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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3. 평화협정 어떻게 논의되어 왔나 (1)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3. 7. 2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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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

 

* 이 글은 참교육학부모회 동북부지회 소식지에 연재한 글입니다.

 

1. 정전협정 어떻게 체결됐나

2. 정전협정 어떻게 파괴됐나

3. 평화협정 어떻게 논의되어 왔나 (1)

4. 평화협정 어떻게 논의되어 왔나 (2)

5. 평화협정에 대한 몇 가지 논쟁 지점들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보수언론들은 청소년들이 한국전쟁 발발일을 모른다며 역사교육이 어떻고 안보관이 어떻고 개탄합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만큼이나 중요한 전쟁 중단에 대해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습는다. 정전협정 체결일이 몇 일인지는커녕 몇 년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19537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지금까지 한반도 질서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합의입니다. 그리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 역시 60년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한반도 질서를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에 정전협정이 어떻게 체결되었고, 어떤 내용이며,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그리고 평화협정 논의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3. 평화협정 어떻게 논의되어 왔나 (1)

 

정전협정은 전투를 중단하기 위해 군 사령관끼리 맺는 협정이지 전쟁을 끝내는 협정은 아닙니다. 원래 전쟁이 끝날 때는 정부 사이에 강화조약이나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참고로 조약과 협정은 의회 동의 여부에 따라 다른 용어지만 보통은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 평화조약이나 평화협정이나 같다고 보면 됩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정전협정 체결 직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회의가 몇 차례 열렸지만 모두 무산됐습니다. 그렇다고 평화협정 체결 노력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주로 북한에서 나왔고 한국과 미국은 거부로 일관했습니다. 평화협정 체결이 주한미군철수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1962620일 북한의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미군철수, 남북무력불가침조약, 군축, 남북협상 등을 제안했고, 같은 해 1024일 김일성 수상은 남북무력불행사협정 체결을 주장했습니다. 1963112218차 유엔총회에서 북한은 남북무력불가침과 평화조약 체결을 주장했습니다. 60년대 북한의 주장들은 한국과 미국의 무대응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1972년 남북이 7.4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평화협정 문제가 다시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정부는 남북 평화협정이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면서 논의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623일 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을 발표합니다. 여기에는 남북불가침이라는 긍정적 내용도 있었지만 유엔 동시가입이라는 심각한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남북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면 별개의 국가가 되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반대하고 단일회원국 가입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북한은 남북평화협정에서 북미평화협정으로 방향을 선회합니다. 한국 정부가 군사문제에서 독자성이 없고 미국의 지휘를 받고 있기에 결국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실효성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평화협정을 누구와 맺을 것이냐는 그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우선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유엔군과 북한군, 중국인민지원군입니다. 그런데 평화협정은 군대가 맺는 게 아니라 정부가 맺는 것이기에 유엔군이나 중국인민지원군은 당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결국 북한 정부와 중국 정부, 유엔군에 참여한 나라들의 정부가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됩니다. 그런데 유엔군은 사실상 미군이 주도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주된 당사자가 될 것입니다.

국제법의 견지에서 보나, 다른 평화협정 사례를 보면 정전협정 당사국과 평화협정 당사국이 꼭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실제 전쟁을 종료하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국가가 평화협정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한국군을 지휘하는 미국이 평화협정 당사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1974325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53차 회의에서 미국 의회에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합니다. 이듬해 930차 유엔총회에서도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북미 양자회담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양자회담을 거절하고 남---4자회담을 제안합니다. 북한은 한국을 포함시킬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합니다.

한편 19751117일 유엔총회는 유엔군사령부(유엔사) 해체와 외국군철수 결의안을 통과시킵니다. 미국은 유엔사 해체는 시기상조라며 거부하면서 대비책으로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합니다. 이처럼 미국이 주한미군 영구주둔 의도를 명백히 보이면서 평화협정 체결 논의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1984110일 북한은 남--3자회담을 제안하면서 남북불가침선언과 북미평화협정 동시 체결을 주장합니다. 이는 1979년 미국이 제안한 3자회담을 수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즉각 거절하면서 무산됩니다.

이처럼 80년대까지는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한국과 미국에 요구했고, 한미는 이를 무시하는 양상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평화협정은 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한 수단입니다. 북한이 시종일관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한 것은 미국의 공격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일이 없으므로 평화협정 체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을 철저히 반대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태도만 모순에 가득 차 있습니다. 틈만 나면 북한의 남침 위협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에는 반대를 했습니다. 심지어 평화협정 체결이 북한의 요구라면서 국내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북한 동조자로 낙인찍고 탄압했습니다. 자국의 안위보다 미국에 협조하는 것을 더 중시 여긴 셈입니다.

90년대 들어 평화협정을 둘러싸고 완전히 새로운 양상이 펼쳐집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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