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지난 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할 때만 해도 한반도 정세는 암흑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훈련 재개를 역설하며 ‘도발 시 군사적 응징’ 의사를 밝혔고, 북측 역시 ‘제2의 타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한반도 정세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대화를 모색하는 국제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미중 정상회담이 포문을 열었고, 6자회담 참가국들의 외교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러시아를 방문하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조건없는 6자회담 재개를 약속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도 조금씩 움직이는 모양새이다. 8.15를 전후한 시점부터 현인택 통일부장관 교체설이 나돌았는데 결국 8월 마지막 날 통일부장관이 류우익으로 바뀌었다. 류우익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원칙을 지키되 필요하면 유연성을 발휘하겠다’고 했다. 원칙은 이명박 정부가 누누히 얘기해왔다는 점에서 류우익이 강조한 것은 ‘유연성’이다. 아직은 섵부른 기대라는 분석도 많지만 무언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상황이 왜 이같이 변했을까. 연평도 사건 이후 전개된 ‘역설적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상황이 악화된 것은 미국이 전략적 관리론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이 전략적 관리론을 수정하고 다른 접근법을 시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이 악화된 데는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도 한 몫 했다. 미국이 대북 대화를 하려 할 때마다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발목을 잡아왔다. 최근 상황 변화는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걸까.
이 글은 한반도 상황의 ‘역설적 변화’를 전략적 관리론, 발목잡기, 강제외교의 틀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미국측은 전략적 관리론을, 남측은 발목잡기를, 북측은 강제외교를 지속해 왔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목표 속에서 이 삼파전이 진행되어 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북측의 강제외교가 전략적 관리론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으며, 전략적 관리론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미국측은 남측의 발목잡기를 더 이상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연평도 사건 이후의 ‘역설적 변화’가 설명된다.
2. 폐기되는 전략적 관리론
1) 전략적 관리론의 배경과 의미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적성국과의 직접 대화를 공공연하게 밝힘으로써 당선 직후 북미 관계 진전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그같은 기대는 무위로 돌아갔다. 물론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9년 취임을 전후로 하여 북미 사이에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2008년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방북했던 한반도문제 전문가 박한식 교수는 11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최고위층도 미국 차기 정부의 정치행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오바마 정권이 출범해 이를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굉장히 바라고 있다”는 북 지도부의 인식을 소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한 2009년 1월 방북한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협력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주변국과 평화적 관계를 희망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오바마 당선자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음에 틀림없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북과의 대화와 관계정상화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팀장이었던 프랭크 자누치는 2008년 10월 2일 “오바마는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이란의 지도자를 만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북한이 만나자는 제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3월을 지나면서 물거품으로 바뀌고 만다. 북은 북미 장성급회담에서 한미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의 중단 혹은 축소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 이를 계기로 북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이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 이후 상황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북은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고 미국은 이를 외교를 통해 저지하려 했으나 북은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사일 도발’로 규정하고 유엔 안보리를 내세워 대북 제재에 착수했고, 북은 이에 반발하여 6자회담 불참과 핵억지력 강화, 자체의 경수로 발전소 건립을 공언했고, 5월 25일엔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전략적 관리론은 이같은 배경 속에서 등장한다. 전략적 관리론의 핵심은 북에 대한 ‘회의’였다. 북이 과연 핵무기를 폐기할 의사가 있는가. 오바마 행정부는 북이 당장 핵무기를 폐기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결론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여 강제로 핵무기를 제거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점 또한 인정하였다. 그래서 채택한 것이 ‘전략적 인내’, ‘전략적 관리론’이었다.
‘전략적 관리론’은 2009년 6월 미국신안보센터가 제출한 대북정책 보고서에서 제시한 접근법이다. “환상은 없다: 북한에 대한 전략적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보고서는 작성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커트 캠벨이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고, 향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이 보고서가 제시하는 ‘전략적 관리론’의 핵심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당시 북의 상황 악화 조치(인공위성 발사와 핵실험을 지칭)를 과거와는 다른 것으로 평가한다. 북의 핵활동이 협상의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한 목적보다는 북 체제를 둘러싼 내외의 안보 환경에 대한 평가 속에서 내려진 정책 변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세습통치를 강화해서 국내통치 기반을 확고히 하고, 외부적으로는 적대적인 전략적 환경에 대처하는 데서 핵무기가 중요한 수단이라는 인식 아래 핵무기를 유지하기로 결심했다는 인식이다.
둘째,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북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어 미국과 관련국들(한중일러) 사이의 유대가 형성되었으며, 2009년 2차 핵실험은 이같은 유대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인식한다. 과거에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전략적 우선순위가 달라 핵협상에서 다자적 접근을 모색하는 것이 어려웠으나 이제 그것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셋째, 중국의 대북인식과 접근이 크게 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내외의 안정을 꾀하고 있는 중국은 북이 붕괴되고 그 결과 ‘통일되고 민주화된 미국의 동맹국’과 국경을 마주 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여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었으나 최근 중국이 그같은 인식에서 탈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의 ‘호전적 행동’이 지역의 안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특히 북중 관계가 중미 관계에 손상을 주고 있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미국은 인식한다.
넷째, 미국이 처한 환경도 냉정하게 평가한다. 확산과 지역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북의 핵무기를 인정할 수 없지만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깨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정책적 수단이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한국과 일본에서 자체의 억지력(즉 핵무기)을 보유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질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을 경계한다.
다섯째, 협상을 통한 북의 비핵화가 최종 목표여야 함을 강조한다. 우선 북의 비핵화가 단기간 내에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인정한다. 북의 비핵화가 장기적 목표인 것은 분명하지만 북이 협상에 복귀할 것이라는 조짐이 없고, 국내정치 변수 때문에 정책을 바꿀 조짐이나 의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적으로 비핵화를 실현할 유일한 수단이 협상임을 강조한다. 협상이 진전되지 않는다면 미국과 동맹국들은 북 핵능력을 파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용도 많이 들고 성공 확신도 없다고 털어놓는다. 또한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거나 체제 붕괴를 유도한다 하더라도 북의 모든 핵물질을 파악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확신도 없다고 지적한다.
여섯째, 비핵화라는 장기적 목표와 병행하여 중단기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4가지 목표를 제시한다. ▲ 동북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안보공약을 강화하는 것 ▲ 확산을 방지하는 것 ▲ 지역에서 분쟁 발발을 방지하는 것 ▲ 북을 협상장에 앉히는 것이 그것이다. 동맹국들에게 안보공약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한미, 미일 동맹이 흔들리고 한일 양국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결국 동북아지역에서 핵무기 경쟁이 촉발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과 일본에 미사일 방어를 제공할 것까지 제시하고 있다. 외교적 통로를 유지해야 북의 대화 재개 의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북이 회담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 유인책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제재는 이같은 유인책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특히 강조한다.
일곱째, 강력한 봉쇄와 확산 방지 체제를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전략적 관리론은 제재 일변도 정책으로 북을 협상장에 끌어들일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제재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유인책과 제재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략적 관리론은 핵협상이 결정적으로 진전되는 것을 상한선으로 하고,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하한선으로 하여,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핵협상이 결정적으로 진전되지 않는 수준에서 북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을 요지로 한다.
2) 전략적 관리론의 취약성
그러나 전략적 관리론은 그렇게 효과적인 정책은 될 수 없었다. ‘환상은 없다’는 보고서의 제목과는 다르게 여전히 환상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중국이 대북제재로 선회하고 있다는 환상이다. 물론 중국은 2006년과 2009년의 미사일 발사 시험과 핵실험 당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대북제재에는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당시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에 중국은 “국제 사회의 조치가 북한의 민생과 정상적인 경제 무역 활동에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천명했다. 오히려 북중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되고 있다.
둘째, 핵우산 제공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한 것은 미국의 군사적 대북적대정책 때문이다. 그 중요한 구성요소가 핵우산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핵우산 공약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에 돌입한다면 전략적 관리론이 추구하는 북의 비핵화는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 공약은 북의 핵개발을 더욱 부추기고 북의 핵개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다.
셋째, 제재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전략적 관리론은 제재 일변도는 아니다. 그러나 북을 회담장으로 이끌어 내는 데 강력한 제재가 긍정적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인식에는 전략적 관리론이나 제재 일변도 정책이나 동일하다. 북의 행동을 역사적으로 검토해 본다면 제재는 북의 긍정적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는 효과보다는 추가적인 ‘악화 행동’을 이끌어 내는 효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또한 제재가 제대로 성공한 적도 없었다. 비근한 예로 2005년 미국은 BDA의 북 자산을 동결했지만 결국 2006년 10월 핵실험 이후 미국은 합법·불법 가리지 않고 BDA의 북 자산 전체를 북에 넘겨야 했다. 오히려 BDA 제재가 북미 회담 재개 이후 대화의 진전을 가로막았던 결정적 악재가 되기도 했다.
‘전략적 관리론’의 더욱 큰 문제는 두 개의 결정적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위 보고서는 전략적 관리론을 실행하는 대책으로서 ‘역내 분쟁 방지’를 제시했다. 즉 한반도가 전쟁의 상황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반도에서 전쟁과 유사한 상태가 발생하면 전략적 관리론은 폐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하나의 결정적 취약점을 한미 동맹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바마 정부가 취임 직후 제시한 미국의 외교 목표와도 연동된다. 갈수록 하락하는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여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복원하고 그를 위해 동맹국과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에 둔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 역시 이에 해당한다.
전략적 관리론에서도 한미 동맹은 중요한 축을 형성한다. 즉 ‘북의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서도, ‘역내 분쟁 방지’를 위해서도 한미동맹이 최우선적 수단으로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동맹에 대한 지나친 ‘수단화’는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에 무력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동맹을 내세워 미국의 대북 대화를 끊임없이 발목 잡았으며 결국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관리론’ 조차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2년 넘게 표류해야 했다.
3)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전략적 관리론은 사실상 폐기
지난 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남과 북이 상대방의 ‘영토’에 포사격을 가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한반도가 다시 한 번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전략적 관리론의 실패를 입증한 것이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더 이상 전략적 관리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부시 행정부와 같은 일방주의적이고 대결중심적 대북 정책을 추구하느냐 클린턴 행정부 식의 대북대화정책을 추구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전략적 관리론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하한선을 설정하고 있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한반도의 상황이 전략적 관리론이 설정하고 있는 하한선 아래로 내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더 이상 전략적 관리론에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곧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를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북이 5월부터 초청해왔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의 방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빌 리처드슨은 12월 방북했고 12월 20일 리처드슨은 북측과 일정한 합의에 도달했다. 우라늄 농축을 위한 핵 연료봉을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과 1만 2천개의 미사용 연료봉의 판매를 협의하는 데 합의했다. 이 외에도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허용, 남북미 군사공동위원회 설치, 남북 핫라인 가동 등도 합의되었다.
북측과 리처드슨이 합의에 도달한 12월 20일은 이명박 정부의 연평도 포사격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북측의 ‘대응’ 여하에 따라 한 달 전의 연평도 포격사건이 재연되거나 더 극심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에 앞서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미대사와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12월 18, 19일 이틀 연속으로 청와대를 방문하여 남측 포사격훈련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그리고 12월 20일 10명이 넘는 주한미군 관계자들이 참관을 명분으로 하여 포사격 훈련이 진행되는 연평도에 급파되었다. 포사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나 포사격의 방향이 바뀌었고, 훈련의 규모도 축소되었다. 북측의 ‘추가 대응’은 없었다.
미국이 이토록 긴박하게 움직인 이유는 간단하다. ‘남측의 훈련 → 북측의 대응 사격 → 남측의 추가 대응 → 군사적 충돌 격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아야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빌 리처드슨을 평양에 급파했던 것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주한미군 관계자를 연평도에 급파했던 것이다. 즉 전략적 관리론을 더 이상 추진할 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 이후 미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에 착수한다.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남북 긴장 완화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미중 양국이 노력한다는 외교적 합의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남북 비핵화 회담 → 북미 양자회담 → 6자회담’이라는 프로세스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 방북이 있었으며, 결국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북 비핵화 회담이 열리고 북미 양자 대화가 시작되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전략적 관리론은 폐기의 수순에 돌입한 것이며, 북미 양자 대화가 재개됨으로써 전략적 관리론은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위력 상실한 발목잡기
1) 발목잡기의 위력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 ‘한미 동맹 중심 순환론’을 펼치며 한미동맹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미 관계가 잘 돼야 북미 관계가 잘되고 그래야 결국 남북관계도 잘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미 양국이 공조를 강화해서 북을 옥죄야 북이 포기하고 양보하여 한반도 정세가 풀린다는 뜻이다.
이같은 기본적인 입장이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관리론’과 접목되면서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상식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달리 표현한다면 앞서 지적했던 전략적 관리론의 취약점을 이명박 정부가 절묘하게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외교를 일신(renewing)하여 리더십을 복원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동맹국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극단적인 대북적대정책에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전략적 관리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협상을 위한 대화가 아닌)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한 대화’조차도 철두철미하게 거부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북에 억류된 미국의 두 여기자를 석방하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한 이후 대화국면이 열렸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활성화 등에 대한 합의를 함으로써 남북관계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같은 대화국면을 전면 거부했다. 현정은 회장이 들고 온 합의서를 민간 차원의 합의로 격하시켜 더 이상의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았음은 물론,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보즈워스 대북특별대표의 방북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당시 미 국무부는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시간과 장소를 2주 안에 결정할 것”이라며 적극적 의사를 피력했다. 보즈워스 특사의 방북을 시작으로 북미 대화(설령 그것이 전략적 관리론에 입각한 제한적 대화라고 하더라도)를 시작할 태세를 구축한 것이다.
미 행정부가 북미 대화를 모색하던 시점부터 이명박 정부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6자회담을 촉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진정성이나 징조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단정지어 말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거들었다. “북한의 핵무기는 남한을 겨냥한 것”이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발언이다. ‘남한을 겨냥한 핵무기’라는 점을 내세워 북측과의 핵협상은 남측과의 합의 없이 진행할 수 없다는 메시지이다. 미 행정부에게 보내는 메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나온 것이 ‘그랜드 바겐 구상’이다.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 폐기’와 ‘대북 안전보장, 국제지원’을 동시에 해결하자는 것이다. 과거의 협상이 “진전과 후퇴, 지연을 반복해” 왔다며 ‘과거의 패턴’에서 탈피해 “단계별 처방과 보상을 되풀이하는 기존의 접근법”을 버리고 “핵폐기 이행과 함께 북한에 안전보장·경제지원을 동시에 제공하는 ‘원 샷 딜'을 추진하자는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표면적으로 그럴 듯해보이는 그랜드 바겐 구상은 그러나 전략적 관리론에 입각한 미국의 대북 대화접근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였다. ‘원 샷 딜’을 추진하려면 단계적 접근법에 의해 합의된 9.19 공동성명이 부정되어야 한다. 이는 6자회담의 부정을 의미한다. 결국 ‘원 샷 딜’을 핵심으로 하는 그랜드 바겐은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을 부정하려는 시도이다.
전략적 관리론의 입안자인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가 “잘 모르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 문제는 한미 양국의 외교적 충돌로까지 이어졌으며, 보즈워스의 방북은 연기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딴지걸기로 11월 말이 되어서야 북을 방문했던 보즈워스는 비핵화 회담과 평화협정 회담을 병행 추진한다는 데 북측과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북 외교관은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겠다는 진실성을 미국이 확실하게 보여준다면 우리 공화국도 많은 양보를 할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배경 하에서 중국은 2010년 2월부터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 추가 양자회담 →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이라는 2단계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은 3월 이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6자회담이 수개월 내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판단은 달랐다. 보즈워스의 방북 이후 유명환 외통부 장관은 “북한이 평화협정을 얘기하는 것은 시간을 벌며 이슈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계속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은 미북 간이 아니라 남북한이 중심이 되어 별도의 포럼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미 간의 협의 내용을 거부하는 듯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한편 외교가에서 2단계 방안이 제시되던 시점에 청와대의 대외전략비서관인 김태효가 미국을 방문한다. 김태효는 당시 논의되고 있던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을 연계시키는 전략을 미국측과 협의한다. 이는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둘러싸고 한미 사이에 미묘한 갈등을 야기시켰다. 미국측은 선 6자회담에 비중을 두고 있었고, 이명박 정부는 선 남북관계에 비중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캠벨 차관보는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지지한다”면서도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이 바로 다음에 와야 하는 필수적인 조처”라고 말했다.
한미 사이에 이같은 입장이 조율되지 않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은 다시 표류하게 되었고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이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논의 자체는 사라지게 되었다. 애초부터 남북정상회담을 6자회담 발목잡기 목적으로 추진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을 연계시킴으로써 6자회담을 조기에 재개하려고 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오바마의 대북 대화 노력을 계속되었다. 2010년 5월 북측은 빌 리처드슨 주지사를 평양에 초청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7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고위인사들의 방북은 시기 등을 포함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며 리처드슨의 방북에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리처드슨의 방북을 긍정 검토하고 있던 미 국무부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북한으로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야 했다.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는 이토록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보즈워스의 방북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협의도, 빌 리처드슨 방북도 이명박 정부는 일관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으며, 한미동맹을 중시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목소리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오바마 행정부는 이명박 정부에게 발목을 잡혀 한반도 정세 악화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2) 힘을 상실한 발목잡기
그러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리처드슨 방북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반대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12월 8일 리처드슨은 방북을 발표하고, 워싱턴 현지 시각으로 14일 평양으로 출발한다. 물론 리처드슨은 “메시지를 갖고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적 방문임을 밝혔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미국 정부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리처드슨이 방북하기 전에 그와 접촉할 것이며 방북 이후에는 그로부터 방북 결과를 보고 받을 것”이라고 하여 직간접적으로 리처드슨 방북에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리처드슨은 북 관리들에게 “자제를 촉구”하고 앞서 언급했듯이 12월 20일 오전 연료봉 해외 반출, IAEA 사찰단 복귀 허용 등 북측과 중요한 합의에 도출했다. 이같은 합의를 리처드슨이 개인적으로 했다는 것도 상식에 안 맞고, 미 행정부의 아무런 담보 없이 북측이 리처드슨 개인에게 그같은 약속을 했다는 것도 이치에 안 맞는다. 결국 빌 리처드슨은 오바마 행정부의 일정한 메시지를 갖고 방북했기에 그와 같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북측은 리처드슨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상황 악화 방지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것이고, 그 메시지를 접수했기 때문에 리처드슨과 핵관련 합의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2월 20일 오후에 진행된 이명박 정부의 연평도 포사격 훈련에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12월 20일을 무사히 보내고 한반도는 긴장 완화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미 이명박 정부의 딴지걸기가 통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이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새로운 남북 접촉을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2011년 접어들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접촉을 재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딴지걸기는 종말을 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4. 위력 발휘하는 강제 외교
1) 강제외교의 일반적 내용
강제외교는 ‘상대방이 하기 싫어하는 어떤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외교’를 의미한다. 억지가 특정행동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상대방이 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강제 외교는 자신의 행위를 함으로써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혹은 행위를 멈추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언론에서 흔히들 회자되는 ‘벼랑끝 전술’의 학술적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강제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5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전달되어지는 위협은 적대국이 순응하지 않으면 대가가 클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위력적이어야 한다. 2) 적대국에 대한 위협은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3) 적대국에게는 강압국의 위협에 순응하여 요구를 실행할 시간이 허용되어야 한다. 4) 강압국은 적대국에게 현재의 굴복이 미래의 더 많은 요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장해야 한다. 5) 갈등상황이 제로섬 상황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후술하겠지만 북이 핵시설을 공개하고 연평도에 포사격을 감행한 것은 강제외교가 성공하기 위한 5개의 조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모두 충족시킨다. 즉 북은 한반도의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명확한 신호를 미국에 보낸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북이 막무가내, 막가파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미중 정상회담 바로 직후 남북군사회담을 제의한 것, 남북 비핵화 회담을 6자회담 재개의 첫 번째 공정에 넣는 것에 동의하는 것 등은 위의 조건 세 번째와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를 충족시킨다고 할 수 있다. 즉 미국에게도 명분을 충분히 줌으로써 미국에게도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라할 수 있다.
사실 이같은 패턴은 1990년대 이후 북미 핵대결 과정에서 일반적인 패턴으로 자리잡은 측면이 있다. 아래 도표에서 확인되듯이 1차 핵대결, 2차핵대결, 3차 핵대결 과정에서 북의 강제 외교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왔다. 소위 벼랑끝전술로 일컬어지는 북의 강제외교는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구사함으로써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면서 북미 핵대결을 좌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이에 대한 이론적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북의 강제외교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자.
2) 강제외교의 측면에서 본 연평도 포격사건과 그 이후 북의 행위
북측은 2010년 11월부터 강제외교를 본격화한다. 그 첫 신호탄은 미국의 핵전문가들을 불러 북의 핵시설을 공개한 것이다. 11월 2~6일 북을 방문하고 돌아온 잭 프리처드 미국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북의 핵시설이 위치한 영변에서 신축건물이 들어서는 움직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NPT에 가입하는 것은 핵보유국으로서만 가능하다”는 북측 관리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한 달 전인 10월 8일 유엔 군축 회의에서 신선호 주유엔 대사가 “조미 간에 동등한 핵보유국으로서 군축회담을 하겠다”며 “핵보유국으로서 NPT에 복귀하겠다”는 입장과 동일한 것이었다.
한편 11월 9일 북을 방문했던 핵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북한이 발전용량 25~30㎿(메가와트) 경수로 건설을 최근 시작했으며 경수로 완성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지난 해 4월과 6월 북이 천명했던 대로 ‘자체의 경수로 건설’을 위한 본격적 활동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원심분리기 수백대를 갖춘 우랴늄 농축 시설을 확인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헤커 박사 등 방북했던 핵 전문가들은 이같은 내용의 방북 보고서를 백악관에 보냈으며 오바마 행정부는 보즈워스 대북특별대표를 급히 한중일 3국에 보내 협의토록 할 정도로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비폭력적 강제외교라 할 수 있다. 핵시설을 공개함으로써 미국의 전략적 관리론으로는 결코 북의 핵개발을 중지할 수 없으며 오직 대화를 통해서만 북의 핵개발을 중지할 수 있다는 비폭력적 수단에 의한 강제외교를 구사했다고 할 수 있다.
북의 강제외교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폭력적 수단의 강제외교까지 동원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그것이다. 북은 남측의 연평도 포사격 훈련에 대응하면서 연평도에 포사격을 가했고 남측 역시 포사격으로 대응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이 상대방의 ‘영토’에 포사격을 가하고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폭력적 강제외교라고 지칭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관리론의 취약성과 관련이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미국의 전략적 관리론의 하한선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군사적 충돌이 빚어지면 전략적 관리론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따라서 북의 연평도 포격사건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관리론을 대상에 둔 것이다. 즉 전략적 관리론이 전제하고 있는 ‘역내 분쟁 방지’를 흔듦으로써 전략적 관리론이 효과적인 정책이 아님을 시위한 것이다. 게다가 핵시설까지 공개함으로써 전략적 관리론은 핵무기 통제도 할 수 없고, 역내 분쟁도 방지할 수 없는 정책임을 오바마 행정부에게 과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은 연평도 포격사건이라는 폭력적 강제외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핵협상의 재개이다. 전략적 관리론이 폐기된다면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두 개의 정책 수단이 남는다. 하나는 대화를 통한 한반도 상황 관리이다. 이는 북미 대화와 6자회담의 재개를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폭력 일변도의 한반도 상황 관리이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사건은 폭력 일변도의 한반도 상황 관리는 더더욱 현실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대화를 통한 한반도 상황 관리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북측이 연평도 포격사건을 통해 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연평도 포격사건은 오바마 행정부로 하여금 전략적 관리론을 버리고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하도록 강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상황은 북측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화를 통한 한반도 상황 관리로 ‘강제’되었다.
그 첫 시작은 앞서 지적했듯이 12월 20일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주한미군 관계자를 참관인의 명목으로 12월 20일 연평도 포사격훈련에 참가시킴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군사훈련을 제어했다. 북측은 이같은 메시지를 받아 군사적 대응을 자제했다.
2011년 들어 미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중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1월 19일 열린 미중정상회담에서 미중 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합의했다.
18. ①미국과 중국은 9.19 공동성명과 여타의 관련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기초해서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을 공유했다. ②양측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긴장 고조에 우려를 표명했다. ③양측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긴밀하고(closely) 지속적인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④양국은 남북 관계의 진전을 강조하면서 진실되고 건설적인 남북 대화가 필수적 과정(a essential step)임을 합의했다. ⑤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보존하는 데서 한반도 비핵화가 중요한 문제임을 합의하면서 양국은 비핵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견고하고 효과적인 과정들(steps)이 필요하며, 9.19 공동성명의 다른 공약들을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⑥이같은 맥락에서 미중 양국은 북(DPRK)이 주장하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관련한 우려를 표명했다. ⑦양측은 9.19 공동성명과 관련한 국제법적인 의무와 공약을 위반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 ⑧양측은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early resumption)를 위한 필요한 과정들(the necessary steps)을 요청했다.(번호는 필자가 붙임)
18항은 8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①번 문장은 한반도 안정이 미중 양국의 최대 목표임을 의미한다. 그 전까지 미국은 한반도 안정보다는 ‘북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대화와 제재’ 병행전략을 중시해왔다. 반면 중국은 한반도 안정을 중시해왔다. 따라서 그 연장선에서 양국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는 ③번 문장은 한반도 안정을 위한 노력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접근에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 대화가 필수적 과정이라는 ④번 문장은 한반도 안정을 위한 남북대화를 의미한다. 비핵화를 위한 남북대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 아니라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대화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 양국이 ‘북한 비핵화’는 ⑤번 문장에서 등장한다. 비핵화를 위한 효과적인 과정들과 9.19 공동성명의 다른 공약의 이행 문제는 6자회담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⑤번 문장과 ⑧번 문장은 하나의 연속선에서 파악된다.
정리하자면 미중 양국은 한반도 안정에 더 방점을 찍으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병행추진하는 로드맵에 합의를 한 것이며, 한반도 안정을 위해 남북관계의 진전이 ‘필수사항’이라고 함으로써 남북 대화를 강력하게 주문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6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하여 비핵화를 위한 단계들이 이행되는 비핵화 프로세스를 가동시키기로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미국의 정책이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한 북측은 미중 정상회담 직후 남북군사고위급회담을 제안함으로써 유연성을 발휘한다. ‘남북군사회담’의 목표를 ‘긴장완화’라고 명시함으로써 미중정상의 합의에 부응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공은 이명박 정부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요구함으로써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군사회담 제의를 거절했다.
이는 명백히 지금까지 진행되어왔던 발목잡기의 연장선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특히 현인택 장관의 ‘폭로’는 압권이었다. 북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1월 하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에게 북미 직접대화를 제의했다. 이같은 사실은 2월 언론에 의해 공개되었다. 현인택 장관 역시 북의 북미 군사회담 제의를 공개하면서 그 제의를 하면서 북이 “이대로 놔두면 한반도에 핵참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까지 발언했다. 미국이 ‘비밀누설’이라며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에 항의한 것을 보면 현인택 장관이 폭로한 북의 협박을 사실로 보인다.
현인택 장관이 한미 간의 외교 마찰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비밀’을 누설하면서까지 북의 협박 사실을 공개한 이유는 명백하다. 미국의 대북대화 정책에 발목을 잡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미국의 항의를 받는 역효과만 가져왔다.
이명박 정부가 혼선을 빚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대북 대화를 위한 작업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었다. 북측이 1월 미국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자 로버트 킹 북인권특사와 보즈워스 대북특사는 쌀 지원 의사를 피력했다. 미 국방부 역시 3월 14일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미 카터의 방북도 추진되고 있었다.
미중 양국은 ‘남북비핵화 회담 → 북미 양자회담 → 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에 합의하고 추진하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남북 비핵화 회담을 ‘종용’했을 만큼 미국 역시 6자회담 프로세스에 적극적이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한 차례의 회담으로는 안된다며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북측은 미중 정상회담의 후속 작업을 계속했다. 지미 카터를 불러 북미 대화 재개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한편 지미 카터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다. 북미대화와 남북대화 그리고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할 용의가 있음을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었다.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는 5월 9일 베를린 제안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북한이 비핵개방 3000에 동의한다면 2012년 핵정상회담에 초청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베를린 제안’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거부’했으며, 중국과 미국이 합의한 ‘남북 회담 - 북미 회담 - 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3단계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를 ‘거부’했다.
북측은 다시 강제외교의 수단을 동원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의 전모를 낱낱이 공개한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와는 더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 폭로전 역시 대상은 표면적으로는 이명박 정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오바마 행정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남북군사회담도 제의해 보았고, 남북정상회담도 타진해 보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저토록 오락가락 행보를 함으로써 더 이상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방도는 없다." 이것이 북측이 폭로전을 통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이 때부터 미국이 다시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6월 24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이후 김성환 외교장관이 천안함과 연평도의 6자회담 분리 대응 입장이 나온 것은 미국의 ‘개입’을 시사한다. 그리고 아시아안보포럼이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북 비확화회담이 개최된다. 6자회담 1단계 프로세스가 진행된 것이다. 남북 비핵화회담 직후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김계관을 미국에 초청한 것을 공개하고 북미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프로세스가 2단계까지 진행된 것이다.
전략적 관리론, 발목잡기, 강제외교의 삼파전은 결국 그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전략적 관리론은 폐기되고 있으며 발목잡기는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 6자회담 재개는 더 이상 쟁점이 아니다.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는 이미 시작되었다. 문제는 어떤 6자회담인가 하는 점이며 그 속도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중국에 들러 중국 고위인사를 만난 것은 6자회담의 내용과 속도를 담판짓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통일부장관을 교체함으로써 대북정책 변화의 신호탄을 올렸다. 현인택 장관 카드로는 더 이상 현 상황을 지탱할 수 없다는 자백을 한 것이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기자 간담회에서 “대북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겠다. 그러나 기회가 되면 유연성을 발휘하겠다”고 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후자이다. 이미 기회는 마련되었기 때문에 유연성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남북 관계의 향방이 결정되는 것이다.
5. 결론: ‘전쟁과 평화 프레임’의 필요성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 이후 지난하게 전개되었던 삼파전은 결국 종착역에 도달했다. 미국의 전략적 관리론, 남측의 발목잡기, 북측의 강제외교의 각축은 미국이 전략적 관리론에서 탈피하여 대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는 효력을 상실함으로써 북의 강제외교가 성과를 냄으로써 대화국면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의 강제외교는 대화국면을 만들어내는 데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지언정 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때는 다시 한계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북의 강제외교 즉 군사적이건 비군사적이건 미국이나 남측의 대북적대행위를 종식시킬 수 있는 결정적 강제외교 수단을 발휘하기 어려운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만 주시해야 할 것은 북의 강제외교가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갖고 왔는가 하는 점이다. 북의 강제외교는 한반도를 전쟁이냐 평화냐의 기로에 놓이게 함으로서 미국의 정책전환을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북 강제외교의 특징이자 효과이다. 이는 프레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미국은 지금까지 ‘핵무기 보유와 폐기 프레임’(이하 핵무기 프레임)을 설정해왔다. ‘북한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제재를 가하고 ‘북한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6자회담을 한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따라서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느냐 포기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 판단의 기준이 된다. 지금까지 이 프레임이 작동함으로써 한반도 핵문제의 결정적 열쇠는 북이 핵을 포기하느냐 마느냐라는 인식이 국제사회를 지배해왔다.
이명박 정부는 ‘핵무기 프레임’에 덧붙여 ‘통일과 분단 프레임’을 가미시켰다. 즉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통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법이 그것이다. 이는 북이 핵무기를 포기했을 때 남북관계 진전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킨다. 이명박 정부가 ‘통일은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올 수 있다’, ‘통일세를 신설하겠다’는 등의 언설은 바로 이 ‘통일과 분단 프레임’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작업에 다름아니다.
북의 강제외교는 이같은 프레임을 단숨에 날려버릴 강력한 프레임을 형성하게 된다. 즉 ‘전쟁과 평화 프레임’이 그것이다. 전쟁과 평화 프레임은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평화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해 6월 지방선거 때 여당이 참패하고 야당이 승리했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도 바로 이 전쟁과 평화 프레임이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전쟁과 평화 프레임을 강화하여 여당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패배하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프레임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사고의 틀’이다. 어떤 프레임이 설정되는가 하는 데 따라 사람들의 사고는 달라진다. ‘북한 핵 프레임’이나 ‘통일과 분단 프레임’이 지배하게 되면 대중들은 제일 먼저 ‘북한’을 떠올린다. ‘못사는 북한’, ‘인민이 죽건 말건 핵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를 떠올리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북 급변사태’를 얘기하고 비핵개방3000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전쟁과 평화 프레임’이 지배하게 되면 ‘전쟁의 참상’이 먼저 떠오른다. ‘전쟁은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는 절대절명의 과제’에 동의하게 된다. 그 과제를 소홀히 하는 현 정부의 무책임성에 우선 분노하게 된다.
이같은 프레임이 한국 사회를 지배했을 때 한반도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은 보다 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또한 진보세력과 개혁세력이 평화와 통일을 위해 단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전쟁과 평화 프레임’을 확고하게 구축하기 위한 우선적 과제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운동을 더욱 강하게 전개하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 운동의 대중화는 ‘북한 핵 프레임’도 ‘통일과 분단 프레임’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는 최상의 대중운동이자 프레임 설정이다.
6자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6자회담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북미 양국의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남측 사회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대중적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6자회담 역시 ‘북한 핵 프레임’에서의 6자회담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 프레임’에서의 6자회담으로 전변될 수 있다. 6자회담의 프레임이 그렇게 전변된다면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질적인 논의에 착수하게 될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의미한다. 필자가 프레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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