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05일 (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두 가지 전술교리를 펼친 여섯 가지 작전전개
2011년 11월 29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중요한 기록영화 한 편을 방영하였다. 기록영화 제목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합동훈련을 지도하시였다’이며, 상영시간은 16분 20초다. 그 기록영화는 2011년 9월 7일에 실시된 인민군 3군 합동훈련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3군 합동훈련이 실시된 곳은 서해안 북측 지역 어느 곳인데, 해만(海灣) 한 가운데에 섬 하나가 떠있고, 그 섬을 너머 건너편 바닷가에 높은 산이 솟아있는 지형이다. 그 산의 중턱에 타격목표가 설치되어 있었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그 기록영화를 방영한 목적은 인민군 작전능력을 세상에 공개하려는 것인데, 공개된 작전능력은 전술작전능력에 한정되었다. 전략작전능력은 군사기밀이므로 당연히 공개하지 않았고, 전술작전능력도 전부 공개한 것이 아니라 일부만 공개하면서, 민감한 군사기밀이 촬영된 장면은 영상편집과정에서 삭제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록영화에는 인민군 전술작전능력 가운데 3분의 1 정도만 공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훈련에 참가한 인민군 육해공군 부대들은 각종 전술무기를 동원하여 집중공격 전술교리와 연속타격 전술교리를 입체전 방식으로 전개하였는데, 두 가지 전술교리를 펼친 여섯 가지 작전전개양상은 아래와 같다.
첫째, 지상화력전 훈련에는 130mm 해안포, 155mm 장거리포, 12련장 107mm 견인방사포, 2축4륜 차량탑재 24련장 107mm 방사포, 3축6륜 차량탑재 30련장 122mm 방사포, 4축8륜 차량탑재 40련장 240mm 방사포, 170mm 자행포(남측에서는 자주포), 폭풍호 전차가 동원되었다.
인민군 지상화력전의 특징은 각종 지상화력을 불시에 총동원하여 짧은 시간 동안 타격목표에 강력한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3군 합동훈련에 동원된 지상화력이 바로 그러한 집중화력의 위력을 과시하였다. 중턱에 타격목표가 설치된 산 전체가 순식간에 초토화하는 놀라운 화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방사포는 발사간격이 거의 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연속발사하였는데, 로켓포탄 40발을 30초 동안 무더기로 쏘았다. 재빨리 재장전한 40련장 240mm 방사포를 쏘는 2차 발사 장면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방사포 1문이 1분 30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 무려 80발을 연속사격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군 다련장로켓포(MRLS)는 흔히 타격대상에 강철비(steel rain)를 쏟는다고 표현하지만, 인민군 방사포는 타격대상을 불폭풍(flare storm)으로 날려버린다고 표현할 수 있다. 각종 지상무기를 마음 먹은 대로 생산하고 자급자족하는 막강한 국방공업력이 있어야 그러한 불폭풍 지상화력전을 전개할 수 있다.
훈련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각종 방사포들이 지상전 훈련만이 아니라, 해상전 훈련과 해안방어전 훈련에도 등장한다는 점이다. 특히 12련장 107mm 견인방사포를 해안방어전 훈련에 동원한 것이 돋보였는데, 그 방사포를 바다쪽으로 집중발사한 순간, 수많은 물기둥이 한꺼번에 솟구쳐 마치 거대한 병풍을 해수면에 둘러치는 듯한 그물망 사격의 놀라운 광경을 연출하였다. 전시에 방사포 그물망 사격은, 바다에서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의 상륙정을 무더기로 격침할 것이다.
또한 170mm 자행포는 넓은 지역을 초토화하는 집중사격이 아니라 작은 표적을 조준사격하는 훈련에 동원되었고, 최신예 전차 폭풍호는 일렬대형으로 바닷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특이한 도하전 훈련에 동원되었다. 원래 전차 도하전은 강이나 내를 건너는 작전인데, 폭풍호 전차는 놀랍게도 드넓은 해만을 건너가고 있었다.
둘째, 대공방어전 훈련에 지대공미사일이 동원되었다. 2010년 10월 10일 인민군 열병행진에 등장하였던 주체식 요격미사일종합체가 그 훈련에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영상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지대공미사일은 발사차량에 실린 원통형 수직발사관에서 발사되었을 것이다. 지대공미사일은 하늘로 솟구쳐 오르다가 공중에서 붉은 원형화염을 한 번 더 방출하여 가속도를 내며 고속으로 추적비행을 하였고, 얼마 뒤 표적무인기를 공중격파하는 짜릿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셋째, 공중강습전 훈련에 강습헬기와 병력수송기가 동원되었다. 방사포와 자행포의 집중-연속타격으로 포연이 자욱해진 가상적진을 향해 저공으로 침투비행한 강습헬기에서 특수전 병력이 줄을 타고 지상에 내리는 저공강하훈련이 진행되었고, 병력수송기로 공수된 특수전 병력이 낙하산을 타고 가상적진에 침투하는 고공낙하훈련이 진행되었다.
넷째, 공중전 훈련에는 최고의 민첩성을 자랑하는 미그 29가 등장하여, 저고도 근접공중전에 필요한 공중회전비행술, 급상승비행술 등을 보여주었다. 미국군이 보유한 전투기들은 가시거리 밖의 공격(BVR)에 적합하게 개발된 것이어서, 전투종심이 매우 짧은 한반도 상공에서 저고도 근접공중전이 벌어지면 미그 29를 당하지 못한다. 북측이 미그 29 비행훈련장면을 공개한 것은 처음인데, 미그 29 3대가 편대를 이루어 지상의 나무를 스치듯이 초저공으로 비행하다가 급상승하는 요격훈련도 실시하였다.
다섯째, 공습훈련에 미그 29, 미그 21, 개량형 일류신-28 폭격기가 동원되었다. 미그 29와 미그 21이 공대지미사일과 로켓탄을 지상목표물에 발사하고, 개량형 일류신-28 폭격기가 대형폭탄을 투하하는 공습훈련을 실시하였는데, 방사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큰 폭발화염을 일으켰다.
여섯째, 해상화력전 훈련에 고속어뢰정, 고속경비정, 방사포고속정이 동원되었다. 해상화력전 훈련에서 눈길을 끈 것은 방사포고속정 6척이 방사포를 집중발사하며 고속으로 기동하는 장면이다. 미사일고속정이 훈련에 동원되지 않았는지 혹은 동원되었는데 영상편집과정에서 빠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미사일고속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 까닭은, 해수면 밀착비행(sea-skimming)으로 레이더망을 뚫고 들어가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이 인민군 미사일고속정에 탑재되었기 때문이다. 북측이 몇몇 군사강국들만 보유한 그 위력적인 대함미사일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석 달 뒤에 공개하였을까?
영상을 방영한 때로부터 약 석 달 전 3군 합동훈련이 실시되었으므로, 애초에 세상에 공개하려고 그 기록영화를 제작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북측이 비공개로 보관해온 기록영화를 뒤늦게 방영한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첫째, 기록영화 방영은, 인민군이 미국군에게 보낸, 인민군 전투력을 오판하지 말라는 날카로운 경고로 보인다. 인민군 전투력을 과소평가한 미국군이 만일 상황을 오판하여 무력도발을 일으키는 경우,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될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영상을 정밀분석한 미국 군부는 인민군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전술교리와 무기체계가 자기들의 전술교리, 무기체계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을 것이다. 미국군이 인민군의 특이한 전술방식과 무기체계를 상대하려면 자기들의 전술교리와 무기체계를 전반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미국군이 자기들의 전술과 무기로 인민군에 맞서싸우면 패할 것임을 예고한다. 미국군사령관의 지휘를 받으며, 미국군이 가르쳐준 전술교리로 훈련을 받고, 미국군이 넘겨준 2류 무기를 가진 한국군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기록영화를 방영하기 닷새 전인 11월 24일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은 그 어떤 군사적 도발에도 대응할 만단의 결전진입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제목의 보도문을 발표하였다. 2011년 10월 8일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대표단 단장이 남측 군부에게 경고를 보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인민군 최고사령부 명의로 보도문 형식의 경고를 발표하였다는 점에서 사태가 더 심각해졌음을 직감할 수 있다.
2011년 10월 28일 서울에서 진행된 제43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금 미국 군부는 남측 군부를 참가시킨 가운데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을 수립하고 ‘맞춤식 억제전략’을 개발하는 중이다. 이번에 북측은 그런 미국 군부에게 날카로운 경고를 보낸 것이다.
둘째, 2011년 7월 말 이후 미국은 북미고위급회담을 두 차례 진행해오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는 북침전쟁연습을 연속 강행하여 한반도 군사상황을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다. 미국이 대화와 전쟁연습을 병행하는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이번에 처음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지난 시기 북미 고위급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에 북침전쟁연습을 삼갔던 선례에 비춰보면 올해 8월 이후 계속되는 대화와 전쟁연습 병행조치는 전례 없는 이상행동이다.
최근 미국의 북침전쟁연습으로 조성된 군사상황에 대한 분석은 2011년 10월 3일, 10월 10일, 11월 21일 <통일뉴스>에 각각 발표한 나의 글 ‘갑작스러운 항모강습단 출몰, 불길한 조짐일까?’, ‘위험한 교차로 지나는 한반도 정세’, ‘미일연합함대 위협한 북측 공군연합부대’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이 세 편의 글에서 논한 것처럼, 미국의 전례 없는 이상행동은 한국군을 앞세워 북측을 자극하는 국지전 연습을 강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측 군부는 북측을 자극하는 국지전 연습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도 모르고, 대북적개심에 사로잡혀 “도발원점을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연평도 포격전 1주년을 맞은 11월 23일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국지전연습을 강행하면서 그와 동시에 동서남해상 전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11월 24일에 발표한 보도문 형식의 경고는 그에 대응해 나온 것이다. 그 보도문에서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만일 또다시 우리의 존엄을 함부로 건드리고 우리의 신성한 령해, 령공, 령토에 단 한 발의 총포탄이라도 떨어진다면 연평도의 그 불바다가 청와대의 불바다로, 청와대의 불바다가 역적패당의 본거지를 송두리채 없애버리는 불바다로 타번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기록영화는 국지전 연습을 강행한 남측 군부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보인다.
셋째, 기록영화 앞부분에는 군사훈련현장이 바라보이는 지휘소에 대형 컴퓨터액정화면이 놓여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훈련정황’이라는 제목이 상단에 나타난 컴퓨터액정화면이 영상화면 전체에 크게 부각된다.
이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군사훈련현장에서 지휘관의 보고를 받을 때 그 앞에는 커다란 종이도면에 그려진 작전도가 펼쳐지곤 하였는데, 이번에는 컴퓨터액정화면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인민군 작전통제체계가 전자정보화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훈련정황’이라는 제목이 나타난 컴퓨터액정화면이 영상화면에 크게 부각되면서, 바로 그 컴퓨터액정화면 앞에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훈련정황에 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한 장면의 연속은, 인민군 작전통제체제가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지도로 전자정보화되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40여 년 동안 육성한 군대가 최근 몇 해 사이에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의해 전자정보화된 군대로 변모, 강화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기록영화는 인민군을 전자정보화된 군대로 변모, 강화시킨 김정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업적을 북측 인민들에게 알려준 것으로 생각된다.
녕변에서 살아남은 6자회담
2005년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2단계 제4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원칙과 방도가 그 성명에 모두 밝혀졌다. 그래서 같은 해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제5차 6자회담에서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의장성명까지 채택되었다.
9.19 공동성명을 준수한 북측은 2007년 7월 15일 녕변 핵시설을 자진 폐쇄하였고, 9월 1일부터 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북미 실무급회담에서 2007년 안에 녕변 핵시설을 해체하기로 미국과 합의하였다. 2007년 9월 11일 그 합의에 따라 북측은 녕변 핵시설을 해체할 미국 실무단이 판문점을 거쳐 들어가도록 허용하였고, 미국 실무단은 녕변 핵시설을 현장실사한 다음, 11월 3일부터 핵시설 해체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처럼 녕변 핵시설이 2007년 12월에 이미 해체되었으므로, 핵시설 해체 문제는 더 이상 비핵화 문제가 아니다.
북측이 녕변 핵시설을 해체하였으므로, 미국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9.19 공동성명에 규정된 자기 의무를 이행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미국은 자기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으면서 이른바 ‘완전한 신고’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완전한 신고’란 북측이 녕변 핵시설에서 생산된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무엇을 하였는지 쓰임새를 밝히라는 것이다. 무기급 플루토늄의 쓰임새를 밝히라는 요구는 핵무기 보유량을 밝히라는 뜻이므로, 북측은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량만 밝히겠다고 응답하였다.
북측이 미국에게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량을 알려주면, 미국은 북측의 핵무기 보유량을 얼마든지 추산할 수 있는데도, 미국은 ‘완전한 신고’를 계속 물고 늘어졌다. 그처럼 어처구니 없는 트집이 없다. 미국이 막판에 가서 트집을 잡은 것은, 9.19 공동성명에 규정된 자기 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녕변 핵시설을 해체하면서 9.19 공동성명에 규정된 자기 의무를 이행한 공약준수자는 북측이었고, 트집을 잡으면서 9.19 공동성명에 규정된 자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공약파기자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트집을 잡고 공약을 파기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에 결정적인 장애를 조성하는 바람에, 북측은 그런 미국을 9.19 공동성명 이행국면으로 끌어내기 위한 초강력한 ‘충격요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것이 바로 2009년 5월 25일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이다.
녕변 핵시설이 해체되고, 북측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핵시설을 해체하는 문제가 아니라 핵무기를 폐기하는 문제로 전환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6자회담은 핵시설 해체 문제를 다루는 다자회담이지, 핵무기 폐기 문제를 다루는 핵군축회담이 아니므로, 6자회담도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당시에 북측이 “6자회담은 끝났다”고 선언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하여 북측은 미국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북미 양자회담을 제안하였다. 6자회담을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게 된 조건에서, 북미 양자회담 이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그러나 트집쟁이와 공약파기자로 악명 높은 미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동원한 대북제재로 응답하였고, 북측의 양자회담 제안을 거부하기 위해 명분도 실익도 없는 6자회담에 병적으로 집착하였다. 6자회담을 재개해도 아무런 성과를 얻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미국이 6자회담에 그처럼 병적으로 집착한 까닭은, 자기들이 전적으로 의존해온 6자회담을 포기하고 북측이 요구한 북미 양자회담에 끌려나가는 굴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북제재조치를 남발하며 6자회담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미국을 압박할 초강력한 대응조치가 북측에게 필요하였다. 북측의 초강력한 대응조치는 녕변 핵시설을 다시 가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에 따라 해체한 플루토늄 핵시설을 재건하면 9.19 공동성명이 완전 파기될 것이므로, 북측은 그 공동성명에 규정되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핵시설을 건설하는 수밖에 없었다. 북측이 해체된 녕변 핵시설 바로 옆에 우라늄농축시설을 세우고 시험용 경수로 건설에 착공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하고 백악관과 국무부의 혹세무민 왜곡선전만 들어온 사람들은, 북측이 왜 갑자기 우라늄농축시설을 세우고 시험용 경수로 건설에 착공하였는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세우고 시험용 경수로 건설에 착공한 것은, 존재이유를 잃어버린 6자회담을 살려내 비핵화 다자회담을 계속하면서, 북미 양자회담을 거부하는 미국을 압박하여 비핵화의 길로 끌어낼 아주 절묘한 방책이었다.
미국이 북측의 그런 의도를 알아차렸으면, 6자회담을 냉큼 재개하여 우라늄농축시설과 시험용 경수로에 대한 사찰문제를 합의하면 문제는 아주 간단히 풀린다. 그러나 미국은 ‘전략적 인내’라는 허튼 소리를 남발하면서,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 전에 먼저 이행할 ‘비핵화 사전조치’를 들고 나왔다. 북측이 미국의 트집잡기과 공약불이행으로 존재이유를 잃어버린 6자회담을 되살려, 6자회담이 재개되도록 회생조치를 취하였으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도 군소리 없이 6자회담을 곧바로 재개했어야 마땅한데, 어이없게도 미국은 6자회담을 재개하기는커녕 되레 북측이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이려면 남북대화부터 먼저 하라고 떠들어대며 앙탈까지 부렸다.
‘초강대국’이라고 하면서 앙탈을 부리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북측은 어떻게 해서든지 비핵화의 길을 열어놓기 위해 남측과 비핵화회담을 진행하는 관대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한 술 더 떠서 북측이 먼저 우라늄농축을 중단해야 6자회담을 재개해주겠다는 게 아닌가. 우라늄농축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인데, 회담을 재개하기 전에 우라늄농축부터 중단하라고 을러대다니, 이거야말로 깡패나 내뱉을 막말이지 국제관계에서 통용되는 외교어법인가! 미국이 깡패국가(rogue state)라는 사실은 이거 하나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이 앙탈과 억지와 강박으로 세상을 어지럽힐수록, 그런 깽패국가에 단독으로 맞서 무려 18년 동안이나 싸워오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무던히 애쓴 북측의 일관된 노력이 한층 더 돋보인다.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에서 저농축우라늄을 생산하고, 저농축우라늄으로 시험용 경수로를 가동하여 전기를 생산하려는 평화적 핵활동은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주권행사다. 다만 문제로 되는 것은, 북측이 핵확산금지체제(NPT)를 탈퇴한 조건에서 평화적 핵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라늄농축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는 아주 간단하다. 북측이 핵확산금지체제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북측이 핵무기를 생산하려고 우라늄농축시설을 건설한 것은 아니므로, 핵확산금지체제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는 것은 북측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11년 4월 11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베이징에서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와 회담하면서 녕변 우라늄농축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허용할 뜻을 밝혔다.
깡패국가의 막말 속에 숨겨진 사연
북측이 핵확산금지체제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으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할까? 두 말할 나위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하고 거기서 그 문제를 공식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그런 까닭에, 2011년 11월 30일에 나온 북측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이에 대해(우라늄농축과 시험용 경수로 건설에 대해라는 뜻-옮긴이)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6자회담에서 얼마든지 론의할 수 있고 국제원자력기구를 통해 그의 평화적 성격을 확인시켜줄 수 있다는 신축성 있는 립장도 표명하였다”고 다시 한 번 밝혔던 것이다. 그처럼 아주 간단한 문제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풀리지 않는 것일까? 북측이 먼저 우라늄농축을 중단해야 6자회담을 재개해주겠다는 막말을 내뱉는 깡패국가가 비핵화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10월 27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6자회담을 전제조건 없이 하루빨리 재개하자”고 제안하였다. 이것은 핵확산금지체제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는 문제를 6자회담에서 해결하려는 북측의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도 북측의 그런 의사표명을 환영하였다. 그런데 그처럼 정당하고 합리적인 제안이 나왔는데도, 깡패국가는 북측이 먼저 우라늄농축을 중단해야 6자회담을 재개해주겠다는 막말을 거두지 않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깡패의 막말로 들리는 미국의 우라늄농축 중단 선행요구에 숨겨진 사연은 무엇일까? 미국이 그토록 집착해온, 북측의 핵무기 폐기문제는 북측이 핵확산금지체제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는 일반적인 핵문제(nuclear issue)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특별한 핵안보문제(nuclear security issue)다. 특별한 핵안보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힘들고 복잡한 상황,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미국이 깡패의 막말을 내뱉으며 모질음을 쓰는 것이다.
미국이 모질음을 쓰는 사연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건국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매우 특별한 회담에 끌려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특별한 회담의 성격은 핵안보회담이며, 그 특별한 회담의 형식은 핵안보를 책임진 최고결정권자들이 만나는 정상회담이다. 다시 말해서, 오직 북미 정상회담에서만 핵안보 문제를 의제로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보면, 북측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왜 그처럼 일관되게 요구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핵안보문제를 다룰 북미 정상회담이 핵무기 상호폐기를 위한 핵군축 정상회담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북미관계에 제기된 핵안보 문제는 핵무기 상호폐기가 아니라 핵위협 상호제거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미국은 북측에게 ‘핵우산’을 겨누고 있고, 그에 대응하여 북측도 핵무기를 보유하였다. 북측 핵무기 대 미국 ‘핵우산’의 첨예한 대치, 이것이 북미관계에 존재하는 핵위협의 실체다. 그러므로 한반도 비핵화는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북미관계에 존재하는 핵위협을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제거하는 역사적 과업이다.
북측의 핵위협을 제거하려면, 지난 시기 북측이 녕변 핵시설에서 생산한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만든 핵탄두를 자진 폐기하고, 미국 사찰단이 북측에 들어가서 폐기결과를 실물로 확인하면 해결된다.
그러면 미국의 핵위협은 어떻게 제거해야 하나?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북측에게 겨눈 ‘핵우산’을 철거해야 미국의 핵위협이 제거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핵우산’이 주일미국군기지에 있는지 괌에 있는지 하와이에 있는지 밝히지 않기 때문에, 북측이 미국의 핵위협 제거결과를 실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풀 어떤 방도가 없을까? 북측이 미국의 핵위협 제거여부를 확인할 실물은 주한미국군밖에 없다. 미국이 주한미국군 철군 이외에 무엇으로 자기의 대북 핵위협이 제거되었음을 확증할 수 있겠는가. 주한미국군 철군은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었음을 실물로 입증할 유일한 방도인 것이다. 이런 맥락을 보면, 북측이 철군문제를 왜 그토록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3차 북미 고위급회담이 곧 열릴 것이다. 그 회담의 의제는 6자회담 재개문제도 아니고 우라늄농축문제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북측과 미국이 길게 논의할 필요도 없는 부차적 의제일 뿐이다. 미국이 이제껏 고심을 거듭하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해 쩔쩔매는 진짜 의제는 특별한 핵안보문제, 다시 말해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문제이고,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고심이 깊어지면서 자꾸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북측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경고를 보냈다. 만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 시기를 놓치면, 미증유의 재앙이 미국을 덮칠 것이라는 서릿발 경고다. 북측은 미국의 핵문제 전문가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을 평양으로 불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내는 서릿발 경고를 전했다.
2011년 12월 3일 미국의 핵문제 전문가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은 닷새 동안 북측 방문을 마치고 중국 베이징에 도착하였다. 닷새 전 평양으로 떠날 때, 그들은 녕변 우라늄농축시설을 방문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졌겠지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금 6자회담 재개문제나 우라늄농축문제는 중요하지 않으므로 북측은 그들을 녕변으로 데려갈 필요가 없었다.
베이징 공항에서 잠깐 그들을 취재한 <교도통신> 취재기자는 그들이 질문을 받고도 묵묵부답이었다고 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내는 북측의 서릿발 경고를 들은 그들의 마음이 가벼울 리 없다. 그들로부터 북측의 서릿발 경고를 전달받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망연자실하였을 것이다. 3차 북미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있는 지금, 북측의 서릿발 경고를 귀담아듣고 심중한 결정을 내려야 할 운명의 날이 오바마 대통령의 코 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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