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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명암, 원인은?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1. 8. 2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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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정치인들은 차별성 없는 노선, 빈약한 대중관, 신념의 부족, 독자세력화 실패로 정치권 내에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참신하고 독자적인 진보정치세력의 발전이 한국 정치에 진보의 새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명암, 원인은?


동북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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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0년대를 살아간 수많은 젊은이들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독재와 맞서 싸웠다. 당시 젊은이들은 누구나 ‘운동권’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3~40대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사회 곳곳에서 생활하며 민주주의를, 사회 진보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또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정치인이 되었다.


▲80년대에는 누구나 운동권이었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다양한 경력


한국의 정치현실은 끊임없이 변화하였고 세대도 교체되었다. 정치권은 새로운 정치를 실현할 새로운 피가 필요하였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수혈’에 가장 적합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젊고, 패기 있고, 도덕성이 검증되었고, 또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민주당 같은 개혁정당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부 운동권들은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로 누그러뜨린 채 개혁정당에 들어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또 국회의원도 되었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이들은 실제로 많은 성과를 내었다. 보수 일색이던 정치판에 파열음을 내면서 민주주의와 인권, 복지 등의 이슈를 만들어냈다. 과거 민주화운동이 인정받게 된 것도 이들의 공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행적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력으로 따지면 이들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국민들의 기대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정치권에 뛰어든 운동권 출신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학생운동 출신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전대협 출신을 꼽을 수 있다. 전대협 1~4기 의장인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송갑석은 물론 우상호, 정청래, 이기우, 김민석, 유시민, 안희정 등이 모두 전대협 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다. 전대협 이전 세대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도 많다. 강기정, 신계륜,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신기남, 장영달 등이 모두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이다.


▲19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시절 이인영 최고위원


둘째는 노동운동 출신이다. 노동운동 출신 가운데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정리하고 노동운동을 한 사람들도 많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1985년 인천 대우차 건설현장 용접공을 시작으로 1991년 전국택시노련 인천시지부 사무국장을 거쳤으며, 방용석 전 국회의원은 1974년 한국모방(원풍모방 전신) 노조 지부장, 75년 원풍모방 노조 지부장,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노동위원장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 외에도 김영주, 이목희 전 의원 등도 노동운동 출신 정치인이다.


셋째로 통일운동, 시민운동 출신도 있다.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이창복 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또 이철우, 이재정, 이오경숙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특히 시민운동의 경우 중앙정치보다 지방정치에 참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운동 출신, 특히 다수의 등장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른바 486세대를 중심으로 이들이 보여준 한계와 그 원인을 분석해보자.


보수, 개혁과 차별성이 없는 노선


첫 번째 꼽을 수 있는 문제는 정책, 노선 상의 문제다. 이들은 크게 대미·대북관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해 10월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북한이 불안정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앞으로 5~10년 사이가 정말 중요한 시기고, 그런 면에서 우리가 집권하고 있으면 다를 것”이라고 하면서 5~10년 내에 북한에 ‘급격한 상황’이 닥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지난 해 11월 폴리뉴스 인터뷰에서는 “북의 마음을 열어서 개혁과 개방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 시장과 민주화라는 두 개의 공동의 가치를 향해서 우리가 서로 협력하고 교류해서 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북한의 개혁, 개방, 자본주의화를 추구했다.


이런 인식은 보수세력의 전반적 대북관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서로의 체제를 존중한 6.15남북공동선언에도 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최근 한미FTA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힌 안희정 도지사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운동을 했다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참여정부 당시의 협상과 현 정부의 재협상을 볼 때 협상 내용에 별로 큰 차이가 없다”며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에서 하는 한미 FTA 협상은 반대한다는 것인데 내용을 보면 큰 차이를 모르겠다. 한미 FTA에 찬성하면 보수고 반대하면 진보인가. 그렇지 않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정책 가운데 하나인 한미 FTA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사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정부·여당에서 활약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광범위하게 펼쳐진 것만 봐도 이들이 신자유주의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지 대체로 짐작할 수 있다.


물론 486 정치인들 모두 대북관이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수구세력의 정치공세는 물론 당시 정부여당 내에서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입장을 고수한 인물들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정책, 노선 상 불철저한 진보성으로 인해 이들이 민중들로부터 확고한 신임을 얻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대중과 섞이지 못하는 현실


두 번째 꼽을 수 있는 문제는 대중들에 대한 입장 문제다. 진보운동은 대중의 힘으로 전진한다. 그래서 이들도 학생운동, 노동운동 할 때 끊임없이 대중들을 만나 투쟁에 합류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에 인입된 이후 보여주는 모습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대중접촉과 관련해 눈에 띄는 건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민생대장정이다. 그런데 486 정치인 가운데 대중을 만나기 위해 이만큼의 노력이라도 하는 이가 과연 있는지 의문이다.


▲임종석 전 의원


대중을 만날 시간에 다른 일에 빠진 경우도 있다. 2006년 3월 6일자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임종석 전 의원의 골프 실력이 80대 초반으로 486 정치인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2005년 8월 주간조선 기사에는 임종석 전 의원이 늦게 골프에 입문하고도 싱글에 빨리 올라서 골프장에 가면 선배들에게 왕따를 당할 정도라고 한다. 싱글 골퍼는 전체 골퍼 가운데 상위 1~5% 정도라고 하니 그의 실력을 알만하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작년 5월 지방선거 과정에서 임종석 전 의원을 ‘골프광’이라 비난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골프에 할애했으면 골프광이란 말까지 듣게 될까? 싱글 정도 실력이면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다. 그 시간에 대중을 만나면 얼마나 많이 만날 수 있었을까? 보도에 따르면 임종석 전 의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골프를 배웠다고 한다. 골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 결국 대중이 486 정치인을 멀리한 게 아니라 이들이 대중을 멀리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인영 최고위원은 2008년 총선 낙선 후 스페인 북부를 횡단해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곱의 무덤이 있는 기독교의 성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여㎞를 40일 동안 걸어가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떠났다. 낙선으로 인한 감정을 추스르고 내면을 성찰하며 기독교 신앙심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물론 여기서 종교에 순기능도 있음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보적 정치인이라면 신앙에 앞서 대중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2008년 총선에서 486 정치인들이 대거 낙선한 것은 대중들의 엄격한 심판이었다. 따라서 낙선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대중들을 찾아가 자신을 속죄하고 대중들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어야 했다. 진보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 길을 택해야 했다. 실제로 일부 486 정치인들은 낙선 후 대중들과 더욱 밀착하기 위해 지역구에 내려가 활동하였다. 그런데 이 최고위원은 종교에 심취함으로써 패배의 아픔을 달래었다. 이는 그만큼 대중을 믿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2004년 9월 30일자 내일신문 보도에서 운동권 출신 모 의원실 보좌관의 “국민의 시각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지적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단결력 부족으로 독자세력화 실패


세 번째 꼽을 수 있는 문제는 신념과 의지가 약하고 단결도 못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입장이 자주 바뀐다는 비판을 받는 유시민 대표


신념과 의지 문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애초에 파병 반대를 주장하던 임종석, 유시민, 안영근 의원들은 당청 지도부의 압박 속에 현실론을 들먹이며 파병 찬성으로 입장을 바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대통령이 찬성했으니 당론으로 찬성해야 한다는 명분까지 등장했다. 운동권 출신은 아니지만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한 김원웅 전 의원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김 의원은 “조선왕조 말기에 일본이 한일 합방을 강요할 때 조정에서 일부 대관들이 합방 불가론을 주장했었죠. 그 때도 현실론을 들어 통과시킨 적이 있거든요”라며 현실론을 주장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이처럼 신념과 의지가 약하여 현실과 쉽게 타협하고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는 모습 때문에 486 정치인들의 영향력은 정치권 내에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단결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 내 486 정치인의 수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그동안 486 정치인들은 민주당 내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대신 김근태계니 정세균계니 친노계니 하며 여러 계파를 옮겨 다니며 줄서기에 집중했다. 이러니 이들의 주장이 민주당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었다.


▲단일화 합의를 깬 최재성 후보


그나마 작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486 정치인들이 단일화를 합의하면서 독자세력화에 청신호가 들어오는 듯했다. 그런데 단일화를 합의했던 최재성 후보가 갑자기 “목적과 방법에 대한 합의가 전제돼야 단일화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라며 486 정치인 모임인 삼수회의 단일화 결정을 거부하고 말았다.


이처럼 486 정치인들은 어떡하든 민주당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 당을 진보화해야 함에도 단결하지 못하고 스스로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봤지만 486 정치인들은 진보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개혁세력 내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자체의 한계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하루빨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정치 전반을 진보화하는 데 이바지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기대만 할 수는 없다.


개혁세력 내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한계를 보면 진보정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지금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진보대통합정당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대중들의 신망을 받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이들 세력이 더욱 강화되고 확대된다면 지금은 지지부진한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사회 진보에 일정하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치대통합이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201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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