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농촌의 현실과 생산관계의 기형성
우리사회연구소 김성훈 상임연구원
한국 농업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농촌과 농업에 대한 전망이 얼마나 회의적인지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없어 학교는 점차 문을 닫고, 마을에 장례 치를 장정이 없어 일용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한다. 단언컨대, 해방 이후 한국 농업 60년 역사에서 농민이 풍족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경제 위기로 갈 곳을 잃은 자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식량을 비롯한 1차 상품에 투기하여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더불어 인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주요 곡물 수출국들은 자국의 식량 안보를 위해 수출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반면 전 세계 30여 개 나라에서 식량부족으로 인한 민중들의 투쟁이 벌어진 바 있으며, 올 봄에는 영국에서의 식량폭동 가능성을 예측하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 농업과 농촌의 현황을 구조적으로 파악하여 향후 대책 마련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편으로 한국 농업의 현실을 진단해보자.
Ⅰ. 한국 농촌의 현실
Ⅱ. 한국 농업생산관계의 기형성과 의존성
1. 사멸 직전의 한국 농업
이익이 기대되지 않으면 투자도 없고, 먹고 살 수 없으면 사람도 발길을 주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당연한 생리다. 이는 한국 농촌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농업 인구는 2001년 393만 3천 명에서 2010년 306만 8천 명으로 22% 감소하여 전체 인구 대비 6.3%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중은 35% 가량으로 급속하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한 가구를 구성하는 인구도 2.61명으로 전국 평균 3.34명에 비해 상당히 적다. 젊은 층의 농촌 이탈과 더불어 급격한 노령화 현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젊은 계층의 농촌 이탈의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농사를 지어서는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농가의 평균소득과 부채규모, 그리고 인구구조에 대하여 분석하여 농촌이 현실적으로 직면한 문제들을 알아본다.
도시민의 66%밖에 되지 못하는 농가소득
한국 농가의 소득은 크게 ‘농업 소득’과 ‘농업 이외 소득’으로 구성된다. 농업 소득(A)은 말 그대로 농사를 지어 올린 소득이며, 농업 이외 소득(B)은 농사 이외에 다른 사업이나 노동임금 등을 합산한 소득이다. 농가 소득은 이 둘을 합한 소득(A+B)이다.
평균적인 농가 소득은 2010년 현재 3212만원이다. 2006년 기준 3230만원과 비교해 보았을 때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농업 이외 소득은 감소 없이 꾸준하게 증가하여 1294만원을 기록하였다(그래프 1). 농사만 지어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일을 더 해야만 하는 농촌의 현실을 보여준다. 가계를 책임진 경영주의 70%가 60세 이상인 농촌의 인구구조를 감안해 본다면 이는 너무나도 심각한 현황이다(고령화 표 1 참조).
평균적인 도시 노동자 가구의 소득과 비교한 농촌의 소득은 2010년 66% 수준으로 떨어졌다(그래프 2). 농촌에 젊은이가 없는 것은 아무리 농사를 지어봐야 도시노동자의 66% 밖에 벌지 못하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갚을 수 없는 농가부채
농가의 소득을 살펴본 바 그 생활수준이 매우 팍팍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익히 알려진 대로 농가의 빚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농업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토지와 더불어 각종 생산 설비가 구비되어야 한다. 특히 과수농업, 특용작물 등 시설투자가 필요한 경우 초기 투자비용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 이와 더불어 농촌 노동력이 고령화됨에 따라 들어가는 일용직 인건비와 값비싼 농기계 구비까지 고려한다면 농가 평균 소득 수준에서는 도저히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금액에 이르게 된다. 이 때문에 농민은 빚을 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2010년 현재 농가당 평균 부채는 2721만원이다(그래프 3).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소득 중 세금 등을 제외한 처분가능소득은 2571만원(그래프 1)인데 반하여 부채가 오히려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농가의 부채는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며 향후 농업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40~50대 경영주에서 가구당 평균 1억 8382만원(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2009)에 이르고 있다.
농가 부채가 단지 그 규모에서만 심각한 것은 아니다. 농가부채의 더 큰 심각성은 그것이 무대책 상태로 놓아두면 필연적으로 확대재생산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농사가 기후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데다가, 농업 전반에 걸친 무계획적인 작물 선택으로 인해 해마다 과잉, 과소 생산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배추다. 작년의 경우 배추가 봄철 이상저온현상으로 냉해를 입어 생산량이 매우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배추가 품귀현상을 빚어 김장철 배추 가격이 폭등하였다. 배추가격이 폭등하면 농민들이 이익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냉해 규모가 워낙 커서 팔 수 있는 배추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올해도 배추가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한 많은 농민들이 덩달아 배추농사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또 비참했다. 배추 재배 면적이 너무나 늘어나 이번에는 반대로 생산지 배추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배추를 뽑아서 포장하는데 들어가는 인건비도 건지지 못할 형국이 되자, 배추 재배 농가는 밭을 그냥 갈아 엎어버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농가가 한 번 농사를 망치게 되면 다시 빚을 내어 빚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 공산품 시장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여 경제공황으로 이어지지만, 농업은 그야 말로 시도 때도 없이 경제공황인 셈이다.
고령화를 넘어선 ‘농촌 공동화’ - 소는 누가 키우나?
농촌은 고령화를 넘어서 텅 빈 마을, 즉 공동화에 직면해있다. 인구 구조는 역삼각형 형태로 확고히 굳어졌으며 대규모 젊은 계층을 농촌으로 유입시킬 만한 어떤 정책적, 경제적 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대책 없이 이 상태로 몇 년 만 지난다면 300만을 유지하고 있는 농촌 인구는 급감 추세로 전환할 것이다. 지금은 쌀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머지않아 쌀을 생산할 사람이 사라진다.
<표 1>을 보면, 농가의 생활을 책임지는 30세 미만 경영주는 2004년부터 아예 자취를 감췄다. 공무원 정년에 해당하는 60세를 기준으로 본다면 농가 경영주의 70%는 2010년에 사실상 은퇴했어야 했다.
농사를 지어도 빚은 갚을 수 없는 농가의 젊은이는 다 떠나고, 농촌을 지키던 노인들도 하나 둘 세상을 등지는 것이 2011년 대한민국 농업의 현주소다.
2. 일관된 농업 붕괴 정책
농촌의 현실이 이렇게 고착화 된 것은 일관되게 추진된 1)농업 개방 정책과 2)일회성 농가부채 경감 대책으로 대표되는 농업붕괴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 한국 농업은 ‘일제시대’로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대접받아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래에서는 한국 정부의 역대 농업 붕괴정책에 대하여 알아본다.
일제는 ‘산미증식계획’ 등으로 한국 농촌을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량미 수탈의 장으로 만들었고, 해방 후 미국이 한국에 투하한 잉여 농산물로 인하여 이른바 삼백산업이 몰락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량의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해야 했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자의 임금을 낮게 통제하기 위해서, 쌀을 비롯한 농축산물의 가격을 낮추는 저곡가정책을 사용하였다. 이로 인하여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갈수록 궁핍화되기 시작했으며, 젊은이들은 팍팍한 농촌 생활을 등지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대거 편입되었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도시 빈민계층을 형성하고 실업자 대열을 확대하면서, 박정희 정권이 의도한 저임금 노동력 조달 정책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90년대부터 본격화된 개방농정
김영삼 정권은 ‘세계화’ 기조 아래 최초로 국내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결정하여 전 국민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값 싼 외국 농산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저곡가에 기초한 노동자 임금 억지 정책과 농촌 붕괴 정책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까지 한국 정부는 일관되게 농산물 시장 개방을 확대하는 정책을 기본정책기조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가 살 길은 수출에 있으며, 공산품 수출 확대를 위해서라면 농축산물 수입은 불가피하다’는 단편적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국은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어 WTO, 도하개발어젠다(DDA)협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범위에서 다자간 무역협정을 체결하여 농산물 개방 압력을 넣어왔다. 이들은 다자간 무역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게 되자 일대일 협상에 의한 각종 FTA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협상전술을 전환하였다. 특히 최근 미국은 한미FTA를 통해 자국의 잉여 농산물, 특히 쇠고기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노골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최대 식량 수입국은 미국이다. 농산물 개방이 본격화된 92년 이래 한국이 수입한 옥수수의 49%, 대두의 78.4%, 밀의 37.1%가 미국으로부터 이루어졌다(그림 4). 2011년 1분기 미국이 수출한 쇠고기의 최대 수입국 역시 한국이다(미국 농무부 5월 16일 발표). 여기에 ‘몬산토’를 비롯한 미국 종자 독점기업으로부터 수입하는 각종 종자까지 고려한다면 한국 농업의 미국 의존도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농민의 불만을 무마하기에 급급한 한국 정부
개방이 본격화되고 밀려오는 저가 농산물 때문에, 농업 소득구조는 더욱 악화되었다. 농가 부채를 갚기는커녕 당장의 생계 꾸리기도 팍팍한 농민들은 쌀 개방 반대투쟁, 농가부채 해결투쟁과 우루과이라운드, WTO/DDA협상 반대, 한-칠레FTA, 한미FTA저지 투쟁 등 ‘개방농정 철폐와 민족농업 사수’의 기치를 걸고 거리로 나섰다.
외국 농산물 수입의 급격한 확대로 인해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정부는 농가부채를 경감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수차례에 걸쳐 농가 부채를 경감하고 이자율을 조정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저가 농산물로 인한 농업 수익구조가 전혀 개선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농민들이 원금은커녕 이자 상환도 어렵다. 부채 이자 몇 % 깎아주는 것이 대책이 될 리 없는 것이다.
정부는 농업 개방에 따른 피해를 일부 보전해주거나 농가 부채 이자율을 낮추는 등의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다. 농업이 처한 구조적인 위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급한 불만 끄고 보자’는 식의 일회적 대응에 그친 것이다. 농가 부채는 지금도 여전히 증가추세에 있다.
지금까지 농업과 농촌에 대한 역대 정권의 정책 기조를 살펴보았다. 한국 정부는 농업 개방정책을 끊임없이 강화하며, 이로 인해 파생되는 농민의 불만을 단기적으로 무마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정부가 제시하는 수많은 미래한국의 청사진 속에 농업, 농촌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책기조 속에서, 한국 농업의 생산구조는 1)가구당 경지 면적이 매우 적은 소규모 경작이 일반적이며, 2)토지소유관계에 있어서 여전히 지주-소작제가 온존하며, 3)농기계와 비료, 종자 등의 생산수단에 대한 해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기형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농업 생산관계의 기형성과 의존성에 대하여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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