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북아 입지가 갈수록 위축되는 가운데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2006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2006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4%가 주한미군철수에 동의하였다고 한다. “한미동맹”을 국가적 방침으로 선전하는 와중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이처럼 충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주한미군이 우리사회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지구반대편의 한반도에까지 와서 60년이 넘도록 주둔하고 있는 것일까? 단지 지난 시기 한국이 가난하고 불쌍해서 도와주러 온 것은 아니다. 아시아, 아프라카에 20억명이 넘는 빈곤층이 있지만 미국은 이들의 빈곤한 경제사정을 일제히 외면하고 있다. 게다가, 오늘날 한국사회는 더 이상 미국의 도움이 필요할만큼 빈곤하지도 않다. 미국이 지금까지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목적은 바로 동북아에서 미국의 군사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본 연구소에서는 주한미군으로 파생된 우리사회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본 기획은
1. 전쟁을 부르는 주한미군
2. 끝없는 미군범죄
3. 국방구조의 문제
4. 국방개혁의 허상
으로 진행된다.
국방개혁의 허상
국방부가 3월 8일 발표한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국방개혁 추진계획인 '국방개혁 307계획’은 20년 만에 군의 상부지휘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특히 이 계획은 73개 과제를 단기(2011~2012년), 중기(2013~2015년), 장기(2016~2030년)로 나눠 추진해 오는 2030년을 최종 목표 연도로 하고 있다.
이러한 국방개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노태우 정권시절, 1988년 ‘8·18 계획’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다. 당시 정권은 이를 이른바 “자주국방” 강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국방개혁안이라고 내세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5년 ‘선진 강군’을 위한 15년 플랜을 담은 ‘국방 개혁 2020’을 제시한 바 있다. 이제 2011년,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국방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20년이 넘도록 국방개혁이 거론되고, 또 이에 따라 ‘자주국방’을 내세우는 국방개혁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하게도 지금껏 진행된 국방개혁이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한국군이 추진해 온 국방개혁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한미군에 가 있는 작전통제권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제 아무리 “개혁”을 외쳐봐야 그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군은 육군과, 공군, 해군이 갈라져 자기 부대의 승진과 높은 예산배정을 위해 경쟁할 뿐 군대 본연의 군사작전과 전투계획은 주한미군의 담당이었다.
그러다보니 역대 정권의 국방개혁도 모두 실패하였다. 노태우 정권 당시 진행된 국방개혁안이 모두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어서 전시 행동지침이 핵심인 국방정책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조정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였다.
노태우 정권이 추진하였던 ‘8.18계획’은 군령과 군정의 분리, 합참의장의 군령권을 강화한 3군 합동군 체제를 추진하였다. 지금의 군 지휘체계는 육해공군이 개별적으로 주한미군의 통제를 받고 있다. 한국 육군은 주한미군 육군사령부로부터, 한국 해군은 주한미군 해군사령부로부터, 한국 공군은 주한미군공군사령부로부터 각기 독자적으로 통제를 받는 구조이다.
작전통제권이 주한미군에게 있으면 주한미군이 직접 조율해서 작전명령을 한국군에 하달하면 되므로 작전 시 한국군의 연합, 협력작전은 주한미군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갖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육해공 연합작전이라는 것은 주한미군이 관할하던 사안이었기에 한국군 장성들은 아직 이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이다.
결국 노태우 정권 당시 ‘8.18개혁안’은 육, 해, 공군을 하나의 합동군으로 묶어 주한미군이 큰 틀의 작전통제를 제시하면 한국군이 이를 육, 해, 공군 각 군에 적절히 안배하는 체제로 전환을 꾀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국방개혁 307도 여러 가지 맥락에서 노태우 정권의 818개혁안과 유사하다. ‘국방개혁 307’의 핵심 내용도 현재 육, 해, 공군이 각기 주한미군사령부의 통제를 받는 체제에서 주한미군은 크게 한국군 합참을 지휘하고 한국군 합참이 육, 해, 공군을 지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편안은 합참의장에게 제한된 군정기능을 부여하는 것과 동시에 각 군 총장을 작전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지금은 합참의장에게 군정권이 부여되어 있지 않고 각 군 총장과 작전지원을 협의할 수 있게 돼 있다.
밥그릇 싸움이 치열한 한국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국방개혁안은 해군과 공군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지상군 중심으로 편제된 한국군의 비정상적 상황에서 한국군 합참의장은 지금 구조에서는 대대손손 육군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해군과 공군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일례로 미국은 해군무력이 중심이 되는 태평양사령부의 경우 해군장성이 태평양사령관에 임명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한국군은 지상군이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므로 한국군 합참의장은 육군이 독차지할 것이라는 것이 해, 공군이 반발하는 주된 이유이다.
즉, 해 공군 군부 상층의 입장은 주한미군의 지휘통제를 받는 것은 인내하고 수긍하지만 한국 육군의 지휘통제를 받는 것만큼은 도저히 좌시할 수 없다는 것으로 귀착되고 만다.
3군 합동군 지휘가 이뤄지면 육군이 합참의장직을 독차지할 것이고 이 경우 해군과 공군은 육군에 비해 각종 인사, 예산상 불이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특히 한국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육군은 지상군 보병 중심이라 군사장비와 군수물자의 비중이 해, 공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결과적으로 해, 공군은 육군이 자신들 상관으로 임명될 경우 해, 공군에게 제공될 인사자리와 국방예산을 육군에게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 ‘국방개혁 307’안을 보면 합참의 육, 해, 공군 비율은 2대1대1로 유지하되 조직개편이 완성되는 2020년에는 장성 숫자를 현 430여명에서 15%(60여명)를 감축하기로 했다. 장성 정원감축 조정 태스크포스(TF)가 육군 중심으로 편제될 것으로 보여 해, 공군의 반발이 예상된다.
현역 군인들이야 불만이 가득해도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인인 관계로 국방개혁 307을 반대에 전면적으로 나설 수 없다. 정부의 국방개혁에 반대하는 문제는 군대를 제대해 민간인 신분을 가지고 있는 예비역 장성들이 주도하였다.
월간 군사전문지 <디앤디 포커스> 편집장인 김종대 씨는 본인의 블로그에 이러게 썼다.
이 무렵 한국 군부에게 중요한 것은 적에게 맞서는 게 아니라 내부의 경쟁자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공동체 안전의 실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보문제가 중요시되는 것이 아니라 군 내부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특정 군부가 일정한 위상을 점하기 위해 안보논리가 활용되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아무런 전투력도 발휘할 수 없는 계룡대가 여전히 바위처럼 버티고 앉아서 개혁의 길목을 가로막는 기이한 현상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미국의 무시가 상존하는 한국군 상층
상황이 이러다보니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무시가 널리 보편화되어 있다. 합참은 한.미연합사령부가 일 년에 걸쳐 준비해온 UFG 을지 연습에 ‘상부지휘구조개편’을 검증하겠다고 서먼 사령관에게 요청 하였다가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물론 UFG 연습은 지휘관, 참모에 대한 절차 연습이지 지휘구조개편을 검증하기 적합하지도 않고 제한적으로 절차를 평가한다고 해도 일 년여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른바 “동맹”국이라는 상대군이 요청하는 검증작업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모양새는 문제가 있으며 나아가 한국군이 검증에 참여조차도 못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디앤디포커스는 10월 28일, 우리 공군이 F-15K에 내장된 미국제 센서인 타이거 아이(Tiger Eye)를 무단으로 해체하자 미 국방부의 랜 댄 디펜 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올해 8월에 전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우리 국방부와 공군 담당자에게 막말을 구사하며 거칠게 항의하였다고 하였다. 한국을 방문했던 랜 댄 디펜 차관보는 당시 을지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 기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관계자를 불러내 거의 막말에 가까운 언사를 구사하며 소동을 부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 공군은 “기술을 유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정비목적으로 분리한 것을 너무 과민하게 미 정부가 받아들인다”며 해명했으나 미 국방부는 이에 대해 “명백한 기술유출 목적으로 해체한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 일부에서도 “한국 공군의 해명에도 일리가 있는데 본토에서 온 국방부 인사가 너무 강경해 말리지도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펜타곤은 차관보를 위원장으로 한국의 불법 기술유출 여부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미 국방부 내에 설치하였으며, 차제에 이제껏 한국이 미국의 군사기술을 무단 적용하거나 유출시킨 사례 전부를 조사하고 제재한다는 방침이어서 파문이 확산될 조짐이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청와대
그런데 청와대의 모습도 군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올바른 ‘국방개혁’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청와대는 군의 반대여론을 수렴, 경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군의 의견을 내치고 자르면서 내부혼란과 대립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307 국방개혁’의 핵심안건인 ‘상부지휘구조 개편’ 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청와대는 ‘개혁을 반대하면 항명으로 간주하여 인사 조치하겠다’, ‘대장인 각 군 총장을 중장으로 강등해서라도 개혁 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국방개혁 307을 반대하면 “항명”이라는 것이다. 이제 군은 자기 주장을 펼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언론은 국방위원 중 일관되게 반대해온 한나라당의 한기호의원은 정무위로, 김장수의원은 해외 특사로 보내면서 까지 8월 국회에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보도된 바 있다.
한미간 대등한 관계가 국방개혁의 핵심
20년째 논쟁을 끌고 있는 국방개혁을 개편하는 문제도, 한미군사동맹을 실질적으로 대등한 군관계로 올려놓을 때 가능하다.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데 자주국방이 이뤄질 수는 없는 법이다.
사실상 국방개혁이 제기된 배경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스스로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시기를 2015년 이후로 미뤄버렸으니 정권이 홍보해오던 국방개혁 필요성과 어긋나버리고 만다. 국방개혁의 주요한 근거를 정권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한국군의 정상화는 국방분야에서 독립성을 갖출 때 해결될 수 있다. 주한미군의 그늘을 벗어나 한국군의 위상을 바로잡는 문제가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