가 의심되면 아무리 사소한 사안이라도 절대로 묵과하지 말고 책임적으로 문제시하고 이를 명명백백히 밝히자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난 10.26 재보선 때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라는 부정선거 징후가 나타난 데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도처에서 불법선거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이 경우 올해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도 불법선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당면한 총선 부정선거 의혹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사회에서 부정선거 시비를 밝히자는 주장이 “패자의 째째함”으로 규정될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부정선거 시비를 밝히는 “철저함”이 연말 대선의 공정선거를 이끌어낼 수 있다.
관건은 12월 대선
이제 한국사회는 향후 집권세력을 결정짓는 12월의 대선을 남겨놓게 되었다.
“MB 심판정서”는 우리 국민들이 변함없는 상수라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도 확인되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미래의제와 접목시키며 미래의 희망과 전망을 보여주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아울러 선거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못한다면 그 어떤 야권의 약진으로도 정권을 교체할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각종 금권, 관권선거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났는데 야권연대진영은 이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각종 금권, 관권선거와 부정선거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처벌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번 대선에서도 부정선거는 또 다시 재현될 수 있다.
통합진보당은 국민이 부여한 13석을 최대한 활용해 진보정치의 감동드라마를 써야한다. 진보진영이 진보적 의제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진정어린 실천으로 다가간다면 국민들은 전폭적 지지로 화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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