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비해 한국과 경제 관계가 훨씬 더 두터운 동남아 국가들조차 한국의 입장에 냉담했던 것을 보면 보수언론들의 호들갑과 달리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주장이 그리 설득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지금 국내 언론 보도를 보면 마치 전 세계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부나 언론이 과대 포장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당사국들의 자제를 촉구한 아세안 정상회의
동북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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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4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ASEAN)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집중 논의될 것으로 기대했던 언론 보도와 달리 아세안 정상들은 관련 모든 당사국이 자제심을 발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시스는 보도를 통해 ≪아세안 정상들은 그러나 오는 12∼16일 발사 예정인 북한의 장거리 로켓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세안은 어떤 기구인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1967년에 8월 8일 태국 방콕에서 설립된 동남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공동체다. 매년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아세안은 오는 2015년까지 유럽연합(EU)과 맞먹는 정치·경제 통합체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2008년 12월 15일에는 헌법 구실을 하게 될 역사적인 <아세안 헌장>을 발효시켰다.
현재 아세안 가입국은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타이, 필리핀 등 10개국이며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가 준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아세안에 포괄된 인구는 6억 명,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기준 1조 8654억 달러(약 2107조원) 규모로 무시 못 할 규모를 형성하고 있으며 자원도 풍부하다. 특히 유럽연합과 미국이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아세안 가입국
미국은 이미 아세안 4개국을 포함한 12개국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며 신흥시장을 선점하고 경제의 성장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1월 중국-아세안 FTA를 발효하며 아세안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중국-아세안 투자협력기금, 중국-아세안 은행컨소시엄 등을 설립하고 인프라 구축, 자원개발 분야를 중심으로 아세안 원조지원을 늘려나가고 있다.
일본 역시 2008년 아세안 10개국과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을 체결했으며 그 후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주요 동남아 국가와 개별적 경제협정을 체결했다. 또한 2조엔 규모의 공적개발자금을 투입해 인프라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도 올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APEC)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경제협력 기반을 다지려 계획하고 있다.
한국 역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포괄적 경제협력 대상국으로 선정하고, 미얀마와 말레이시아와는 특화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는 다양한 합의사항을 도출하고 99개 항목에 달하는 방대한 의장 성명을 발표했다. 아세안 순회 의장국인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결산하는 기자회견에서 ≪아세안 정상들은 2015년까지 위대하고도 긴밀한 공동체를 출범시킨다는 목표 아래 수많은 현안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며 ≪이번 20차 아세안 정상회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
미얀마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려는 미국
원래 이번 회의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는 주요 의제는 아니었다. 지역 이슈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것은 미얀마의 제재 해제였다. 특히 미얀마가 최근 민주주의 개혁을 시행하고 보궐선거도 평화적으로 치른 점을 높이 평가하며 서방 국가들의 대 미얀마 제재를 즉각 해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애초에 서방국가들은 정치범 감금 등 인권탄압을 이유로 미얀마에 제재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부장관의 미얀마 방문을 통해 변화의 조짐이 감지됐다. 특히 서방국가들은 수치 여사가 출마한 이번 4월 1일 재보궐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진 것으로 평가되면 제재 해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선거 결과 수치 여사를 포함,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압승하였다.
▲클린턴 국무장관을 만난 수치 여사
그런데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4일 일부 제재를 완화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내비치면서도 정치범 석방 및 북한과의 군사협력 중단 등에 대한 압박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와 의회에서 미얀마가 북한과 핵무기 개발 등 군사부문에서 협력하고 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었다. 작년 12월 1일 클린턴 장관이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도 북한과 무기 거래 등의 관계를 청산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미얀마와 북한의 군사교류, 협력에 대한 의혹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돼왔다. 특히 2008년 11월에는 미얀마 육군참모총장 투라 슈웨 만 장군이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해 각종 군사 시설을 시찰하였고 북-미얀마 군사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고 한다. 또 핵개발, 지하기지 건설, 미사일 제작 등에도 협력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결국 미국은 북한의 군사기술이 해외로 이전되는 것을 막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 미사일 기술자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진 이란에 대해 제재를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세안 정상회의의 두 번째 지역 이슈는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된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의 대립이다.
북한의 <북>도 언급하지 않은 아세안
세 번째 이슈가 바로 한반도 문제였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언론 보도와 달리 북한의 인공위성 혹은 미사일 발사라는 직접적 표현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세안은 의장성명 93항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자는 우리의 지지를 재확인한다. 우리는 모든 당사국들이 한반도에서 긴장이 상승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94항에서 ≪우리는 모든 당사국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 1718, 1874항을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 안보, 안정을 위해 6자회담의 조기 재개를 촉구한다≫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원론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존중하자고 한 것을 두고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앞항에서 모든 당사국이 한반도 긴장 고조 행위를 하지 않도록 자제할 것을 촉구한 것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적대적 반응을 보이면서 요격을 운운하는 나라들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북한>, <로켓> 같은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전반적으로는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기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겠다.
한편 아세안 순회 의장국인 캄보디아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해 오는 7월로 예정된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 앞서 호르 남홍 외무장관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했다. 수린 피추완 아세안 사무총장은 캄보디아가 아세안 의장국이면서 북한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며 적극적인 중재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캄보디아와 북한은 전통적인 친선 국가 관계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은 과거 천안함 사태 때도 한국의 주장이 밀리고 북한에 유리한 결론이 나와 한국 외교력의 부재가 성토되던 회의다. 북한에 비해 한국과 경제 관계가 훨씬 더 두터운 동남아 국가들조차 한국의 입장에 냉담했던 것을 보면 보수언론들의 호들갑과 달리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주장이 그리 설득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정부나 보수언론의 바람과는 달리 아세안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문제는 주요 이슈가 아니었고 입장 또한 원론적이고 중립적인 데에 그쳤다. 지금 국내 언론 보도를 보면 마치 전 세계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부나 언론이 과대 포장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지난 핵안보정상회의 과정에서 나온 중국 후진타오 주석 발언도 사실 관계가 논란에 빠져버렸다. 지난 3월 26일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은 ≪(후 주석이) 북한은 위성 발사를 포기하고 북한의 민생발전에 집중할 것을 계속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언론은 중국이 의외로 북한을 비판한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한중 정상회담에 배석한 이규형 주중대사가 ≪북중 관계에 비춰 주석이 비난조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며 ≪(광명성 3호 발사 선언이) 뜻밖의 일이라곤 했으나 비난하지는 않았다≫고 밝히며 파장이 일었다. 이 대사는 이후 자신의 발언을 정정했으나 석연찮은 여운을 남겼다.
▲또 구설수에 오른 김태효 기획관
중국 언론들도 후 주석의 <민생> 발언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중국은 각 나라와 함께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데 끊임없이 노력하길 원한다≫는 원론적 발언만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 5일에도 외교부 훙레이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현재 상황아래서 각 당사자가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보수언론은 이를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반대하는 말로 해석하지만 ≪현재 상황아래서≫라는 표현은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상황아래서>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즉, 인공위성 발사에 주변국들이 예민하게 반응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 성명과도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정부나 언론은 자신들의 주관적 욕망에 따라 사실관계를 엉뚱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세계가 자기 주관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점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하겠다. (20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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