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을 위해 좋든 싫든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적 혜택으로 북한을 개방시켜보겠다는 ‘비핵·개방·3000’을 대북정책으로 내걸었지만 북한은 ‘역 비핵·개방·3000’으로 이명박 정부를 견인하는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중 순방과 한반도 질서 변화
동북아의 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한데 이어 이번에는 러시아, 중국을 순방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순방이자 대내외로 중요한 시기에 이루어진 이번 러·중 방문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를 문답식으로 분석해본다.
1. 이번 러시아 방문의 의의는 무엇인가?
크게 네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북러 친선 강화다. 모든 정상외교가 그렇듯 가장 기본은 양국의 친선을 강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6자회담 재개 압력이다. 지난 5월과 이번에 중국을 방문하고, 러시아까지 방문하여 북한은 북중러 삼각동맹으로 6자회담 재개의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셋째는 경제협력이다. 특히 이번에 남북러 가스관 연결과 철도 연결이라는 중요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넷째는 군사교류다. 북한 인민군 공군사령관이 함께한 것이나 같은 시기 러시아 군 대표단이 방북한 것을 주목해 봐야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러 경로
2. 그동안 북러 관계가 불안정하였나?
일부 보수언론은 북러 관계에 문제가 있어 이를 봉합하기 위한 방문으로 분석하기도 하는데 적절한 분석이 아니다. 이는 러시아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부터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여왔다. 러시아는 90년대 사회주의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에 투항하였지만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의 하위 동맹에 편재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왜냐하면 비록 경제가 어렵기는 하더라도 냉전시절 미국과 맞설 정도로 군사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여전히 세계 질서의 한 축을 유지하고자 하는, 강대국으로서의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미국과 최전선에서 대결하고 있는 북한을 꽤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특히 동북아에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미국,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북한,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이번에도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5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동부 시베리아 울란우데까지 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사실을 통해 러시아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러시아가 철저히 북한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과거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유엔 제재에 찬성하였는데 이는 핵보유국으로서 핵독점체제가 깨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한국과의 경제적 관계로 인해 한반도 문제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지난 천안함 사건 당시 러시아가 북한이 천안함 침몰과 연결됐다는 100%의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유엔 안보리 논의를 거부한다고 밝히거나, 연평도 사건 당시 한국군의 추가 훈련을 막기 위해 유엔 안보리를 긴급 소집하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북한 편을 들면서 이명박 정부의 뒤통수를 쳤다.
▲연평도 문제로 유엔 안보리를 소집한 러시아
이처럼 기존의 북러 관계는 상당한 우호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번 러시아 방문은 우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6자회담 재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러 정상회담 직후 나탈리야 티마코바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북한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밝혔다”며 “그러면 6자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핵물질 생산 및 핵실험을 잠정 중단(모라토리엄)할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는 북한의 이런 입장을 지지하였다. 북한 노동신문은 27일 사설에서 “두 나라 영도자들의 회담에서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하루빨리 재개해 9.19공동성명을 동시행동 원칙에 기초해 이행함으로써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앞당기는 데 대해 의견일치를 본 것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려는 두 나라의 원칙적 입장의 발현”이라고 분석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현재 6자회담은 남북접촉, 북미대화가 진행되었음에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사전조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북미회담에서 미국은 우라늄농축시설 중단,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핵과 미사일 유예, 9.19공동성명 이행 약속 등을 사전조치로 제시하였다고 한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이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일단 북러 정상은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여 사전조치를 요구하는 미국을 압박했다. “9.19공동성명을 동시행동 원칙에 기초해 이행”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담는다. 북한이 먼저 행동에 나서는 것은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한편 “6자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핵물질 생산 및 핵실험을 잠정 중단(모라토리엄)할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표현은 6자회담을 재개하면 우라늄농축시설 가동과 핵실험을 잠정 중단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미국이 사전조치로 요구하는 것은 6자회담이 재개되면 그 과정에서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미 핵대결 전 기간에 걸쳐 진행된 줄다리기를 연상케 한다. 미국은 끊임없이 북한에 ‘선 행동’을 요구했고 북한은 이에 맞서 ‘동시 행동’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이를 푸는 과정에서 긴장과 이완, 충돌과 대화가 반복되었다. 그 결과는 항상 ‘동시 행동’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방러를 통해 러시아를 6자회담의 ‘동맹군’으로 편입시켰다. 지난 5월 방중에서 중국이 ‘동맹군’으로 들어왔으므로 이제 6자회담 ‘북중러 동맹군’이 다시 출현한 셈이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올해 동해에서 미일,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견제하는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인 ‘화평사명’을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동북아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신호다. 6자회담 북중러 동맹은 6자회담 재개를 압박하는 것은 물론, 더 멀리 내다보자면 재개된 6자회담 과정에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사전 준비라고 할 수 있다.
28일자 한겨레 보도에서도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러중 순방이 “중·러 양국과의 협력관계를 안팎에 과시하려는 의도”라며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나 관계 개선이 잘 안 될 경우에 대비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한미일 동맹’은 전반적으로 준비부족이라 할 수 있다. 일단 각국의 정치상황이 혼란 그 자체다. 미국은 신용등급 강등의 여파로 경제위기에 허덕이고 있으며 오바마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라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대지진과 해일 이후 여전히 정치·사회적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서울시 주민투표로 타격을 입었으며 낮은 지지율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여기에 3개국 사이의 관계도 썩 좋지 않다. 일단 독도와 동해 표기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다. 여기에 미국이 일본 손을 들어주면서 이명박 정부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이처럼 다가올 6자회담 재개와 한반도 질서 재편에서 한미일의 진용은 어수선한 반면 북중러 진용은 상당한 준비를 해 놓은 상태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쉽게 예측 가능하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지난 17일 ‘창비주간논평’에 올린 글에서 북한이 “협상을 단순화하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북미간 최고위급 당국자 회담, 즉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물론 미국이 쉽게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6자의 준비정도를 놓고 볼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에 직격탄이 될 북한 핵과 미사일의 ‘잠정 유예’를 얻기 위해서라도 평양행 비행기를 타야 할 것이다.
4. 경제협력 성과는 어느 정도인가?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귀국 후 방러 일정에 대해 “사회주의 조국의 부강 번영” 실현에 “불멸의 공헌”을 하였다고 분석했다. 지난 중국 방문에 이어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도 상당한 경제협력 성과가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방러에서 주목받은 것은 남북러 가스관 연결이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북한이 자국을 거쳐 남한까지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지지했다”며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검토하기 위한 3자 위원회 발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가스관 연결 사업은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북한의 가스관을 통해 남한으로 들여오는 사업으로, 러시아는 가스를 수출하고 북한은 가스관 부지 사용 대가를 받고 남한은 에너지 수입원을 얻을 수 있는, 모두에게 득이 되는 사업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남북러 3자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즉,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을 위해 좋든 싫든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북한은 가스관 부지 사용료라는 경제적 이득도 챙기겠지만 당장은 이명박 정부를 대화에 끌어내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적 혜택으로 북한을 개방시켜보겠다는 ‘비핵·개방·3000’을 대북정책으로 내걸었지만 북한은 ‘역 비핵·개방·3000’으로 이명박 정부를 견인하는 셈이다.
이 밖에도 송전선 연결을 통해 러시아가 한국으로 전기를 보내는 사업, 북러간 철도 연결을 통한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사업 등도 합의되었다.
또한 북러 정상회담 직후인 26일 평양에서는 북러 무역 경제 및 과학기술협조위원회 회의가 열려 의정서를 채택했다. 여기에서 채무 문제가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구소련에 80억 달러를 빌린 상태인데 상환이 늦어지면서 러시아가 30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여 총 110억 달러에 이르는 채무 관계가 있다. 세르게이 스토르착 러시아 재무차관은 북러 정상회담 직후 “양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진 채무 상환을 위한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채무 문제가 해결되면 러시아 자본이 북한에 유입돼 경제협력이 확대될 여지가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8월 28일자 경향신문)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 방문 기간 아무르주의 부레이 발전소, 울란우데의 항공기 제작 공장, 바이칼 호수 인근 관광휴양지 등을 둘러보았다. 이샤예프 러시아 대통령 전권대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에너지 분야의 기술·경제적 문제들을 환희 꿰뚫고 있었다”며 “아무르주의 부레이 발전소를 방문했을 때 발전기의 용량과 발전 원가 등을 비롯한 문제들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하였으며 바이칼호를 방문해서는 개발 현황과 공사 완공 시기, 투자비 회수 가능성, 정부 대 민간 자본 투자 비율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대규모 수력발전소로 건설 중인 희천발전소와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외국인 북한 관광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부레이 발전소 방명록에 서명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번 러시아 방문을 통한 경제협력에서 주목할 점은 러시아가 북한에 매달리는 모양새였다는 점이다. 8월 25일자 연합뉴스는 “두 정상의 (연회) 연설 내용을 살펴보면 러시아 측이 상대적으로 북한과의 교류, 협력에 몸이 단 모습을 보인 데 비해 북한은 북러간 전통적 우호관계 복원에 무게를 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라고 보도했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설에서 전통적 우호관계 증진이라는 원론적 내용을 이야기한데 반해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구체적인 사업을 열거하면서 북러간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내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낙후한 러시아 극동지역을 적극 개발해야하는 처지다.
5. 북한이 러시아에 군사지원을 요청했을까?
보수언론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최신 무기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별다른 근거는 없다. 오히려 이미 ‘군사강국’의 지위에 올랐다고 자평하는 북한이 러시아에 굳이 무기를 요구했을까 의심을 할 수 있다.
사실 북한은 무기 수입국이라기보다는 수출국이라고 봐야 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의 ‘2005 군비·군축연감’에 따르면 북한은 2000~2004년 재래식 무기를 5300만 달러어치 수입하여 세계 86위에 불과하였으며 그나마 2002년부터는 매년 500만 달러밖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갈수록 무기 수입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같은 시기 무기 수출액은 9600만 달러로 세계 29위에 올랐다. 특히 러시아에는 1992~2004년 사이에 AT-4 대전차 미사일 3250기와 SA-16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1250기를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푸틴 러시아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발전 수준이 대단하다고 평가했으며 양국의 미사일 기술 협력을 논의했다고 한다. 북한이 러시아에 미사일을 대량 수출한 배경을 짐작케 한다.
특히 2000년 푸틴의 방북과 2001, 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러 과정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선군정치’에 일정하게 영향을 받은 듯하다. 연이은 북러 정상회담 후인 2003년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전군사령관회의 석상에서 군사력 재정비 의지를 밝혔고 국방예산을 대폭 늘렸다. 그 결과 2008년 러시아는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토폴-엠(Topol-M)과 잠수함 발사 다중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블라바(Bulava) 발사에 성공하였다. 이들은 모두 미사일요격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미국의 미사일방어 전략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토폴-엠 미사일
푸틴에 이어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군사력 강화에 앞장섰다. 올해 5월 2차대전 승전 기념일을 맞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미래는 굳건한 군사력 없이는 상상할 수 없으며, 군사력 개발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연설했다. 군사를 앞세워 나라를 지키고 경제도 발전시킨다는 북한의 ‘선군정치’와 유사한 내용의 주장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북한이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군사지원을 요청했다는 보수언론의 분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겠다.
6.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중국을 경유했을까?
귀국 경로를 단축시키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아닌 듯하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라면 비행기를 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에 사흘이나 머물면서 여러 곳을 시찰하였기 때문에 시간 절약이란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또 일각에서는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중국에 통보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주체’를 강조하는 북한 성향 상 설득력이 없다.
일단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동북지방을 방문하면서 치치하얼에서 제2공작기계집단과 멍뉴유업을 돌아보고 다칭에서 도시계획 전시관과 주택 건설현장을 둘러보는 산업시찰을 하였다. 북한의 ‘경제강국’ 건설을 위한 행보로 볼 수 있다. 또한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포함한 중국 고위층을 접견하였는데 이는 6자회담과 관련한 논의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6자회담과 관련해 지난 5월 방중 이후 북미협상이 진행되는 등 변화된 국면이 있기에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러시아 방문에 이어 중국에서도 경제협력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활동이 진행된 것이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통해 북중 친선과 ‘북중러 삼각동맹’을 과시하고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강조함으로써 미국에게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기차로만 외국 방문을 하는지 여러 억측들이 난무한데 진실은 무엇일까?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5년 인도네시아 방문 때 비행기를 탄 경험이 있다. 따라서 비행기를 못 타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 최병묵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비행기를 타고 가면 내가 뭘 알 수 있겠소. 아무것도 없소. 정치가들하고만 대화를 나누겠지요. 나는 내 눈으로 러시아의 장·단점을 직접 보고 싶은 거요. 앞으로 모스크바 방문이 성사되면 비행기를 타고 만일 극동으로 간다면 다시 기차를 탈 것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기차이동을 통해 그 나라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화답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차에는 업무에 필요한 장치들이 모두 갖춰져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시간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한 빅토르 이샤예프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별열차 내에서도 계속 업무를 볼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전했다.
7. 그 밖에 이번 러중 순방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이번 러시아 방문은 한미연합사, 유엔참전국 7개국 병력까지 포함한 53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전쟁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중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북한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할 때마다 북침전쟁훈련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에 맞서 국가 전체에 긴장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병력이 한반도에 집중한 시기에 유유히 기차를 타고 러시아에 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김정은 인민군 대장과 북한 군대에 어느 정도 신뢰를 보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장면
또한 지난 5월 6000㎞를 이동하는 방중 일정을 소화하고서 3개월 만에 8000㎞에 달하는 대장정을 돌파한 것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는 지난 25일 기사를 통해 이번 러시아 방문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재를 과시하고 건강함을 보여준 무대였다고 하였다.
또 이번 순방이 북한이 미국과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립되지 않았음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3일자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 출연한 인줘(尹卓)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 겸 인민해방군 해군 소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목적이 식량과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원조에 맞춰져있다는 분석을 부인하고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전 세계에 북한이 고립되지 않았다고 선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8. 앞으로 북한과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은?
북한의 기본 구상은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고 그 힘으로 한반도 문제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이다. 북한은 스스로 ‘정치강국’, ‘군사강국’을 이루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선군정치’를 통해 육성한 군대의 힘으로 전쟁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제거하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만약 미국이나 이명박 정부가 전쟁을 걸어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국통일’을 이루겠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는 무력으로 한반도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의미지만 상대가 먼저 전쟁을 걸지 않는 한 자신들도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전쟁의 방법은 빠르지만 모두에게 피해가 크므로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다.
북한은 현재 ‘경제강국’만 건설하면 ‘강성대국’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시 말해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징표가 ‘경제강국’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년 들어 북한이 콕 집어 강조하는 ‘농업’과 ‘경공업’의 수준이 ‘경제강국’의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은 지금 경제개발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네 차례에 걸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러시아 방문도 경제협력에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다. 또한 서방 언론의 평양 지국을 유치하고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등 국제 사회에 ‘강성대국’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북한은 이처럼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면 그 힘으로 한반도 문제에 마침표를 찍을 구상을 하고 있다. 미국과의 체제대결에서 승리한다면 미국도 더 이상 북한을 적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면, 지난 2000년에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자 미국이 북한 붕괴의 미련을 버리고 ‘페리 프로세스’를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높은 단계에서 미국은 대북정책을 전환해야만 할 것이다.
▲클린턴은 2009년에야 방북 약속을 지켰다
2000년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하기로 약속하고서 무산되었다.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북한은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을 더욱 성장시킨 반면 미국은 군사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연발하고, 경제는 붕괴하고,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다. 다급한 미국은 첨단 무기 개발에 매달리지만 연일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조만간 오바마 대통령은 평양행 비행기표를 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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