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브리핑] KBS '통일대토론회'를 보고
2011-08-10
8월 15일은 67번째 맞는 광복절이다. 해방과 더불어 분단이 찾아왔으니, 우리 민족이 분단되어 지내 온지도 어연 70년이며, 해방둥이(분단둥이)들은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우리가 바라는 해방의 참 의미는 민족의 분단이 아니라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한민족이 같이 새로운 국가 건설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광복은 아직 통일을 향한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이 지속되고 북한과의 차이가 여러 측면에서 알려지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와 의지가 많이 약해지는 모습이다. 통일이 왜 되어야 하는가? 통일이 과연 필요한가? 또는 통일이 우리와는 무슨 상관인가? 통일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런 질문을 학생들이나 일반인으로부터 많이 듣게 된다.
<KBS>는 국내 전문가들과 통일에 대한 토론을 갖는 '통일대토론회'를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연속으로 방영했다. 공영방송인 KBS가 10대 기획 중 하나를 한반도의 통일로 정했다는 것은 정부 측의 의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지만 정부에서 통일에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그동안 남북관계 경색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던 현 정부임을 고려할 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수단·미얀마·베네수엘라는 공개적으로 지원
토론회 중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였다. 이들은 최근 황금평, 위화도, 나선 등을 공동 개발하면서 밀착되고 있는 북중관계를 지적하면서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북한은 중국화(중국의 경제식민지)할 것이며 통일은 어려워 질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통일을 주도적·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토론자는 대한민국 선진화 방안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을 이루고 나아가 북한을 발판삼아 중국의 동북지역과 러시아 극동지역도 개발하는 동북아 개발을 주도적 이끄는 것이 굶주림과 독재의 억압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동포를 구하고 대한민국도 선진화 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한다.
북한이 중국화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북한이 철저히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30년간 매년 10%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룩해 미국 다음으로 큰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북한을 정치·외교적으로 비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북한에 대한 투자와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고 있으며, 북한 정권은 생존을 위해 유일한 후견·지원국인 중국에 더욱 기대고 있어 북한이 중국의 경제식민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주체'는 허구일 뿐이다. 그러나 과연 중국을 북한의 유일한 후견·지원국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북중관계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중국이 북한 정권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경제지원을 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것을 증명할만한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이 실제로는 북한에 지원을 하고 있으나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는데 그 이유로 중국 정부가 독재·반인권·반미 국가인 북한을 공식적으로 도와준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수단과 미얀마 등 독재·반인권 국가들과 베네수엘라 같은 반미·반서방 국가들에게 경제 지원을 공식적으로 하고 있다.
혹시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과 북중의 경제협력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중국과 북한 정부가 의도적으로 숨기기 때문이라기보다, 경제지원과 경제협력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는 않을까?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을 보면 중국이 북한을 은밀히 지원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설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의 요구에 상관없는 아무거나 지원한다는 것보다는 북한이 필요한 것을 지원한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야만 지원국인 중국의 이해관계를 피지원국인 북한을 상대로 극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식량이다. 북한은 연간 약 50~60만 톤의 식량이 늘 부족한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미화로 계산하면 약 1.8억달러 정도이다. 이 정도의 금액은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에게 큰 것이 아니다. 실제로 중국은 군사독재 국가인 앙골라와 미얀마에 각각 20억 달러와 3000만 달러를 외채 탕감에 지원했으며 반미국가인 베네수엘라에게는 개발원조로 12억 달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식량난을 매년 겪고 있으며, 중국이 식량을 지원했다는 공식/비공식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고찰해 볼 때 중국이 북한의 후원국이며 지원국이라는 시각은 재고되어야 한다.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전력이 약해진 북한을 도와 대규모의 군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북한 공산당 정권의 패배와 파멸을 막기 위해 군사적 지원을 했다기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진격을 한반도에서 막아 보겠다는 의도가 더 큰 것이었다.
당시 연합군을 총 지휘하던 맥아더는 압록강을 넘어 중국까지 진격해 중국의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공공연히 선포했다. 나아가 맥아더는 원자폭탄을 중국의 동북지역과 중국과 북한의 국경에 투하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밀어붙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투르먼과 갈등을 빚고 결국 총사령관 자리에서 해임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마오쩌뚱은 남한에 주둔한 미군을 견제하고 북한의 경제 복구를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의용군을 철수시키지 않고 대부분 북한에 잔류시켰다. 그러나 마오쩌뚱의 진정한 목적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것이었다. 북중관계는 1956년 8월 북한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연안파를 숙청하면서(8월 종파사건) 최악으로 치달았으나, 북한이 중소분쟁에서 중국의 편을 들어주자 1958년 북한에 남아있던 중국 의용군 25만 명을 모두 철수시켰다.
이후 중국과 북한은 1961년 7월 11일 '조ㆍ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맺는데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익이 아니라 북·중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중소분쟁으로 소련과 대립적 관계를 갖고 있던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여 북한이 소련편이 되어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것을 방지하고, 북한으로서는 남한에 반공·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미국과의 군사적 대립이 심화되는 시기 중국을 든든한 후방으로 활용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역사적으로도 북중관계는 철저히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변천되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큰 변화 없이 흘러왔다. 그러므로 중국을 북한의 최후의 후견인 또는 유일한 후원자로 규정하는 시각은 현실적으로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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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3월 공개한 라선경제무역지대 개발계획의 완성 예상도. 국제 화물 중계지, 수출품 가공지, 국제적인 금융 및 관광지로 꾸려진다고 한다. ⓒ연합뉴스 |
북중 개발협력, 그 지난한 과정을 무시해선 안돼
그러면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북중 경제협력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2009년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이후 황금평, 위화도, 신의주, 나선에 대한 중국의 투자와 북중 간의 개발협력이 대외적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원래 이 지역의 개발을 놓고 북한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면서 양국 간의 지난한 밀고 당김이 있었다. 남한과의 교류협력이 2000년 정상회담 이후
탄력을 받으면서 북한은 2002년 신의주를 경제투구를 지정하고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인 양빈을 행정장관으로 임명했다. 양빈은 신의주 특구를
홍콩과 선전,
상하이 푸동, 쑤저우 공업원구의 장점들을 선별적으로 차용한 '북한식 경제특구'로 만드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북한은 독자적으로 신의주를
국제적 경제특구로 조성하려고 했으며 이것은 중국 측에서 볼 때 결코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북한 신의주에 경제특구가 조성되면 중국 경제특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상하이, 푸동과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중국 동북지역의 경제특구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양빈이 신의주 특구를 설명하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직후 사기와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시켰다. 양빈의 구속은 그가 공식적으로 북한 공민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직에 있을 때 전격 집행되었다. 중국이 북한에 던진 메시지는 명백했다. 자신들과 상의 없이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북한도 가만있지 않았다. 양빈에 대한 중국의
수사가 시작되자 김정일은 러시아 극동을 전격 방문해 당시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만나 철도
연결에 합의했고, 나진항을 이용을 두고 협의를 시작했다. 나진항은 동북아시아에서 개발이 본격화한다면 교통과
물류의 관문과 중심이 될 수 있는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곳이다. 중국의 동북 진흥 계획이 공식화되기 전 이미 개발로 인한 북한으로의 중국 영향력
확대와 확산에 대한 북한의 견제와 균형잡기(check and
balance)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북한은 그 누구에게도 나진항의 독점적 개발권을 주지 않고 러시아와 중국을 경쟁시키며
지루하고 지난한
협상을 벌였다. 그 결과 자신들의 입지를 극대화하며 나진항을 러시아 (러시아는 2008년 4월 나진항 3, 4호 부두에 대한 50년간의 운영권은 얻어낼 수 있었는데 운영권을 얻어내는 조건으로 러시아는 약 2억 달러가 드는 54km 나진하산 국제철도를 2012년까지 지어주기로 했다)와 중국(중국은 2005년부터 중앙정부차원에서 동북진흥계획을 공식화하는 이른바 36호 문건을 채택하고 훈춘-라선 '도로·항만·구역 일체화'
프로젝트가 포함된 두만강 지역 개발과 관련된 5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마침내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과 만나 나진항 1호 부두의 10년 이용권 확보를 확정했다. 그리고 소위 동북 진흥 계획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창지투
선도지구' 개발을 비로소 대외에 알렸다)에
분할 임대했다.
이처럼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에 대해 견제와 균형잡기를 하며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의 견제와 균형잡기는 북한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더욱 첨예화할 것이다. 중국 역시 황금평, 위화도, 신의주, 나선특구에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심화시키는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우선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무리하게 높이려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에 갖은 영향력은 여전히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만일 동북아시아에 미국, 일본, 한국을 한 축으로 하고 중국, 러시아, 북한이 또 다른 축으로 하는 대립구조가 형성된다면 선택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북한으로서 중국을 영향력을 제한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중국 영향력이 북한으로 더욱 확대되는 것이 진정으로 우려되고 방지하고 싶다면 '
한미동맹
강화'로 올인하고 있는 한국의 외교정책의 기조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 대외 투자와 경제협력을 당담하고 있는 것은 국방위원회 직속 대풍그룹인데 대풍그룹의 이사장직을 김양건 통일
전선부장이 맡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대풍그룹은 원래 남한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그리고 남한을 통해 일본과 미국 자본도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풍그룹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6년인데 중국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훈춘-라선 '도로·항만·구역 일체화' 프로젝트가 담겨있는 36호 문건이 나온 것은 2005년 6월이었다. 즉 북한은 중국과의 경제협력(또한 중국으로부터의 투자)이 본격화할 것을 예상하고 이것에 대한 균형잡기를 위해 대풍그룹을 구상하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주체'를 버리지 않은 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균형잡기를 지속적으로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남한과의 교류·협력의
카드를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 북한에게 남한은 세계로 나아가는 관문이자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잡기를 하는데 몇 안 되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심화되고 확대된다면 통일의
지평도 넓어 질 것이다.
/박후건 경남대 교수
* 출처 :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