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미국 경제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다고 지적을 받는 한국 경제가 한미 FTA로 인해 더욱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들도 미국의 투기자본 앞에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었다. 여기에 대법원 판결보다 미국 기업의 요청을 더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으니 한국 경제의 앞날에 먹구름만 가득하다.
미 IT 업체들은 왜 삼성에 눈독들이나
동북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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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미국의 JP모건이 삼성전자 2분기 실정 평가와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JP모건은 ≪하이엔드 스마트폰의 판매 모멘텀이 약해져 하반기로 가면서 삼성전자의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며 ≪가까운 시기에 또 한 번 시장 전망치의 하락 조정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JP모건의 비관적 보고서 여파로 외국인들은 7월 8일 하루 총 2천46억 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판매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 주가는 작년 9월 6일 이후 1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청와대마저 질투한 삼성전자
올 들어 미국의 주요 정보통신업체 최고위 관계자들이 연달아 삼성전자와 접촉했다. 지난 4월 22일에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가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고, 4월 26일에는 구글(Google) 최고경영자(CEO) 래리 페이지(Larry Page)도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을 연이어 만났다. 지난 6월 17일에는 페이스북(Facebook)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가 한국을 방문, 역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을 연달아 만났다.
▲빌 게이츠를 접견하는 박근혜 대통령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차게 제시한 <창조경제>와 연결 지어 현 정부의 치적으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도 실체를 알지 못하는 <창조경제>를 미국 기업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정보통신기술(ICT)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맞춰 한국 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할 수는 있겠다.
일단 세 업체와 삼성전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는 삼성전자가 개발하는 PC와 스마트폰에 탑재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삼성이 윈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전통적 협력관계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전동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이 지난 3월 8일 기자들에게 ≪윈도8이 비스타만도 못하다, PC 수요를 진작시킬 모멘텀이 전혀 없는 셈≫이라고 비판하면서 ≪무엇보다 경쟁력이 부족한 윈도 플랫폼 자체의 문제≫라는 발언을 했다.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도 3월 14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윈도 기반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시장에서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선호도가 여전히 높다≫고 쓴소리를 했다. 안드로이드는 구글에서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구글 쪽으로 기울자 마이크로소프트가 다시 삼성전자를 끌어당기기 위해 빌 게이츠가 직접 나서서 이재용 부사장을 만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역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들 기업 역시 모바일을 통해 인터넷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는 헬기까지 이용해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을 둘러보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관심을 보였다. 휘어지는 화면으로 유명한 유기발광다이오드는 구글의 입는 컴퓨터인 <구글 글래스>에 적합한 소재다. <구글 글래스>는 한국 정부 규제로 국내에서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래리 페이지가 박 대통령을 만나 규제 완화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장장 7시간에 걸쳐 삼성전자와 마라톤 면담을 가졌다. 면담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북이 개발한 페이스북홈(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 페이스북 중심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만든 런처), 타이젠(스마트폰 운영체제) 등을 삼성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문제를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미국 경제위기로 삼성전자 주목
그렇다면 그만큼 삼성전자 몸값이 올라간 것일까?
미국 경제가 어려운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미국 IT 업계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야심작 윈도8이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비스타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에서는 구글과 애플에 밀려 명함도 못 내미는 형편이다.
구글은 신생 페이스북에 밀리며 핵심 인재들을 빼앗기고 있으며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에서도 반독점법 위반 논란에 휩싸여 있다. 페이스북은 새로 개발한 페이스북홈이 혹평을 받고, 페이스북폰 <HTC퍼스트> 등이 부진을 면치 못하다 판매 중단 위기까지 몰렸다. 애플(Apple) 역시 스티브 잡스(Steve Jobs) 사망 후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처럼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위기 극복 방안으로 찾은 것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미국 기업에게 있어서 손쉬운 상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온갖 불리한 규제를 제거할 수 있다.
비단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한국 정부는 미국 기업에게 지나치게 저자세다. 예를 들어 지난 한미 정상회담 당시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회장 댄 애커슨(Dan Akerson)은 ≪한국에 8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려면 통상임금 문제를 한국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고 요구하자 박 대통령이 ≪꼭 풀어나가겠다≫고 약속한 일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이미 판결을 내린 문제를 대통령이 뒤집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어 삼권분립 훼손 논란이 일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미국 기업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기업이다. 올해만 해도 1분기에 사상 최대 규모의 스마트폰을 판매하면서 경쟁업체인 애플을 두 배 가까이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33.1%를 차지하며 5분기째 선두를 지켰으며 전체 휴대폰 시장에서도 61.9%로 압도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의 74%가 휴대폰에서 나왔다고 한다.
특히 삼성전자는 국내 시장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도 폭넓은 공장과 판매망을 갖추고 있어 세계를 무대로 하는 미국 기업들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미국의 주요 정보통신기업들이 삼성전자를 찾는 모습을 통해 이들이 삼성전자와 협력을 중시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대기업도 하루아침에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지금은 일단 미국 기업들이 삼성전자와 협력을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상황이 악화되면, 즉 미국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협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삼성전자를 인수·합병(M&A)하려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거대 기업이 설마 인수·합병 대상이 될까 생각할 수 있지만 <대마불사>의 전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국민은행, 외환은행, 제일은행, 한미은행 등 국내 많은 은행들이 외국의 투기자본에 인수·합병 된 사례나, SK그룹과 SK텔레콤, 삼성물산, KT&G 등이 적대적 인수·합병 위기로 곤욕을 치른 사례 등 거대 기업이나 은행도 얼마든지 외국 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
특히 한미 FTA는 미국 자본이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 사냥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크게 넓혀 놓았다. 미국 투기자본도 내국인 수준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주 펀드를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삼성전자 같은 초우량기업도 외국인이 헤지펀드를 통해 10조 원가량만 조달하면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연속 폭락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지난 6월 7일 JP모건의 보고서 한 장에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주식 6650억 원 순매도하여 시가총액이 하루만에 14조 원이 줄어들더니, 이번에도 10개월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는 미국 투기자본과 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삼성전자를 무너뜨리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감행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JP모건 보고서 하나에 하루 14조 원이 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경제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다고 지적을 받는 한국 경제가 한미 FTA로 인해 더욱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들도 미국의 투기자본 앞에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었다. 여기에 대법원 판결보다 미국 기업의 요청을 더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으니 한국 경제의 앞날에 먹구름만 가득하다.(201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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