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
* 이 글은 참교육학부모회 동북부지회 소식지에 연재한 글입니다.
1. 정전협정 어떻게 체결됐나
2. 정전협정 어떻게 파괴됐나
3. 평화협정 어떻게 논의되어 왔나 (1)
4. 평화협정 어떻게 논의되어 왔나 (2)
5. 평화협정에 대한 몇 가지 논쟁 지점들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보수언론들은 청소년들이 한국전쟁 발발일을 모른다며 역사교육이 어떻고 안보관이 어떻고 개탄합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만큼이나 중요한 전쟁 중단에 대해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습는다. 정전협정 체결일이 몇 일인지는커녕 몇 년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지금까지 한반도 질서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합의입니다. 그리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 역시 60년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한반도 질서를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에 정전협정이 어떻게 체결되었고, 어떤 내용이며,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그리고 평화협정 논의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2. 정전협정 어떻게 파괴됐나
2013년 3월 11일을 기해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포하면서 한반도는 전쟁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오래 전에 정전협정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전협정은 정치 문제, 즉 한반도에 단일정부를 세워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단지 군사적으로 전투를 어떻게 중단할 것인가만 담겨 있습니다. 다만 마지막 조항에 이 문제에 대한 권고를 담았습니다.
제4조 쌍방 관계정부들에의 건의
60.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이 부분은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항입니다. 그러나 이 조항은 가장 먼저 파괴되었습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일주일만인 8월 3일부터 한국과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 8월 8일 최종안을 서울에서 가조인했고 다시 10월 1일 공식 체결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에 미군을 무기한, 무제한 주둔시키는 내용으로 정전협정 60항에 명시된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외국군대 철거 문제를 협의하기로 약속하고서 주한미군을 영구히 주둔시키겠다고 결정했으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약속대로라면 1953년 10월 27일까지 미국, 북한, 중국 정부는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해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8월 28일 유엔총회 제7차 특별회의에서 참가국들은 정치회의 예비회담을 진행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10월 26일부터 판문점에서 시작한 예비회담은 참가국 문제, 장소와 시간문제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만 거듭하다 12월 12일 미국이 일방적으로 퇴장하면서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정치회담이 끝나는 것일까요? 다행히도 1954년 1월 25일 베를린에서 열린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 외교부장관 회의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제네바 정치회담을 개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4월 26일 한국전쟁 참전국과 소련 등 19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제네바 회담이 열렸습니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유엔군으로 참전한 15개 동맹국과 함께 ‘한반도 문제에 관하여 유엔의 권위와 권능이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칙을 결정했습니다. 얼핏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은 분단이 원인이며, 분단은 단독정부 수립이 원인입니다. 애초에 왜 단독정부가 들어섰을까요? 미국은 유엔 감독 아래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했는데 북한은 유엔이 내정을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거부해 통일정부가 들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이 그러면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하겠다며 단독정부를 만든 것입니다. 즉, 한국인들이 알아서 정부를 세우려는데 유엔이 여기에 개입하려 한 게 전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유엔은 이미 한국전쟁에서 교전당사자가 되었습니다. 한쪽 교전당사자가 한반도 문제를 중재하겠다고 하는 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미국의 입장은 한국전쟁 이전의 문제들을 다시 반복하자는 것에 불과했고 당연히 북한과 중국, 소련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제네바 회담은 7주 만인 6월 15일에 성과 없이 결렬되었고 정전협정 60항도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파괴된 조항은 13항입니다. 정전협정 13항 ㄹ.은 ‘한국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13항도 초반부터 무력화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4일 만인 1953년 7월 31일 미국이 부산출입항을 통해 106문의 포와 수십만 발의 각종 총포탄을 반입하려다 중립국감독위원회에 적발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정전협정 체결 후 9개월 동안 미국이 반입하다 적발된 무기만 해도 비행기 177대, 대포 465문, 로켓 6400기, 기관총 1365정에 달합니다.
1954년 7월 30일 원용덕 한국군 헌병사령관은 인천, 대구, 부산, 강릉, 군산 등 출입항에서 감시활동을 하는 중립국 성원들에게 즉시 철수하라는 협박 성명을 발표합니다. 사실 그 전부터 중립국 감시 성원들은 각종 테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후 중립국 감시 성원들에 대한 공격은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956년 5월 31일 군사정전위원회 70차 회의에서 미국은 남한에서 활동하는 중립국 감시 활동을 중지시키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마침내 미국은 1957년 6월 21일 군사정전위원회 75차 회의에서 정전협정 13항 ㄹ.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은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했으며 일본에 있던 미8군 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도 서울로 이전하였습니다.
미국의 핵무기 반입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자 북한은 당장 한반도의 모든 외국군을 철수시키자고 제안하고 1958년 10월 26일 자신들이 먼저 중국인민지원군을 철수시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에 호응하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전협정은 이미 오래 전에 무력화되었습니다. 1976년 미 하원에서는 한국에 1000여 개의 핵무기와 54대의 핵적재기가 배치된 사실이 공개되었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핵무기가 이 땅에 들어왔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1991년 미국은 북미 협상 끝에 한국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를 철수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미국은 한미군사훈련을 명분으로 언제든 한국에 핵무기를 반입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B-52 전략폭격기, B-2 스텔스 핵폭격기, 핵잠수함들을 동원해 공개적으로 핵공격 훈련을 하였습니다.
미국이 자국의 필요에 따라 누더기로 만들어버린 정전협정은 이미 수명이 끝났습니다.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이 하루빨리 체결되지 않는다면 한반도에는 언제든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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