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날로 늘어가는 프랜차이즈 병원의 모습>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한국 의료
의료는 사람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기본적인 영역으로, 사회 복지체계에서 교육, 주거 등과 함께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의료부문은 최근 건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가는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의료보장 체계는 날이 갈수록 서민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눈에 띄는 문제는 대표적으로 국민들의 의료를 보장하고 있는 건강보험 체계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먼저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 재정이 부족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한국 전체 의료비용 중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해주는 비용을 나타낸 ‘공적 재정 부담률’은 겨우 54.9%로 OECD 국가 평균 72.1%에 비하여 한참 낮은 수준이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2011년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현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의료비 할인 제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건강보험은 재정에서도 부실하지만 보장 범위도 부실하다. 현대인이 걸리는 각종 암이나 백혈병 등 치명적인 중대 질병, 그리고 치아 치료의 경우 상당 부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보장 대상에서 제외된 질병의 치료비는 고스란히 환자 개인에게 전가되고, 중병에 걸릴 경우 한 가정을 경제 파탄으로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격 신청자 중에서 “과중한 의료비 부담으로 기초생활 수급대상이 되었다”는 국민이 18%에 이르고 있는 현황은 의료비가 가정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반영하고 있다.
부실한 건강보험 보장 체계는 민간 병원 중심의 의료공급체계와 더불어 환자에게 비용 부담을 주는 한편 의사들을 돈벌이로 내몰고 있다. 일부 의사들이 기존 건강보험 수급 체계로는 부족한 수입을 늘리기 위해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제외되어있는 신종 시술인 치아 임플란트, MRI 등 이른바 ‘비급여 시술’을 점차 늘리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가 점차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의사들의 ‘비급여 시술’ 확대로 인해 과잉진료 시비가 곳곳에서 일고 있으며, 결국 환자가 의사를 믿고 치료받는 것이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게다가 ‘비급여 시술’ 증가는 다시 개인이 부담해야하는 의료비용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의료 체계와 재정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의사를 믿고 치료 받아야 할 환자나 성심성의껏 환자를 돌보아야 할 의사 모두 피해자가 되어버린 것이 한국 의료의 실상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역대 한국 정부는 시장 논리를 앞세워 의료에 대한 정부의 공적 보장범위와 재정적 부담을 확대하기보다 민간 병원의 경쟁을 통한 서비스 확대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거나,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진료를 민간 보험회사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이것도 모자라 아예 영리 추구 목적의 병원을 설립 가능하도록 하는 ‘의료민영화’방안까지 시도하였다.
건강보험의 보장범위가 제한되고 민간 병원이 영리 수단으로 전락해갈수록 서민들의 건강과 생명은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소득 수준에 따라 사망률까지 차별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와 관련하여 전국 노동자 가구를 소득에 따라 다섯 구간으로 나누었을 때 가장 하위 소득 계층은 가장 상위 소득 계층에 비해 사망률이 무려 2.5배나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2010년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복지”의 필수요소인 의료정책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을 살펴보자.
사실상 무대책인 새누리당의 의료대책
한국 의료의 실태가 심각한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4.11 국회의원총선거를 목전에 둔 여당인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박근혜)의 의료 문제 해결에 대한 인식은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동아일보 2월 6일자 보도에 의하면 새누리당은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확 뜯어고치는 내용 등을 포함한 ‘평생맞춤형 복지’의 밑그림을 완성”했다고 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일자리를 얻어 수급자에서 제외되더라도 2년간 의료급여를 계속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의료복지정책의 “핵심”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누리당이 발표한 의료 복지정책은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 시 2년간 의료급여를 계속 지원한다는 내용 이외에 어떠한 추가적 내용도 찾아볼 수 없다. 새누리당의 주장은 현재 국민건강보험체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른바 ‘의료 사각지대’를 줄인다는 명분을 띠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현재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소 줄여주는 효과를 낼 수는 있으나 한국 의료의 근본적, 구조적인 문제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새누리당은 자신의 의료 복지정책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자 2월 15일 부랴부랴 “의료시설과 멀리 떨어진 농어촌 및 공단 지역 주민 등 이른바 의료 빈곤층에 주치의를 둬서 예방관리를 하겠다.”는 공약을 “보육ㆍ교육ㆍ일자리 대책”과 함께 제시하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의료 대책은 “평생 맞춤형 복지”의 핵심 분야에서 빠져 있으며, 소요되는 예산조차 발표되지 않을 정도로 허술한 형편이다.
새누리당의 의료 복지정책은 의료 소외계층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형식적인 시늉만 남아있다. 새누리당의 의료 복지정책은 사실상 의사들의 영리 추구 행위를 현재와 같은 형태로 인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본격적인 ‘의료 민영화’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평가된다. 간판을 새로 내건 새누리당의 의료 복지정책은 본질에 있어서 이명박 정권의 의료정책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무상의료’로 발전했지만 역부족인 민주통합당
이에 반해 민주통합당(대표 한명숙)은 2011년 8월 29일 발표한 자료를 통해 의료비용에 대한 가계 부담 등 한국 의료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의료 공급 체계를 구조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 내용을 내놓았다. 민주통합당의 의료 복지정책 중 핵심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민주통합당의 의료 복지정책은 먼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입원 진료비의 90% 보장, 환자 본인부담 상한 연간 100만원”을 실현하는 ‘무상의료’라고 제시되어있다. 이는 과거 민주노동당이 여러 차례 제시했던 ‘무상의료’ 정책과 큰 틀에서 같은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여 입원 진료비를 90%까지 보장하며, 환자 간병에 까지 보험을 적용하여 의료비용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건강보험료 면제와 사각지대 해소 역시 기본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민주통합당의 의료 복지정책은 다음으로 보건의료 공급체계를 개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민주통합당은 지역별로 “공공병원 신축과 함께 정부 매입을 통해 민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공공의료시설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별 불균형도 해소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같은 정책은 우선 국민의 개별 의료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의료 체계를 공공병원 중심으로 개편하는 데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의 의료 복지정책은 ‘사후 치료 중심’의 현행 방식을 그대로 두었다는 점에서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다. ‘사후 치료’ 방식을 유지하게 되면 앞으로 인구의 노령화와 더불어 끊임없이 증대될 의료비용을 무작정 늘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속 불가능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정책이다.
또한 민주통합당은 의료 복지를 정부가 재원 마련을 통해 제공하는 하나의 ‘서비스’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의 의사가 정부정책에 오롯이 반영될 때만이 진정한 정부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복지 = 서비스’라는 인식은 국민을 정책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전락시켜 정부정책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보장할 수 없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주장했던 소위 ‘참여 정부’ 슬로건과도 배치되는 후퇴한 정책 개념이다.
‘건강 불평등 해소’, ‘내가 만드는 복지’로 한 발 앞서간 통합진보당
오래전부터 ‘무상의료’를 내건 민주노동당의 후신답게, 통합진보당의 의료 복지정책은 타 정당에 비해 개념에서부터 진일보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통합당이 과거 민주노동당의 ‘무상의료’ 정책 중 상당부분을 수용했으므로, 언뜻보면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의료복지정책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기존 ‘무상의료’ 슬로건은 의료비용 문제를 부각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본질적 문제인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의료’라는 가치를 나타내지는 못해왔다.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기존 ‘무상의료’ 담론을 ‘건강 불평등 해소’로 확대 발전시켜 적극적 예방 진료를 핵심으로 하는 공공의료, 정책결정의 민주성 확대를 통한 공공의료 실현을 공약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통합진보당은 ‘전 국민 주치의 제도’를 통해 예방 진료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통합진보당은 현재 전국적으로 존재하는 보건소와 보건지소를 더욱 확대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보건소야말로 정부가 책임지는 1차 의료기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인구 5만 명 당 1개 보건지소 설치’로 ‘걸어서 찾을 수 있는 질 높은 1차 공공의료기관’을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통합진보당은 또 지역별 공공병원 확충을 주장한 민주통합당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공기업 제약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안도 제시했다. 의료에서 핵심적 수단인 약을 공기업을 통해 공급하겠다는 구상으로 이를 통해 환자 개인의 약값 부담을 덜고 장기적으로 의료 공급의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목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다른 당과 차별화되는 통합진보당의 정책은 의료 체계에 대한 국민의 참여 보장이다. 먼저 통합진보당은 국회와 지방의회에 ‘건강불평등 해소,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국민참여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의 민주주의 체계의 한계를 보완하여 의료 체계에 국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나아가 국민을 정책의 주체로 내세운다는 점을 주요 정책 목표로 제시하였다.
나아가 통합진보당은 건강보험 가입자 위원회를 설치하여 보험에 대한 각종 평가에 가입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하였으며 강보험이사회 선출권을 가입자에게 부여하겠다고 발표하여 건강보험을 국민의 의사에 맞게 개선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통합진보당의 정책은 ‘복지=서비스’라는 기존의 복지 패러다임을 ‘내가 만들어가는 복지’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된다.
‘건강불평등 해소’와 ‘내가 만드는 복지’로 요약되는 통합진보당의 의료 정책은 한국 의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통합진보당의 의료 정책은 현실 구현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예고한다. 대도시의 거대 병원 중심으로 형성된 의료 기득권 세력과의 마찰이 예상되며, 특히 정책의 상당부분이 한미FTA 등 각종 자유무역협상 등에 배치되고 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의료 정책은 구체적 실현 로드맵이 반드시 마련되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절실히 요구된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 본디 의미를 살려야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인의 의료 문제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는 껍데기만 남은 채 상업화되어가고 있다. 결국 의료 복지는 의료 본래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되살리는데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는 데서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며 환자 역시 의사를 믿고 자기 몸을 선뜻 맡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의료 체계를 현재의 사후 치료 중심에서 사전 예방 진료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은 내 몸이 아플 때 찾는 곳이 병원이지만 앞으로는 병원이 정기적으로 내 몸 상태를 진단하고 병을 예방하는 곳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병원이 사전 예방 진료를 중심으로 개편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급 공공 의료시설이 대폭 확충되어야 한다. 공공 병원과 그에 속한 의사들이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예방 진료를 실시하는 것이다. 공공 병원은 정부 운영을 기본으로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신뢰가 보장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의료 체계 혁신은 근본적으로 비용 때문에 발생하는 의료 사각지대를 체계적으로 해소할 수 있고 자연히 의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다준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고 선언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한국 의료 복지정책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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