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문가 "이란과 전쟁? 오바마의 최대 실수가 될 것"
기사입력 2011-11-08 오후 4:15:49
최근 국제 정세의 핵은 이란이다. 핵보유국 이스라엘과의 갈등 속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는 것이 이란이 받고 있는 혐의다. 미국과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이란은 우라늄 농축은 발전용일 뿐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곧 발표할 이란의 최신 핵 활동에 대한 보고서가 주목받는 것은 그래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7일(현지시간) 다음날 발표될 예정인 IAEA 보고서에 대해 "이란 정부가 더 진전된 (핵)탄두 개발 작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문은 전직 IAEA 사찰관 등 관련 전문가들을 인용, 이란이 탄두 테스트를 한 지역이 이번 보고서에서 확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최근 이란의 핵 활동에 대한 가장 정밀한 정보로, 이스라엘 등이 이란 핵 시설을 선제타격하는데 있어 목표물을 지정해 주는 것과 같다.
또 신문은 IAEA가 이란 과학자들이 고폭약 관련 기술 연구를 하고 있다는 새로운 증거를 입수했다고 전했다. 고폭약 기술은 핵무기 개발에서 필수적으로, 고성능 폭약을 이용해 탄두 중심부에 위치한 핵폭탄이 원자핵 분열을 일으키도록 하는 기폭장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신문은 IAEA 보고서가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나 공습으로 가는 길을 열 수는 있지만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이른바 '스모킹 건'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신문은 "이란의 핵 무기화 연구는 2004년부터 오히려 '다운그레이드'(퇴보)되고 있다"면서 실제로 무기를 만들어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은 이미 보고서가 조작이라고 하고 있다. 미국, 영국 정부도 IAEA의 보고서에 담긴 증거가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이나 더 많은 제재를 가하자고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일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 몬테레이 국제관계연구소의 이스라엘 핵 전문가인 애브너 코헨은 <가디언>에 "결국 지역 내에서 이스라엘만이 핵을 독점하고 있는 상태(를 지키는 것)에 대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란이 받고 있는 최신 '의혹'들을 정리해보면 △탄두 폭발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를 하고 있고, △원자탄의 기폭장치가 될 수 있는 고폭약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핵폭탄 2~4기를 생산할 수 있는 만큼의 핵물질을 '전력생산용'이라는 명목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수준은 아니지만 '결정적 증거'도 없고 특히 이미 북한이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 핵실험을 2차례 한 것과 비교해 보면 전쟁설이 나도는 것은 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란과 관련국들의 지정학적 관계가 어떻기에 이처럼 민감한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 '포린폴리시인포커스'(FPIF)의 리처드 J. 헤이다리언 연구원은 지난 4일 이 단체
웹사이트에 올린
칼럼에서 전쟁설에 휩싸인 이란과 미국, 사우디의
역사를 짚었다.
헤이다리언은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 이스라엘과 적대국인 이란이 첨예하게 대립해 왔으며
중동에서 '또 하나의 냉전'과 같은 상황을 빚어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경제위기 등
국내 사정과 이라크 내 이란의 영향력 등 지정학적
요소를 감안하면 전쟁은 미국에도 재앙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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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반미 시위에 나선 대학생 시위대의 모습. 이들 등 뒤의 반미 벽화는 한때 미 대사관으로 쓰였던 건물의 벽에 그려진 것이다. 시위대가 들고 있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 위쪽으로 월스트리트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보이는 '99%' 피켓이 눈에 띈다. ⓒ로이터=뉴시스 |
이란의 주미 사우디 대사 암살 음모는 전쟁의 서막
미국이 이란에 대해 제기한 최신의 혐의, 즉 이란 혁명수비대 관계자가 미국에서 주미 사우디
대사를 암살하려 했다는 음모는 많은 이란 연구자들에게 기상천외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음모의 사실 여부에 대해 판단하긴 이르지만 이런 혐의가 이란을 더욱 고립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볼
이유는 너무나 많다. 보다 큰 차원에서 보면 이런 혐의는 미국이 이란의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압박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미국의 주장을
에누리해 들어야 하는 이유다.
지리전략적 관점에서 이런 주장은 '냉전'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길을 여는 것일 수 있다. 이란을 한 축으로 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미국의 걸프 동맹국들과 미국을 한 축으로 하는 냉전 말이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고 민중 혁명이 중동의 많은 곳을 집어삼키면서, 미국이 가장 피해야 할 일은
협상을 통한 이란 핵
프로그램의 해결 전망을 부정하는 것이 됐다.
미국은 핵 프로그램 재시작과 주변국 및 주요 강대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이란의 관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미국을 더 파괴적인 분쟁으로 몰아넣을 이 지역에서의 충돌을 피할 최선의 기회다.
페르시아만에서의 냉전
이란과 사우디 사이의 관계가 험악한 것은 공공연한 일이다. 두 지역 강국 사이의 역사는 전략적 경쟁관계와 지정학적 분쟁으로 가득차 있다. 2003년 이란의 오랜 대결 상대였던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몰락은 두 나라를
페르시아만 일대의 힘의 주축으로 만들었다.
남쪽의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이란의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이끄는 걸프협력회의(GCC) 소속 일부 국가들은 후세인 이후 이라크와 지역 내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것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2010년 예멘이 종파 분쟁을 겪을 때 사우디
군대가 예멘의 수니파 정부의 편에서 개입했다. 이란은 이를 예멘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란은 사우디가 예멘 내의 시아파
공동체를 목표물로 삼았다고 항의했다. 이는 두 나라 사이에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냈다.
한편 핵 관련 협상이 계속 지연되면서 이란은 핵 프로그램과 우라늄 농축을 높은 수준까지 계속 확장했다. 따라서 불안해진 사우디는 이란의 핵 야망과 역내 영향력 확대에 대한 가장 시끄러운 비판자가 돼 왔다. 사우디는 이란과 대규모 군비 경쟁을 벌이고 있을 뿐 아니라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추가 제재나 군사 행동에 암묵적으로 지지를 보내 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양자관계를 안정화하려는 시도를 결정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2011년은 특별히 도전적인 해였다. 연초 바레인 시위에 대한 사우디의 무력 개입을 이란이 비난하면서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사우디 등 GCC 국가들이 바레인의 수니파 왕정을 비호해 대부분 시아파인 시위대에 대한 진압을 계속하게 한 것은 이란의 비난을 낳았고, 이는 이란에 대해 더 '결정적인' 접근을 주장하는 아랍 국가 내 강경파들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자국 내에도 억압받는 시아파 공동체가 있는 나라인 사우디는 특히 이란에 의해
고무된 '아랍의 봄'이 GCC 국가 지역 내에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게 됐다.
시아파가 다수 거주하는 사우디 동부에서 최근 시위가 일어난 것을 감안하면 사우디 정부는 이란을 악마화하고 미국에 이란을 더 고립시켜 달라고 호소할 이유가 충분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란이 페르시아만 국가들 내의 시아파 시위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 많은 면에서 현재 진행중이거나 임박한 시위들은 페르시아만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결점투성이이고 억압적인 체제가 반영된 것이자 이 체제에 대한 거부다.
한편 지역 내에서 유대를 강화하고 고립된 상황을 반전시킬 필요성을 깨달은 이란 정부는 최근 몇 개월 간 남쪽 이웃 국가들에게 공격적인 구애를 해왔다. 사실 마무디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에서부터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외무장관까지 이란의 고위 당국자들은 페르시아만 일대의 아랍 국가 지도자들과 선제적으로 관계를 맺어 왔다. 이란은 또한 관계 개선이 서로에게 이득이 됨을 강조하며 사우디와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해 왔음을 내세웠다.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가 늘어난 것을 감안해 이란 정부는 또한 주요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외교적 차원의 해법을 다시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는 이란이 최근 미국인
여행자들을 석방한 것을 보면 명백하다. 이란 지도자들은 국내적으로도 권력 구조를 강화하고 전례 없는 경제 개혁을 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따라서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를 미국에서 암살하는 것은 이란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란의 전략적 계산과 어긋난다. 국내적으로나 국외적으로 이란은 사우디와 미국을 도발할 상태가 아니다. 만약 이란이 정말 사우디에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면 중동 내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땅에서 그런 작전을 펴는 것은 이란이 지난 몇십 년 간 피하려 노력해 온 충돌을 불러올 것이다.
게다가 리비아에서 나토 주도 하에 '정권 교체'가 일어난 것을 막 지켜본 마당에 이란은 서방 강대국들의 공격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할
입장이 아니다. 이는 살레히 외무장관이 "설사 조작이라 해도 우리는 모든 주제에 대해 참을성 있게
조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이유다. 살레히 장관은 이란은 미국과 협력할 의지가 있다면서 "우리는 또한 미국이 우리에게 이 시나리오와 관계된 정보를 넘겨주기를 요청한다"고도 말했다.
또 사우디 대사 암살 음모는 음모 자체의 허술함으로 보나 추진 방식으로 보나 핵심 용의자 만수르 알밥시아르의 됨됨이로 보나 이란 당국이 개입했다기엔 너무나 아마추어적이다. 음모의 얼개 자체가 너무나 말이 안 된다.
미국의 전략적 실수
아마도 이 사건 전체를 보다 더 잘 이해하는 길은 더 큰 지정학적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될 것이다. 이란의 핵능력과 역내 영향력이 강화되는 것을 감안해 미국은 이란을 고립시키고 대항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 왔다.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이미 이란과의 잠재적 충돌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사우디는 자신들의 핵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어려움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감안하면 오바마 행정부는 외교정책을 좀 더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아마도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란을 악마화하는 것은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좋은 수단일 뿐 아니라 새로운 지지자들을 만들어 내고 통합시킬 기반도 된다. 친(親)이스라엘 성향 로비스트들을 달래는 것도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미국은 이미 동맹국들에게 이란에 대한 더 심각한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자고 납득시키기 위해 유럽 전역에 사절을
파견했다. 놀랍게도 미국은 이란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란 경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
(제재가 행해지면) 이란은 달러화로 이뤄지는
석유 거래를 진행하기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석유는 이란의 주요
수출 품목이다. 만약 미국이 이같은 방안을 추진한다면 이는 사실상의 선전포고다. 이란 지도부만을 겨냥한 선전포고가 아니라 이란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선전포고 말이다. 이란의 국민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오바마의 말과 명백히 배치되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거세지고 있고 오바마의 경제 성적에 대한 불만이 심화되는 상황을 놓고 보면 이는 국내정치적 목적의 전술적 행동일 수도 있다.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 쯤에 있겠지만 지금 확실한 것은 사우디 대사 암살 음모의 진실성을 의심하기에 너무나 많은 이유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미군 철수까지 시야에 넣고 보면 미국의 이런 행동들은 단지 이란과 미국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무엇보다 이란은 이라크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일대에는 이미 미국과 이란 해군 간의
마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고위관계자들은
원치 않는 위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상호 소통
채널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다.
오바마의 최근 행동은 단지 이란 국민들에 대해
신경을 쓰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배반하는 것일뿐 아니라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불안정한 지역에서
안정적이고
이성적인 미국-이란 관계에 대한 전망을 위태롭게 한다. 이란 국민들을 더욱 소외시키고 이란 정권을 도발하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큰 전략적 실수가 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우선 이란과의 핵 협상을 재개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한편, 사우디 대사 암살 음모에 대한 어떤 조사에도 협조하겠다는 이란의 개방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우스꽝스러운 음모를 현실에서의 국제적 비극으로 만드는 것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프레시안/곽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