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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밀추진소조와 미국 대사의 은밀한 만남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1. 9. 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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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19일 (월) 09:46:38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친노 대권주자의 등장을 경계한 미국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되었다. 남측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에게 지시하여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킬릭스(Wikileaks)에 공개된 16편의 비밀전문들은 이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말해준다. 그 비밀전문들은 2007년 8월 8일부터 12월 14일까지 넉 달 동안 ‘비밀 인터넷통신 소통망(SIPRN)’을 통해 발송된 것이다.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그 비밀전문들이 토해내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핵심참모들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주한미국대사관의 첩보활동과 비밀공작이다. 미국 대사가 자신을 겨냥한 비밀공작을 벌이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이 땅의 대통령, 미국 대사와 정치참사들에게 수시로 불려가 극비정보를 털어놓아야 하는 이 땅의 고위관료들...비밀전문들은 한미동맹의 최면에 걸려 있는 이 땅의 국민들을 흔들어 깨워 이 땅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는 충격적인 질문 앞으로 끌어낸다.

이 충격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비밀스런 이야기는,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 조셉 윤(Joshph Y. Yun)이 작성하여 2007년 8월 10일 발송한 3급 비밀전문 ‘한국-조선 정상회담, 경제협력 확대할 듯(ROK-DPRK SUMMIT LIKELY TO BROADEN ECONOMIC COOPERATION)’에서 시작된다. 2007년 8월 8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예고한 청와대의 공식발표가 나오자마자, 주한미국대사관 관리들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이튿날인 8월 9일 외교통상부 관리들을 만났으나, 중요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청와대가 추진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가 외교통상부에게서 나올 리 없었던 것이다. 주한미국대사관의 첩보활동이 ‘친노그룹’에게 쏠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치참사 조셉 윤이 작성하여 2007년 8월 16일 발송한 3급 비밀전문 ‘한국-조선 정상회담: 완고한 진보적 국회의원들(ROK-DPRK SUMMIT: PROGRESSIVE NATIONAL ASSEMBLY MEMBERS BULLISH)’은, 정치참사들이 8월 16일 ‘친노그룹’ 소속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상황을 파악하려고 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접촉한 대상은 당시 열린우리당 초선 국회의원들인 이화영 의원과 김종률 의원이었고,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장영달 의원은 따로 만났다. 위의 3급 비밀전문에는 이례적으로 이화영, 김종률 두 의원에 관한 ‘약력소개(Bio Note)’를 곁들였는데, “두 사람은 정상회담 준비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국무총리이며 대권주자인 이해찬의 지지자들이다. 이 두 의원은 자주 방북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번 주에 열린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 노 대통령, 이해찬과 함께 참석했다고 말했다”고 씌여있다.

중요한 것은, 주한미국대사관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접촉한 대상이 노무현-이해찬 인맥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왜 노무현-이해찬 인맥을 주목하였을까? 아래와 같은 사연이 있었다.

알렉산더 버쉬바우(Alexander Vershbow) 당시 주한미국대사가 작성하여 2007년 3월 15일 발송한 3급 비밀전문 ‘이해찬 전 총리의 평양방문: 관계개선 준비한 북측(FORMER PM LEE HAE-CHAN'S VISIT TO PYONGYANG: NORTH READY FOR IMPROVED RELATIONS)’에 따르면, 이해찬 전 총리는 2007년 3월 7일부터 10일까지 방북한 직후인 3월 14일 버쉬바우 대사와 만난 조찬석상에서 “2.13 합의의 첫 단계를 이행하는 경우 2007년 5월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교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비공식적인 의견을 말했더니 북측에서도 긍정적이었다”고 밝혔다. 그 말을 듣고 난 버쉬바우 대사는 “2008년 여름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에 대해 북측이 더 관심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이상한 물음에 대해 이해찬 전 총리가 어떻게 답변했는지는 비밀전문에 나와 있지 않지만, 버쉬바우 대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차기 정권이 추진하기를 바라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미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었다.

미국이 반대한 까닭은, 위의 3급 비밀전문 끝부분에 달아놓은 버쉬바우 대사의 ‘의견(comment)’에 들어있는데, 이런 글이 적혀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노 대통령과 가까운 이 총리는 앞으로 몇 달 동안 노무현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 같다. 그는 나에게 정반대로 말했지만, 그가 이번 평양방문 중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은 남측에서 거의 없다. 수많은 진보정치인들(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뜻함-옮긴이)은, ‘북풍’ 또는 대북관계 개선이 한나라당 대선주자들과 경쟁하는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작성자 이름이 없이 2007년 6월 8일 발송한 내부용 일반전문(UNCLASSIFIED/FOR OFFICIAL USE ONLY) ‘진보적 정계실력자들, 2007년 후보 아직 정하지 못해(PROGRESSIVE KINGMAKERS: STILL UNDECIDED ON 2007 CANDIDATE)’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은 이해찬 전 총리를 “유력한 친노 대권주자(leading pro-Roh candidate)”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부대사 윌리엄 스탠튼(William A. Stanton)은 2007년 8월 16일 발송한 3급 비밀전문에 이러한 ‘의견’을 달아놓았다. “만일 이해찬이 정상회담 준비로 신임을 얻어 자신이 다른 대권주자들을 압도하기 바란다면, 남북정상회담 성공과 그 이후 남북협력 발전은 (미국에게) 중대한 문제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이 비밀공작으로 지원해주고 있었던 대선후보는 이해찬 전 총리가 아니라 따로 있었다. 그런데 이해찬 전 총리가 제2차 남북정상회담 분위기에 편승해 유력한 친노 대권주자로 등장하는 것은 미국의 정권교체 구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었고, 따라서 미국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대선 직전에 열리는 것을 당연히 반대하였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민감한 의제 다룰까봐 지레 겁먹은 미국

청와대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상황을 파악하려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첩보활동은 여러 방면으로 진행되었는데, 버쉬바우 대사와 정치참사들이 노무현 정부 고위관리들을 은밀히 만난 것도 그러한 첩보활동의 일환이었다. 버쉬바우 대사가 작성하여 2007년 8월 21일에 발송한 3급 비밀전문 ‘한국-조선 정상회담: 비핵화와 경제협력의 병행을 말하는 외통부와 통일부 장관들(ROK-DPRK SUMMIT: FOREIGN AND UNIFICATION MINISTRERS SAY DENUCLEARIZATION AND ECONOMIC COOPERATION GO TOGETHER)’에서 그들의 첩보활동을 엿볼 수 있다.

버쉬바우 대사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2007년 8월 20일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을 각각 따로 만났다. 송민순 장관은 버쉬바우 대사에게 남북정상회담이 어떤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남북 사이에 이루어진 기존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다른 한 편, 이재정 장관은 버쉬바우 대사에게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의 맥락에서 남북경제협력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기회이며, 북미 관계개선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두 장관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미국 정부와 계속 협의하겠다고 (버쉬바우 대사에게) 말했다.”

같은 날,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들은 엄종식 당시 통일부 정책기획과장을 만났다. 위의 비밀전문에서 주한미국대사관 관리들은 엄종식 과장을 “우리 동료(our colleague)” 또는 “우리의 통일부 연락선(our MOU contact)”이라 불렀다. 주한미국대사관이 발송한 비밀전문 1,980편에는 주한미국대사관의 ‘동료’들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실명이 적혀있는 ‘동료’는 엄종식 과장과 정현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다.

위의 3급 비밀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통일부 정책기획과장 엄종식은 조선이 정상회담 진행일정 골자만 알려왔고, 남북 당국이 10월 2일 이전에 세부적인 준비를 위해 만날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으므로, 한국 정부의 발표는 남북정상회담 의제가 유동적이라는 취지의 간략한 발표라고 우리들(정치참사를 뜻함-옮긴이)에게 말해주었다.”

위의 3급 비밀전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주한미국대사관 대사와 정치참사들이 노무현 정부 고위관리들을 은밀히 만난 목적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다루어질 것인지 사전에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국익’을 해칠 민감한 의제가 논의되지나 않을까 하고 우려하면서 남북정상회담 의제를 미리 알아내기 위한 첩보활동을 벌인 것이다.

주한미국대사관이 우려한, ‘미국의 국익’을 해칠 민감한 의제는 무엇일까? 버쉬바우 대사가 위의 3급 비밀전문 끝부분에 달아놓은 ‘의견’에 민감한 의제가 나온다. 버쉬바우 대사의 ‘의견’에 따르면, 2000년 6월에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한미국군 주둔에 관한 “길고 위협적인 담화(long threatening discourse)”를 하고 나서, “통일 이후에도 미국군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김대중의 말에 동의하는 식의 회유발언(conciliatory remarks)을 하였다.”

그런데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 남측의 유일한 배석자로 참석한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은 2008년 6월에 나온 회고록 ‘피스 메이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가 알기로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것이 남조선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회고하면서, 그 말은 “미군이 계속 주둔하되 ‘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변경하여 북한에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라는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그러나 버쉬바우 대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이후 미국군 주둔 발언에 동의하는 척하는 회유발언을 한 것이지, 미국군 주둔을 용인한 것이 아니었다고 지적하였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한미국군 주둔에 관한 ‘길고 위협적인 담화’를 하였다는 사실을 감춘 것을 보면, 버쉬바우 대사의 지적이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이후 미국군 주둔 발언에 동의하였을 리 만무하다.

버쉬바우 대사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 까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또 다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제기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 문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버쉬바우 대사의 ‘의견’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어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달리 “다소 실체적이고 정리된(somewhat more substantive and disciplined)” 논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내용이 들어있다. 버쉬바우 대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에 관한 ‘실체적이고 정리된 논의’를 하지나 않을까 크게 우려한 것이다.

물론 버쉬바우 대사는 철군문제가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나 않을까 우려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비밀공작망을 가동하였다. 그러나 주한미국대사관의 비밀공작에 관한 극비정보는, 2급 비밀전문과 3급 비밀전문만 공개된 위킬릭스에는 노출되지 않았다.

청와대 비밀추진소조 움직임을 속속들이 파악한 미국

버쉬바우 대사가 작성하여 2007년 9월 5일 발송한 3급 비밀전문 ‘한국-조선 정상회담과 비핵화에 관한 국가안보보좌관의 견해(NATIONAL SECURITY ADVISOR ON ROK-DPRK SUMMIT AND DENUCLEARIZATION)’에는 버쉬바우 대사가 2007년 9월 3일 백종천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위의 제목에 나오는 국가안보보좌관은 백종천 실장을 뜻한다.

버쉬바우-백종천 회동에서 “백종천 실장은 한국 정부가 10월 2-4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워싱턴의 관심사를 알고 있으며, 남북관계 진전이 6자회담 진전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유의할 것임을 버쉬바우 대사에게 확인”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이 6자회담이나 미국-한국 관계에 결코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고, “한국 정부는 6자회담 계획을 방해하는 대북 에너지 제공을 결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버쉬바우 대사는 미국의 의도를 따르는 청와대의 갸륵한 행동에 “사의를 표했다.”

백종천 실장을 9월 3일에 만난 버쉬바우 대사는 9월 19일에 그를 다시 만났다. 버쉬바우 대사가 백 실장을 특별히 두 차례나 만난 까닭은, 그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청와대 비밀추진소조의 핵심인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밀추진소조란 무엇일까? 그에 관한 정보는, 정치참사 조셉 윤이 작성하여 2007년 9월 5일 발송한 3급 비밀전문 ‘남북정상회담, 어떻게 성사되게 되었는가(NORTH-SOUTH SUMMIT: HOW IT CAME ABOUT)’에서 엿볼 수 있다.

위의 3급 비밀전문에 따르면, 조셉 윤 정치참사는 9월 4일 박선원 당시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과 만찬을 나누며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상황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들었다. 박선원 비서관은 조셉 윤 참사에게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경로를 자세히 설명하고, 자신이 예상한 회담의제를 말해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03년에 이종석 당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박선원 자신, 서훈 국정원 3차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조그만 추진소조(small “enabling” group)”를 결성하였고, 2005년 6월에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방북하였을 때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였다. 2006년 1월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에 부임한 송민순은 남북정상회담을 미국과 ‘상의’하면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북핵문제’를 남북정상회담 추진문제보다 더 중시하였다. 2007년 5월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송민순에서 백종천으로 바뀌었는데, 백 실장, 박선원 비서관, 김만복 국정원장, 서훈 국정원 3차장 4인으로 구성된 “비밀추진소조(secret enabling group)”가 결성되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4인방 가운데 백종천 실장, 박선원 비서관과 연계를 가졌으니,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는 당연히 김만복 원장, 서훈 차장과 연계를 가졌을 것이다.

박선원 비서관이 조셉 윤 참사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통상부 장관, 국방부 장관, 통일부 장관에게 알리지 않고 청와대 비밀추진소조에게만 지시하면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비밀추진소조는 2007년 7월 김만복 국정원장 명의로 작성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는 서한을 북측의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에게 보내놓고서도, 비밀추진소조 성원들 가운데 아무도 북측으로부터 긍정적인 응답을 받으리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측은 그 서한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였다.

버쉬바우 대사가 작성하여 2007년 9월 20일 발송한 3급 비밀전문 ‘국가안보보좌관 백, 남북정상회담에서 놀라운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NSA BAEK: EXPECT NO SURPRISES FROM N-S SUMMIT)’에 따르면, 버쉬바우 대사는 2007년 9월 19일 백종천 실장을 두 번째로 만났다. 버쉬바우 대사는 백 실장에게 남북정상회담 준비상황에 대해 물었고, 백 실장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에 대해 논의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 때문에 미국이 당황하였을 것이라고 하면서, 남북정상회담에서 깜짝 놀랄 만한 합의는 전혀 나오지 않을 것이고, 남측은 북측에게 비핵화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할 것이라고 버쉬바우 대사에게 확인해주면서 미국을 안심시켰다.

백종천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남북경제협력, 평화체제, 인도주의 문제를 의제로 제기할 것이라고 버쉬바우 대사에게 알려주었는데, 그 두 사람이 주목한 것은 평화체제에 관한 의제다. 백 실장은 “한국이 이 문제(평화체제 문제를 뜻함-옮긴이)를 추진하면서 미국과 지속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은 평화체제에 관한 미국-한국의 기존 협의에 나온 지침들을 따를 것이며, (남북정상회담에서) 그 문제에 관한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위의 비밀전문들에서 드러난 것처럼, 주한미국대사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주무부처 장관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비밀추진소조를 가동하여 극비로 추진해온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준비상황에 대한 정보를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속속들이 파악하였고, 수집한 정보를 비밀전문으로 작성해 백악관과 국무부에 수시로 보고하였다.

보이지 않는 북미 대결, 평화협정 체결이냐 ‘북한의 비핵화’냐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떠나기 하루 전인 2007년 10월 1일 버쉬바우 대사는 그 동안 수집해온 관련정보를 총정리한 장문의 3급 비밀전문 ‘10월 2-4일 한국-조선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몇 가지 문제들(ISSUES TO WATCH THE ROK-DPRK SUMMIT, OCT. 2-4)’을 발송하였다. 버쉬바우 대사가 그 비밀전문 끝부분에 달아놓은 ‘의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견’에서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지만, 미국의 이익에 직결된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견하면서, 이렇게 썼다. “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겠지만, 김정일이 6자회담 과정을 유지하는 비핵화를 찬성한다고 발언하거나 또는 그런 발언을 공동성명에 포함시키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삼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버쉬바우 대사의 ‘의견’에는 이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충격적인 정보가 들어 있다. 그것은 미국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된 10.4 선언에 ‘북한의 비핵화’에 관한 항목을 집어넣도록 노무현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였다는 사실이다. 위의 비밀전문에 나온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표현은 주한미국대사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였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위의 비밀전문에는 주한미국대사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였음을 암시하는 표현만 들어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압박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까닭은, 주한미국대사관이 청와대에 깔아놓은 ‘동료’들과 ‘비밀연락선’들을 총동원하여 압박한 개입공작은 1급 비밀에 속하는 정보이므로, 위에 나온 3급 비밀전문에서 언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버쉬바우 대사의 ‘의견’에 나온 “마음이 내키지 않는(half-hearted)”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의 비핵화’에 관한 항목을 10.4 선언에 집어넣으라는 미국의 강압적인 요구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북한의 비핵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망발이었다. 그리하여 10.4 선언에는 미국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집어넣으라고 요구한 ‘북한의 비핵화’ 관련 항목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미국의 요구에 배치되는 두 항목이 들어갔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방도를 명시한 항목이 들어갔고, 그와 더불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이행을 공약한 항목이 들어간 것이다.

10.4 선언의 평화 관련 항목은,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서술되었다. 이 항목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난다”는 표현이다. 이 중요한 표현은 누구의 요구로 10.4 선언에 들어간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이제껏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버쉬바우 대사가 작성하여 2007년 10월 5일 발송한 3급 비밀전문 ‘외교통상부의 남북정상회담 정보판단: 노무현은 미국을 “지지”하였다(MOFAT READOUT OF NORTH-SOUTH SUMMIT: ROH “WENT TO BAT” FOR U.S.)’에서 진실이 드러났다. 버쉬바우 대사는 2007년 10월 5일 조정표 외교통상부 차관과 조병재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을 만나 파악한 정보를 가지고 위의 비밀전문을 작성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버쉬바우-조병재의 대담내용이다.

조병재 북미국장은 버쉬바우 대사에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미국 대사 앞에서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비밀전문에서 버쉬바우 대사는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본질적으로 같은 말이고, 미국은 종전을 선언하기 위한 중간단계의 정상회동(interim summit meeting)을 지지하지 않을 것 같다”고 썼다. 버쉬바우 대사는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보면,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종전선언을 채택하기 위한 1차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2차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평화협정은 단 한 차례 열릴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에서 체결되리라고 전망된다. 따라서 종전을 선언하는 정상회담은 곧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정상회담인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북측은 10.4 선언에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명시적 표현을 넣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평화협정과 똑같은 내용을 지닌 종전선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넣어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노숙하고 세련된 북측의 견인전술이 돋보인다.

평화협정 체결 문제에 관련한 10.4 선언의 의의는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버쉬바우 대사와 만난 직후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건 조병재 북미국장은, 남측이 9.19 공동성명에 나오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라는 표현을 10.4 선언에 넣으려고 하였는데, 북측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라는 표현을 넣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여 그 표현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위의 비밀전문 끝부분에 달아놓은 ‘의견’에서 버쉬바우 대사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외교통상부의 또 다른 비밀연락선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인용하여, 10.4 선언 채택과정에서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라는 표현에 대해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반대하였으나 결국 그 표현은 공동선언에 들어가고 말았다고 썼다.

북측이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라는 표현을 10.4 선언에 넣은 까닭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정상회담을 분리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10.4 선언의 평화 관련 항목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한반도 어느 지역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북미 정상회담을 전제로 하지 않는 평화협정 체결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남과 북은 10.4 선언에 6자회담과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식으로 서술하지 않고,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북측에게 요구하는 6자회담과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합의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이행을 공약한 것이다.

이처럼 남과 북이 10.4 선언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공약하고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이행을 공약한 것은, 청와대 비밀추진소조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에 개입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미국의 비밀공작이 물거품으로 되었음을 말해준다. 북측의 시각에서 보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합의하느냐 아니면 ‘북한의 비핵화’를 합의하느냐 하는 보이지 않는 정치대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의 압력 앞에서 주춤거리던 노무현 대통령을 견인하여 평화협정 체결을 합의하는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10.4 선언 부정한 ‘백조의 노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비밀공작이 물거품으로 끝나자, 주한미국대사관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10.4 선언의 의의를 깎아내리면서 평화와 통일을 지향한 민족공동의 노력을 모욕하는 심술을 부렸다. 그 비열한 행동은, 조셉 윤 정치참사가 작성하여 2007년 10월 5일 발송한 장문의 3급 비밀전문 ‘한국-조선 정상 선언: 시험을 받게 될 야심적인 계획(ROK-DPRK SUMMIT DECLARATION: AMBITIOUS PLAN WILL FACE TESTS)’에서 드러났다. 이 비밀전문에서 그는 10.4 선언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재탕한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10.4 선언을 아전인수격으로 8개 항목에 걸쳐 해설하였다. 그들의 아전인수격 해설은 반론할 만한 가치도 없는 엉터리지만, 해설 끝부분에 있는 ‘의견’은 간과할 수 없다.

‘의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주한미국대사관을 뜻함-옮긴이)는 10.4 선언을 분위기 썰렁한 이번 정상회담의 성취보고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그 선언을 노 대통령이 부른 백조의 노래(swang song)로 여긴다...” 백조의 노래란 백조가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르고 죽는다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에서 나온 서양의 관용어인데, 그 말은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에 마지막으로 남긴 10.4 선언을 미국이 전면 부정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칠천만 겨레의 염원을 담아 채택한 민족공동선언인 10.4 선언을 ‘백조의 노래’ 따위의 가당치 않은 소리로 모욕하고 부정하였다.

주한미국대사관은 10.4 선언을 부정하면서도 속으로는 좀 켕겼는지, ‘의견’의 마지막 줄에 이렇게 써놓았다. “10.4 선언이 너무 늦었다고 해서 그 선언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한국 국민들은 통일이 이른 시일 안에 실현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선언에 담긴 평화실현과 남북경제협력의 청사진이 실현될 수 있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땅의 국민들이 10.4 선언을 지지하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10.4 선언을 전면 부정하는 한나라당이 집권해주기를 바랐다. 10.4 선언이 발표된 이후 약 두 달만에 실시된 대선에서는 미국의 10.4 선언 백지화 요구를 충실히 수행할 대선후보가 당선되었다.


* 출처 :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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