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국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회복되고 있지 못한 미국경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유럽, 그동안 그나마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어왔던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의 경기침체 움직임 등 세계경제는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다. 세계경제 침체 속에서 수출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경제가 좋아질리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2012년 한국경제가 3.7%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성장률이 4%아래로 떨어지면 저조한 성적표로 평가되는 관례를 봤을 때 정부가 상당히 부정적인 전망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외국계 은행들은 한국경제 성장률을 로 더 낮게 잡고 있다(평균 약3.4%). 심지어 UBS는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9%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3.7%성장이라는 수치도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내세우는 3.7%성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근거는 민간소비, 즉 내수다. 세계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수출은 둔화될 것이지만 민간소비가 이를 어느 정도 메워줄 것이라는 논리다. 정부는 2012년 소비가 2011년 2.5%보다 0.7%p늘어난 3.1%증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이유로 기획재정부는 2011년 12월 12일 발표한 경제 전망을 통해 “고용 회복이 지속되는 가운데 물가 상승세 완화 등으로 실질구매력이 개선될 전망”이라며 “소비 지출 전망이 양호해 소비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고용이 회복되고 물가부담이 줄어들어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날 것이란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2012년 물가부담이 줄어든다고?
먼저 물가를 살펴보자. 2012년 정부가 예측한데로 물가부담은 줄어들까?
정부는 2011년 물가가 크게 올라 상대적으로 2012년은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낮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물론 수치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물가가 높은 수준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피부로 느끼는 물가부담이 큰데 수치가 떨어졌다고 사람들이 소비를 늘리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향후 1년간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기대인플레이션률은 여전히 4%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장래의 소비지출 계획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2011년 들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국민들이 2012년에도 물가부담은 커질 것이고, 소비지출은 점점 늘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하반기로 갈수록 세계경제가 안정을 찾아 환율이 떨어지고, 그에 따라 구매력이 상승하고 물가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다. 세계경제는 현재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불안정한 국면이다. 유로존은 단일통화 체제에 따른 문제점이 부각되어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미국경제는 여전히 침체의 늪을 해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동안 세계경제 성장을 지탱해오던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의 신흥국 경제도 침체우려가 증대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불안정하면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선호도가 커져 원/달러 환율은 상승하게 된다. 원채 세계경제 여건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환율의 방향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물가를 낮출 만큼 환율이 떨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의 3차 양적완화(시중의 국채를 매입해 달러를 푸는 것)카드도 꿈틀대고 있다. 최근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의회에 주택경기 부양을 건의한바 있고, 각 지방의 연방준비은행 총재들도 경기부양 필요성에 대한 발언들을 잇따라 하고 있다. 실제 재선을 생각해야 하는 오바마 입장에서는 경기회복에 대한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점점 양적완화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르면 3월부터 미 정부가 다시 돈을 풀기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곡물,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불러와 세계적인 물가상승을 부추길 것이다.
여기에다 2012년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올 초부터는 미국의 이란제재 문제로 국제유가, 휘발유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금리, 환율 등의 거시경제 지표보다는 행정력을 동원하고, 개별 공무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물가안정 책임제’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부동산 경기부양에 목을 매는 이명박 정부가 치솟는 전세 값을 잡기란 불가능하다.
2012년에도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부담은 줄어들기 힘들 것이다.
‘고용대박’에도 늘어나지 않는 민간소비
다음으로 고용은 이명박 정부의 예측대로 소비지출이 늘어날 만큼 증가할까?
고용은 보통 경기후행 지표라고 한다. 경기가 회복되고 몇 개월의 시차를 두고 고용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2011년 중하반기로 넘어오면서 경기침체의 징후들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2012년에는 이러한 침체의 영향으로 고용사정은 2011년 보다 더 악화될 전망이다.
단순히 일자리 증가가 소비확대로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2011년 취업자 수는 2010년에 비해 41만5000명이 늘어나는 등 2010년 2분기부터 대체로 전년 동기대비 40만명씩 늘어나는 추세였다. 하지만 민간소비 증가율은 2011년 내내 정체 혹은 감소추세를 이어갔다. 물가가 많이 올라 실질임금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측면도 있겠지만 늘어난 일자리의 질이 열악하기 때문에 소비지출 확대로 이어지지 못한 측면이 존재한다.
2011년 늘어난 일자리를 보면 주당 36시간 미만의 단시간 취업자가 전년에 비해 25.4%(91만7000명)이나 늘었고, 늘어난 전체 일자리의 10%가 넘는 노동자가 일시휴직자로 나타났다. 청년층의 고용사정은 여전히 열악하다. 2011년 취업자는 50대와 60대에서 44만개가 늘어난 반면 20대와 30대는 전년대비 각각 5만8000명, 4만7000명 감소했다1). 즉 청년층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은퇴한 부모세대들이 생계전선으로 내몰리며 열악한 환경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감소하던 자영업자 수(대부분 열악한 환경이다)가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양질의 일자리인 제조업 부문에서는 취업자 증가폭이 크게 둔화되었다. 이렇게 생계에 내몰려 열악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를 성장시킬 만큼의 소비여력이 생기기는 불가능하다.
정리해보자면 2012년 민간소비가 3.1%증가할 것이라는 정부의 전망은 상당히 안이하고 낙관적인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한국경제연구원이 민간소비 증가율을 각각 2.5%, 2.6% 전망한 것이 오히려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 따라서 2012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정부 예측치 3.7%에 훨씬 못 미칠 것이다.
내수 침체는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내수 확대에 있어 더욱 큰 문제는 한국경제의 민간소비가 단순히 물가가 조금 떨어지고, 지금과 같은 고용회복세가 이어진다고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취약한 민간소비 여력은 임금소득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부채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 그에 따라 가계부채는 9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난 상황이다. 소득으로는 필요한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빚으로 이를 메워온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지금, 더 이상 부채를 통해 민간소비 여력을 충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한때 25%가까이 상승했던 개인순저축률은 2010년 3.9%까지 떨어졌다. 201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개인순저축률 7.4%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며, 그 하락속도는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장에 개인들이 지출할 여력이 많지 않음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저축할 여력을 줄이면서도 소비를 하고 있지만 민간소비가 회복되지 못할 만큼 가계의 소비 여력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비에 있어 핵심적인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 비중도 감소하고 있고, 빈곤가구는 증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1월 4일 발간한 ‘201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 비율은 2000년 71.7%에서 2010년 67.5%로 감소했고, 빈곤층(중위소득2) 50% 미만)은 2000년 9.2%에서 2010년 12.5%로 늘어났다.
위와 같은 사실들은 정부가 진정으로 민간소비와 내수회복을 기대한다면 서민들의 소득을 개선시키고, 중산층을 확대 할 수 있는 대책을 찾아야 함을 보여준다. 더 이상 부채에 의존한 소비확대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가 주도해 양질의 일자리를 적극 만들어내고, 부자증세 등 적극적인 소득재분배를 통해 서민들의 소비여력을 복원해야 한다. 특히 복지문제는 단순히 시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내수여력을 확대시키고 성장률을 재고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서민들이 소비여력이 없더라도 부유층이 돈을 많이 쓰면 내수가 활성화 될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소수의 부유층들이 소비를 많이 늘린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소비여력이 없으면 그 영향은 크지 않다. 또한 고소득층일수록 해외소비가 많다. 게다가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늘어난 소득을 적극적으로 지출하는 경향이 크다. 아래 표는 분위별 한계소비성향을 나타낸 것이다. 한계소비성향이란 새로 늘어난 소득 중에서 소비에 지출하는 비율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계소비성향이 0.6이라는 것은 소득이 1원 늘면 0.6원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표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소득이 작은 계층일수록(1분위에 가까울수록) 한계소비성향이 크다. 즉 고소득층의 소득을 저소득층으로 이전시키면 그에 따라 민간소비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갈된 일반 서민들의 소비여력을 증대시키는 정책, 적극적인 소득 재분배 정책은 민간소비를 확대하는데 있어 중요한 문제다.
역행하는 정부의 내수확대 정책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내수활성화 대책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12년 이명박 정부는 내수활성화를 위해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민간자본의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서비스산업 선진화’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민영화‧규제완화 역시 빠지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여가시간을 늘려 국내 소비를 확대하고, 국내 관광활성화를 위한 방안들도 발표하고 있다. 관광활성화에는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투자개방형 외국의료법인 도입을 통한 의료관광 활성화, 요트‧크루즈 사업을 통한 해양관광 활성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공식적인 안은 아니지만 4대강 주변에 카지노 사업을 포함한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국내 고소득층의 해외 소비를 줄이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으로 외국인들의 국내 소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자본을 포함한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 내수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4년간 실패한 MB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다. 외국자본과 재벌기업들의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지 일반 서민들의 구매력을 증대시키는 방안은 아니다. 집권 초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고, 외국자본 유치에 열을 올렸지만 서민들을 위한 내수가 활성화 되었나? 소비여력이 없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여가시간이 늘어난다고 지출을 늘릴 수 없다. 재래시장 등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새롭거나 창의적인 대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내수확대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각종 민영화와 규제완화는 한국경제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서민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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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은 2012년에도 혹독한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낙관적 예측과는 다르게 내수가 경제를 뒷받침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정부의 내수확대 정책역시 효과를 보기 힘들뿐더러 서민경제와는 무관한 것들이다.
올해는 총선, 대선이 있는 해이다. 세계경제가 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수출주도 경제성장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모든 정치세력이 겉으로는 내수확대를 이야기 할 것으로 보인다. 진정 서민들을 위한 내수확대 방안이 무엇인지 가려볼 ‘눈’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적극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한 서민‧중산층의 구매력 증대가 필요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서민을 위한 서비스산업 육성, 남북경제협력 강화 등 한국경제의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 내수확대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외국자본과 재벌대기업을 위한 ‘내수확대’를 이야기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미FTA 등에 열을 올리는 세력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각주>
1) 통계청은 인구증감효과를 감안할 경우 20대 1만7000명 증가, 30대 1만4000명 증가로 나타난다고 함. 하지만 여전히 그 증가폭은 각각 2만명에 미치지 못함. 이러한 효과를 적용할 경우 40대와 50대는 모두 4만6000명, 60대 이상이 4만명 증가.
2) 총 가구 중 소득 순으로 순위를 매긴 후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
※ 1월 20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교양지 <새세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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