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무장관은 중국이 없다면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면서 중국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중국만 움직이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미국과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년이 넘는 한반도 사태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
중국을 겨냥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대화 제안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3월 대북군사훈련인 한미연합 키리졸브 연습으로 정세가 첨예하게 긴장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대북대화를 제안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완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나오고 있다. 여러 언론들은 대화제안이 나온 4월 중순을 전후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는 사라지고 이제는 대화를 둘러싼 기 싸움이 전개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갑작스런 대화제안은 북한의 강경한 대미 공세에 어떻게든 시간을 벌여보려는 임시방편 꼼수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대화 제안에는 진정성이 없다
이번 박근혜 정부의 대화제안이 진정성 없는 꼼수에 불과한 것은 첫째, 남북대화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없다는데 있다. 언론들은 4월 11일 통일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하여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를 바란다≫고 발언하고, 그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확인한 것을 두고 사실상의 대화제안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무슨 남북대화를 하자는 제안도 없는 희한한 대화제안에 대해 기자들이 대화제안 맞는지 되묻고 당국자들 사이에 맞다, 아니다 엇갈리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류길재 통일부장관
이런 제안은 진정으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당면한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려는 입장에서 나올 수 없는 제안이다. 오히려 대북전쟁훈련으로 위기를 고조시킨 책임을 숨기고 중국에게 한국은 대화 노력을 한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 이는 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하여 박근혜 정부의 대화제안을 <교활한 기만술책>으로 비판하자 곧바로 대화 노력을 중단해 버린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진정 대화 의지가 있다면 북한이 연이어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서 밝힌 대북적대정책을 사죄하라는 요구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남북대화의 복원을 위해 실질적인 태도 전환을 보여야 했다. 최소한 언론보도나 반북단체의 주장은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발표라도 했어야 했다.
둘째, 박근혜 정부는 실질적인 대화 분위기를 전혀 조성하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에 대한 군사적 대응 검토나 <도발원점>과 <지휘세력>에 대한 타격 같은 발언들이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제안은 아무런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면 최소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정신에 따른 상호 비방 중지,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과 같은 실질적인 행동에 대한 제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도 박근혜 정부는 대북전쟁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아파치 헬기 구매와 같이 신형 무기 도입을 발표하는가 하면 종북소동을 일으키며 남북대결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대화를 하자는 모습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모호하고 아리송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최근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해서도 이런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해 실무협상을 제안하면서 답변 시한을 만 하루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협상을 거부하면 중대조치를 하겠다고 협박을 하였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조차 정부 발표를 듣고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미국은 아직도 중국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실효성도 없는 대화제안을 왜 했을까? 처음 언급한 것처럼 북한의 강경한 군사대응에 위기를 느끼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간을 끄는 게 기본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면서 무엇을 하려고 한 것일까? 여기에는 중국을 견인해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6.15, 10.4선언을 부정하고 강경, 적대적 방향으로 급선회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은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의 반발을 불러왔고 한중 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명박 정권이 <원칙 있는 남북관계>라는 그럴듯한 말로 노골적인 대북적대정책을 임기 내내 펼친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편승해 어떻게든 북한을 붕괴시켜보려는 시도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중관계는 냉랭했다
하지만 북한은 은하3호의 성공적 발사와 3차 핵실험으로 실질적 핵보유국이 되었고 북한붕괴전략을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외교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무시전략과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적 행동을 본격화하는 군사전략을 병행해야 하는, 누가 보아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당국자들은 자신들의 대북붕괴전략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외교전략과 군사전략을 입체적으로 벌이고 있다. 여기에서 미국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중국을 통한 외교전략이다.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에서 1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니 군사전략은 미국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온건파라는 존 케리 국무장관의 등장은 이런 대북 외교전략에 힘을 집중해 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외교전략의 초점은 자신들의 핵무기는 그대로 두고 북한의 핵무기만 폐기하는 것이다. 이런 외교전략을 추진하는 데서 핵심은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한중일 순방을 마친 후 4월 17일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이 없다면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면서 ≪그래서 우리가 중국과 협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케리 장관은 ≪중국은 북한에 연료의 4분의 3을 제공하고 중요한 금융 연결고리이며 식량을 제공한다≫며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국가는 중국≫이라고 평가했다.
▲시진핑 주석과 만난 케리 장관
그리고 중국이 미국의 대북압박에 동참할 것이라는 여론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3월 15일 ABC 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북한의 비행을 계속 참아왔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발언했으며,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도 4월 30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중국에 이와 관련한 신호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며 ≪중국의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해 분명히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미국은 중국만 포섭하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케리 장관에 이어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과 윌리엄 번즈 국무부 부장관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은 중국 포섭을 위해 중국의 한편으로 중국의 구미에 맞는 언행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압박하는 투트랙(two track)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케리 장관이 한중일 순방 과정에서 이미 폐기된 6자회담 9.19공동성명을 다시 언급한 것은 6자회담 주제국인 중국을 위한 립서비스(lip-service)로 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인 미니트맨-3 발사훈련을 연기한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위기 고조 행위를 자제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자>는 중국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미국이 중일 사이의 영토 분쟁에 일방적으로 일본을 편드는 모습은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들이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외교적 압박의 일환이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논란 역시 중국에게 북한의 핵무기를 방치하면 한국과 일본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핵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무언의 경고 성격이 강하다.
박근혜 대통령, 중국 포섭에 앞장서나
중국을 포섭하는 데서 미국은 한국의 박근혜 정부를 주목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개인적 친분도 있는 중국통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이런 박근혜 대통령을 북한과 중국 사이의 연대를 느슨하게 하며 북한을 내부 붕괴시키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려는데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2005년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을 만나는 모습
박근혜 정부는 당선자 시절 미국에 앞서 중국에 먼저 특사를 보내는가 하면 출범 이후에도 대중외교를 강조하면서 대통령의 첫 외국 순방이 중국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였다. 중국 언론들은 이런 박근혜 정부의 중국 중시 정책에 한껏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중관계를 강화해 중국을 견인하려는 것이다. 또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북한의 핵무장이 한국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압력을 은근히 중국에게 행사하였다.
미국 역시 박근혜 정부를 띄워주면서 중국이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를 중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박근혜 대통령 방미 기간에도 상하원 합동 연설 기회를 주면서 환대하고 있다.
물론 중국 역시 갈수록 높아지는 미국의 대북 정치, 군사, 외교적 압력이 나중에는 자신들을 겨냥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른바 순망치한 이론이다. 하지만 화평을 통한 경제 발전이라는 전통적인 중국의 발전 전략이 북한의 핵무장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도 계속 울려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화제안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외교전략의 수순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남북대화의 발전이라는 건설적인 방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중국을 내세워 북한에 대한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며 북한을 교란시키고 붕괴시키려는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외교 역시 정치, 군사적 힘의 연장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이 자신들의 정치, 군사력의 열세를 만회해 보려고 중국을 이용한 외교전략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은 북미대결에서 수세에 몰려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여기에 편승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박근혜 정부는 민족의 운명을 정권 안위의 하위에 둔 무개념 정부일 뿐이다.
이미 미국과 핵전면전을 각오한 북한에게 미국과 박근혜의 전략은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 중국 역시 미국 편에 서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게 결국 자신의 목을 조른다는 점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미국 뜻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없다. 근본적으로는 수십 년간 혈맹으로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 중국이 가장 가까운 외교 관계국으로 명시하는 북한을 중국이 쉽게 버릴 가능성은 0이다.
▲2012년 11월 3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중국 공산당 대표단을 접견했다
미국과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년이 넘는 한반도 사태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 중국만 움직이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4월 29일자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전문가 <중국 통한 북한 문제 해결, 비현실적>≫이란 보도에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의 새 국무장관 체제에서 중국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지만 북한 문제 해결에 중국이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10년 넘게 계속돼 왔으며, 중국은 지금까지 이를 부인해 왔다≫며 ≪중국이 미국이 원하는 수준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으로 기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지금은 우리 민족이 열강들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되던 19세기가 아니다. 미국 본토와 전 세계 미군기지들이 핵미사일에 노출된 지금 미국 뜻대로 한반도 문제가 좌우되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이라도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여 평화롭고 번영하는 한반도 시대에 동참해야 한다. (2013.5.7.)
* 팟캐스트 <주간 정세동향>을 들으시려면 아이튠즈에서 검색하시거나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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