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 대통령이 북측에 대해 언급을 회피한 까닭
2012년 1월 24일 미국 연방상하원이 합동으로 진행한 새해 대통령 국정연설에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하였다. 새해 국정연설에서 그는 중국에 대해 다섯 차례나 부정적으로 언급하면서도, 이전과 달리 북측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북측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에서 언제나 비방발언이 아니면 강박발언 따위를 늘어놓곤 하는 고약한 악습이 있다. 이를테면,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새해 국정연설에서 “북측은 핵무기 보유를 추구함으로써 점점 더 고립되고 있으며, 강력한 대북 제재가 적극적으로 이행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고 말했고, 2011년 새해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북측에게 핵무기 포기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해 국정연설에 북측의 핵문제를 빠짐없이 포함시켜온 미국 대통령이 올해는 왜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을까?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가안보 관련 정보평가서를 작성하여 국가정보국에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의 업무체계를 보면, 전 세계를 7개 지역으로 분류해 놓았는데, 그들이 7개 지역 이외에 단일국가로 유일하게 주목하는 나라가 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이런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미국이 대북관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처럼 대북관계를 중시하는 미국이 왜 올해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북측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까?
북측과 미국이 핵문제를 둘러싸고 대립과 충돌을 끊임없이 빚어온 지난 16년 동안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새해 국정연설에서 북측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경우는 이번 말고 두 차례 더 있었다. 2007년 새해 국정연설과 2008년 새해 국정연설에서 부쉬 당시 미국 대통령은 북측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2007년 1월 23일 새해 국정연설에서 부쉬 당시 대통령이 북측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명백하다. 북미 핵안보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던 당시에 미국 대통령이 감히 북측에게 험담을 늘어놓을 수 없었으므로 언급을 회피하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2006년 10월 9일 북측이 실시한 지하핵실험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은 미국은 2007년 1월 16일부터 17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북미 양자회담에 끌려나갔다.
부쉬 당시 대통령은 2007년에 이어 2008년 1월 28일 새해 국정연설에서도 북측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도 명백하다. 2007년 9월 1일부터 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양자회담에서 두 나라는 2007년 안에 북측이 모든 핵시설을 신고하고 불능화하기로 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대북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하였고, 실제로 12월 19일부터 23일까지 미국 국무부가 동원한 불능화실무반이 방북하였다. 북측의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미국의 대북관계 정상화 추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감히 북측에게 험담을 늘어놓을 수 없었으므로 언급을 회피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새해 국정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왜 북측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였을까? 그 까닭도 역시 명백하다. 비록 연기되기는 하였으나, 2011년 12월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3차 북미 고위급회담을 진행하려고 예정하였기 때문이다. 회담이 열리기 닷새 전인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너무도 뜻밖에 서거하여 제3차 북미 고위급회담은 일정에 맞춰 열리지 못했다.
제3차 북미 고위급회담이 개최일정까지 잡아놓았다가 북측의 국상으로 연기되었다는 사실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은 제3차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리는 경우 발표하려고 하였던 합의내용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북측과 미국이 2011년에 두 차례 고위급회담을 진행하면서 커다란 진전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진전상황을 가리켜 핵안보협상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제3차 북미 고위급회담에서는 이미 마련된 ‘돌파구’를 공식화할 예정이었다.
북측의 국상으로 제3차 북미 고위급회담이 연기되는 바람에 발표하지 못한 합의사항은 무엇일까? 북측과 미국이 무엇을 합의하였기에 오바마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북측에 대해 언급을 회피한 것일까? 새해 국정연설에 나선 미국 대통령의 입을 막아버린 것만 보더라도, 그 합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곡물 대신에 영양과자를 주겠다고?
2011년 12월 15일과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리근 외무성 북미국장과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가 회담을 갖고 미국의 대북식량제공문제를 협의하였다. 미국은 식량지원이라는 용어를 쓰는 데 비해, 북측은 식량제공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식량지원은 사실과 다르므로 식량제공이라고 해야 옳다.
외교술과 기만술을 혼합하기 좋아하는 미국은,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측이 미국에게 식량지원을 간청하였기 때문에 미국이 식량을 지원해주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미국을 시혜자로, 북측을 수혜자로 둔갑시키려는 기만선전이다. 반북수구성향의 선동가들은 북측에서 식량난으로 식량공급제마저 마비되었다는 식의 허황된 악선전을 늘어놓지만, 지금 북측은 식량난을 겪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게 식량지원을 간청한 것도 아니므로, 식량문제는 시혜자와 수혜자의 관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2012년 1월 11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물음에 답변한 바에 따르면, 식량제공문제는 북측이 미국에게 식량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사전 신뢰구축조치의 일환으로 식량 50만t을 북측에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북측 외무성 대변인의 답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미국은 식량 50만t 가운데 17만t만 제공하고 2009년 3월에 식량제공을 중단하였는데, 그런 미국이 2010년 말과 2011년 초에 걸쳐 진행된 북미 비공식 접촉에서 사전 신뢰구축조치의 일환으로 대북식량제공을 재개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던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은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와 식량평가단을 2011년 5월 24일부터 28일까지 평양에 보내 식량제공문제를 협의하였다. <아사히신붕> 2011년 6월 3일 보도에 따르면, 그 협의를 통해 북측과 미국은 미국의 대북식량제공에 대해 합의하였다.
그런데 미국이 이번에 갑자기 말을 바꿨다. 미국은 북측에 제공하기로 약속한 식량 33만t 가운데 24만t만 제공하겠으며, 곡물이 아니라 영양과자를 제공하겠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다른 나라와 맺은 공약을 헌 신짝처럼 팽개치는 악습에 젖어있는 세계 최악의 신용불량국가인 미국은 이번에 또 다시 그 악습이 발동하여 공약을 제멋대로 바꾸려고 하였다. 그에 대해 북측은 미국이 원래 공약한 50만t 가운데 아직 제공하지 않은 33만t을 제공해야 하며, 미국이 원래 공약한 대로 곡물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2011년 12월 15일과 16일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과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가 베이징에서 진행한, 북측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미국의 공약이행문제를 합의하기 위한 회담의 결과는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2012년 1월 11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물음에 답변한 보도기사에서 밝혀졌다. 그 보도기사는 “미국이 초기에 론의되던 30만t 이상의 식량지원과는 다르게 제공량과 품목을 대폭 변경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의 신뢰조성의지에 대해 의문시하고 있으며 2011년 5월에 토의한 계선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미국에 과연 신뢰조성의지가 있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공약과 관례에 따라 곡물 33만t을 북측에 제공함으로써 신뢰조성의지를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 일간지 <USA TODAY> 2010년 2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꼴에 해당하는 1,400만 명의 어린이들이 무료급식을 받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준비해둔 영양과자가 있다면 그것은 굶주리는 미국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신뢰구축조치에 관한 잠정 합의, 그리고 한 걸음 더 앞으로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북측과 미국은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을 베이징에서 2011년 12월 22일에 진행하기로 이미 합의한 바 있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 직전에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과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가 먼저 회담을 열고 식량제공문제를 협의하였다. 만일 2011년에 진행된 두 차례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 미국은 북측에 식량제공을 재개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식량제공문제를 북측과 협의한 배경에는, 2011년 10월 24일과 25일 제네바에서 진행하여 어떤 합의에 이른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의 진전된 분위기가 놓여있다. 그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합의에 이른 것일까?
2011년 10월 25일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이 끝난 직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취재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일련의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 1차 대화 때 합의한 데 따라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신뢰구축조치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아직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문제도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토하고 다시 만나 풀어나가기로 합의했다. 신뢰구축을 위해 해야 할 문제에 있어 전진이 있었다. 무엇인지는 앞으로 알게 된다. 상세히 말은 못한다.” 이 인용문을 읽어보면, 북측과 미국은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신뢰구축조치에 관한 잠정 합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AP> 2011년 12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과 미국이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발표하기로 예정된 합의사항은, 북측이 우라늄농축,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중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재입국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보도기사에는 아주 심한 오보가 들어있다. 그 보도기사는 북측이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언급하였을 뿐, 미국이 취해야 할 상응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보는 그것만이 아니다. 그 보도기사에는 미국의 대북식량제공이 마치 미국의 상응행동인 것처럼 씌여있으나, 그것도 명백한 오보다. 위에서 자세히 논한 것처럼, 미국의 대북식량제공은 북미 핵안보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미국의 사전 신뢰구축조치이므로, 핵안보 협상에 의제로 포함되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 2009년 11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수행한 고위관리는 “식량지원은 일괄타결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관계에서 핵문제와 식량문제를 맞바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AP>는 신뢰구축조치문제와 핵안보문제를 헷갈리는 오보를 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이뤄낸 신뢰구축조치에 관한 잠정 합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2012년 1월 1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북측 외무성 대변인의 답변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의 답변에 따르면, 2011년 7월 뉴욕에서 진행된 제1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은 “우라니움농축 림시중지를 비롯한 신뢰구축조치들을 우리(북측이라는 뜻-옮긴이)가 취하는 경우 미국도 제재 림시중지 등 신뢰조성을 위한 조치들을 토의하는 동시에 식량제공조치도 취하겠다고 그들 스스로가 정치화하여 제안”하였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에 따르면, 제1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이 우라늄농축 임시중지를 비롯한 몇 가지 신뢰구축조치를 북측에게 제안하면서,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대북제재 임시중시를 비롯한 몇 가지 사전 신뢰구축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북측이 우라늄농축을 임시 중지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대북경제제재를 임시 중지하는 것은 북측과 미국이 등가적으로 취하는 동시행동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북측이 우라늄농축이라는 대미압박 ‘초강수’를 둔 목적은 미국의 대북경제제재를 중지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북측이 우라늄농축이라는 대미압박 ‘초강수’를 둔 목적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폐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물론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면 당연히 대북경제제재도 중지되겠지만, 경제제재가 적대정책의 전부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은 6.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62년 동안 자기들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수많은 대북제재조치들을 남발해왔다. 2008년 6월 26일 부쉬 당시 대통령이 북측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중지하면서도, 북측에 대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C)’ 적용은 종전대로 유지하였다. 그 법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북측을 경제제재대상으로 지정하는 조치를 해마다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가장 공고한 자립경제를 구축한 북측에게 제재조치는 무력하였고, 북측 경제를 제재해보려는 미국의 집요한 책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2010년 11월 29일 유엔 제재위원회가 발표한 대북제재 실태보고서는 대북제재가 북측의 물자교역 및 무기교역을 차단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의 대북경제제재가 이처럼 무력해졌으므로, 북측은 미국이 경제제재를 중지해주는 조건으로 우라늄농축을 중지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전면적으로 폐기하는 조건에서만 우라늄농축을 중지할 수 있다.
위의 인용문에 신뢰구축조치라는 용어가 들어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대북식량제공 재개와 대북경제제재 중지는 북측과 미국이 상호 핵안보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미국의 사전 신뢰구축조치들이다. 미국이 대북식량제공을 재개하고 대북경제제재를 중지하는 사전 신뢰구축조치를 취하는 경우, 당연히 북측도 그에 상응한 사전 신뢰구축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우라늄농축 임시중지가 북측의 신뢰구축조치로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전 신뢰구축조치로서의 우라늄농축 중지는 어디까지나 임시중지이지 영구중지는 아니다.
북측이 우라늄농축을 영구히 중지하는 조건은 단 하나 뿐이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전면적, 불가역적으로 폐기하는 조건에서만, 오직 그런 조건에서만 북측은 우라늄농축을 영구히 중지할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전면적, 불가역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가 일반적인 의미의 평화정착이나 외교관계 수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북측과 미국의 관계에 제기된 상호 핵안보문제의 해결을 뜻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북측과 미국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상호 핵안보문제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 핵우산을 자진 철거하고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군하면, 그에 상응하여 북측도 영변 흑연감속로에서 생산된 핵물질로 제조한 핵탄두를 자진 폐기하고 우라늄농축을 영구히 중지하는 것이다. 북측과 미국 사이에 제기된 상호 핵안보문제는 바로 그런 등가적 동시행동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9.19 공동성명에서 말한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11년에 진행된 두 차례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북측과 미국이 사전 신뢰구축조치에 관한 잠정 합의에 이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잠정 합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미 핵안보문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한 의제까지 집중적으로 논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마지막 한 차례 남아있는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리면, 북측과 미국은 쌍방이 이행할 사전 신뢰구축조치를 세상에 발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동안 집중적으로 논의해온 상호 핵안보문제를 일괄타결하는 의제를 최종적으로 협상하기 위한 일련의 격동적 조치들을 합의할 것이다.
북측 외무성 산하 군축 및 평화연구소가 2012년 1월 21일에 발표한 연구보고서는 “6자회담이 열리면 자연히 핵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참가국들 사이의 관계를 정상화하며 우리에게 경제적 보상을 포함한 협조를 제공할 것을 예견한 9.19 공동성명의 리행이 추진되게 된다”고 지적하였는데, 6자회담이 개최되고 9.19 공동성명이 이행된다는 말을 북미관계에 대입시키면,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개최되고 북미 핵안보문제 일괄타결 협상이 추진된다는 뜻이 분명해진다.
북미 고위급회담으로서는 마지막이 될 제3차 고위급회담에서 쌍방이 합의할, 핵안보협상에 관한 일련의 조치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북측 최고영도자의 고위급 특사와 미국 대통령의 고위급 특사가 워싱턴 디씨와 평양을 각각 교차방문하여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핵안보협상의 추진일정이 합의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오만과 오판
북측과 미국이 2011년에 두 차례 진행한 고위급회담에서 내온, 사전 신뢰구축조치에 관한 잠정 합의에는 미국이 북침전쟁연습을 중지하는 문제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미국이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면서 그 무슨 신뢰구축조치를 이행하는 것은 졸렬하기 짝이 없는 사기극이다. 만일 2011년 12월 22일 베이징에서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예정대로 열렸더라면, 미국은 당연히 2012년도 북침전쟁연습을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연기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아직 열리지 않은 조건에서, 다시 말해서 사전 신뢰구축조치에 대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조건에서, 2012년도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느냐 마느냐 하는 쟁점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안에서 제기된 것이다. 2012년도 ‘키 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강행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미국이 고심하고 있다는 <연합뉴스> 2012년 1월 19일 보도는, 그런 쟁점이 제기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국무장관은 ‘키 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중지하자는 의견을 꺼냈을 것이고,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이전처럼 강행하자는 의견을 꺼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쟁점은 최악의 의견을 택하는 것으로 해소되고 말았다.
2012년 1월 27일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산하 공보실을 통해 2012년도 ‘키 리졸브/독수리’ 북침전쟁연습 일정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안에서 제기된 쟁점이 결국 전쟁연습 강행 의견으로 해소되었음을 말해준다. 제 버릇 개에게 주지 못한다는 속담에 걸맞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침략야욕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을 자꾸 물어대는 사나운 개에게 매를 들어 길들이는 것처럼, 침략야욕에 날뛰는 전쟁광신자들을 강력한 군사적 대응력으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너무도 잘 아는 북측은 올해도 이전처럼 북침전쟁연습 기간에 기상천외한 대응전술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올해 ‘키 리졸브/독수리’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겠다고 결정하면서, 항모강습단을 북침전쟁연습에 동원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고심하였을 것이다. 만일 항모강습단까지 동원하는 경우, 2011년 두 차례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잠정 합의한 사전 신뢰구축조치는 물거품이 될 것이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의 눈치를 살피면서 항모강습단 동원을 강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군부가 ‘키 리졸브/독수리’ 북침전쟁연습을 끝내는 4월 30일까지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중요한 문제가 있다. 북측에서 2012년 4월 15일은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민족 최대의 경축일인데, 북측은 영변 핵시설단지에서 공사 중인 열출력 100MW급(발전용량 25-30MW급) 소형 경수로를 바로 그 날까지 완공할 계획을 세웠다. 남측 텔레비전방송 <KBS>가 2011년 3월 말에 촬영된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를 인용하여 2011년 4월 7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1년 3월 말 현재 북측은 높이 40m, 지름 22m의 경수로 구조물 공사를 거의 끝냈다. 북측은 미국이 전혀 알지 못하는 비밀공장에서 경수로 제작을 불철주야 다그치고 있다.
상황이 그처럼 긴박하게 전개되는 판인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12년 4월 15일이 북측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북측이 무슨 재주로 그 때까지 경수로를 완공하겠느냐는 넋두리만 늘어놓았다. 물론 그들은 정찰위성이 들여다볼 수 없는 경수로 구조물 안에서 지금 무슨 작업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므로, 자기들이 오판하였는지도 모를 터이니 속은 편할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그들을 오판으로 끌어갔고, 오판의 덫에 걸린 그들은 중지했어야 마땅한 북침전쟁연습을 또 다시 강행함으로써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을 4월 30일 이후로 지연시키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북측이 핵강국 지위를 확보함으로써 이미 파열구를 낸 핵무기비확산체제(NPT)를 완전히 무너뜨리느냐 마느냐 하는 격동의 시기에 오만의 덫에 걸려 상황을 오판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바로 그 오판 때문에 앞으로 뼈저린 고통을 겪으며 후회할 것이다.
2012년 01월 3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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