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국 대통령은 어떻게 뼛속까지 친미가 되었나 2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1. 9. 16. 09:00

본문

 

야생 돼지를 사로잡아 우리에 가둔 다음, 사료를 먹여 살을 찌우고, 흉년이 들자 잡아먹는다면 돼지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할까? 미국은 무상원조를 통해 한국 경제 기반을 무너뜨린 다음, 차관을 통해 하청기지로 만들어 규모를 키웠고, 경제 위기에 몰리자 드러내놓고 수탈하기 시작했다. 이제 먹고 남은 뼈다귀로 뼈다귀탕을 해 먹자는 게 한미FTA다.


한국 대통령은 어떻게 뼛속까지 친미가 되었나 2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지난 회에 이어 이번에는 경제, 문화 분야에서 어떻게 한국 사회가 미국에게 예속되었는지 살펴보겠다.


3. 예속 경제 만들기


보통 제국주의 국가들은 경제 수탈을 위해 약소국을 지배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프랑스를 비롯한 나토군이 리비아를 침공한 것도 석유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런데 38선 이남의 한반도에는 지하자원이 많지도 않았고 발달된 산업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애초에 미국은 한국을 경제적으로 수탈하기보다는 강력한 반공군사기지로 만드는 데에 주된 관심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 시절 미국의 원조가 주로 군수물자에 집중된 것도 이를 증명한다.


▲석유를 노린 더러운 전쟁을 풍자한 그림


물론 정치는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안정된다. 미국이 한국에 친미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미경제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은 적산불하라는 명분으로 한국에 남아있던 일제 재산을 몰수하여 친미 자산가들에게 나눠주었다. 또한 미국에 남아도는 잉여농산물과 소비품들을 대량 원조하였다. 그리하여 한국 경제는 자생력을 잃어버리고 미국 경제에 철저히 의존하게 되었으며 친미 자본가들이 육성되었다.


1960년대로 넘어오면서 미국은 한국 경제에 대한 정책을 변경한다. 한국은 낙후한 봉건 경제가 유지되는 반면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낙후한 국가들 속에서 반공의식이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쇼윈도 자본주의’라는 체제경쟁 정책을 펼쳤다. 미국은 무상원조를 줄이고 유상원조, 즉 차관을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박정희 정권과 경제개발계획을 공동 수립하는 식으로 차관을 자신들의 뜻대로 관리하였다. 이때부터 한국의 급격한 자본주의화가 이루어졌으나 이는 결코 정상적인 경제 발전이 아니었다.


미국은 자국 국민들의 반발을 사는 공해산업과 경쟁력이 떨어진 노동집약산업을 한국에 이전하였다. 한국은 농업말살정책으로 확보한 값싼 노동력으로 저가 소비품을 대량 생산해 다시 미국에 수출하였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후진국들에서 확보한 값싼 소비품으로 자국 물가를 관리하며 노동운동을 억제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한국은 미국의 하청기지로 전변되었다.


우리가 흔히 7, 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며 자랑스러워하는 경제 발전은 이처럼 철저히 미국의 통제 아래 미국 경제의 부속품이 되는 과정이었지 일반적인 선진국 경제를 따라가는 과정은 아니었다. 이때만 해도 한국에는 선진국을 따라잡을 산업이 없었으며 그저 싼값을 장점으로 내세워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았을 뿐이다.


▲한강의 기적. 진실은?


양적으로 확대된 한국 경제가 얼마나 허약한지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경제위기를 통해 드러났다. 한국 경제의 흥망은 미국 경제에 의해 좌지우지될 뿐이다. 그나마 한국 경제 확대의 공은 군사독재자나 재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3권을 빼앗긴 채 묵묵히 일해 온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있다고 하겠다.


한편 미국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차관에서 직접투자, 주식투자로 정책전환을 추진한다. 이는 당시 동구권 붕괴를 기회로 이곳에 정부 자금을 집중하기 위한 측면과 함께 미국 경제가 제조업에서 금융 중심으로 변화한 데 기인한다. 미국은 한국에 금융시장을 개방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에 한국 정부는 92년부터 외국인의 주식 시장 직접 투자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서 미국은 본격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수탈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 자본시장은 완전히 개방되었고 한국 주요 산업은 외국 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였다. 론스타 먹튀 사건은 대표적 사례로 이 과정에 한국 경제 관료들도 협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 외국인 투자자가 배당금으로 챙긴 액수만 4조9700억 원으로 전체 배당금 총액의 36.83%에 이른다. 한국 기업이 돈을 벌면 1/3 이상을 외국인이 가져가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예로 들면서 이제 한국 경제도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 선진국과 경쟁하는 시대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이 왜 지금의 상황을 용인했을까? 사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결코 자신들의 핵심 기술을 후발주자에게 전수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사양 산업,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 위험부담이 큰 산업을 넘겨줄 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반도체 강국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핵심 설계 기술이 없어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메모리 분야만 기형적으로 비대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분야는 자신들이 독점한 채 메모리 분야의 진출만 허용한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분야도 마찬가지로 선진국 기술을 따라가기에 급급할 뿐 추월할 수가 없다. 간혹 핵심 기술을 터득해 자국 산업에 위협적인 수준에 오르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짓밟는다. 특허분쟁, 덤핑판정, WTO 제소 등 명분은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한미FTA는 뼈다귀탕 수순일 뿐


한국 경제가 미국에 예속된 역사를 훑어보면 이렇다. 먼저 미국은 무상원조를 통해 한국 경제 기반을 무너뜨렸다. 그 다음 차관을 통해 미국의 하청기지로 만들어 규모를 키웠다. 그 후 미국이 경제 위기에 몰리자 드러내놓고 수탈하기 시작했다. 비유하자면 야생 돼지를 사로잡아 우리에 가둔 다음, 사료를 먹여 살을 찌우고, 흉년이 들자 잡아먹는 셈이다. 이제 먹고 남은 뼈다귀로 뼈다귀탕을 해 먹자는 게 한미FTA다.


4. 친미 문화 만들기


한국을 반공군사기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미 정부, 예속 경제와 더불어 사회 전반을 친미화하는 게 중요하다. 국민들이 반미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정부도 붕괴하고 미군도 쫓겨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일찍부터 한국인들 속에 친미 사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만의 독특한 사상문화의 특징은 첫째, 자기 민족을 멸시하는 허무주의가 만연하고 둘째, 미국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대주의가 판을 치며 셋째, 미국식, 일본식 문화가 전통 문화를 밀어내고 중심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사상문화를 자리 잡게 하려고 일찍부터 선교사를 파견해 친미 인사들을 육성했으며 주한미군을 통해 미국 문화를 유포하고 미국 유학을 대거 받아들여 자발적 친미 집단을 양성했다.


▲언더우드의 신혼여행 겸 지방순회 장면


미국은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선교단, 평화봉사단 등의 이름으로 들어와 기독교 교회, 병원, 학교, 고아원, 양로원 등을 지어 한국인들의 환심을 샀다. 한 통계에 따르면 1893년 이후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의 90% 가까이가 미국인이거나 미국 교회에서 파견한 이들이라고 한다. 알렌의 제중원, 아펜젤러의 배제학당, 스크랜톤의 이화학당, 언더우드의 연희전문학교 등 이들은 의료, 교육사업을 통해 한국에 근대 서구 문화를 전파하였고 이를 통해 친미 인사들을 육성할 수 있었다. 1910년 당시 인가된 학교의 35%가 미션스쿨이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수준 높은 교육 환경을 통해 엘리트 지식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되었다.


또한 미국은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등을 통해 한국인 유학생을 대거 받아들였다. 미국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 대학생들을 매년 수십~수백 명씩 선발하여 유학을 보냈으며 이들은 다시 귀국하여 한국 내 정치인, 교수, 고위 공직자, 성직자, 언론인 등 사회 지도층 집단으로 존재하면서 친미 정서를 퍼뜨렸다. 지금도 미국에는 10만 명이 넘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존재하며 재미 유학생 규모 1, 2위를 다투고 있다.


▲‘저질 양키 추방’을 주장하는 유인물


미국 문화를 전파하는 주된 거점 가운데 주한미군도 있다. 미군이 주둔하는 곳에는 미군방송을 개설하는데 한국에는 AFKN이 있다. AFKN은 자국 방송이 발달하기 전 한국에 각종 미국 문화를 전파하는 주요 통로가 되었다. 또 미군기지 주변에는 이른바 기지촌이 형성되는데 주한미군은 이곳에서 음란물, 마약 등 저질퇴폐문화를 퍼트렸다. 1998년 한해만 동두천 미군기지에서 음란비디오 600종, 음란잡지 수천부가 유포되었다고 하며 동두천 기지촌 여성 3000명 가운데 과반이 마약중독에 빠져있다고 한다. 기지촌이 갈수록 쇠퇴하면서 미군들은 서울 홍대, 신촌 등 시가지 중심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미군은 인스턴트 음식과 부대찌개, 구제옷 등 음식, 의복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땅은 한국땅이고 사람도 한국인이지만 한국 고유의 주체적 사상문화는 거의 사라졌으며 미국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가 되었다. 이런 현실을 개탄하며 가수 신해철씨는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미국은 한국이라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치밀하고 끈질기게 예속화를 추진하였다. 우리사회연구소는 7월 12일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한국 경제를 ‘예속적이고 천박한 자본주의’라고 규정하였는데 전적으로 타당한 분석이며 경제뿐 아니라 군사, 정치, 문화 등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예속적이고 천박한 속성은 고스란히 나타난다고 하겠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장면


미국이 반세기에 걸쳐 한국을 예속적이고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로 만들었지만 한국 국민들은 결코 이에 순응하지 않았다.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예속을 거부하는 국민들의 싸움은 80년 광주항쟁 이후 폭발적으로 이어져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1992년 윤금이 살해 미군 처벌 시위,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살해 미군 철거 시위,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시위로 발전하였다.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모순의 근원을 직시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될 때 한국 사회는 비로소 ‘정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0.9.16)



더 많은 <동북아 평화번영 프로젝트 문>의 글을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