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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내란음모 조작은 남북관계 파탄을 부른다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3. 9.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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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역당 사건>은 남북기본합의서를 공격하는 명분이 되었다. 노태우 정권은 시종일관 <중부지역당 사건>이 남북기본합의서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남북기본합의서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북한에게 전가한 것이다.


국정원의 내란음모 조작은 남북관계 파탄을 부른다


동북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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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국정원)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검찰총장 사퇴와 3자 회동 등 여러 이슈에 묻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애초에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시작된 사건이라 국정원과 언론들이 소설을 쓰는 데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공안당국은 추석을 앞두고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화성갑 보궐선거 예비후보)을 포함한 지역위원장, 당직자 5명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으로 분위기를 이어나가려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결국 공안정국으로, 나아가 유신독재를 재건하는 데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은 이견이 별로 없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가까스로 합의하고 이제 겨우 재가동에 들어간 상황이기에 아직은 남북관계에 대한 불안감을 가실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이제 막 긍정적 변화의 단초를 마련한 남북관계에 암초가 될 수도 있다.


남북관계 역사를 돌아보면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중부지역당 사건>은 1992년 10월 6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 국정원의 전신)가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며 95명을 간첩 혐의로 적발하고 이 가운데 62명을 구속한 사건이다. 또 관련자 300여 명을 추적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많은 야당 정치인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는데 가장 큰 피해자는 김대중 당시 대선 후보였다. 언론은 김대중 평민당 후보의 비서가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고 보도하면서 색깔론을 펼쳤다.



▲<중부지역당 사건>에 대한 경향신문 보도


<중부지역당 사건>은 대체로 1992년 대선 승리를 위해 안기부가 왜곡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전형적인 선거용 북풍공작인 셈이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조사 결과 각종 고문으로 사건이 확대, 과장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이 대선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 당시 발전하던 남북관계에도 찬물을 끼얹었고 나아가 전쟁 위기로까지 확대되었다. 물론 <중부지역당 사건>이 이런 결과들을 낳은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사이의 갈등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이런 정세 변화에 일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1990년부터 남북관계는 전례 없는 고조기를 맞았다. 1990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김일성 주석이 남북 최고위 당국·정당 수뇌협상회의를 제의했고, 노태우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자고 화답하는 등 년초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미국 역시 그 해 한미연합 팀스피리트훈련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하며 분위기를 거들었다. 9월이 되면서 1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당시 북한 연형묵 총리가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또 민족대교류 사업과 남북통일축구대회,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열리는 등 민간 교류도 활성화됐다.


1991년에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졌다. 물론 유엔 동시가입 문제와 비핵화 문제로 남북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는 했지만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우승을 하는 등 남북화해와 통일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졌다. 미국도 전술핵무기 철수를 선언하였다. 마침내 12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다.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코리아>


1992년 역시 남북기본합의서의 방향대로 남북관계가 빠르게 발전하였다. 남북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과 각종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들을 발표하였으며,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각종 기구와 분과위원회들을 설치하고 운영하였다. 또 김달현 북한 부총리가 방한해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고 주요 산업시설들을 시찰하면서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구상을 논의했다. 미국도 한미합동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를 선언하고 첫 북미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1992년 10월 6일 문제의 <중부지역당 사건>이 터진 것이다. 바로 다음날 최영철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 성명을 통해 북한이 간첩남파를 한 것이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유린한 것이라며 사과를 촉구했다. 이동복 정치분과위원장도 10월 9일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조치를 요구하며 남북정치분과위원회를 긴급 소집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은 이 사건이 자신들과 관계없으며 안기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며 정치분과위 소집을 거부했다.


사태는 점점 확대되었다. 노태우 정부는 예정되어 있던 최각규 경제부총리 방북을 연기시켰으며, 현승종 국무총리도 나서서 <중부지역당 사건>이 남북기본합의서 제14, 15, 17조 위반이라고 경고하였다. 정부의 거듭된 북한 규탄과 함께 한미연합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까지 결정되면서 북한은 남북 대화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가 이어지면서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도 흐지부지되고 남북 간 이어지던 모든 회의가 중단되었다. 남북 화해와 통일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이렇게 사라진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북미 사이에 대화가 시작되자 노태우 정권의 남북 대화를 용인했던 미국이, 정작 결과물로 나온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이 너무 <급진적>이라서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방안들이 들어있어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북미 사이에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북 대화와 교류도 진전시킨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1985년 김일성 주석과 건배를 하고 있는 박철언 안기부장 특보. 박 특보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입안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해볼 부분은 <중부지역당 사건>이 남북기본합의서를 공격하는 명분이 되었다는 점이다. 노태우 정권은 시종일관 <중부지역당 사건>이 남북기본합의서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남북기본합의서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북한에게 전가한 것이다.


이번에 터진 국정원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적대정책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길들이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대북정책을 펴면서 남북관계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위태로운 지경이다. 여기에 이번 사건이 전반적인 반북정서를 확산시키는 수단이 되면서 대북강경론의 명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 초반부터 대북강경정책, 대북적대정책을 고수한 국정원이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면서 사건을 준비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유신독재를 재건하면서 남북관계의 발전도 가로막는 국정원이야말로 악의 근원, 악의 축이라 하겠다. (201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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