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서론: 좀 더 위험한, 그러나 좀 더 희망적인
2. 정말 위기가 다시 시작되었나 - 실물을 보라.
3. 이슈의 이동 - ‘금융 규제’에서 ‘부자 증세’로
4. 위기의 뿌리, 부의 불평등을 개혁하라.
5. 1% 탐욕에 저항하는 99%운동이 대안이다.
[본문]
1. 서론: 좀 더 위험한, 그러나 좀 더 희망적인
세계경제와 한국사회가 다시 격랑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2011년 8월부터 재발하기 시작한 세계경제위기는 점입가경이다. 유럽의 국가부채와 은행부실 우려는 매일처럼 바뀌는 요인들로 인해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흔들리고 있다. 미국 경제전망도 날마다 다른 신호를 보내며 쏟아지는 지표들로 인해 방향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중이다. 그에 따라 전 세계 주가도 큰 폭의 등락을 반복하며 요동친다. 한 마디로 방향도, 해법도 전혀 알 수 없는 혼미함이 수개월 째 이어지고 있으며 정치는 이를 전혀 제어할 수 없는 무력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미국 실물경제 침체우려, 유럽 국가부채위기, 그리고 유럽 은행부실위험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대서양을 사이에 둔 선진국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현재의 위기 국면은 2008년과 같은 순간적인 대 추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 가지 차원에서 그 구조적 위험성은 더욱 심각하다.
첫째, 이미 3년 전부터 ‘비정상적이고 급박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쓸 수 있는 모든 위기 수습책을 줄줄이 꺼내들어 추락을 막아왔다. 재정지출, 제로 금리, 두 차례의 양적 완화, 수조 달러의 구제 금융, 은행 유동성 공급 등 루비니 표현대로 마치 마법사가 요술 모자에서 계속 새로운 토끼를 꺼내들 듯이 정책결정자들이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새로운 수단들을 끝없이 동원했다. 그 효과로 지난 1년 여 동안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부상한 위기 앞에 더 이상 꺼내들 카드가 없다는 무력감에 정책 결정자들은 당황해 하고 있는 중이고 전에 썼던 카드를 다시 꺼내보지만 스스로도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근본 해결책은 미뤄둔 채 ‘시간 벌기’를 하고 있다고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현재의 위기는 정부와 국가를 직접적으로 위기의 반경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08년에는 국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민간부문의 부동산 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위기가 폭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의 국가 부채위기가 핵심 진앙지다. 미국도 정부 채무한도를 증액하는 과정에서 가중된 정치권의 논란이 이번 위기를 불러일으킨 촉매제가 되었다. 3년 동안 경기회복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쏟아 부은 결과 정부의 재정여력과 중앙은행의 정책 여력이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복지지출을 축소할 것인가, 아니면 부유층 증세로 재원을 늘릴 것인가 하는 문제로 초점이 이동하자 정치권과 사회세력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게 되면서 위기해결은 더욱 어렵게 된다.
세째, 국제 공조가 훨씬 어려워지면서 신속한 행동이 안 되고 있다. 이미 한 국가 단위를 넘어 국제적으로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야 할 정도로 경제위기는 국경을 넘어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2008년과 달리 각 국가의 이해관계 상충 정도가 매우 높다. 특히 유로 통화권이 그러하다. 유로 통화권에서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 국가들인 남유럽과 흑자 국가들인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은 유로 공동 통화권 아래 묶여 있지만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독일을 필두로 한 흑자 국가들이 남유럽 국가들에게 대규모 지원을 해야 문제를 풀길이 열기겠으나 회의적이다.
선진국 전체가 침체로 빠져든 시점에서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BRICs 국가들도 세계 경제 침체 여파에 대응해야 하는 자국의 부담과 내부 소득 격차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 등 국내적 숙제가 만만치 않다. 선뜻 유럽을 지원하기가 쉽지 않고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그 규모는 제한되어 있다. 선진국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지만 신흥 대국들이 이들 대체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 더욱이 각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 보호를 위한 환율전쟁이 불거질 가능성도 높고 나아가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대두될 여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세계가 일치해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공조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이 자본시장 개방화 정도가 높고 수출수요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위기의 태풍권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주가와 환율 변동성이 2008년 버금할 만큼 극심해지고 있다. 중국 고성장의 수혜를 크게 입어 수출증가로 높은 경제회복을 이루었던 실물경제도 위기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민간소비, 설비투자, 수출 증가율이 모두 약화되면서 2011년 성장률이 기대와 달리 4% 밑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선거가 있는 내년에도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드리운 세계경제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뜻밖의 사건이 터져 나왔다. 세계경제의 중심, 금융의 중심이자 위기의 진원지이기도 했던 미국 월가에서 ‘혁명’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십 여 년 전 유행했던 ‘금융혁명’이 아니라 금융혁명으로 창조해낸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바꾸자는 혁명의 요구가 월가 은행 창 밖에 운집한 시위대들에 의해서 합창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관심도 주식 시세 전광판과 서구의 지도자들을 떠나 월가 거리의 시위대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9월 17일 수 십 명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시간이 가면서 수백 수천 명, 수만 명으로 불어났고 순식간에 월가 거리를 넘어 미국 전역, 그리고 세계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에는,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은폐되어왔던 사회 경제적 구조의 한계가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통제되지 않은 금융시스템의 위험성, 단기 수익추구 방식의 주주자본주의 기업경영의 문제점, 노동시장 유연화와 고용 불안정성,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결과로 심화되어온 양극화와 극심한 불평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치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 시점에서 태동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극우 정치세력 ‘티 파티(Tea Party)'운동이었다. 서구 정치 지도자들이 당장의 위기 수습을 위해 스스로 시장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정부와 중앙은행을 동원하여 광범위한 시장개입과 경기부양에 나서자 여기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재차 위기국면에 접어들면서 티 파티 운동의 대척점에 선 월가 시위가 미국의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2011년 10월 내내 가장 중요한 세계의 화두로 등장했다. “우리는 99%다(We are the 99%)”는 이제 세계 경제위기 시대의 아이콘이 됐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공통 언어가 됐다. 마치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던 것처럼, 캐나다의 한 온라인 매체 제안으로 시작된 월가 점령시위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도 예상치 못한 혁명이 시작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제도 정치권 밖에 있었던 안철수와 박원순이라는 두 인물이 한국의 30대, 20대와 접합되면서 한국 정치지형 자체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위기가 다시 도래하고 나서야 비로소 위기에 저항하는 ‘99%’의 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위기는 재연되었으나 위기의 진단과 해법, 대처 방식은 재연되지 않았고 3년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일련의 비상적인 처방들조차 ‘임시 처방’이었음이 판명되면서 보다 근원적인 진단이 다시 필요하게 되었다. 처방 해법을 잃은 해결사 정부는 무력해져갔고, 더 과감한 처방을 찾기 위한 정치세력간의 갈등이 경제문제를 정치 문제로 발전시키고 있다. 정치권의 무력함을 비판하며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정치 문제를 다시 사회문제로 확대시키고 있다. 바로 여기에 3년 전 위기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은 신자유주의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하는 시점이 왔음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의 진정한 붕괴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날은 리먼이 파산했던 2008년 9월 15일이 아니라 2011년 9월 17일이 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일자리와 집과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99% 시민들이 처음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을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모든 현실적 변화는 객관적 시스템의 붕괴가 아니라 그 시스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변화를 갈망하며 스스로 움직일 때 시작된다. 신자유주의 사망을 선고해야 할 당사자가 역사무대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2. 정말 위기가 다시 시작되었나 - 실물을 보라.
경제가 위기 국면에 돌입한 것은 미국을 기준으로 보면,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모기지 대출 연체가 급팽창하던 2007년 시점부터였다. 1년이 훨씬 지나 발생한 2008년 9월 15일 리먼 사태는 위기가 전면적으로 폭발하고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촉매제가 되었을 뿐이었다. 2011년까지 5년이 꽉 차게 지났다는 얘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는 2009년 3월 미국 주가가 6천 포인트까지 자유낙하를 하더니, 2009년 2분기~~2010년 1분기까지 1년 동안 뜻밖의 빠른 회복세를 보여 세인을 놀라게 했다. 100백년 만에 찾아온 대침체는 허무맹랑한 비관론이었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낙관론이 팽배한 가운데 ‘출구전략'을 운운하면서 조기 경제회복 기대로 들뜨던 시기였다. 그러나 2010년 5월 그리스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경제는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연이어 미국경제 둔화우려가 불거진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2010년 2분기~2011년 2분기까지 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유로존의 재정지원과 미국의 두 번째 양적 완화가 이어졌고 다시 위기는 수습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위기는 수습된 것이 아니라 정부와 중앙은행의 경기부양 정책으로 일시적으로 잠복된 것임이 판명되었다. 2011년 8월에 재발된 위기는 더 이상 위기를 일시적 미봉책으로 감출 수 없는 단계에 임박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주가지표와 함께 성장률 지표, 기업 수익지표는 2007~2009년 3월까지 추락, 2009년 4월~2010년 4월까지 반등, 2010년 5월~2011년 7월까지 불안한 변동을 이어오다가 2011년 8월 이후 전반적 하강세로 돌아서는 순환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런 지표만으로는 왜 위기가 원천적으로 제거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판단해보는 것이 쉽지 않다.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실물지표, 즉 고용과 소득에 관한 지표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 실물 지표를 확인해 보자. 미국의 고용률과 실업률 지표 변화추이에서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은, 2009년 이후 성장률과 기업 이익, 주가가 일정정도 개선된 것과 대조적으로 실업률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고, 추락한 고용률도 꼼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9년 5월 이후 두 달을 제외하면 실업률은 9%밑으로 내려온 적이 없다. 고용률은 2009년 3월에 60%미만으로 추락한 후 2년 반이 지나도록 단 한 차례도 회복된 적이 없다. 1980년대 초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해 초 고금리정책을 폈던 기간 잠깐을 제외하면 30년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완전 실업 상태에 놓인 1400만, 그리고 그 두 배에 가까운 실질 실업자 수가 3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불안하니 소득이 늘었을 수 없다. 심지어 2010년 경제가 3%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은 1960년대 이후 가장 급격한 -2.3% 감소를 했으며 빈곤률은 15.1%로 199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미국의 빈곤인구가 4천630만 명으로 한 해 사이에 270만 명 늘어났으며 통계 작성 5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 빈곤비율 15.1%도 93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또한 미국가계 중위소득은 2009년 5만599달러에서 지난해 4만9천445달러로 1년 동안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60년대 이후 어떤 침체기보다 빠른 감소율이다.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2007년 이후 주가지수와 기업수익, 성장률은 급전직하 추락하다가 일정하게 회복국면을 보이기도 하는 등 순환곡선을 보였지만, 고용과 실업, 소득과 빈곤은 추락이후 전혀 개선되지 못한 채 계속 악화된 상태를 지속시켜왔다는 것이다. 3년째 계속되는 고용과 소득의 악화가 근원적으로 소비를 늘일 수 없게 하고 실물경제 회복을 근원적으로 제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축된 국민의 소비를 대신해서 정부지출을 늘리다가 다시 발을 빼자 감춰졌던 국민 소비위축의 문제점이 곧바로 드러난 것이 2011년 위기 재발의 실체다. 정부가 잠깐 개입하는 수준으로는 기대했던 민간 소비가 그렇게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3. 이슈의 이동 - ‘금융 규제’에서 ‘부자 증세’로.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국민들의 삶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자 정부는 경기부양책 안에 복지와 사회 안전망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포함시키게 된다. 미국에서 공적 건강보험 수혜자를 확대하기 위한 건강보험개혁안이 나오게 된 것이나 한국에서 무상급식을 비롯한 보편복지 요구가 크게 확대된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그런데 2010년 5월 그리스를 필두로 이른바 ‘재정위기’가 전면에 불거지자 상황이 달라진다.
경제위기에 대처하여 성장 동력을 다시 살려내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한 과감한 재정지출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복지지출을 줄이고 긴축재정을 해야 한다는 보수 세력과 채권자들(채무국에 돈을 빌려준 은행과 국제금융기구)의 압력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과 채권자들의 공세가 아니더라도, 정부가 부실에 빠진 사적 금융회사를 구제하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지출을 하면서 많은 국가들에서 재정적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국민 경제 전체 차원의 총 부채는 줄지 않은 채 민간부문의 부채가 정부부문을 옮겨갔던 것이고 이로 인해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전이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시점에서 재정위기가 정말 심각한 국면에 왔고, 당면의 최대 과제는 재정위기를 수습하는 것인가? 우선 사태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재정위기(fiscal deficit)'라기 보다는 ’국가채무위기(sovereign debt crisis)'로 정의해야 한다. 재정적자 누적이 채무를 늘리기는 하지만 한 두 해의 재정적자만으로 채무가 관리 불가능한 수준으로 팽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채무는 그것이 국내 채무인지 대외 채무인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재정위기라는 개념은 곧바로 ‘재정 지출 통제’로 연상되기도 쉬워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재정과 부채 장기 추이를 보면, 오히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했던 1950,60년대에 재정수지가 균형에 접근하고 국가채무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재정 개입을 줄이는 작은 정부를 주장했던 지난 30년 동안에 재정수지 적자가 빈발하고 국가채무가 늘었다.1980년대 이후 재정수지가 균형을 맞추고 채무가 줄었던 시기는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 시절 정도였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물론 1980년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작은 정부를 주장하면서도 국방비 지출은 늘리는 상충되는 정책 탓도 있다. 그러나 본원적으로 재정수지와 국가부채 균형이 단지 지출을 줄이는 긴축만이 아니라, 성장률제고와 고용을 통한 조세수입 증감, 조세정책 변화를 통한 재정수입변동,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등에 종합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황금기라 불리는 1950, 60년대에는 적절한 재정정책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과 고용을 도모했고 임금과 소득상승이 조세 수입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높은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은 조세 수입 규모자체를 키워서 재정지출 여력을 크게 확충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공격적인 감세정책이 도입되었고 감세가 하나의 추세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다면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은 어떤가. 이들 국가에서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이에 따라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을 국가채무가 높게 팽창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은 국가 채무비율 그 자체가 아니라 부채의 상당부분이 대외채무라는데 문제가 있다. 남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경상수지 적자국가들이어서 대외채무가 팽창했지만 유로화를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정책이나 통화정책 등을 사용하여 무역수지와 자본수지 개선을 도모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그리스가 최대 위기에 몰린 중심적 이유는 전체 채무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대외채무 때문이며 주요 채권국 은행인 프랑스와 독일은행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주장처럼 단순한 재정위기라고 규정하고 ‘과도한 복지지출’때문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상황을 매우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이들 나라들은 미국 이상으로 성장률, 실업률 등 실물경기 침체가 심각하고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리스는 최근 3년 동안 실업률이 7%에서 15%까지 2배가량 뛰어 올랐고 성장률은 1.0%(2008) -> -2.0%(2009) -> -4.5%(2010) -> -5.5(2011, 추정치)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실업률과 성장률이 하락하는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것이다.
통상 국가부채는 부채/GDP의 비율로 나타낸다. 그리스 국가부채 150%는 부채가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1.5배라는 뜻이다. 당연히 부채비율을 줄이려면 부채 자체를 줄이든지 GDP(경제성장)을 높이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분자에 해당하는 부채가 늘어날 뿐 아니라 분모에 해당하는 GDP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부채비율 증가 속도가 크게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유로 채권 국가들이 그리스의 재정지출/재정수입에서 재정지출만을 줄여 재정수지 흑자를 만들고 국가부채를 줄이겠다면서 여전히 강력한 재정긴축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긴축(재정지출 축소) -> 성장률(GDP)침체와 실업증가 -> 소득감소/ 무역적자 확대 -> 조세수입 감소-> 긴축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 확대 -> 부채증가, GDP감소 -> 부채/GDP비율 증가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유럽이 그리스와 같이 심각한 경제난에 빠진 나라들에 대해 필요한 도움을 주지 않고 긴축 정책만 편다면 유로 존은 해체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스티글리츠의 비관적 전망의 근거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재정지출을 통한 성장 동력과 고용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재정수지 악화를 막기 위해 고소득층 증세를 실시하는 것이다. 최악은 지금의 위기 국면에서 감세와 긴축을 함께 끌고 가는 것이다. 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듯이 증세는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대폭 내려온 조세구조를 다시 회복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부자 증세가 ‘고삐 풀린 금융에 대한 재 규제’에 이어 신자유주의 감세 정책에 대한 개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3년 전 경제위기 1라운드 국면에서 금융에 다시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를 했다면, 지금의 2라운드 국면에서 가장 먼저 진보가 해야 할 일은 ‘부자 증세’요구로 감세기조를 반전시키는 것이다. 물론 금융규제 정책도 초창기 논의에서 계속 약화되었는데, 미국은 아직도 볼커 룰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고, 유럽은 국제 금융 거래세를 도입하지 못하는 등 금융규제 방안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부자 증세’운동은 신자유주의 감세정책을 해체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 때문에 일찍이 극우 보수 티 파티(Tea Party) 운동은 증세 대신 긴축을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미국 정치권의 분열을 자초했고 지금은 ‘부자 증세’를 ‘계급 전쟁(Class Warfare)'라며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8월의 위기를 촉발시킨 미국 부채한도 증액을 둘러싼 정치권 갈등과 긴축은 공화당에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 티 파티(Tea Party) 운동이 개입되었다는 판단은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재정문제의 부각과 대응방안 설정에는 명백한 정치적인 요소로서 소위 티파티 운동으로 상징되는 일부 정치세력의 ‘작은 정부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본주의적 집착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적절히 짚어주고 있는 주장이 있다. 반대로 월가 시위운동 구호의 맨 앞자리에 “전쟁종식 부자 증세(End the War, Tax the Rich)"가 들려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재정위기의 진정한 본질은 ’부자 증세‘를 회피하려는 신자유주의자들과, 관철하려는 ’99%운동‘의 저항에 있다.
4. 위기의 뿌리, 부의 불평등을 개혁하라.
그런데 세계경제와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기에는 여전히 남은 의문이 있다. 자율규제가 실패로 돌아간 금융시스템을 정부가 다시금 강력히 규제하고 증세를 통한 재정지출을 더 지속시키면 경제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왜 지난 3년 동안 비록 무성한 논의에 비해 실행된 것은 별로 없지만 금융규제 움직임이 있었고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을 했는데도 어째서 악화된 고용상태는 꿈쩍도 하지 않았는가. 현실의 거대한 경제 침몰에 이어지는 장기 침체 상황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하게 그리고 너무 짧게 경기부양을 했기 때문에 경제가 제대로 회복되기에는 너무 불충분했던 것인가.
의문에 답하기 위해 현재의 경제 상태를 냉정하게 확인해 보도록 하자. 당초 정부는 경제위기로 인해 파괴된 민간 경제 부문을 복구하기 위해 막대한 구제 금융으로 은행과 기업의 부실을 덜어냈다. 민간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조세 감면과 일자리 창출 지원을 했다.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를 수년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곧 민간 부문에서 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되어 경제가 회복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민간부문의 경제가 다시 살아났는가. 첫째, 은행은 기업과 가계에게 자금 공급을 시작했는가, 아니다. 은행은 구제되었고 유동성을 확보했으며 자본을 확충하고 수익성을 회복하는데 성공했지만 활발하게 기업과 가계에 자금공급을 재개하지 않았다. 넘쳐나는 자금은 은행과 중앙은행 사이를 환류하거나 아예 국외의 아시아와 같은 신흥시장으로 유입될 뿐이었다. 둘째 기업은 본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했는가. 역시 답은 아니다. 최근에는 약 2조 달러 이상의 현금을 기업 내부에 쌓으면서도 투자를 회피할 정도로 투자확대에 나서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계는 소비를 늘려나가기 시작했는가. 고용과 소득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매력이 늘어났을 리가 없다.
한마디로 은행은 대출을 다시 늘리기에는 차입자(기업과 가계)들의 위험도가 여전히 크다고 꺼리고 있고, 기업들은 아직 미래 수요가 불확실하여 투자를 할 수가 없다고 항변한다. 가계는 일자리가 없고 소득도 늘지 않는데 소비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소비 회복이 불충분하고 이에 비해 생산능력이 과잉되었다며 기업은 고용을 축소하게 되고, 그 결과는 가계로 하여금 소득과 소비를 더 줄이도록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경제학에서 말하는 ‘총수요 부족’이라는 한계에 봉착한 것인가. 스티글리츠는 금융위기 이전에도 하위 80%계층은 매년 소득의 110%(즉, 10%이상 차입)을 소비하면서 과잉생산체제의 수요를 충당해왔는데, 이제 더 이상 차입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설사 번 소득의 100%를 소비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수요는 금융위기 이전으로 회복할 수 없고, 따라서 기업은 생산과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부동산 거품 제거와 구제 금융만으로 경제가 살수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좀 더 본원적으로 들어간다.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수요를 이끌어낼 소득과 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니다. 현재 은행과 기업에는 막대한 이윤이 쌓여 있다. 고소득층에도 부의 축적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돈이 있으면 소비를 할 준비가 된 절대 다수의 소득이 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와 수요여력의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바로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노동자에게서 자본(기업)에게로, 노동소득에서 기업 이윤으로, 빈곤층에서 부유층에게로, 99%에서 1%에게로 소득과 자산이 계속 이전해온 결과 고착된 심각한 불평등 구조가 수요를 제한하고 생산적 투자를 제한하고 경제성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1%의 기업과 부유층이 99%로부터 전취한 부로 수익과 자산을 계속 축적해왔지만, 사실 99%의 소득이 늘어나고 이들의 소비능력이 충족되지 않는 한 경제발전은 지속될 수 없고 1%의 부도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다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과소 소비와 과잉생산을 낳고 자본주의를 자기 파괴적(self-destructive)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라던 칼 맑스의 주장이 부분적으로 옳았다고 인정한 루비니의 주장은 현재 위기의 해법이 얼마나 근본적 문제의 해결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려준다.
사실 신자유주의 금융혁신은 누적되고 있는 부의 불평등과 그로 인한 소비제약을 대중적인 금융공급 시스템으로 회피해왔다고 할 수 있다. 소득이 늘지 않는 99%에게 차입에 의한 추가 수요여력을 확대해줌으로써, 이른바 소득 110%의 소비를 가능하게 해주고 그렇게 소비가 늘어나는 한 불평등 문제는 감춰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의 차입능력이 불가능해지고 거품이 꺼지면서 차입에 의한 소비충족 시스템은 붕괴했고, 이제는 시스템이 복구되었다 하더라도 추가로 차입이 아니라 차입 상환을 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금융규제와 조세제도개혁을 넘어 신자유주의가 30년 동안 체계적으로 악화시켜온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에 집중된 부를 99%에게로” 되돌리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평등 개혁’, 이것이 현재 위기를 풀어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이고 근본적 과제다. 일시적 경기부양,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 구제 금융과 자본 확충 등만으로는 미국의 경제침체도 유럽의 국가부채 위기도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부익부 빈익빈을 특히 악화시키는 기제는 금융이다. 단순한 금융규제를 넘어 과도한 금융적 수익에 대한 상당한 통제를 하여 금융으로의 부의 이동을 차단해야 한다. 더 이상 사적 은행의 수익 보전 보다는 가계와 국가의 채무부담을 획기적으로 경감시킬 대책을 찾아야 한다. 또한 정부가 조세제도 개혁을 통해 소득과 자산 불평등에 대한 강력한 재분배를 해야 한다.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를 꺼리고 고용을 줄이는 것이 개별기업에게는 안정적인 사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합리적이겠지만 국민경제 차원에서 보면 침체로 가는 첩경이다.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일정한 불확실성과 위험도를 감수하고 투자와 고용을 늘려 성장기반을 회복을 선도할 수 있는 기제가 필요하다. 공적인 투자와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공공재 영역에 대해 사적 이윤논리와 투자 논리를 배제하고 공적 이익의 논리가 관철될 수 있도록 공기업화를 다시 추진할 필요도 있다. 민영화를 되돌리는 적극적 발상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건과 사회서비스, 교육과 인적자원 투자뿐 아니라 광범위한 공공재 분야에 공적 투자와 공적기업의 논리를 관철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소득 재분배로 가계의 소비능력을 제고하고 사적 이윤의 논리가 아니라 공적 이익의 논리에 따라 투자와 고용을 과감히 확대하는 방향에서 정부의 재정정책과 재정지출이 이뤄져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인 다면, 다수 국민의 소득정체에 따른 국민경제의 총 수요부족을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해외 수요에 의지하는 것이다. 수출을 늘린다는 말이다. 실제로 지금 미국을 필두로 한 각 국가는 국내경제 개혁이 여의치 않자 수출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 그 동안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한 글로벌 불균형이라는 원천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국제적 달러체제에 의해 작동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중국의 흑자누적 ->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으로 인한 미국으로의 달러 환류라는 글로벌 불균형의 문제의 핵심은 국제적 수요의 불균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수익 극대화 논리에 따라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함으로써 국내 고용과 소득이 늘지 않았고 미국 시민은 부채를 차입하여 값싼 중국생산품을 소비한다, 반대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어 생산과 고용을 늘리게 되었지만 저임금으로 인해 내부적인 소비가 제약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의 수입수요에 의존하여 수출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과 선진국은 고용과 노동소득이 축소되었고, 반대로 중국과 인도 등 BRICs는 생산과 고용은 크게 확대되었지만 내부 소비가 아니라 수출로 수요를 충족하는 시스템이 지난 20여 년 동안 이어진 것이다. 글로벌 고용의 불균형, 소비의 불균형이 심화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차입 소비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미국 자신을 필두로 전 세계가 동시에 수출에 의지해 수요부족을 외부에서 해결하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수출여건을 확보하기 위한 환율전쟁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있다. 흔히들 말하는 위기의 3단계, 금융위기가 현재 재정위기로 발전하고 있는데 향후 통화위기로 갈 수 있다는 주장은 이런 뜻에서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동시에 수출을 원하고 모든 나라가 수출 경쟁력을 위해 환율 절하를 시도하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환율전쟁은 경제적으로 제로 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게임은 통상 국제적 분쟁이나 전쟁이라는 정치논리로 비화하기 십상이다.
5. 1% 탐욕에 저항하는 99%운동이 대안이다.
남아있는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지금까지 정말 국가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한 것인가. 이제는 더 쓸 수 있는 카드도 없고 더 취할 수 있는 조치도 바닥이 났기 때문에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인가. 다시 말해 정부로서도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의 한계에 온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정부는 재정과 통화의 마술 모자 속에서 꺼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카드를 끊임없이 꺼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왔고 할 수도 있다. 단, 현재의 정치 역학관계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요란하게 나왔던 금융규제가 실행단계에서 후퇴를 거듭해온 것이나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자극정책이 재정적자가 늘자 섣부르게 긴축으로 돌아서려 했던 것 등은 모두 수십 년 동안 정, 관계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금융자본의 로비와 보수 세력들의 저항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월가의 초고액 연봉과 보너스 잔치를 중단 시키지 못한 것도, 증세는 고사하고 감세 기조가 많은 나라에서 이어져 온 것도 그렇다. 미국 건강보험 개혁이 용두사미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빈곤과 실업 문제에 대해 변변한 대책이 없었던 것도 그렇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거대 자본과 보수 세력의 힘은 의연히 막강했던 반면 노동과 진보 세력은 미약했다. 그 정치적 반영이 오바마 행정부였고 각국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온 일련의 정책 특성이었다.
결국 문제의식을 더 키워 보면, 위기 해법 모색은 경제 정책적 문제 차원에서 벗어나 정치적 문제가 된 것이다. 부총리를 지낸 경제학자 조순이 "해법은 결국 실물경제 전반에 대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인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라는 화두를 던졌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경제시스템에 대한 상당한 개혁과 수술이 필요한데 이는 정치적 역학관계와 결단, 추진력에 달렸다는 지적일 것이다.
경제위기가 정치문제로 전환되던 시점에서 등장한 것이 월가 점령운동이다. 월가 점령운동은 보수 세력이 압도적인 기존 제도 정치권의 역학구도를 반전시키고, 위기를 일으킨 경제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한 사회적 동력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현재 경제위기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되고 있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월가 점령운동이, 주장하고자 하는 목표도 산만하고 요구도 뚜렷하지 않다면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월가점령운동은 새롭게 닥친 경제위기 국면에서 그 동안 힘을 잃어갔던 금융 규제와 부자 증세, 경제적 불평등 이슈를 다시금 전면적인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하나의 사실 만으로도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월가 점령운동이 보여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월가 점령운동은 신자유주의가 1%만을 위한 사회라고 규정하고 지금 시대에는 ‘1%에 저항하는 99%운동’이 핵심이라는 점을 평범한 일반인의 시각에서 가장 명료하고 압축적으로 제기했다. 우리 시대에, 우리 사회에 가장 보편적인 사회운동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더 이상의 해답이 있을 수 없다. ‘99%운동’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향후의 모든 사회운동의 대표 아이콘이 되는 순간이다. 이제 앞으로 모든 진보적 사회운동은 99%운동이라는 큰 궤적아래 규정을 받게 될 것이다. 기존의 잡다한 낡은 이론에 근거한 규정들은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특히 월가 점령운동은 단순히 금융개혁운동이나 조세개혁운동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을 개혁하는 운동 성격을 처음부터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99%(We are the 99%)'라는 규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월가 시위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직접적인 금융피해자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취약한 청년들과 직장인들이라는 사실이 또한 이를 말해준다. 경제적 불평들이라는 삶의 뿌리에서의 분노로부터 저항에 나섰기 때문에 기존 제도권 정당(미국 민주당)지지 집단으로 쉽게 흡수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정치 참여‘나 ’조금 더 진보적인 정당 선호‘ 때문에 시위대열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 일부 쪽에서도 월가 시위가 정치적으로 민주당 스텐스 이상일 가능성 높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부대로 접합하는 것에 조심스러워 하기도 한다.
월가 점령운동은 신자유주의 피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이 정체성을 깨닫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1968년 선진국의 68시위를 능가하는 중요한 운동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의 거리 투쟁 역사 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고 놀라운 현상입니다. ‘68혁명’ 이후 가장 큰 변화의 움직임입니다.”라는 68세대의 평가는 정당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 전체가 닥쳐온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고 무력해 있을 때, 위기의 진원지에서 위기의 핵심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 위기 해법을 들고 나온 것이다.
덧붙이면, 월가 점령운동은 전통적인 진보운동 이념이나 조직, 운동방법의 흐름을 계승하지 않고, 지금의 환경에서 젊은 세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언어, 감각, 수단들을 동원하여 새롭게 자신들의 운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시위 질서를 만들고 목표와 행동을 결정하는 그들의 수평적 방식은 비록 기성 진보운동 눈에는 어설프고 엉성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다양한 미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확실한 것은 누구도 미리 예단할 수 없고 스스로 진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겨울을 향해 장기화되어 가는 월가시위는 상황에 따라 소강 국면으로 갈 수도 있고 확산될 여지도 있다. 모든 사회운동이 그런 것 것처럼 한 번에 발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가 점령운동 자체가 2011년 아랍에서, 스페인과 이스라엘에서, 영국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시위들에게 영감을 받아 시작된 것처럼, 향후 모든 전진적인 사회운동은 월가 점령운동의 영감을 받아 거듭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될 것이다. 특히 세계경제가 근원적 개혁을 못하고 위기의 늪에 더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거대한 월가 점령운동의 부활은 필연적일 것이다. 월가 점령운동이 제시한 ‘99%운동’은 전통적 진보 이론체계와 운동 방법 체계 또한 무력화시키면서 자신들의 스타일을 진보운동의 중심적 전형으로 부상시킬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쇠퇴일로를 걸었던 진보운동이 반전으로 돌아서려면 ‘99%운동’ 속으로 자신들을 적응시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운동은 월가시위에서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는지 검토해보도록 하자. 아시아가 ‘중국효과’를 인해 세계경제위기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고, 한국 대기업이 경제위기에 의한 기업경쟁 질서 변동 틈바구니에서 선전하면서 위기의 체감이 완충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사회 역시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거대한 체제 자체를 뒤흔들어야하는 사회 대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 국민들의 열망과 의식은 그런 변화의 필요를 느끼고 있고 주위 환경의 성숙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양극화에 따른 강한 복지의 요구가 그렇고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던 사교육 경쟁이 한계선에 온 것이나, 부동산 불패 신화가 무너지면서 주택과 부동산에 대한 사고가 바뀌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그러나 가까워오고 있는 경제위기를 넘기 위한 사회 대개혁 과제와, 변화의 열망을 키워가고 있는 국민들 사이에서 이를 연결시켜주어야 할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10.26 지방선거는 국민의 변화 열망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기존 진보운동과 제도권 정치의 무력함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위기의 시대에는 위기적 발상법이 필요하다. 적어도 2008년 촛불시위를 분기점으로 이후 우리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선도하는 현실적인 사회운동은 전통적인 진보운동이 아니었던 점을 기억하면서, 한국 사회 현실의 급격한 변화와 월가 시위에서 충분히 시사를 얻을 필요가 있다. 이제 99%운동이라는 핵심개념을 준거로 현재의 진보운동 이론, 방법, 전략 체계를 전체적으로 다시 짜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이 글은 계간지 <<새롭게 다르게>> 4호에 기고한 것을 다소 축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 PDF파일 원문에서는 그래프를 포함한 본문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새사연 http://www.saesay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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