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대전환, 대격변의 2012년이 밝았다. 한국의 총선과 대선,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 중국의 권력교체를 앞둔 2012년의 목전에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라는 커다란 정치적 사건을 겪게 되었다.
지금 북한은 2010년 9월 28일의 조선노동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 조선노동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재편을 완료한 듯하다. 2011년 12월 30일, 북한은 조선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김정은 부위원장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1월 1일, 김정은 부위원장은 "근위 서울 류경수 105탱크사단"을 현지지도하는 것으로 2012년 북한을 이끌기 시작하였다.
2012년 북한은 어디로 갈 것인가? 2012년 북한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라는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에 의거한 정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2012년, 북한의 21세기를 진단하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알아야 한다. 이에 우리사회연구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보는 2012년, 북한>이라는 연재분석을 실시한다.
분석은
1.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보는 김정은 정치
2.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 분석
3. 2012년 이후, 북한의 대남정책
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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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과 유훈
2011년 12월 17일, 예기치 못한 중대상황을 접한 북한은 김정은 조선노동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유훈통치"를 강조하고 있다.
2011년 12월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향후 북한의 동향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는데 이 자리에서 국가정보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 통치가 사실상 시작됐다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순직 수석연구위원은 2011년 12월 29일 `포스트 김정일 시대 개막'이란 보고서에서 "김정은 부위원장은 정치, 경제적으로 선군정치와 강성대국 건설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2년, 북한의 행보를 파악하려면 북한이 강조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과 유훈이 무엇인가 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1년 12월 28일,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일 동지의 혁명유산"이라는 제목의 정론을 발표하였다. 정론에서는 "인공지구위성의 제작 및 발사국의 자랑에 핵보유국의 존엄"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이라 강조하였으며 "지식경제시대의 민족의 앞날을 앞당겨주신 새 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피눈물로 꽉 찬 슬픔의 대하를 강성국가에로의 대진군대오로 격변시킨 민족의 정신력"을 유산으로 규정하였다. 이를테면 선군정치로 마련된 국방력, "새 세기 산업혁명"을 일컫는 CNC 자동화, 그리고 "고난의 행군"을 극복한 북한 특유의 정신력을 세 가지 유산으로 규정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 - 선군정치로 마련한 국방력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번째 유산으로 거론된 핵과 우주발사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식화하였다는 "선군정치"에 의해 설명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선군정치란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위업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북한에서 선군정치 용어는 1997년 12월 12일부터 전면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2003년 1월 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의 담화를 "선군혁명로선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혁명로선이며 우리 혁명의 백전백승의 기치이다"라는 논문으로 엮었다.
논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 단계에서는 전체 국민의 노동계급화가 진행되고 제국주의와 대치하고 있는 조건에서 혁명군대가 혁명의 주력군으로 나선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종래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이후의 혁명의 주력군 문제를 해명하지 못해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하였는데 선군정치가 혁명의 주력군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선군정치를 토대로 북한은 혁명의 주력군인 북한군에 대한 정치사상 사업에 집중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의 정신, 영웅적 희생정신을 조선인민군의 "정치사상적 풍모"라고 주장하며 이를 가리켜 혁명적 군인정신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월간 중앙 2000년 10월호에 실린 "김정일 자신감 뒤에는 120만 막강 북한군 버티고 있다"는 기사에 실린 미8군 정부참모부(J-2)가 2000년 상반기에 작성한 북한인민군 전력평가보고서에는 인민군이 "50년에 걸친 정신교육으로 정신무장이 잘 된 상태"라고 하면서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군은 틀림없이 싸울 것이며 아주 잘 싸울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2004년 9월 18일자 조선일보의 '판문점 중좌 "우리와 미국 전쟁관 다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소속 김상준 중좌(중령급)는 "사람 중심"의 북한 전쟁관과 "무기 중심"의 미국의 전쟁관 사이에는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면서 북한군의 승리를 확신하며 "싸움이 붙으면 세상 사람들은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는 알게 될 것이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2년 1월 4일, “북한의 군사력과 군사전략”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2011년 현재 북한은 102만명에 이르는 육군을 비롯해 탱크, 방공포, 군함 등이 역대 최대 규모”라며 “전투기 수는 1986년보다 적지만 1990년대 이후 최신예 미그 29기가 도입되었고 특히 잠수함의 증강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일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과 대립시키려 하지만 사실 선군정치와 주체사상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 - CNC화
북한당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으로 내세우는 것은 이른바 "새 세기 산업혁명"으로 거론되는 CNC화, 즉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자동화 설비이다. 북한은 공장의 생산체계가 컴퓨터에 의해 조종되고 제어되는 "자동화"를 "CNC화"로 표기한다.
공장설비에 자동화가 도입되면 노동인력 구성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일반 생산직 근로자의 비중이 줄어들게 되고 자동화 생산공정을 관리하는 사무직 근로자의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 즉 2차 산업 비중이 줄어들고 3차 산업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동화 설비도입이 사회적으로 전면화되는 현상을 "새 세기 산업혁명"이라 명명하였다. 이러한 자동화 설비도입은 북한당국이 2012년을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선언할 수 있게 한 근거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대외경제연구원 홍익표 박사는 보고서 "북한 경제의 이해 : 선군시대 경제이론, 구조, 정책"에서 북한은 새로운 세기가 과학기술혁명의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1차 산업화 추진기에 비해 "단번도약"이 가능하다고 보고, 경제정책의 강조점도 "단번도약"의 필요성에 맞추고 있다고 하면서 북한당국의 "단번도약"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핵, 미사일 개발 등 최첨단 국방공업에서 단기간에 이뤄낸 성과에 기초하고 있다고 서술하였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요한 유산이라고 강조하는 "인공지구위성 발사국의 자랑과 핵보유국의 존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방식과 산업설비에서 CNC화가 함께 맺은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 - 북한의 정신력
북한은 우주발사체와 핵, CNC 자동화 설비 등 눈에 보이는 유형유산 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무형유산도 제시한다. 이는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 일컬어지는 경제난을 극복한 북한의 일심단결 정신력이다.
1990년대 북한이 겪은 경제난은 북한주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련을 안겨주었다. 북한이 2012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우리 혁명이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던 시기"라고 표현할 만큼 90년대 경제난은 상상을 초월하는 난관이었다 할 수 있다.
1995년과 1996년에 북한 전체에 걸쳐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북한의 대다수 농경지는 유실되었다. 식량생산량이 50% 가까이 급감하여 식량난이 발생하였고 탄광시설은 침수되어 석탄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렇게 되자 석탄을 원료로 가동되는 화력발전이 중단되었고 이는 전력과 에너지 부족을 야기하였다. 에너지 시설의 가동률 저하는 북한 산업 전반의 침체를 가져왔으며 식량난으로 시작된 북한 경제의 경색은 전기난, 에너지난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90년대 북한의 경제난은 본질적으로 식량과 전기의 공급난이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식량문제 해결방도로 대규모 수로공사, 감자농사혁명, 토지정리사업 등을 추진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감자농사 방침에 의해 2008년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추정한 북한의 감자생산량은 152만톤, 고구마생산량은 39만톤으로, 통일부가 잠정 추산하는 북한곡물생산량 450만톤의 42%에 이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력문제를 해결할 3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는 강의 흐름을 변경시키는 대규모 수로터널을 뚫어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유역변경식 대형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다음으로 지역의 특색에 맞는 중소형 발전소를 널리 보급하여 각 지역마다 전기의 자급자족을 추구하며, 마지막으로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소는 대형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기보다는 기존 발전소의 설비를 보수하는 것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은 1998년 한해 약 5,000여 개의 중소형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였으며 이중 자강도에서만 97년과 98년, 44,000kW의 발전용량을 건설하여 전기를 자체로 해결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강도에서 경제난 극복 성과를 이른바 "강계정신"이라 명명하고 북한 사회에 널리 선전하였다. 식량과 전력 부문을 비롯한 각계의 노력에 힘입어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였음을 선언하고 1998년에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목표로 제시하기에 이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1999년 이래 2005년까지 7년 연속 (+) 성장세를 기록하였으며 2005년 북한 경제는 실질 GDP 기준 3.8%의 성장세를 보여 성장 폭도 2003년의 1.8%보다, 2004년의 2.2%보다 더 확대되었다고 한다. 한국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2006년과 2007년, 2009년에 (-) 성장을 면치 못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에 따른 정치적 편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최근에 대규모 과수기지가 새로 건설되고 건설사업이 본격화되는 등, 경제 성장의 속도가 더 높아지고 있는 징후들이 보이고 있다.
북한당국은 그들이 90년대 경제난을 헤쳐온 정신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2월 10일에만도 함경남도에 있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 급수침전지, 룡성기계연합기업소 분공장, 신흥산화학공장, 함흥편직공장, 흥남구두공장, 성천강수출품출하사업소, 함흥시 회상지구에 새로 건설된 채소온실 등 7개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였다고 한다. 12월 13일에는 평양방어사령부로 알려진 조선인민군 제966대연합부대 화력타격훈련을 현지지도하였으며 12월 15일에는 평양에 있는 광복지구상업중심(대형마트)과 하나음악정보센터를 현지지도하였다고 한다.
낮 시간 동안 현지지도를 끝내면 밤에는 문건검토, 결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통일연구원의 연구총서(2001-32)인 "김정일 연구 : 리더쉽과 사상(Ⅰ)"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노동당, 내각,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등 다양한 기구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문건을 전부 읽고 결제하며 자신의 참모나 개인 비서에게 넘기는 일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분석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주일에 접하는 문건의 분량은 대략 500쪽 이상으로 자신의 집무실에서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12월 17일, 인터넷 언론 뉴스앤은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심근경색 등으로 쓰러진 원인에 대해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온 것을 꼽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하루걸러 하루 대외활동을 할 정도로 무리한 일정을 강행해왔다."고 보도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 - 사회주의강성대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8월 22일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 정론을 통해 경제난 이후 북한의 목표지점을 "사회주의강성대국"으로 새롭게 제시하였다. 서울대학교 김세균 교수는 "북한체제의 형성과 한반도 국제정치"란 책에서 "1999년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우리의 사회주의 강성대국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사상으로 일색화된 주체의 나라이다"라는 표현이 등장했다."고 서술하였다. 김세균 교수는 "주체의 강성대국 건설"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책임자로 제시한 국정목표이자 새로운 통치이념이라 할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사회주의강성대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다. 사회주의강성대국이란 과연 무엇인가? 북한은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의 2009년 12월 27일 자 논설에서 "강성대국은 단순히 영토의 크기나 인구 수, 사회생활의 일정한 분야가 높은 단계에 이른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력이 강하고 모든 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 없이 사는 나라"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 의거, 북한은 사회주의강성대국은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의 지위에 이미 도달해 있으며 앞으로 경제강국의 면모만 갖춘다면 사회주의강성대국이라 선언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북한 당국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가치판단은 명백히 독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경제강국의 목표만큼은 달성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2년을 "사회주의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규정하고 2011년 신년공동사설에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자!"며 주민생활 향상을 강조하였다.
북한의 변화된 모습은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12월 8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니콜 피네만 한미경제연구소 학술연구부장은 평양 내부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면서 대북제재에 대한 징조조차 찾지 못했다면서 휴대전화의 확산, SUV 차량과 택시 증가, 105층짜리 류경호텔 외벽에 유리 부착 등을 목격하였다고 하였다. 또 그는 평양 시내가 매우 깨끗해졌다고 전했다.
향후 북한의 진로
북한의 2012년 이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과 유훈에 의거할 것이라는 점은 일치된 진단이다. 당면해서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은 북한의 총적 목표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지금껏 진행해오던 CNC화, 즉 생산설비 자동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농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생산량을 적극 늘려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사회주의강성대국"을 선포하고자 할 것이다. 2012년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새 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함남의 불길"을 언급하며 경제의 도약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지목하는 "강성대국 건설의 주력군"은 조선인민군이다. 조선인민군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속도전을 앞세워 북한의 주요 건설대상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조선인민군의 활동방식을 "단숨에"라고 표현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세운 속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시사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조국통일과 한반도 평화협정이 꼽힌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번째 유산이라고 강조한 우주발사체와 핵을 앞세운 군사력을 적극 활용하며 북미간 대타결을 이끌어내고자 할 것이다. 2012년 신년공동사설에는 4년만에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등장하였다. 결국 북한당국의 총적인 대외정책의 목표는 "6.15 10.4 선언에 기초한 조국통일"과 더불어 "미군없는 한반도 평화체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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