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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역사 속에 나타난 미국의 횡포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3. 8. 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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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심은 이르다. 개성공단의 역사를 돌아보면 개성공단을 각방으로 방해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한국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이상 개성공단은 언제든 제2, 제3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의 역사 속에 나타난 미국의 횡포


동북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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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에 걸친 실무회담 끝에 남북은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는 데 합의하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모든 남북 관계가 단절되고 거의 유일하게 남은 경제협력 사업이었기에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는 더욱 소중하다.


그러나 아직 안심은 이르다. 개성공단의 역사를 돌아보면 개성공단을 각방으로 방해한 나라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개성공단이 합의된 이후 지금까지 시종일관 개성공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한국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이상 개성공단은 언제든 제2, 제3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미국 눈치 속에 치른 개성공단 착공식


2000년 8월 22일 현대아산과 북한은 역사적인 개성공단 사업을 합의하였다. 당시는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던 때였다. 남북 관계가 급진전하면서 각종 교류협력 사업이 봇물 터지듯 시작될 때였다. 그리고 북미 사이에도 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되어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부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고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하던 때다. 그래서 개성공단이라는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미국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북미 관계가 다시 험악해지면서 개성공단에는 난관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새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대북적대정책으로 회귀하였다.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것에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 한미정상회담 자리에서 남북화해정책을 설명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막말까지 내뱉었다.


이런 와중에 착공식 날짜는 다가왔다. 미국은 착공식 전부터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02년 11월 7일 더글러스 파이스(Douglas Feith)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용산 미8군 사령부에서 조중동을 비롯한 친미반북 언론만 따로 불러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파이스 차관은 개성공단 착공에 입장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 국제 합의를 깨고도 다른 나라와 정상적인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개성공단 착공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눈치 속에서 2003년 6월 30일 남북은 개성공단 착공식을 진행하였다. 2003년 7월 1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는 북한 경제봉쇄를 촉구하는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착공식을 의도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착공식에는 남측에서 한국토지공사, 현대 아산 관계자 등 120여명, 북측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 약 200명이 참석했으나 개성공단이 외국기업에 문호를 열고 있음에도 외국인 초청자들은 많지 않았다.


입주 단계에서 발목을 잡은 미국 수출관리규정


2004년 6월 14일 15개 기업들이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미국의 견제로 기업들은 입주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2013년 5월 2일 블로거 간담회에서 ≪개성공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의 반대가 있었다≫, ≪EAR라고 미국의 기술이 10% 이상 들어간 물자는 군사물자로 전용될 수 있다 해서 적성국가에 수출 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법이 있다≫, ≪어지간한 공장엔 컴퓨터가 들어가는데 미국이 반대하면 공장을 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3년 5월 <연례 세계 테러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다. 테러지원국에 생산설비와 기자재를 반입하려면 미국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라야 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북한에 미국산 부품이나 프로그램이 10% 이상 포함된 수출통제품목(CCL)을 수출할 경우 미 상무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펜티엄3급 이상의 컴퓨터는 개성공단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개성공단에 공장을 차려도 컴퓨터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펜티엄4급 컴퓨터를 자체 생산하고 있기에 참으로 황당한 규정이지만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입주업체가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수출관리규정 외에도 전략물자통제체제인 바세나르 협약(The Wassenaar Arrangement), 원자력 전용 및 관련품목을 통제하기 위한 핵공급그룹(NSG : Nuclear Suppliers Group), 생화학물질의 통제를 위한 호주그룹(AG : Australia Group), 미사일 부품의 통제를 위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을 통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물품을 규제하였다.


15개 입주예정 업체는 미국 상무부에 1140여 개 품목 심사를 신청했다. 미국은 초반에는 원칙적으로 처리하겠다며 까다롭게 나왔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긴급 협의를 통해 전략물자 반출 감시가 가능하다고 설득하고 나섰다.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도 미국을 방문해 케네스 저스터 상무부 차관을 만나 <읍소>하였다.


2004년 8월 12일 시민단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남북상생의 평화경제사업인 개성공단이 전략물자 반출 문제로 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개성공단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2004년 9월 6일 북한 노동신문도 논설을 통해 ≪미국이 전략물자 수출통제 법규를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는 남조선 기업에 적용하겠다고 통지한 것은 군사전용 가능성을 문제삼아 개성공업지구 건설사업을 파탄시키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동서해선 철도·도로연결과 개성공업지구 건설이 시작된 첫 시기부터 훼방을 놓고 핵문제의 진척에 맞춰 북남관계 진전속도를 조절하라고 남조선 당국을 강박하는 등 민족 화해협력사업을 방해하려 했다≫고도 언급했다.


전략물자 반출문제는 개성공단의 출발 과정에서 심각한 걸림돌이 되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경제안보팀장은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하이테크 제품을 생산하려면 그에 필요한 원료와 부품이 적시에 투입돼야 하는데 국제 간 협약인 <전략물자 반출금지> 규제로 주요 첨단부품의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4년 12월 15일자 조선일보 인터넷판 보도)


미국은 개성공단 성사 여부는 자신들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2004년 11월 9일 서울 용산 주한미군기지에 있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지역으로 이전했다. 이곳에서 비무장지대를 출입하는 인원과 반입 물자에 대한 승인 및 허가 등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략물자 반입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려는 목적에서다. 이철기 동국대 교수는 비무장지대 관할권이 주한미군에게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실질적 조치라고 지적했다.(2004년 11월 9일자 문화일보 인터넷판 보도)


노동착취를 우려하는 자본주의 미국


남북은 이런 미국의 방해 속에서도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를 성사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인권 문제, 노동권 문제가 대두됐다.


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대북인권특사는 2006년 3월 30일 미국기업연구소(AEI) 주최 북한인권 토론회에 참석해서 ≪개성 공단 북한 근로자들은 하루에 2달러밖에 안되는 적은 액수의 돈을 받고 있으며 노동권리에 대해서도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서는 개성공단 사업이 북한에 수억 달러를 퍼주었고 북한의 새로운 돈줄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2006년 4월 28일에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통해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이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며 한국이 북한 정권 유지를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부시 미국 대통령은 탈북자들과 김성민 북한자유방송 대표 등을 만나 ≪미국 대통령으로서 인권과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끝까지 일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제이 레프코위츠 특사도 배석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내정간섭적 발언이라며 반발했다.


이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영향을 미쳤다. 노무현 정부는 개성공단의 원산지 표기를 <Made in Korea>로 해 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미국은 철저히 거부했다. 미국 민주당 의원들과 비정부단체들이 북한 인권 문제, 개성공단 노동자 처우 문제를 들고 나선 게 명분이었다.


미국은 재무부 자산통제국(FOAC)의 승인이 있어야만 북한산 제품 수입이 가능하다. 이는 북한에서 제조한 완제품뿐 아니라 일부 북한산 부품을 포함한 제품에도 적용되며 미 세관이 자산통제국의 승인절차를 감독한다. 따라서 개성공단 원산지를 한국으로 하지 못하면 한미 FTA가 있어도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미국 수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미국 공화당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하라고 압박했다. 공화당 하원의원이자 미국 의회 내 한국협의회인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 공동의장인 에드 로이스는 2010년 6월 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수년동안 나는 개성공단에 의문을 가져왔다≫면서 ≪개성공단을 지금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스며든 미국의 입김


이처럼 미국은 개성공단 논의 시점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끊임없이 방해해왔다. 올해 들어 벌어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에도 미국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2013년 6월 14일(현지시간)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미국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매일매일 한국의 외교관과 정부당국자들과 접촉하면서 이런(개성공단 남북 실무회담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인력 철수와 남북 당국자회담 무산 과정에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을 암시했다.


2013년 7월 29일 데이비드 코언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범죄 담당 차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같은 날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실무회담을 열자면서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미국의 개성공단 폐쇄 압박에 박근혜 정부가 동조한 셈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는 ≪북미관계가 어떻게 풀리느냐를 보고 나서 뒤따라가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2013년 4월 26일자 프레시안 보도)


미국 때문에 발생한 개성공단의 우여곡절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개성공단은 언제든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북의 경제협력 사업조차 미국의 눈치를 보고, 미국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이 모순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하겠다. (201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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