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빠듯한 예산 속에서도 북한을 명분으로 하는 군비는 줄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될수록 군산복합체는 자신들이 이익을 남길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독트린, 한반도 위기에 집착하는 미국
동북아의 문
“아태지역 국방예산은 결코, 결코 줄이지 않을 것”
지난 17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캔버라 의회 연설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미국 안보의 최우선 순위로 두겠다는 내용의 새로운 ‘오바마 독트린’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전쟁들(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이 끝남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주둔과 임무를 최우선 순위로 두라고 국가안보팀에 지시했다”면서 “미국은 재정 문제로 국방비를 삭감할 계획이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방예산은 결코, 거듭 말하지만, 결코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북핵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며 새 독트린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북한을 꼽았다.
▲호주 의회 연설중인 오바마 대통령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유럽·중동 중심이었던 미국 안보 정책이 아시아 중심으로 대전환한 것이다. 이는 북한-중국-러시아 동맹이 미국의 세계 패권을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 하겠다. 미국은 호주 다윈 기지에 2500명의 미 해병대를 배치하기로 하였으며 틴덜 공군기지에 전투기를, 스털링 기지에 잠수함과 핵무기 탑재 함정을 배치하기로 하였다. 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호주에 미군 상설기지가 생기는 셈이다.
호주의 북부 도시 다윈은 1942년 2월 19일 건국 이래 처음으로 일본에게서 본토 침공을 받았다. 남서태평양 최고사령관이 된 더글러스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호주로 후퇴하여 다윈에서 일본을 상대로 반격을 개시했다. 이를테면 다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태평양 일대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상징적인 곳이다.
호주에 미군기지가 건설되는 것은 과거 덜레스 전 국무장관이 설파한 대중국 2중 봉쇄망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봉쇄망의 제1열도선은 한국-일본-오키나와-대만-필리핀이며 제2열도선은 일본-괌·북마리아나제도-호주였다. 그런데 대만과 필리핀에 주둔했던 미군은 모두 철수한 상태다. 그리고 북미대결 과정에서 평화협정 체결이 임박한 가운데 주한미군의 존재도 불안하다. 여기에 남중국해 분쟁으로 제1열도선 외곽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호주 미군기지 건설은 미국이 제2열도선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제1열도선이 그만큼 위태로운 상태임을 설명해준다.
▲한국전쟁 직전 전선시찰을 나온 덜레스
미국의 새로운 ‘오바마 독트린’에 중국이 먼저 발끈해 나섰다. 중국 <인민일보>는 “호주가 군 기지를 이용해 미국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돕는다면, 호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십자포화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선전포고에 준하는 이례적 경고를 했다.
국방주식회사 미국
미국이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방예산을 결코 줄이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길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미국의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실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은 미국에게 획기적인 기회를 안겨주었다. 전쟁호황으로 인해 세계 총생산의 반을 차지하는 경제 초대국이 된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자신의 저서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창작과비평사, 2004)에서 “2차 대전 개입 후 미국은 전쟁호황에 스스로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면서 “이 전쟁으로 미국사람들은 전쟁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하였다. 그리고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후 유럽복구를 위한 마샬플랜, 냉전적 봉쇄전략, 그리고 트루먼의 한국전쟁 개입 결정은 패권을 유지하고 미국 경제를 구제해준 가장 ‘현명하고 탁월한 사업’”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1949년 이미 미국 경제는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의 독점자본가들은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지나치게 확대된 군수산업을 축소하기보다 재고로 쌓이는 무기를 소비하는 길을 선택하고 트루먼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즉, 전쟁을 하던 하지 않던 전쟁준비를 일상화하는 것이 미국 경제를 활성화하는 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미국 경제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 극동지역 CIA 고위책임자 하리 마오 박(한국이름 박승억)은 99년 6월호 월간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50년 당시 미국의 GNP는 전 세계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대국이 아무리 전후 공황이 와서 실업자들이 아우성을 친다 하더라도 이제 겨우 독립해서 살겠다고 버둥대는 한국에서 무자비하고 처참한 전쟁판을 벌여서야 되겠는가” 라고 성토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부상하였다. 군산복합체란 표현은 1961년 1월 17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퇴임연설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 군부와 군수산업 세력의 상호의존적 결탁 체제를 가리켜 군산복합체라 불렀다.
▲퇴임연설을 하는 아이젠하워
<프레시안>은 2011년 1월 23일자 “‘국방주식회사’ 미국과 군사케인즈주의의 종언”을 통해 앤드류 바세비치 미 보스턴대 교수가 격월간지 <아틀란틱>(the Atlantic) 1~2월호에 기고한 글을 소개했다. 이 글에 따르면 1950년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고서 ‘NSC-68’ 작성자들이 국방예산을 증가시키면 국민총생산(GNP)를 늘릴 수 있다고 하면서 국방비 증액은 영구적인 경기 부양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다.
이런 개념에 따라 미국 군 장성과 관리들, 군수업체, 의원 등의 연합세력은 소련의 공격을 억제한다면서 1952년 1000여 개였던 핵탄두를 1961년 2만4000개로, 60년대 말에는 3만1000개로 늘렸다. 미사일, 전투기, 군함, 탱크, 총 등 재래식 미사일도 무분별하게 늘렸다. 이 과정에서 무기 생산 업체들은 떼돈을 벌었다. 군 연구소는 자금을 조달받았고 중소기업들도 군수 계약을 따냈다. 일자리도 늘었다. 아이젠하워 정부 시절 미국의 국방예산은 정부 지출의 50% 이상, GDP의 10% 이상을 기록했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은 국내 모든 기업의 순수익보다 더 많은 돈을 매년 군사 안보 분야에 쓰고 있다”고 개탄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뭐야?”
이런 체제는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정보기관은 과거 중앙정보국(CIA) 하나에서 지금은 17개로 늘었고 이들의 지출 규모는 매년 800억 달러 이상으로 국무부 예산 490억 달러와 국토안보부 예산 430억 달러를 합한 것보다 사실상 더 많다고 한다. 또 국방부 예산 역시 연간 7천억 달러 규모며 연방정부의 재량 예산의 반 정도가 국방비에 추가되어 미국 GDP의 5%에 이른다. 군수산업에 의한 경제효과는 연간 192억 달러, 고용창출효과는 3만5400명으로 추정한다. (“Trade and the Defence Industrial Base”, John. M. Ward, 2007) 또한 2000년 기준 국방과학 부문 종사자가 46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군인-군수업체-국방부 사이의 회전문 인사도 여전하다. 라이트 밀스는 군산복합체를 두고 “기업 임원의 역할, 장군으로 가장한 정치꾼들의 역할, 정치꾼같이 행동하는 기업 임원들의 역할을 하는 장군들의 연합체”라고 표현했다. 아예 다인코프(DynCorp), MPRI, 블랙워터 같은 민간 군사기업까지 탄생했다.
▲미군과 함께 활약하는 다인코프 직원들
군산복합체는 여전히 국가정책에 깊숙이 개입해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아프간 정책을 재검토하면서 다양한 정책 대안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미군 증파 전략만 가능하다고 고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뭐야?”라고 말했고 결국 군부가 선호하는 옵션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앤드류 바세비치, 앞의 글)
이런 식으로 미국의 군수업체는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있다. 2008년 미국의 주요 군수업체 매출 현황을 보면 보잉 609억 달러, 록히드 마틴 427억 달러, 노스롭그루먼 339억 달러, 제너럴 다이나믹스 293억 달러, 레이시온 232억 달러, SAIC 101억 달러 등이다. 이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촉발된 미국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2008년 1분기 매출이 모두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이라크, 아프간 전쟁 덕이다. 그리고 이들 군수업체에 투자하는 록펠러, 모건, 칼라일(Carlyle) 그룹 등도 역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세계 최대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이 개발 중인 폭격기
또한 2008년 기준 세계 100대 군수업체 중 미국업체는 44개로 세계 무기시장 전체 판매량의 60%를 차지하며 서유럽국가가 32%를 점유해 미국가 서유럽이 3850억 달러에 달하는 전체 무기시장의 92%를 장악하고 있다. 또 무기수출 규모 역시 미국이 39%를 점유해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호구, 한국
이처럼 미국의 군수업체들은 전쟁을 통해, 전쟁이 없으면 적을 만들고 긴장을 고조시켜 막대한 부를 끌어 모으고 있다. 여기에 한국도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일단 한반도는 유일한 분단국가로 전쟁의 위험이 상존한 지역이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과 여전히 정전상태로 있다. 미국 군수업체 입장에서는 무제한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으로 인해 소비되는 국방비는 물론 북한을 명분으로 한국에 판매하는 무기 수입도 짭짤하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SIPRI ARMS TRANSFERS DATA, 2008’에는 2004~2008년 기간 미국의 최대 무기 구매국은 한국이며 전체 무기 수출량의 15%를 차지한다고 나와 있다.
2009년 4월 6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미사일방어 예산을 전년보다 14억달러(15%) 축소하되, 북한 등 ‘불량국가’의 장거리 미사일 위협에 맞서는 방어능력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 지원은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미사일방어 시스템 중 항공기 탑재 공중레이저(ABL)와 다탄두 요격체계(MKV) 프로그램 등은 예산 부족과 중대한 기술적 문제가 있다며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빠듯한 예산 속에서도 북한을 명분으로 하는 군비는 줄이지 않는 것이다.
또 미국은 경제위기를 감안해 2010년도 국방예산에서 첨단무기 구입을 줄이기로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보잉, 록히드 마틴, 노스롭그루먼 등 주요 군수업체들이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에 보잉의 짐 앨보 회장은 “미국 국방예산이 깎여 미국 내 무기 판매가 줄어드는 대신 해외에서 만회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한국도 전투기 40대를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경제위기로 힘든 미국 군수업체의 호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이명박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정부는 14조 원에 달하는 미국 무기를 수입하기로 해 ‘국빈 방문 대가’ 아니냐는 질타를 받고 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이런 이유로 미국은 한반도 위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던 나지 않던, 전쟁에서 이기던 지던 군산복합체는 자신들이 이익을 남길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최대한 오래 한반도 위기를 끌려고 한다. 북한과 협상을 하다가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그러다 전쟁이 날 듯 하면 다시 협상을 하면서 군수업체들은 최대한 이익을 남기려 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대북정책은 세계 패권전략의 일환으로 결정되며 경제논리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분명 자신들의 이익이 최우선이며 이런 방향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결정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식으로 결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전쟁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 최소 1조 달러가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이익을 뽑아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미국 정부 재정파탄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전쟁을 시작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북한, 이란, 시리아, 쿠바 등 미국이 전쟁을 염두에 둔 나라들 모두 미국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정부는 파산 직전인데 군수업체만 배 부르는 이런 정책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제 미국도 현실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20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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