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베 내각, 부시 행정부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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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현 (<민족21> 대표, 국민대 겸임교수) 2006년 9월 취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초기부터 일본인 피랍자 문제의 해결에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2007년 6자회담에서 2.13북핵합의가 나왔지만 그는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북한에 아무런 지원도 해줄 수 없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일본은 결국 이 같은 입장으로 일관해 중유 제공 등 북한에 줄 대가 분담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총리 취임 전 관방장관 시절 북한에 납치문제를 정권 교체 후 자신과 해결하자는 취지의 서신을 보냈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뒤로는 대화를 메시지를 보내면서 앞으로는 대북 강경입장을 주도한 셈이다. 당시 아베 총리의 ‘선 납치문제 해결’ 입장에 대해 일본 내 자민당 계열의 정치인들 중에서도 “일본의 최대 국익은 납치 해결보다는 핵문제 해결”이라며 일본이 북.미협상 분위기를 외면하면 6자회담 무대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일본이 2.13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계속 납치자 문제로 북.미대화의 발목을 잡자 일본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아베 총리의 서신을 공개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은 당시 북.일교섭과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지난 6월 1일 북한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국방위원회 대변인과의 인터뷰 형식을 빌어, 이명박 정부측의 요청으로 5월 중 이루어진 남북 당국자간 비밀접촉 내용을 전격 공개하였다. 그동안 북한이 남북 비밀접촉의 내용을 공개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것도 회담 참가자들의 실명까지 공개했다. 이후 북한의 강경 행보는 계속됐다. 지난 3일에는 인민군 총참모부가 남한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정은 부자의 초상화를 사격 표적지로 이용한 것을 거론하며 남측을 맹비난하며 군사적 보복을 위협했다. “실제적이고 전면적인 군사적 보복행동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놓았다. 지난해 연평도 포격사건을 겪은 우리로서는 대단히 우려할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남과 북이 2009년에 확인된 싱가포르 비밀접촉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을 가졌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사항이 아니다. 이미 외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됐다(『민족21』6월호 참조). 특히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인 지난해 12월 남북비밀접촉에서 남북은 상당히 깊숙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북측은 “일단 대화에 나와서 모든 문제를 다 탁상 위에 올려놓고 논의해 보자”며 “지금 북남관계가 전반 분야에 걸쳐 꼬이고 얽히여 풀기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관계개선의 의지를 가지고 진지하게 달라붙는다면 해결 못할 문제란 없다”라고 밝혔다. 올해 들어와서도 남과 북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 사과에 대한 진정성’과 ‘남북 관계개선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 내의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이 남북관계에 혼선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대북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이다. 온건파가 ‘출구전략’을 주장하며 남북접촉을 통해 ‘모종의 합의’를 이뤄내면, 강경파가 이를 뒤집는 경우가 몇 차례 발생했다는 후문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남측 인사들이 우리와 한 초기약속을 어기고 ‘천안’호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하여 ‘지혜롭게 넘어 야 할 산’이라며 우리의 ‘사과’를 받아내려고 요술을 부리기 시작하였다”고 지적한 대목이 이를 시사한다. 지난 4월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일행이 방북했을 때 구두메시지를 전달해 “남측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 6자회담 다른 당사국과도 언제든지 모든 주제를 놓고 사전조건 없이 협상할 용의가 있다”며 조건 없는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북의 제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로 나왔다는 점에서 마지막 대화 제안이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5월 9일 유럽 순방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내년 3월 26~27일 제2차 핵정상회의에 초대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이날 이명박 정부는 베이징 비밀접촉을 통해 6월 하순 판문점에서, 8월에는 평양에서, 그리고 2차 핵안보 정상회의가 예정된 내년 3월에는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 제안이 시간의 촉박성,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적 포석 등 여러 논란이 있지만 논외로 하면,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뤄진 비밀접촉의 최대쟁점이었던 천안함.연평도 사건 사과를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공개적으로 거론했다는 점이다. 북측은 당연히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5월 말 중국 방문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와의 남북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여기다 청와대가 5월 접촉 사실을 사실상 공개하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정은 부자 표적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대북 식량지원, 6자회담 재개 등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분위기 조성 없이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본 무모함과 즉흥성,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진정성이 없다고 일축하고 카터 방북의 성과를 폄훼하면서도 비밀접촉을 통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정치적 타결을 시도한 일방적이고 이중적인 태도 등 이명박 정부는 이 과정에서 총체적인 난맥상을 드러냈다. 혹시라도 북측이 비밀접촉의 녹취록이나 이전 접촉의 문서라도 공개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평가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안에 어떤 형식으로든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 표명을 받아내려고 총력을 기울이다 망신만 톡톡히 당한 꼴이다. 미국은 즉각 사태 안정에 나섰다. 미 국무부는 대북 식량지원 프로그램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도 ꡒ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에 관심이 없으며, 북한을 불안정하게 만드는데도 관심이 없다ꡓ고 밝혔다. 또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오는 10일 6자회담과 대북식량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다. 지난 4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는 이례적으로 “북한과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위해 여러 가지 접촉과 노력을 하고 있다”며 “1~2개월 내에 좋은 상황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미국은 4월부터 기존의 뉴욕채널과는 별도의 접촉을 통해 북한측과 식량지원 및 6자회담 재개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5월 말에는 미국 북한인권특사가 북한 정부의 초청으로 첫 방북해 북한 외무성 고위당국자들과 인권문제에 대해 직접 대화했고, 분배과정 모니터링(monitoring)를 포함해 미국측이 요구한 식량지원 조건에 북측과 합의했다. 지금 상황은 북미간의 힘겨루기가 끝나고,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미국과 ‘선 천안함 사건 사과’라는 빗장을 칠 수밖에 없는 남측 정부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는 국면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남북대화가 없어도 원칙은 지키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뒷심이 언제까지 통할지 궁금하다. 지금 조성된 국면은 북핵문제 해결보다 납치자 문제에만 매달리다 6자회담에서 고립된 일본 아베 총리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내년 핵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에 상당한 신경을 써 왔다는 게 중론이다. 집권 후반기의 최대 성공업적으로 홍보하고, 내년 4월 총선에도 이를 활용할 구상이었을 것이다. 핵정상회의 개최 시기를 3월로 앞당긴 이유는 자명하다. 그러나 남북대화의 파탄은 핵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해처럼 모든 국민이 ‘전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악화된다면 핵정상회의가 제대로 열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무능한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 그리고 민간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사업을 전면적으로 풀어줘야 한다.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보다 앞서 식량지원을 재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당국간 회담을 위해서는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기 위한 남북회담 제안이 효과적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대북 강경책을 쓰던 부시 행정부가 집권 2기 후반기에 적극적으로 북.미 대화에 나섰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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