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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더스가 가져온 남북정상회담설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1. 11.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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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엘더스의 움직임은 남북정상회담, 나아가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대화에 나선다면 6월에 호되게 당한 경험에서 교훈을 잘 찾아야 할 것이다.


엘더스가 가져온 남북정상회담설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디 엘더스(The Elders) 그룹(이하 엘더스)의 실무진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긴급 방한했다. 좀처럼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 시점에서 갑자기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게 뜻밖이긴 하다. 남북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된다면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이기에 정치권도 긴장하고 있다. 일단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적극적인 엘더스, 시큰둥한 이명박


지난 8월 대남 사업에 관여하는 북한의 고위 인사가 미국 뉴욕에서 엘더스 핵심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 고위급회담을 열자는 북한의 의사를 한국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북한 인사는 늦어도 올 연말에는 고위급회담의 그림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으며 회담 남측 참가단에 청와대 내 특정 외교안보 관계자가 포함됐으면 한다는 뜻도 전했다. 남북 고위급회담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단계의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엘더스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주선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내년 1월 스웨덴에서 엘더스가 참여하는 3자 형식의 고위급회담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거부감을 갖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배제하고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를 고위급 회담 대표로 내정하였다.


▲지난 4월 방북 당시 뭔가 물어보는 브룬틀란 전 총리


그리고 지난 10일경 엘더스는 한국 정부에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와 안정의 증진, 남북 상호 관심사에 대한 대화문제와 관련하여 통일부로 당국자와 면담을 갖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였고 곧바로 14일 앤드류 위틀리 정책국장이 이끄는 엘더스 실무진이 방한, 15일 통일부 정책기획관과 면담을 하기로 하였다. 통일부 최보선 대변인은 면담을 비공개로 진행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그다지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쓸데없이 갑자기 왜 남북정상회담 얘기를 꺼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엘더스의 뜻은 이해”하지만 “남북 비핵화 회담이 두 번 열렸고, 여타 남북대화를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엘더스의 도움을 받아 남북회담을 할 계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다. 느닷없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엘더스의 행동 시점과 전후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시큰둥, 속으로는 호박씨


엘더스가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기 위해 방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엘더스는 지난 4월에 방북하여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과 언제든지 만나 모든 주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북한의 메시지를 듣고 한국에 전달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의 면담도 수용하지 않았다. 천안함, 연평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대화는 없다는 원칙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같은 시기에 이명박 정부는 대북비밀접촉을 하였다. 여기서 정부 당국자는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으니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비밀협상을 진행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라 5월 9일 비밀협상이 진행되었는데 여기서 문제의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 제안이 나왔고 돈봉투 로비시도가 있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아가 6월 들어 전 과정을 폭로하였다.


▲돈봉투 사건의 주역이 된 김태효 비서관


왜 이명박 정부는 겉으로 엘더스의 남북정상회담 주선을 거부하면서 속으로 남북비밀접촉을 추진했을까? 그리고 왜 비밀접촉은 실패로 돌아갔을까?


당시 미국은 북미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얼마 전 스티븐 보즈워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과 대화하지 않으면 3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건 최근 조성된 상황이 아니라 이미 전부터 그런 상태였던 것을 다시 확인한 것뿐이다. 그런데 미국은 자신의 패권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해 북미대화가 북한에게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을 꺼렸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선 남북대화, 후 북미대화’라는 수순이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에게 남북대화를 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카터 전 대통령을 위시한 엘더스의 방북, 방한도 이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남북대화를 하는 것이 명분도 서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지지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기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언제까지 뭉개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아가 자칫 남북대화를 계속 거부할 경우 한국만 소외된 채 북미대화나 6자회담이 진행될 위험도 있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엘더스를 냉대하면서 비밀리에 접촉한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기에 결국 비밀접촉은 결렬된 것이다.


변화된 조건, 재추진되는 대화


이렇게 5월의 비밀접촉이 결렬되고 6월에 정상회담 로비사건이 폭로되면서 남북대화는 더욱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8월 들어 북한의 고위 인사가 엘더스를 찾아가 남북 고위급회담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8월이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1차 남북접촉이 있은 후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을 방문, 1차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린 시기다. 즉, 새롭게 대화를 추진할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남북 고위급회담을 추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북미 고위급회담


그런데 특이한 건 북한이 남측 참가단에 청와대 내 특정 외교안보 관계자가 포함되기를 희망했다는 것이다. 그 관계자는 아마도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야 김태효 비서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실세기 때문에 지목했겠지만 5월 비밀접촉에서 이른바 돈봉투 로비사건으로 얼굴을 붉힌 장본인이니 고위급 회담이 성사됐다면 참으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비밀접촉 폭로로 인해 고생을 했기에 만약 다시 남북접촉에 나선다면 어느 정도 각오와 준비를 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남북, 북미 고위급회담이 예상되는 연말연초


마지막으로 살펴볼 문제는 8월에 제기된 문제를 왜 이제 와서 추진하느냐 하는 점이다. 엘더스가 두세달을 허송세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미국, 한국 정부와 비공개로 조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미 고위급회담이 두 차례 열렸고 상당한 진전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체로 6자회담에서 논의되던 쟁점들을 일괄타결하는 방향에서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은 가능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일단락을 짓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 1차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김계관 제1부상이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는 섣불리 정상회담에 나섰을 때 북한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남북정상회담을 앞세워 체면을 살리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엘더스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천안함, 연평도 문제에서 발목을 잡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도 자신이 나서서 남북대화를 추진하는 것보다 엘더스가 와서 요구를 하니 마지못해 남북대화에 나서는 모양새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일단 현재 정부 관계자들의 반응을 보면 지난 4월처럼 겉으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비공개접촉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엘더스가 주선을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진다면 아무런 합의도 이룰 수 없다.


이번 엘더스의 움직임은 남북정상회담, 나아가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이명박 정부에게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남겨둔 채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6월에 호되게 당하고 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정상회담을 통해서라도 천안함, 연평도를 털고 가고자하는 미련이 남아있을 것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이 성사된다면 현재로서는 내년 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북한은 올해 안에 북미 고위급회담을 추가로 갖고 싶다고 했으므로 연말연초 한반도를 둘러싸고 중요한 논의들이 진척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화를 통한 관계 발전은 막을 수 없는 대세다. 대세를 거스르고 고립될 것인가 대세를 따를 것인가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20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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