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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보유는 국제권력의 보증수표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11. 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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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오늘날, 탈핵은 전 세계의 화두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핵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에 이어 2009년 5월 25일에 두 번째 핵시험을 단행하며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다. 이란 역시 2006년 4월 11일, 자국을 핵클럽 국가로 선언하는 등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AFP 등 외신들은 2011년 5월 24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기밀문서를 인용, 시리아에도 핵시설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핵개발에 나서는 것은 핵의 정치군사적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절대적 파괴력을 갖는 핵보복능력으로 인해 핵보유국에 대한 군사공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핵은 미국과 대치한 나라들이 미국의 행동양보를 얻어낸 사실상의 출구전략이었다. 

핵무기의 정치학 

1945년 8월 6일, 미국은 핵실험에 성공한 지 2주 만에 핵폭탄을 히로시마에 전격 투하해 순식간에 약 20만명에 달하는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온 세계가 핵폭탄의 위력을 절감하며 바야흐로 핵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미국의 핵무기를 목격한 세계는 경쟁적으로 핵개발에 뛰어들었다. 1949년에는 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하였다. 1952년에는 영국이 핵무기를 보유하였다. 1960년에는 프랑스가, 1964년에는 중국이 핵보유를 선언했으며 1966년에는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예외적으로 이스라엘이 거론되나 이스라엘은 미국 유태계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는 열외국가이다. 

핵보유 전후 지위가 확연히 바뀐 중국

이 가운데서 주목할 부분은 중국의 핵보유과정이다. 미-소가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가운데 1964년, 중국이 핵개발에 성공하였다. 미국과 냉전상태에 있는 사회주의 진영인 중국이 핵을 보유한 것은 미국에게 커다란 문제였다. 당시 중국과 노선논쟁을 벌이던 소련도 중국의 핵보유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강한 외교, 군사적 압박을 펼쳤다. 1963년,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소련은 중국 핵실험 반대를 목적으로 3자간 조약을 체결했다. 1964년 핵실험 직전 미국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중국이 핵개발을 계속할 경우 신장 위구르 지역 핵개발 장소는 물론이고 수도인 베이징에 대한 공중폭격도 불사하겠다는 전쟁위협과 함께 ‘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1964년 10월,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원폭실험을 단행해 성공한 데 이어 1967년에는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시켰다. 

핵이 없던 중국은 미국에게 제재와 압박의 대상이었지만, 핵을 가진 중국은 미국이 무시할 수 없는 진지한 협상대상으로 부상하였다. 미국은 1971년, 당시 키신저 국무장관이 극비리에 베이징을 방문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1972년부터 이어진 이른바 “핑퐁외교”는 1973년 닉슨의 중국방문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당시 닉슨은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중국과 관계정상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핵보유는 중국의 국가 지위도 상승시켰다. 당시 중국대륙은 마오쩌뚱 주석이 통치하고 있었지만,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장제스의 타이완(대만)이 유엔의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핵을 보유하자 미국은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오히려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끊었다. 결국 중국은 핵보유 이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부상하였다. 1979년 1월 1일, 중-미간 국교를 수립하면서 미국은 대만은 중국의 영토라고 합의했으며 대만주둔 미군의 철군문제, 미-대만 상호방위조약 폐기 등의 주장에 모두 합의하면서 사실상 대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러하였기에 마오쩌뚱 주석은 “핵개발은 미국ㆍ서방의 문을 여는데 있어 최고의 방법이다”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사다리를 걷어찬 NPT 체제

핵보유의 정치적 의미가 이처럼 지대하였으므로 세계 각국들은 너나없이 핵보유를 추진하였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즉시 세계군사강국임을 인정받기에 미국은 이제 정치군사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세계 여러 나라들의 핵보유를 막아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미국은 핵이 없는 국가들의 핵보유를 금지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을 추진하였다.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가였던 미국과 소련이 1965년부터 협상을 시작하여, 1968년 6월12일 유엔총회에서 그 초안에 대한 지지, 권고 결의를 채택하였다. 1970년 3월 5일에 NPT 조약은 정식 발효되었다. 다만 중국과 프랑스는 NPT 조약이 미, 소 위주로 운영된다는 점을 들어 가입하지 않고 있다가 1992년이 되어서야 가입을 하였다. 

NPT 체제는 말 그대로 핵확산을 방지하는 체제이다. NPT에서는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지만 다른 국가들은 핵을 보유할 수 없다. 다만, 핵보유국은 비핵보유국을 핵으로 공격하지 않겠다고 보장해주었므로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핵공격을 방지할 목적으로 NPT에 가입하였다. 그 결과 NPT 조약은 발효 당시 43개국이 가입했지만 2010년에는 188개국으로 늘어났다. 

붕괴되는 NPT

NPT 체제가 구축되었지만, 핵보유가 갖는 정치군사적 장점은 지구상 여러 나라들을 핵보유의 길로 이끌었다. 국력강화를 노린 세계 여러 나라들이 핵을 개발하면서 NPT 체제는 서서히 균열이 갈 수밖에 없었다. 1974년,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며 핵보유국이 되었다. 인도와 분쟁 중이던 파키스탄은 1998년에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이었으므로 미국 입장에서 이를 NPT의 붕괴조짐이라 우려하기에는 일렀다. 

미국의 NPT 체제가 본격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 미국이 앞장서서 핵보유국으로서의 의무사항을 위반하면서부터다. NPT 체제에 의하면 비핵보유국은 NPT 체제 내에 있는 이상 핵보유국으로부터 핵공격을 받지 않게 되어있지만, 미국은 비핵보유국으로 NPT에 가입한 북한을 향해 핵선제공격 방침을 명백히 하면서 NPT 조항을 현저하게 위반한 것이다.

2001년 12월 31일에 미 부시행정부는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의회에 제출하며 북한을 비롯하여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 5 개의 이른바 “불량국가”를 핵 선제공격 대상 국가로 지목하였다. 특히 북한과 이라크를 다른 3 개국과 달리 ‘고질적인 군사적 우려 (chronical military concerns)’ 대상으로 경계하였다. 

북한은 미국이 NPT조약에 보장된 비핵보유국에 대한 안전보장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므로, 북한입장에서는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NPT를 떠나 독자적인 핵개발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논리로 대응하였다. 북한은 2003년 1월 10일, NPT 조약을 탈퇴하였으며 2006년 핵시험을 통해 핵능력을 입증하였다.

정상적 국제지위 위한 핵개발 행렬

미국과 대치한 세계 각국들이 핵보유를 추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현 국제정세가 국가안보를 스스로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패권정책에 대해 체제를 지키고 국제사회에서 안정적인 대외관계를 구축하려면 국가안보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

핵을 갖지 못한 반미국가들은 상당한 시련에 놓였다. 2011년 10월 20일, 미국과 서방진영의 공습에 의해 붕괴된 리비아의 카다피가 사망하였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반대하는 무장반군 활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앞장선 이란 석유금수조치는 이란경제를 힘들게 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 본다면, 핵보유는 미국이 세계패권을 움켜쥐고 있는 국제정세에서 국가체제를 지키는 더할 나위없는 방안이었을 것이다. 이는 마치도 1970년대 중국사례와 유사한 경우인 것이다.

중국은 핵보유를 앞세워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이끌어냈으며 9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북한의 경제노선이 중국식의 개혁개방 노선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대외적 평화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은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핵을 보유한 목적은 북-미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으로 정상국가라는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경제발전의 선결조건이며 통일과 대외협력을 추구할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 출처 : 우리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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