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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로케트사령부에는 단대호가 없다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3. 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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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사일지도국은 허상이었다 

2012년 3월 3일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전략로케트사령부 시찰소식을 보도하였다. 북측에서는 로켓이라 하지 않고 로케트라 한다. 군사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서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그 소식에 담긴 깊은 뜻을 파악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아래와 같은 배경설명이 요구된다. 

2012년 2월 21일 <연합뉴스>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인민군 제842군부대 시찰소식을 전한 북측 언론의 2012년 2월 21일자 보도내용을 전재한 보도기사에서 제842군부대를 미사일지도국으로 지목하였다. <연합뉴스>가 그런 보도를 내놓자, 남측의 다른 언론매체들도 제842군부대를 미사일지도국이라고 하면서 이러저러한 분석기사를 내놓았다. 

그러나 남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인민군 제842군부대 시찰소식을 전한 북측의 보도기사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오보를 낸 것이다. 최고사령관의 제842군부대 시찰소식을 전한 북측 보도기사에서 주목해야 하는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제842군부대 시찰을 수행한 군사지휘관들 가운데 리용호 인민군 총참모장이 없었다는 점이다. 만일 제842군부대가 인민군 미사일부대를 통제하는 미사일지도국이라면, 최고사령관이 그처럼 중요한 작전단위를 시찰할 때는 당연히 총참모장이 최고사령관을 따라 현장에 가야 한다. 그런데 총참모장이 최고사령관을 수행하지 않은 것은 제842군부대가 미사일지도국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둘째, 최고사령관의 제842군부대 시찰소식을 전한 북측 보도기사는, “어버이 장군님께서는 이 군부대에 꼭 와보시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시였는데 오시지 못하였다고, 그래서 자신께서 오늘 시간을 내였다”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말을 인용, 보도하였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말에 따르면, 생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842군부대를 한 차례도 시찰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사일지도국을 한 차례도 시찰하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제842군부대는 미사일지도국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위의 정보를 종합해보면, 남측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미사일지도국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임을 알 수 있다. 누가 미사일지도국이라는 허상을 조작하였을까? 미사일지도국이라는 명칭은 남측 국방부가 2004년에 펴낸 ‘국방백서’에 처음으로 나온다. 미국 국방정보국(DIA)이나 한국군 국방정보본부는 각기 대북첩보활동을 통해 군사정보를 파악하지만, 대북군사정보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는 권한을 미국 국방정보국이 행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남측 국방부가 미국 국방정보국의 정보판단에 따라 미사일지도국이라는 허구명칭을 2004년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인민군 연구자로 잘 알려진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는 2005년 7월 27일에 발간된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ane's Defense Weekly)>에 실린 글 “움직이는 미사일(Moving Missiles)”에서 미사일훈련지도국(Missile Training Guidance Bureau), 미사일사령부(Missile Command), 미사일군단(Missile Corps)이라는 세 가지 명칭을 혼란스럽게 썼다. 그러나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전략로케트사령부 시찰소식은, 인민군에 미사일지도국이 아니라 전략로케트사령부가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혀주었다. 

인민군 전략로케트사령부는 각종 전략미사일로 무장한 군단급 작전단위를 통제하는 야전사령부다. 인민군에는 군단급 야전사령부가 20개 이상 있는데, 군단급 야전사령부 지휘관은 상장(한국군에서는 중장)이다. 남측 언론에는 최상려 상장이 미사일지도국 국장으로 알려졌지만, 미사일지도국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므로 그는 전략로케트사령부 사령관이다. 전략로케트사령부는 총참모부를 통해 최고사령관 명령을 받는 다른 군단급 야전사령부와 달리, 최고사령관 명령을 직접 받는 독자적인 지위를 지닌 야전사령부다.

1974년에 전략로케트사령부가 있었을까?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전략로케트사령부 시찰소식을 전한 북측 언론의 2012년 3월 3일 보도기사에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 있다. 북측에서는 왜 전략미싸일사령부라 하지 않고 전략로케트사령부라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북측에서는 미사일이라 하지 않고 미싸일이라 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유도항법기능이 없는 로켓무기와 유도항법기능이 있는 미사일은 차원이 서로 다른 무기체계들이다. 인민군이 보유한 최신형 방사포는 유도항법기능을 갖춰 사실상 미사일로 변신했지만, 기존 방사포는 로켓무기로 분류된다. 북측에서 미싸일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 데, 왜 미사일전력을 통제하는 사령부 명칭에 로켓이라는 말이 들어있을까? 

의문을 풀어줄 단서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전략로케트사령부 시찰소식을 전한 북측 언론의 2012년 3월 3일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74년 8월에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시찰하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3월에 그 사령부를 시찰하였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인민군 군단급 야전사령부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야전사령부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각각 한 차례씩 시찰하였을 리는 만무하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여러 차례 시찰하였지만, 시찰날짜를 보도기사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어서 1974년 8월 시찰날짜만 보도한 것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그 사령부를 여러 차례 시찰하였지만, 시찰날짜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어서 2002년 3월 시찰날짜만 보도한 것이다. 

그런데 북측 언론매체들은 여러 시찰날짜들 가운데서 하필이면 왜 어느 한 시찰날짜만 보도한 것일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1974년 8월과 2002년 3월에 북측 최고영도자가 그 사령부를 시찰할 만큼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다. 

보도기사에는 김일성 주석이 1974년 8월에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시찰하였다고 씌여있는데, 1974년은 인민군이 전략미사일을 보유하기 훨씬 이전 시기다. 인민군이 전략미사일을 아직 보유하지 못했던 1974년에도 전략로케트사령부가 있었던 것일까? 이 보도내용을 이해하려면 1970년대 북측의 미사일 개발에 관한 정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북측은 1972년에 중국산 로켓무기들인 SY-1과 HY-1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SY-1은 무게 513kg짜리 탄두를 탑재하고 150km를 날아가는 로켓무기다. HY-1은 무게 513kg짜리 탄두를 탑재하고 85km를 날아가는 로켓무기다. 

북측은 1973년에 소련산 미사일 SSC-2B를 6기 도입하였는데, 무게 600kg짜리 고폭탄두를 탑재하고 90km를 날아가는 이 미사일에는 전파유도항법기능이 있다. 그래서 로켓무기가 아니라 미사일로 분류된다. 소련에서 도입한 SSC-2B 미사일을 분해하여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전파유도항법기술을 습득한 북측은 1974년에 마침내 미사일 생산국이 되었다. 

북측에서 1972년부터 로켓무기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으니, 1973년에는 각종 로켓무기로 무장한 작전단위들이 편성되었을 것이고, 그런 로켓무기부대들을 통제하는 로케트사령부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일성 주석이 1974년 8월에 시찰한 야전사령부는 로켓무기부대들을 통제하는 사령부 곧 로케트사령부라는 명칭을 가졌던 것이다. 

조셉 버뮤디즈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인민군 미사일부대가 창설된 때는 1986년이었으므로, 그 무렵에 인민군은 로케트사령부라는 기존 명칭을 미싸일사령부로 변경할 수 있었지만, 변경하지 않았다. 인민군은 전략미사일을 작전배치한 뒤에도 전략미싸일사령부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전략로케트사령부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인민군만 그런 게 아니라, 러시아군도 로켓이라는 오래된 명칭을 그대로 살려 전략미사일부대를 전략로켓군(RVSN)이라 부른다. 

전략로케트사령부는 제4군종을 통제한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전략로케트사령부 시찰소식을 전한 북측 언론의 2012년 3월 3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3월에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시찰하였다. 인민군에 전략로케트사령부가 있다는 말은 육군, 해군, 공군 이외에 제4군종인 전략군이 있다는 뜻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사령부를 여러 차례 시찰하였지만, 2002년 3월 시찰날짜만 보도한 것은 그 때 중요하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북측의 중거리미사일(IRBM) 개발경험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북측이 중거리미사일을 언제 개발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정보는 <서울신문> 1991년 12월 7일 보도기사에 들어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1991년 가을 북측과 중국은 공동개발한 중거리미사일을 중국 닝샤후이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에서 시험발사하였다. 그러나 북측이 중국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사실만 보고, 두 나라가 미사일을 공동개발하였을 것으로 추측한 것은 오보였다. 북측은 중국과 미사일을 공동개발한 적이 없다. 북측이 닝샤후이자치구에서 시험발사한 중거리미사일은,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북측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북측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미사일을 중국에서 시험발사한 까닭은, 한반도에서 시험발사하기에는 중거리미사일의 사거리가 너무 길기 때문이다.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 있는 발사장이 완공된 때는 1992년이다. 

북측이 1991년에 중국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한 중거리미사일을 언제부터 대량으로 생산하여 작전배치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지만, 그 중거리미사일은 1993년에 이미 인민군 로케트사령부 예하부대들에 작전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아래와 같다. 

1993년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북측을 힘으로 굴복시켜보려고 망상하면서 압박을 가하였다. 이에 분노한 북측은 1993년 5월 29일 미국의 압박공세를 꺾어버리기 위해 전격적으로 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하였다. 그 날 북측은 미사일 세 발을 쏘았는데, 준중거리미사일(MRBM) 한 발은 동해 상공을 날아가 일본 노도반도(能登半島) 앞바다에 떨어졌고, 중거리미사일 두 발 가운데 한 발은 괌(Guam)을 향해 날아가다가 약 300km쯤 남겨두고 서태평양에 떨어졌고, 다른 한 발은 하와이(Hawaii)를 향해 날아가다가 한반도와 하와이 중간쯤되는 태평양 한 복판에 떨어졌다. 북측이 중거리미사일을 작전배치하였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북측이 중거리미사일을 발사하였음을 알고 충격과 경악에 사로잡힌 미국은 북측이 요구한 북미양자회담에 황망히 끌려나가 사상 최초로 북미합의문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1993년 6월 11일 북측과 미국이 미국 뉴욕에서 발표한 북미공동성명이다. 

북측이 1991년에 시험발사하였고, 1993년에 미국을 굴복시킨 중거리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2단형 미사일인데, 무게 2t짜리 탄두를 탑재하고 3,200km를 날아가는 전략미사일이다. 그런데 북측이 중거리미사일을 개발하였다는 정보가 미국 언론에 흘러나온 때는, 북측이 중거리미사일 발사로 미국을 굴복시킨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03년 9월 11일이었다. 

북측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생산하여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능력을 갖추었다. 북측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였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미국 언론에 알려진 때는 2007년 1월 29일이다. 그 날 미국 국방부 산하 미사일방어국(MDA) 부국장 패트릭 오레일리(Patrick O'Reilly)는 워싱턴 디씨에 있는 조지마샬연구원에서 열린 토론회에 출연하여 북측이 두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였다고 말했는데, 북측이 보유한 1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사거리는 10,000km이고,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사거리는 15,000km라고 밝혔다. 

사거리가 15,000km가 되는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은 7축14륜 초대형 발사차량에 실려 이동하는데, 북측에서 워싱턴 디씨까지 10,700km이므로, 미국 전역은 물론 지구 위의 모든 지점이 그 미사일의 타격권 안에 있는 것이다. 중국이 2010년부터 작전배치하는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동펑(東風)-41의 사거리가 15,000km이므로, 미사일사거리 연장능력을 비교하면 북측이 중국보다 7년 정도 앞섰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이 오래 전에 밝혀졌는데도, 2011년 1월 11일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북측이 앞으로 5년 안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것으로 예측한다는 헛소리를 하였다. 미국의 이러한 대북군사정보 왜곡으로 북측의 미사일 개발능력이 15년 정도 뒤쳐진 것으로 세상에 잘못 알려졌다. 

북측은 2002년 이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중거리미사일로 무장한 전략로케트군을 편성하는 작업을 완료하고 기존 로케트사령부를 전략로케트사령부로 확대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3월에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시찰한 것은, 전략로케트군 편성이 그 전에 이미 완료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현재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미사일전력은 어떠한가?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단과 중국인민해방군 제2포병군단을 비교해보면,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2010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 제2포병군단은 대륙간탄도미사일 90기, 중거리미사일 56기, 준중거리미사일 128기, 단거리미사일 204기를 작전배치하였다. 영국 런던에 있는 제인스 정보그룹(Jane's Information Group)이 2008년 4월에 발표한 ‘제인스 국가별 안보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대륙간탄도미사일 50기, 중거리미사일 150-200기, 준중거리미사일 및 단거리미사일 600-800기를 작전배치하였다. 원문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용어 대신에 장거리미사일이라는 모호한 용어가 쓰였지만, 중거리미사일보다 한 급 높은 장거리미사일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중국인민해방군 제2포병사령부 예하에 6개 미사일사단이 편성되었고, 그 6개 미사일사단 예하에 38개 미사일여단이 편성되었고, 총병력은 약 1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그들보다 미사일전력 규모가 더 큰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사령부 예하에 얼마나 많은 미사일사단과 미사일여단이 편성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정보만 보더라도 북측이 5대 핵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6핵강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략로케트사령부의 존재를 왜 외부에 공개하였을까?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전략로케트사령부 시찰소식을 전한 북측 언론의 2012년 3월 3일 보도는 북측의 오랜 보도관행을 깬 매우 이례적인 보도였다. 이제껏 북측은 최고영도자의 군부대 시찰소식을 보도할 때, 정식부대명칭을 쓰지 않고, 제842군부대라고 표기하는 식으로 단대호를 쓰면서 군부대 정체를 은폐해왔다. 군사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유다르게도, 이번에는 전략로케트사령부라는 정식부대명칭을 그대로 썼다. 전략로케트사령부는 인민군 작전단위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가장 민감하게 보도해야 할 특별한 대상이므로, 보도관행에 따라 단대호를 써서 전략로케트사령부 정체를 은폐하였어야 하는데, 정식부대명칭을 그대로 썼으니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동안 군사기밀로 은폐하였던 전략로케트사령부 존재를 이제는 외부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전략로케트사령부 존재를 외부에 공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단대호를 쓰느냐 마느냐 하는 보도관행 변경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정치문제이므로, 김정은 최고사령관 지시에 따라 전략로케트사령부 존재를 외부에 공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북측이 최고사령관 지시에 따라 전략로케트사령부 존재를 외부에 공개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북의 비핵화’로 왜곡해온 미국의 억지를 제압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것이 아니라 북측을 비핵화해야 한다는 미국의 억지주장은 인민군의 핵무장을 해제해야 한다는 뜻이므로, 전략로케트사령부를 해체하고 전략로케트군을 해산해야 한다는 황당한 소리다. 북측이 전략로케트사령부를 해체하고 전략로케트군을 해산할 수 있는 조건은 한 가지 뿐이다. 5대 핵강국과 북측이 참가한 6자회담에서 전 세계를 비핵화하기로 합의할 때, 5대 핵강국과 더불어 북측도 전략로케트사령부를 해체하고 전략로케트군을 해산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를 비핵화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너무 요원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반도 비핵화는 북측의 핵무장을 해제한다는 뜻이 아니라, 북측과 미국 사이에 조성된 심각한 핵전쟁위험을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그러므로 미국은 ‘북의 비핵화’라는 왜곡된 말을 쓰면서 북측의 핵무장을 해제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어 북측을 자극하는 망동이나 할 게 아니라, 북측과 미국 사이에 조성된 핵전쟁위험을 제거해야 한다. 

북측과 미국 사이에 조성된 핵위협을 제거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두 핵강국 사이에 조성된 핵전쟁위험을 제거하는 방도는 두 가지밖에 없다. 한 가지 방도는, 북측과 미국이 핵군축협정을 맺고 핵무기를 상호감축하면서 핵전쟁위험을 차츰 제거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다 아는 북측의 핵무기 보유사실마저도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 버티는 미국이 북측과 핵군축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소리와 같다. 북측과 미국 사이에 조성된 핵전쟁위험을 북미핵군축협정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공상이다.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유일한 해결방도는, 핵전쟁위험을 불러오는 정전협정을 핵전쟁위험을 제거하는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사실상 해결방도는 이것밖에 없다. 

그런데 인민군 전략로케트군과 미국군 전략미사일군을 남겨둔 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공약뒤집기와 협정파기를 식은 죽 먹기로 여기는 깡패국가 미국이 평화협정을 위반하고 핵전쟁위험을 다시 조성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고 우려할 수 있지만, 사정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할 때, 평화협정문에 도장만 찍는 게 아니라 핵전쟁위험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폭탄을 해체하지 않고, 뇌관을 분리시켜놓으면 폭발위험이 제거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북측과 미국이 각기 핵전쟁위험 뇌관을 제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인민군 전략로케트군과 미국군 전략미사일군을 해산하지 않고서도 한반도 평화체제를 세울 수 있다. 

핵전쟁위험 뇌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미국이 북측에게 제거하라고 요구하는 핵전쟁위험 뇌관은, 녕변 핵시설단지에서 진행되는 우라늄농축을 중지하고, 핵실험을 중지하고,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중지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녕변 핵시설에서 생산하여 미국에게 생산량을 통보한 핵물질로 제조한 핵무기를 북측이 자진 폐기하는 것이다. 자진 폐기에 대한 검증방식은 북측과 미국의 합의로 정하면 된다. 이것이 미국의 요구에 따른 핵전쟁위험 뇌관의 제거다. 

그에 상응하여 북측이 미국에게 제거하라고 요구하는 핵전쟁위험 뇌관은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해마다 몇 차례씩 강행하는 각종 북침전쟁연습을 중지하고, ‘핵우산’ 제공공약을 폐기하고, 대북경제제재를 해제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미국은 북침전쟁 인계철선(tripwire)으로 남겨둔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것이다. 철군시기와 철군방식은 북측과 미국의 합의로 정하면 된다. 이것이 북측의 요구에 따른 핵전쟁위험 뇌관의 제거다. 

북측과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면서, 위에 열거한 핵위전쟁위험 뇌관을 제거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평화협정 체결로 시작된다고 말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북측과 미국이 2012년 2월 29일 평양과 워싱턴 디씨에서 동시에 발표한 2.24 베이징 합의는,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 북측과 미국이 등가적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각각 취해야 할 조치를 합의하였다는 점에서, 평화협정 체결의 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이제는 북측과 미국이 2.24 베이징 합의를 실행에 옮기면 된다. 

북측이 미국에 제안한 북미최고위급군사회담 

주목하는 것은,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2.24 베이징 합의를 채택한 직후인 2012년 3월 3일 북측이 김정은 최고사령관 지시에 따라 전략로케트사령부 존재를 외부에 공개하였다는 점이다. 2월 24일과 3월 3일의 시차는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과는 구별되는 어떤 다른 움직임이 북미관계에 있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2012년 2월 2일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발표한 문건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원래 그 문건은 반북대결만을 고집해온 이명박 정권에게 태도전향을 요구하는 9개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인데, 그 문건에 이런 대목이 있다.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 수립을 목적으로 우리가 이미 시작한 조미최고위급군부접촉을 각방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리명박 역도이다.” 이 문장에 따르면, 북측은 미국과 최고위급군부접촉을 2012년 1월에 시작한 것이다. 

최고위급군부접촉은 무엇일까? 원래 외교부문에서 쓰이는 접촉(contact)이라는 말은 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연락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최고위급군부접촉을 시작했다는 말은,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국방장관이 만나는 최고위급군사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북측 국방위원회가 미국 국방부에 연락하였다는 뜻이다. 

이 접촉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파악하려면, 2003년 7월 23일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가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에 즈음하여 발표한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비망록’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비망록에 “조선인민군측은 1998년 10월 9일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당면하여 현 정전협정을 그대로 두고 남아있는 조항이라도 리행하기 위한 군사공동기구로서 군사안전보장위원회를 설립할 때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고 씌여있다. 북측은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정전협정을 이행할 상설기구인 북미군사안전보장위원회를 설립하려는 것이다. 

그 비망록이 발표된 때로부터 5년이 지난 2008년 4월 10일 2박3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 8명에게 북측은 북측 인민무력부장과 미국 국방장관이 참가하는 북미군사협의기구를 설립하는 문제를 설명하였다. 북측이 미국에게 제의한 북미군사안전보장위원회 설립문제에 대해서는 2008년 7월 14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조미군사안보위원회 설립과 주한미국군 철군’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2012년 1월 어느 날 북측 국방위원회가 북미국방장관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에 연락한 것을 보면, 북측이 전략로케트사령부 존재를 외부에 공개한 목적이 자명해진다. 그 목적은 북측을 비핵화하겠다는 망상을 하루빨리 버리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요구에 응할 것을 미국 군부에게 강하게 촉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2003년 7월 23일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가 발표한 비망록은 미국이 “아무런 타당한 론거도 없이 우리의 성의 있는 제의를 이번에도 또다시 거부해 버리였다”고 지적하였고, 2012년 2월 2일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발표한 공개질문장은 이명박 정부가 북측의 대미접촉을 방해하였다고 지적하였다. 2003년에는 미국이 북측 제안을 거부하였는데,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가 북측의 대미접촉을 방해하였다는 지적은, 미국이 이번에 북측 제안을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미국 국방부에 연락한 때로부터 시간이 퍽 흘렀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아직도 미국 국방부 응답을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 국방부가 북측에 파견한 미국군 유해발굴 조사단이 2012년 3월 1일부터 북측에서 작업을 시작하였으니, 유해발굴작업을 매개로 하여 상호접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북측을 비핵화하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2.24 베이징 합의를 전면적으로 이행하여 평화협정 체결에 나서야 하고, 정전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북측이 제안한 북미최고위급군사회담 개최방안에 긍정적으로 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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