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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의 교훈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1. 10. 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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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정책과 노선을 확고히 하고 미국의 부당한 간섭에 대해 근본적으로 혁신하며 국민의 힘을 믿으면 실패하지 않는 다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진보대통합을 통한 진보 주도의 정권교체가 유일한 해답이다.


한미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의 교훈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한미정상회담 전날인 지난 13일 미국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관련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미국이 먼저 처리한 만큼 우리도 국회에서 빨리 통과시키자고 주장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FTA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만큼 절대 통과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논란의 핵심이 된 한미FTA 국회 비준


특히 지난 20일에는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한미FTA는 초헌법적 불평등 협상이라며 전면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한미FTA 비준 반대 각계인사 1천인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단체는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각종 반대 활동을 벌이는 총력 집중투쟁 기간으로 선포했다.


또한 얼마전 민주노동당은 ‘한미 FTA 독소조항 12가지 완벽정리’라는 파일을 인터넷 상에 발표하였는데 이 문서에는 래칫조항, 금융 및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조항, 스냅백 조항,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방식 개방,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투자자-국가제소권(ISD), 비위반 제소, 정부의 입증 책임,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서비스 비설립권 인정, 공기업 완전민영화&외국인 소유 지분 제한 철폐 등 그간 문제로 지적된 내용들이 총정리 되어 있다.


▲재협상을 위해 만난 한미 대표들


이처럼 문제가 많은 한미FTA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FTA 추진 로드맵이 마련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그 후 2004년 5월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한미FTA 체결에 관심을 표명하고 11월에 예비협의 개시를 합의하면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2005년 한미FTA 사전실무점검회의를 거쳐 2006년 6월 1차 협상을 시작으로 2007년 3월 최종협상까지 총 8차에 걸친 협상 끝에 정부는 4월 2일 한미FTA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그러나 전 사회적인 논란 속에서 국회 통과가 미뤄졌고 결국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사실상의 재협상이 진행된 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규모 반미시위의 직접적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대통령 본인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반미면 어떠냐”며 미국에게 할 말은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권 후반기 국정 최대 과제로 한미FTA를 추진한 사실, 그것도 수많은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집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단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대체로 자유무역과 신자유주의에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출범 직후 ‘개방형 통상국가’를 표방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현재 한미FTA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송민순 민주당 의원 등은 한미FTA에 대해 찬성 입장이다. 이들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국가미래를 고려하면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천정배 민주당 의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은 당시와 달리 한미FTA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한미FTA가 양국 공멸의 길이며 21세기형 을사늑약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당시에는 개방형 통상국가를 내세워 한미FTA에 찬성했다.


왜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에 집착했는가


하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국정운영 후순위에 불과했던 한미FTA가 집권 하반기인 2006년 들어 양극화 문제와 더불어 최우선순위로 뛰어오른 부분은 이해하기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집권 직후인 2003년 5월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촌문제가 해결되고 개방할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한미FTA를 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할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직전인 2003년 2월 미국의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할 수 있다고 하는 바람에 급히 미국에 사람들을 파견해 대미정책을 변화하겠다고 약속하고 실제 5월 방미 당시 지나친 저자세를 보여 많은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미FTA를 당장 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그만큼 한미FTA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2003년 미국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


하지만 이런 입장은 집권 내내 미국의 압력에 시달리면서 급격히 변화하였다. 특히 2005년 9월 코스타리카 방문 중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의 보고가 주요한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 대통령을 수행하던 김현종 본부장이 “선진형 통상국가로 나가기 위해선 한미FTA가 필요하다. 협상 과정에서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에 노 대통령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추진하자”고 답했다 한다.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도 자신이 비서관으로 있는 동안 한미FTA와 관련된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코스타리카 방문 이후 급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위키리크스 공개 전문을 보면 김현종 본부장은 철저히 미국 편에서 활동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버시바우 당시 주한미대사가 국무장관 등에 보고한 2006년 7월 25일자 전문(06SEOUL2505)에 따르면 김 본부장이 한국정부의 약가적정화방안 발표에 대해 미국 정부에 미리 알리고, 미국이 의미있게 의견을 제출할 시간을 주며, FTA 의약품 작업반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등, 그 내용이 미국측에 유익한 것으로 평가되는 사항들을 관철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고 한다. 또한 버시바우 대사가 한국의 약가적정화방안을 무시하고 새로운 약가결정방안을 FTA 협상에서 논의하도록 주장하겠다고 하자 이를 양해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한국의 협상대표가 미국정부에게 청와대 회의내용을 알리고, 미국 편에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미국이 한국의 정책결정내용을 무시하는 것을 양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 인물이 대통령에게 한미FTA 추진을 설득했다면 이는 당연히 한국이 아닌 미국을 위해 설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김현종 본부장의 보고 이후 한미FTA 추진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보아 노무현 정부에서 그의 영향력이 상당했던 것같다.


▲한미FTA를 추진하고 삼성전자 사장이 된 김현종 본부장


한편 2005년 11월 1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미FTA 협상 개시를 재촉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합의된 대로 가고 있다. 속도를 더 내겠다”고 답변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신년연설에서 처음으로 한미FTA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이후 협상은 급속도로 진행되어 협상 개시 1년도 안 걸려 타결을 이룬다.


미국과 친미 인사들의 엉터리 협상


물론 이 과정에서도 정부 인사들은 미국에게 청와대 동향을 열심히 보고하며 미국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하였다. 예를 들어 권오규 당시 청와대 정책 수석은 한국의 FTA 지원 과제와 관련 정부 조직에 대해 버시바우 대사에게 자세히 브리핑하였다. 또 당시 청와대 경제정책실에 있던 김승호는 대통령 책상 위에 어떤 문서가 있는지까지 보고해 버시바우 대사로부터 “내부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소중한 취재원”으로 “강력히 보호해야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태용 당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도 한미FTA 협상 관련 청와대 내부 문제를 미국 측에 보고했다. 당시 청와대가 김종훈 수석대표에게 한미FTA에 개성공단 제품을 포함하는 문제를 최초 요구에 포함시키라고 훈령을 보냈는데 김 대표가 이를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정부 훈령까지 거부해가며 미국과 협상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당시 얼 포머로이 하원의원 등과 만나 쌀 추가협상을 약속하고도 국민들에게는 거짓말을 한 인물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재협상을 통해 일방적으로 미국에 유리한 내용으로 협정문을 수정하고서 끝까지 재협상이 아닌 추가협의라고 발뺌하다 결국 사과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FTA 협상은 철저히 미국에게 유리한 조건에서 추진되었고 따라서 그 결과 역시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친일파가 득세한 조선 왕조가 일본과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이런 망국적인 한미FTA는 결코 국회에서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오늘날 을사늑약을 불법이고 무효라고 주장하듯 미국을 위해 복무한 인사들이 주도한 한미FTA 협정문은 무효이며 폐기해야 마땅하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한 과정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진보적 정책과 노선이 확고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부터 개방형 통상국가를 표방하면서 신자유주의 노선과 타협하는 입장을 보였다. 집권 후반기에 양극화 해소와 한미FTA를 국정 우선순위로 꼽았는데 이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미 경제적 예속수준이 심각한 상황에서 한미FTA를 통해 한미 간 경제를 통합하면 신자유주의 정책이 심화되고 양극화 문제가 더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 우선순위를 언급한 2006 북악산 산행


둘째는 미국의 부당한 간섭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없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정치권과 관료들은 물론 사회 전반에 친미 인사들이 넘쳐나고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들이 득실대는 속에서 입으로만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 뼛속까지 친미인 인사들을 배제하고 뼛속까지 국익과 민족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사들로 정부를 구성해야 미국과 그 추종자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셋째는 국민의 힘을 믿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4대 선결 조건 자체를 부정하다가 결국 2006년 7월에야 인정했다. 국민을 속이는 정치는 결국 국민의 지지를 잃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기득권 세력과 미국의 힘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폭정 속에서도 국민들은 놀라운 힘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주권시대에 정부가 성공하는 길은 국민의 힘을 믿고 여기에 의지하는 것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진보대통합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진보가 주도하여 철저히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부를 세운다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201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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