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번 사건이 없었으면 야권 단일화 과정이 무난하게 진행됐을까? 순진한 생각이다. 이정희 후보가 사퇴하면 야권연대가 잘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정희 대표의 평소 언행을 볼 때 사퇴해서 야권연대를 살릴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사퇴하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다.
단일화 경선 파문의 본질과 이정희 사퇴론의 위험성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전국적 야권단일화 합의로 총선의 확실한 승기를 잡았던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에 심각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이른바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사 조작 파문 때문이다.
언론에 잘 알려진 것처럼 이정희 후보의 보좌관 두 명이 여론조사 응답을 할 때 나이를 바꿔서 응답해달라는 문자를 당원들에게 보낸 게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이정희 후보는 곧바로 사죄의 뜻을 밝히고 민주통합당이 요구할 경우 재경선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경선 상대였던 김희철 후보는 이정희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며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고, 민주통합당도 사실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편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관리위원회는 재경선을 권고했으나 김희철 후보가 거부한 상태다.
▲이정희 후보
이 사건은 야권연대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이정희 후보 외에도 통합진보당이 경선에서 이겼던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 후보들도 경선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안산 단원갑 선거구의 경우는 아예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민주통합당이 백혜련 변호사를 공천하기도 하였다. 언론과 방송은 야권연대가 심각한 좌초 위기에 빠졌다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은 신구 대립
이 사건은 표면상으로는 여론조사 과정에서 나타난 부도덕한 행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이 사건의 본질은 통합진보당이라는 신흥세력의 부상과 이를 견제하려는 구세력의 대립이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야권연대는 선거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야권연대가 원활히 이뤄진 선거구는 대체로 승리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패배를 면치 못했다. 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고 오로지 야권연대를 통한 단일후보에게만 지지를 보내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민주통합당 역시 구시대 정치세력이므로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권연대의 힘, 박원순 서울시장
그렇다면 통합진보당의 경우는 어떨까? 통합진보당이 새시대 정치세력임은 맞지만 수권능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양당이 연대할 경우에만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야권연대가 정권교체의 강력한 무기임이 확인된 이상 정부여당과 수구언론들은 야권연대를 깨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언론이 이번 사건을 다루는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만난 굶주린 늑대 무리를 연상시킨다. 야권연대를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이번 사건과 비교도 되지 않는 박근혜-손수조 후보의 카퍼레이드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한 것과 대조된다.
문제는 내부 반발세력
문제는 야권연대를 바라지 않는 세력이 외부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야권연대 과정에서 이미 드러났듯 민주통합당 안에도 야권연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력이 상당수 존재한다.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새누리당을 누르자 단독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협상 제안을 무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이번 사건도 야권연대 파괴를 위한 명분으로 삼고 있다. 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성순 의원이 한명숙 대표에 대해 양당연대로 당을 혼란에 빠트렸다며 책임을 지라고 압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 의원뿐 아니라 민주통합당 전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정희 후보와 통합진보당을 물어뜯고 있다. 그리고 안산 단원갑 선거구에서 경선 결과에 불복하며 야권연대를 파괴하고 있다.
왜 이들은 야권연대를 반대하는 것일까?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양당이 야권연대에 합의하자 가장 크게 반발한 이들은 출마가 좌절된 후보들이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당선이지 정권교체나 정부여당 심판 같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여론조사 직전에 불거진 김희철 의원 사무소의 <종북좌파> 현수막 사건을 보라.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는 행위를 하면서라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이들에게 야권연대의 정신은 애초에 없었다.
▲논란이 된 현수막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민주통합당에 대한 실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관심으로 모이고 있다. 이제 통합진보당과의 협력 없이 민주통합당이 단독으로 총선,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변화된 현실은 민주통합당 내 기득권세력들에게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통합진보당은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을 가져가는 적대세력일 뿐이다.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야권연대에 합의하기는 했으나 속으로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 합의를 깰 것인가 궁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번 사건이 없었으면 야권 단일화 과정이 무난하게 진행됐을까? 아니다. 서로 다른 정치노선을 가진 세력의 연대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순진한 거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 큰 난관과 시련이 야권연대에게 닥칠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열망하는 정권교체와 정부여당 심판을 위해서는 인내하고 극복해야 한다.
이정희 후보 사퇴는 패착
이번 사건을 두고 이정희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민주통합당은 물론이고 통합진보당 내에도 존재한다. 이들은 이정희 후보의 잘못이 명백한 만큼 사퇴하는 것이 이정희 후보가 앞으로 정치를 계속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통합진보당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높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이정희 후보 개인으로 놓고 보면 사퇴를 통해 당장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깨끗한 정치인으로 부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출마를 하면 당선된다 하더라도 이번 사건으로 입은 흠집을 계속 안고 가야만 한다. 이정희 후보를 아끼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에 사퇴를 권유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이정희 후보 개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야권연대다. 이정희 후보가 사퇴하면 야권연대가 잘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정희 후보는 22일 ≪내 거취에 무엇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후보 사퇴를) 고려하겠지만 (야권연대를 이어가는데) 그런 것(불출마)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사퇴해서 야권연대를 살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야권연대에 난관이 조성되는 것은 필연이며 이번 사건은 하나의 계기, 빌미였을 뿐이다. 김희철 후보는 이번 사건이 폭로되기 전에 이미 경선 불복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야권연대 위기는 이번 사건과 무관하게 일어날 운명이었던 것이다. 냉정히 말해서 이번 사건으로 이정희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면 살아남을 후보는 몇이나 될까? 본격적인 폭로전이 시작되면 야권연대 자체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에 인내하고 있을 뿐이다.
▲김희철 의원
이정희 후보가 사퇴하면 민주통합당은 자신들이 승기를 잡았다고 오판하고 제2, 제3의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민주통합당 자신도 죽는 길이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관악을 재경선을 결정했다면 상황은 조기에 일단락될 수 있었다. 상생할 수 있는 차선의 길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정희를 코너로 모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는 정당투표에서 민주당의 타격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예측했다.
이정희 후보는 결코 사퇴하면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경선에 불복하는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이정희 후보 개인에게는 뼈아픈 과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야권연대의 승리를 위해,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심판을 위해, 정권교체를 위해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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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불철주야>는 아래 링크로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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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mo.podics.com/131942029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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