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던 일극화 체제에서 벗어나 다극화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이번 비동맹운동 정상회의는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자주와 정의, 평화와 번영을 원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미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마음껏 학살하던 이스라엘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동맹회의와 중동 정세 변화
동북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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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동 지역에 2개의 중요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하나는 8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Organization of Islamic cooperation:OIC)이며, 다른 하나는 8월 30일 이란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NAM) 정상회의다. 두 회의는 최근 중동 정세를 잘 보여주었다.
이란의 승리, 반미 자주의 승리
우선 비동맹운동 정상회의는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 맞선 이란과 반미 자주 국가들의 승리로 끝났다. 정상회의의 결과물인 테헤란 선언에는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 권리 보장 ▲일부 회원국을 겨냥한 강대국의 일방적 제재 비난 ▲전 세계 핵무기 제거 ▲인종 차별 금지 ▲인권 존중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지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나같이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고 이란과 북한을 비롯한 반미 자주 국가들에게 유리한 내용이다.
▲비동맹운동 정상회의 장면
미국은 자신과 대립하고 있는 이란에서 국제회의가 성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 참석을 반대하는 등 방해공작을 펼쳤다. 이에 영향을 받은 반기문 사무총장과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각각 이란과 시리아 정부를 비난하며 회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비동맹운동 정상회의는 유엔 민주화를 제기하며 미국의 입김에 좌우되는 유엔을 비판하였고, 이란 외무부는 이집트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미숙≫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처럼 미국의 제재 속에서 각종 방해를 이겨내고 회의를 성사한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폐막 연설에서 ≪이란의 승리≫를 선언했다. 올해부터 3년 동안 비동맹운동 의장국을 맡은 이란은 회원국 가운데 29명의 정상과 80명의 외무부 장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이 참석한 초대형 국제회의를 원활하게 진행하여 자신의 국력을 과시했다.
특히 북한 대표로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란 대통령은 물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와 만나 우호 관계를 강화했다. 양국은 에너지·환경·농업·식량 분야의 공동연구와 학생교환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포괄적 협력협정을 체결했으며, 미국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협력하기로 약속하였다. 특히 이란은 ≪북한과 같이 견결한 반제반미입장으로 싸울 때 제국주의와 지배주의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모든 비동맹운동 성원국들이 명심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한반도 통일문제는 반드시 민족 자체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란 의장대 사열을 받는 김영남 상임위원장
미국의 퇴조, 미묘한 변화
한편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 비해 국내에 별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슬람협력기구 회의에서도 의미심장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주최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 대통령을 초청하고 국왕 근처 특등석에 좌석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중동 질서에 대한 기초 이해가 있어야 알 수 있다.
중동 각국은 크게 미국과 적대적인 반미 국가와 미국에 협조하는 친미 국가로 나눌 수 있다. 또 이슬람 종파를 기준으로 시아파 국가와 수니파 국가 등으로도 나눌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성향을 가진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서로 지역 맹주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견제와 경쟁을 하면서 협력하는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다.
중동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슬람 국가로 크게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를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이란은 시아파 국가이자 반미 성향의 나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국가이자 친미 성향이 강한 나라로 앙숙과 같은 관계였다.
그런데 이번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에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이는 그만큼 중동에서 이란의 지위가 상승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반대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양국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위에서 꼽은 중동의 4개국은 여전히 경쟁과 대립의 관계에 있다. 하지만 미묘한 변화가 시작된 것도 사실이다.
▲압둘 아지즈 국왕 옆에 앉은 이란 대통령
이런 중동의 변화 속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쟁 위기가 급격히 고조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
지난 9월 2일 에프라임 하레비 전 모사드(Mossad:이스라엘 대외 정보부) 국장은 이스라엘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란인이라면 향후 12주 동안 이스라엘의 공격 가능성에 두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란 문제와 관련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톰 도닐런 백악관 안보 보좌관, 리언 페네타 국방장관 등 미 고위 관리들이 차례로 이스라엘을 방문한 이후에 나온 것이다.
또 지난 6일에는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방관이 이란 공격을 암시해 논란이 되었다. 바라크 장관은 이스라엘을 방문한 제임스 윈필드 미 합참차장을 만나 회의를 한 후 소속 정당 행사에 참여해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 의견차가 있음을 밝히면서 ≪이스라엘은 독자적으로 공격할 권한이 있고, 이것은 미국도 이해한다≫고 하였다. 즉, 미국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이란을 공격할 수 있음을 공개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다. 미래에 어떤 시나리오가 벌어지더라도 동맹은 굳건하리라 확신한다≫며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미국이 도와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바라크 장관
그런데 정작 미국은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지난 2일 한 이스라엘 언론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란에 비밀리에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미국이 중동 지역의 미군 기지에 대한 이란의 군사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이를 부인했다.
도대체 이란 전쟁설의 본질은 무엇이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묘한 갈등은 왜 발생한 것일까?
난감한 미국의 입장
사실 이란과 미국의 핵 갈등은 북미 핵대결과 매우 유사한 수순을 밟고 있다. 이란-미국 사이에 조성된 갈등의 본질은 중동 지역에서 반미 종주국을 자처하는 이란을 붕괴시키겠다는 미국에 맞선 이란의 자주권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이란의 반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정권을 세우려는 이유는 뻔하다. 중동에 퍼져있는 반미 세력을 제거하고, 석유 자원을 차지하며, 석유 해상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세계 석유 해상 수송의 40%를 차지)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한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전쟁 위협을 통해 유가 상승을 유도, 경제적 이득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 골치 아픈 건 이란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며, 또 같은 이슬람 국가들이 이란에 동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과 유럽 열강들의 전쟁 위협에 맞서 연일 자신의 군사력을 시위하고 있다. 9월 들어서도 이런 움직임은 계속됐다. 지난 3일 파르자드 에스마일리 공군사령관은 이란이 독자 개발한 요격 미사일 바바르(Bavar:믿음)-373 시스템이 30% 완료되었으며 내년까지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9일에도 이란 국방부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를 평가절하하면서 조만간 사거리 2천km인 메시카트(등불) 순항미사일을 공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란군 미사일 훈련
굳이 이런 시위가 아니라도 이란의 정규군과 혁명수비대, 민병대의 군사력은 정평이 나 있다. 미국은 자칫 이란과 전쟁으로 발목을 잡힌 상태에서 동북아 지역의 협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노선은 제2의 리비아 방식이다. 이란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통해 이란 군대와 국민들 사이에 위기감을 조성하고 친미 세력,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혼란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반정부 시위를 통해 정부를 전복하거나, 안 되면 쿠데타나 내란을 일으키는 식으로 반미 정권을 붕괴시키는 게 바로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손 안 대고 코 풀자는 제2의 리비아 방식은 지금 시리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며, 북한에도 적용하려다 이른바 <동까모> 사건으로 들통 났다.
한편 미국은 다른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 이란에 동조하지 못하도록 미리 손을 쓰고 있다. 멀리 보면 아프간, 이라크 전쟁도 이 일환이라고 할 수 있으며 리비아 전복, 시리아 내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 친미 이슬람 국가들이 시리아 반군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나라들이 진심으로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위한다면 가장 먼저 사우디아라비아 왕조부터 붕괴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이란이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면서 서방 세력의 개입을 저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급한 이스라엘의 입장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미국은 왜 엇박자를 내는 것일까?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중동 지역에서 이란의 지위가 상승하고, 반면 미국의 영향력이 쇠락하면 이스라엘은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고립무원에 빠지게 된다.
지금 중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고, 조만간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슈가 옮겨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집트 무르시 정권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번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서 무르시 대통령이 시리아를 비난했다고 해서 무르시 정권을 단순한 친미 정권으로 볼 수는 없다. 이집트는 이번 이슬람협력기구 회의에 즈음해 시리아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유럽을 배제하고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터키 등 4개국 공조를 제안했는데 이는 무슬림 형제단이 이슬람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
이집트 정부를 장악한 무슬림 형제단은 팔레스타인 무장독립운동 정당인 하마스의 뿌리이기도 하다. 하마스는 종교적으로 수니파지만 이스라엘과 무장항쟁을 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시아파의 맹주 이란과 가깝다. 이런 이유로 무슬림 형제단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이 맺은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당장 깨지는 않겠지만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이집트에 무슬림 형제단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스라엘의 처지는 더욱 궁색해졌다. 중동의 이슈가 시리아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넘어오면 이스라엘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고 차지한 정착지를 모두 반환해야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이 상황이 오기 전에 빨리 이란을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조급성의 차이가 결국 이스라엘과 미국의 엇박자를 만들고 있다.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던 일극화 체제에서 벗어나 다극화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이번 비동맹운동 정상회의는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자주와 정의, 평화와 번영을 원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미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마음껏 학살하던 이스라엘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미래가 없다. 선택은 그들 몫이다. (2012.9.11.)
* 팟캐스트 <주간 정세동향>을 들으시려면 아이튠즈에서 검색하시거나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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