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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쥐’에서 김종훈까지, 우리 안의 사대주의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3. 3. 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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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성공한 미국인 김종훈, 장관 자격 있을까



40년 이상을 미군부대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영어는 영어로 밥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만 잘하면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우리말만 잘하면 된다.’ 혹자들은 이런 아버지의 말씀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가족들이 모이면 가끔 ‘아빠만 아니었으면 우리도 일찌감치 영어를 잘해서 지금쯤은 뭔가 달라지지 않았겠냐’고 농담을 하곤 한다. 솔직히 다섯 딸 중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4명이 미국물을 좀 먹었으니 딱히 가족이 모두 영어를 멀리한 것만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가끔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예컨대 일회용 반창고를 찾을 때 우리는 흔히 ‘OO밴드’라고 하는데 아버진 꼭 ‘밴디지’라고 하셨고 우리가 가요‘톱’텐을 볼 때 아버진 가요‘탑’텐을 보셨으니 말이다. 이런 아버지와의 일화는 오랜 시간 추억거리였는데 ‘어린쥐’사건(?) 이후론 추억거리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것이 추억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 추억이 ‘어린쥐’로 인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에게 밴디지나 가요탑텐을 강요하지 않으셨는데 ‘어린쥐’는 분명 내게 강요된 듯했기 때문이다. 

가요‘탑’텐과 ‘어린쥐’의 차이

법학을 전공한 나는 대학시절 내내 누구도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법학을 하려면 독일어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배워본 적도 없는 독일어를 겁없이 선택하고 1년 내내 이미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운 학생들 사이에서 고생을 했다. 이렇듯 내게 언어란 공부하는데 필요하면 배우는 것이고 필요하지 않으면 안해도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 사회는 모든 시험에서 공인영어시험성적이 필수가 되었다. 예전엔 외국어 선택이 가능했던 사법시험도,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려 해도 필수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영어만 잘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을 하듯 요즘 학생들은 저마다 영어식 이름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아직 한글도 익숙하지 않은 초등학교 1학년이 영어를 정규수업으로 배워야 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영어발음을 위해서 아이들 혀밑을 잘라내는 수술이 한때 유행했고 원정출산에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이중국적, 조기유학기러기아빠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최근 20여년 영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소위 말하는 사회 지도층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점차 그 계층이 하향이동하면서 상층으로의 계층상승의 필수조건인 양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한자를 잘 아는 것이 양반의 조건이었던 조선시대처럼 말이다. 

지난 2008년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하며 이른바 '어린쥐' 논란을 일으킨 이경숙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지난 2008년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하며 이른바 '어린쥐' 논란을 일으킨 이경숙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뉴시스



우리는 왜 이렇게 영어에 열광하는가? 가만히 되짚어보면 단순히 외국어로서의 영어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건 미군정기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길들여지기 시작한 우리 안의 또다른 사대주의가 아닐까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야말로 미국에서는 거지도 영어를 잘한다는 농담이 농담으로 끝나지 않고, 미국국적만 있으면 너무 쉽게 한국에서 대우를 받는 일은 학원가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조차 심심찮게 일어난다. 미국을 닮아야 하고 미국을 닮고 싶다는 열망을 갖도록 만든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미제(美製)’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한다. 미제 초코렛, 미제 연필 등 학용품, 미제 가전제품 등 뭐든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인 것이 고급이고 그것을 가지는 것이 뭔가 있어 보이는 시절을 겪어온 우리에게 미국은 그야말로 온통 좋은 것의 천국이었다. 그렇게 물건에서 시작된 부러움(?)이 급기야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여기엔 주한미군도 한몫을 했다. 분단국가로 국방이 불안한 우리는 그 해결책으로 ‘평화’를 선택하지 못했다. 대신 불안한 국방력을 주한미군에 의존하기로 작정했고 이후 미국은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은인(?)이 되었고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는 우리는 그 은인을 따라 배우고 그 은인이 가는 길을 가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도록 길들여졌다. 그렇게 미국제일주의는 우리의 뇌리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이를 의심하는 것은 배은망덕을 넘어서 매국으로까지 몰리게 되었다. 

영어를 잘 하면, 링컨도 잘 알까

혹자는 영어열풍에 대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미국을 알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는 링컨하면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떠올리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읽은 미국의 한 역사책은 링컨을 ‘미국 북부에서 발달한 공업에 필요한 노동자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남부의 농장의 노예가 필요해서 전쟁을 일으킨 대통령’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계사를 배울 때도 미국의 역사는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에 터를 잡고 오랜 세월 그곳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배우지 않는다. 미국을 아는 것은 그럴 듯하게 좋은 이야기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미국에서 실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고 그것은 꼭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적어도 영어열풍은 단지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잘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미국을 알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쓰는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치다고 할 것인가? 우리는 너무 많은 분야에서 일방적으로 미국을 따라가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입장이 우리나라의 입장인 듯 오해하곤 한다. 미국을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한 외국어로서 영어를 잘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국제화시대에 다른 나라와 적어도 교류를 하려면 그 나라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 미국을 아는 방법이 문제이다. 영어를 잘해야 하고 미국에서 좋은 학교를 나오고 이름을 날리는 것이 미국을 아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영어를 잘하고 좋은 학교를 나오고 이름을 날리는 것이 훌륭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성공한 미국인’ 김종훈 후보자, 우리 안의 사대주의 반영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뉴시스



어쨌든 이런 ‘미국’ 중심의 사고는 드디어 새 정부에서 정점을 찍었다. 미국 시민권자를 ‘장관’, 그것도 새 정부가 가장 야심차게 준비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으로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이 장관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그 핵심은 이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이 사람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에 있다. 본인 스스로 진정한 미국인이 되기 위하여 미군으로 복무를 했다고 말한 사람이다. 자신의 미국국적은 포기해도 가족의 미국국적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람이다. 이해관계가 대립될 때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서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기대할 것인가? 이것이 단순히 국적의 문제라고 해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적의 문제는 병역의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당의 한 인사에 대해 이중국적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당사자들이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너희도 그랬으니 우리도 그러겠다는 심보가 아니라면 적어도 자신들이 문제제기했던 것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이중국적이었다는 식의 국적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이니 훌륭한 사람이고 그런 훌륭한 사람을 장관으로 영입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그것은 상류층부터 시작된 미국국적을 가지고 싶어 하고 그 국적을 얻기 위해 온갖 편법을 쓰는 것을 불사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세상 모든 일은 마찬가지다. 누구나 지금 가졌거나 누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원한다. 미국국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한국국적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이다. 미국국적이 더 좋은 것은 미국이 더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에게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이 더 좋은 나라라고 알려줬는지, 누가 우리에게 우리나라는 미국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지난했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하는 일이고 중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변해가면서 만들어진 역사가 아닌 우리가 그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이겨왔는지를 바로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린 우리 안의 이 뿌리 깊은 사대주의를 벗어나 우리 스스로 우리의 길을 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출처 :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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