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 연방상원은 왜 두 법안을 동시에 처리했을까?
2011년 10월 12일 제이 카니(Jay Carney) 백악관 부대변인은 백악관 출입기자단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방문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국빈방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대로, 백악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을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방문으로 여겼으니 환대외교를 베푼 것은 당연하였다.
백악관의 환대외교 일정 첫 날인 2011년 10월 12일, 미국 연방상원과 연방하원은 마치 환대외교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미자유무역협정 이행법안을 재빨리 비준하였다. 이것은 4년 3개월 동안 미국 정치권에서 논란을 거듭해온 한미자유무역협정 문제가 2011년 10월 3일 연방의회에 상정되자 불과 9일만에 비준된 것이다. 미국 연방의회에서 그런 초고속 비준은 이례적이다.
그런데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비준되기 하루 전에 연방의회에서 또 하나 중대사건이 있었다. 2011년 10월 11일 연방상원이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라고 중국을 압박하는 통화환율감독개선법(Currency Exchange Rate Oversight Reform Act)을 채택한 것이다. 통화환율감독개선법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고의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환율조작으로 수출품에 사실상 보조금을 지급하는 셈이므로, 미국이 중국의 대미수출품에 보복적 상계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2011년 10월 3일 한미자유무역협정 이행법안과 통화환율감독개선법안이 동시에 연방상원에 상정되었고, 초고속으로 비준 또는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의회의 그런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려면, 중미경제관계의 최근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이터 통신> 2011년 10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연방상원이 통화환율감독개선법을 채택하자 중국은 대중무역전쟁을 도발하는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만일 미국이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기어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 그렇지 않아도 재정파산위기에 빠져 허덕이는 미국 경제는 전면붕괴의 파국을 맞을 것이다. 그처럼 뻔한 이치를 알면서도 미국 연방상원은 대중무역전쟁을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그랬을까? 미국이 무역전쟁까지 각오할 만큼 중미경제관계의 모순이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상대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강적이다. 무역전쟁도 불사한다는 미국의 전의를 간파한 중국은 경고발언만이 아니라 신속한 반격공세까지 취했다. 2011년 10월 14일 중국 인민은행이 ‘외국인 직접투자 위안화 결제업무 관리방법’을 공고한 것이다. 이것은 외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중국에 투자하거나 중국과 교역할 때 위안화를 사용하도록 허용한 조치다. 지금까지는 중국에 투자하거나 중국과 교역할 때 달러화로 결제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위안화로 결제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중국의 위안화는 미국의 달러패권을 잠식하는 중이다.
그래서 중미무역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온 신흥경제강국 중국은 이미 재정파산위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미국에게서 무역패권을 뺏으려고 하고, 그에 맞선 미국은 중국에게 보복공세를 가하는 격돌이 시작되었다.
주목하는 것은, 중미무역전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 하는 문제다. 양자의 연관성을 논하려면, 한미무역 동향과 한중무역 동향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남측 관세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남측의 대중무역의존도는 1991년 2.90%, 2001년 10.80%, 2005년 18.43%, 2009년 20.53%로 크게 늘어난 반면, 대미무역의존도는 1991년 24.42%, 2001년 18.38%, 2005년 13.18%, 2009년 9.71%로 크게 줄었다. 2005년부터 대중무역이 총량에서 대미무역을 앞지르더니, 격차가 두 배 이상 벌어졌다. 그 결과, 2010년을 기준으로 남측의 전체 수출 가운데 4분의 1이 중국에게 집중되었으며, 홍콩을 비롯한 제3국을 경유한 대중수출까지 포함하면 30%를 넘어섰다.
또한 남측의 무역수지 동향을 살펴보면, 남측이 대중무역에서 얻은 흑자는 2005년 232억 달러, 2006년 209억 달러, 2007년 189억 달러, 2008년 144억 달러, 2009년 324억 달러, 2010년 429억 달러다. 대중무역 흑자추세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을 때 주춤하였다가 2009년부터 급증추세로 돌아섰다. 반면에 남측이 대미무역에서 얻은 흑자는 2005년 107억 달러, 2006년 95억 달러, 2007년 85억 달러, 2008년 80억 달러, 2009년 86억 달러, 2010년 85억 달러다.
한중무역 급성장추세와 한미무역 쇠퇴현상을 대하는 백악관과 연방의회는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남측 경제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흔드는 한중무역 급성장추세를 차단해야겠다고 생각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무역전쟁을 벌여서라도 달러패권을 지켜야 하는 미국의 다급한 처지에서 바라보면, ‘한미경제동맹’이 중국에게 잠식당하는 위기상황이 보인다. 잠식위기가 심화되는 것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던 미국이 서두른 것이 바로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이다. 환대외교에 얽혀있는 미국의 복잡한 계산법들 가운데 하나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함으로써 ‘한미경제동맹’을 중국에게 잠식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걱정거리
환대외교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2011년 10월 11일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이 <로이터 통신>과 대담하였다. 대담자가 북미관계와 관련하여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미국이 북측에게 요구한 선결조건들(preconditions)을 지금 북측이 이행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요구한 선결조건을 북측이 이행하지 않았어도, 북측과 “더욱 진지한 대화(more serious dialogue)”를 재개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답변을 들어보나마나, 명백한 답변을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북측은 선결조건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미국을 깔보는 듯 우라늄농축을 계속하면서 미국을 강하게 압박해왔고, 강력한 압박공세에 견디지 못한 미국은 선결조건을 슬그머니 내리고 북미고위급회담에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로이터 통신> 대담자의 질문에 대한 ‘정답’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클린턴 국무장관은 그 질문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한미관계론을 들먹거리며 “한미관계는 매우 강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주 진지하게 노력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방문 중에 우리가 취하게 될 다음 조치들을 논의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2차 북미고위급회담 개최문제에 관한 클린턴 국무장관의 답변은 그 다음에 나왔는데, 좀 궁색하게 들리는 답변을 옮기면 이렇다.
“우리는 북측이 행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북측과 대화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북미대화가) 앞으로 몇 주 안에(in the next few weeks)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북미대화를 뜻함-옮긴이)은 단지 미국과 북측의 문제만이 아니므로, 미국이 남측과 동맹관계에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동맹국인 남측에 관련된 것이므로, 우리는 이전처럼 (남측과 함께) 동반적으로 전진하는 과정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확실히 말하고 싶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답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이 두 주 앞으로 다가온 2차 북미고위급회담을 앞두고 한미관계를 매우 민감하게 의식한다는 점이다. 그런 민감한 태도는, 북미고위급회담의 진전에 따라 ‘한미동맹’이 약화될까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전전긍긍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그런 걱정거리는 2011년 10월 13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진행된 한미정상단독회담에도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한미정상단독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나온 북미관계 현안에 대한 논의방향은,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공동언론발표문에서 엿볼 수 있다. “양 정상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및 국제 비확산체제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를 근본적이고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도 긴밀히 공조하고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문장이 공동언론발표문에 있는데, 특히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인내’를 슬그머니 접어두고 북측과 대타결 협상을 벌어야 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협상결과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또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그런 우려는, 북측이 강하게 요구해온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중대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2차 북미고위급회담을 불과 두 주 앞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베푼 이례적인 환대외교 뒤에 감춰진 속셈은, 공동언론발표문에 나온 표현처럼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간다”는 의지를 표명하여 이명박 정권을 안심시키려는 것이었다.
국방장관 회담을 취소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미국군 수뇌부
미국의 연방수도 워싱턴 디씨 외곽에는,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오각형으로 보여 흔히 펜타곤이라 불리는 미국 국방부 청사가 있다. 현역 147만7,896명과 예비역 145만8,500명을 포함해 293만6,396명이나 되는 대군을 거느리고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국가군사지휘처(National Military Command Center)가 그 청사 2층에 자리잡았다. 국가군사지휘처는 직능에 따라 여러 방으로 나뉘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탱크(The Tank)’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합동참모본부회의실(JCS Conference Room)이다.
2011년 10월 12일 오후 3시, 외부와 차단되어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는 합참본부회의실에 ‘낯선 동양인’들이 들어섰다. 그들은 이명박 대통령, 김관진 국방장관,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한덕수 주미대사 등이었다. 합참본부회의실에서 그들과 마주앉은 사람들은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국방장관, 마틴 뎀프시(Martin E. Dempsey) 합참의장, 레이먼드 오디어노(Raymond T. Odierno) 육군참모총장, 조너던 그린너트(Jonathan W. Greenert) 해군참모총장, 노튼 쉬워츠(Norton A. Schwartz) 공군참모총장,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 주한미국군사령관을 비롯한 군수뇌부였다.
미국군 수뇌부가 외국 대통령을 합참본부회의실에서 만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11년 10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 수뇌부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긴급회동은 “예정에 없던 것으로 미측의 요청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 <한겨레> 2011년 10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원래 그 시간에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예정되었는데, 미국군 수뇌부는 국방장관 회담을 취소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것이다.
미국군 수뇌부는 왜 국방장관 회담을 취소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을까? <아시아투데이> 2011년 10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가 국빈자격으로 방문한 이 대통령을 초청해 한반도 안보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직접 설명하고 싶다고 요청해 (긴급회동이) 이뤄진” 것이다.
위의 정보에 따르면, 미국군 수뇌부가 한미 국방장관 회담보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긴급회동을 더 중시한 것인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그처럼 중시한 긴급회동에 배정한 시간이 25분이었다는 점이다. 통역시간을 생각하면, 실제 배정시간은 고작 12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군 수뇌부는 그 짧은 시간에 무엇을 설명하였을까?
<경향신문> 2011년 10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뎀프시 합참의장이 한반도 안보문제에 대해 설명하였다. 미국 국방부 존 커비(John Kirby) 대변인의 말을 인용한 <아에프페(AFP) 통신> 2011년 10월 13일 보도를 읽어보면, 뎀프시 합참의장은 “북측의 위협에 대한 최신 정보평가”를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보도에 따르면, 패네타 국방장관은 “안보능력과 억제조치를 개선하기 위한 공동노력을 비롯하여 안보관련 동맹문제를 논하였다.”
긴급회동에 참석했던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의 말을 인용한 <아시아투데이> 2011년 10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뎀프시 합참의장은 한반도 안보문제에 대해 “어떤 상황이 와도 확실히 준비하고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 와도”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확실히 준비하고 대처”해야 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 표현으로 읽힌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군 수뇌부가 한미정상회담 직전에 이명박 대통령을 합참본부회의실에서 만나 “북측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설명하고 “어떤 상황이 와도 확실히 준비하고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이전에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전망한 것처럼, 북측이 강하게 요구해온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중대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2차 북미고위급회담이 두 주 앞으로 다가온 현실, 그리고 재정파산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행할 미국의 대규모 군비감축이 주한미국군 철군 가능성을 한층 더 높여준 현실이 그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미국군 수뇌부와 이명박 정권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규모 군비감축과 2차 북미고위급회담을 앞두고 다급해진 미국군 수뇌부는 한미정상회담 직전에 이명박 대통령과 긴급히 만나 반론을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합참본부회의실에서 주고받은 반론공감은 한낱 밀실에 맴도는 분위기일 뿐이다. 밀실 밖의 대세는 북측 국방위원회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진행하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정치협상으로 이미 기울어졌고, 반론 공감대를 압도하는 변화의 태풍이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두 주 뒤에 열릴 2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거대한 태풍의 진로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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