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6-08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남북관계에서 비밀접촉은 1971년 시작했으니, 벌써 40여년이 흘렀다. 당시 적십자 회담의 형식을 빌려 남북한은 7.4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냉전 시기 상호 신뢰가 없던 시절에 비밀접촉은 공개대화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중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당장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하는 모든 국가들이 이 사태를 주시할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적대상태에 있는 국가들 말이다. 비밀협상이 언제든 공개될 수 있다면, 주저할 수밖에 없다. 세계 외교사에 유례가 없는 엽기적 사건이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어떤 파장이 있을까?
예비군 표적지 사건, 코란 불태운 것 마찬가지
북한이 공개한 이유를 먼저 추적해 보자. 첫 번째 이유는 남쪽이 먼저 공개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청와대가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한다는 이른바 베를린 제안을 북한에 전달했다고 먼저 밝혔다. 북한의 이번 공개는 우선 청와대 발표에 대한 대응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몇 번의 비밀접촉이 있었다. 대부분의 접촉은 언론에 공개되었다. 북한은 그동안 '실패한 접촉'에 반응하지 않았다. 추후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판을 깨려고 작정했을까?
두 번째 이유로는 대화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수 있다. 베이징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는 그 순간, 이명박 대통령은 '재스민 혁명'을 거론하면서 북한을 자극했다. 통일부 장관을 유임하면서,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북 강경정책을 지속하겠다는 확실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남북 대화의 역사에서도 혹은 세계 외교사에서도 특사를 파견해 놓고 상대를 자극한 경우는 별로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화를 해 봐야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왜 이 시점일까? 이전의 비밀접촉 또한 남측 대표가 약속한 협상안은 곧바로 부정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북한은 비밀접촉에 지속적으로 응했다. 그런데 이번에 왜 접촉의 종말을 선언했을까?
예비군 훈련장에서 자신의 지도자들을 표적지로 삼은 행위가 직접적 이유다. 북한은 수령제 국가다. 자신의 지도자와 관련된 적대 행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것은 마치 미국의 한 목사가 '코란'을 불태운 사건이 가져온 파장에 비유할 수 있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인내심을 갖고 남북대화에 응해야 한다는 중국의 고언도 이런 상황에 끼어들기 어렵다.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특사의 방북과 식량지원을 앞둔 북미관계의 전망도 고려사항이 아니다. 국면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넘어서서 즉자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국방위원회가 직접 나서 대남 강경정책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예비군 훈련장의 표적지는 해프닝일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어쩌면 마지막 대화의 기회를 날려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명박 정부가 비밀접촉에 대한 기본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비밀접촉이 성공하려면, 공개적으로 정책 전환의 신호를 동시에 보내야 한다. 1970년대 초반 닉슨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탁구대표단의 방중을 허락했듯이, 혹은 중국에 대한 무역규제를 일부 완화했듯이 말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56회 현충일 추념식에 앞서 열린 6ㆍ25전쟁 전사자 고(故) 이천우 이등중사(병장)의 유해 안장식에 참석해 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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