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협상이 사실상 결렬됐다. 역시 쟁점은 국민참여당 문제였다.
민주노동당은 “참여당 합류에 대해 양당의 입장차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 문제를 양당 수임기구 합동회의에서 논의하자”는 안을 냈다. 반면 진보신당은 “통합진보정당 창당 이후 참여당 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창당 이후 논의하자는 것은 사실상 참여당은 안 된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통합진보정당-1>을 먼저 만들고 총선 전에 <통합진보정당-2>를 또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양당 사무총장은 “참여당 문제에 대해 양당의 이견이 있음을 확인한다”는 조정안을 냈지만 조정안도 진보신당 내부의 강한 반발로 결국 최종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참여당에 조금의 틈새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수준의 지적 능력으로는 결코 이해하기 힘든 투지와 집념이다.
과연 국민참여당의 진보통합정당 참여가 문제일까? 참여당 때문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까지 갈라서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통합진보정당, 정치판을 바꾼다
<민중의소리>와 <우리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통합진보정당이 생길 경우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자 비율은 한나라당 33.5%, 통합진보정당 27.8%, 민주당 21.4%였다.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 32.9%, 민주당 26.1%, 민노당 6.3%, 참여당 5.1%, 진보신당 3.3%였다.
통합진보정당이 민주당보다 5%이상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나라당과의 차이도 5%대로 오차범위에 근접한다.
지난 5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조사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해 후보를 낸다면 지지할 의향이 있는가’ 대한 질문에 32.4%가 ‘있다’고 응답했다. 만일 진보신당까지 포함했다면 지지율은 더 올라갔을 것이다. 한나라당까지 추월할 수 있는 상상 이상의 파괴력이다.
현재까지 각종여론조사에서 진보3당의 지지율 단순합계는 10%안팎이다. 현재까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통합 이후 3당의 지지율은 두 배 가까이 상승한다. 거품을 뺀다고도 20%대 지지율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통합진보정당이 등장하면 보수 양 당 구조가 붕괴하고 진보-개혁-보수가 천하를 삼분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한마디로 정치판이 바뀌는 것이다. 통합진보정당의 등장이 한국 정치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총선에서 야권단일후보에 투표할 것이라는 유권자는 이미 50%를 넘어서고 있다. 한나라당에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30%대에 불과하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부산경남지역에서도 야권단일후보를 찍겠다는 유권자가 47%였다. 한나라당은 37%에 불과했다.
지지율만 놓고 보면 2012년 총선에서 야권연대는 160석에서 180석 정도를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후보단일화가 원만하게 이뤄질 경우에 가능한 숫자다.
이중에 통합진보정당의 몫을 얼마나 될까?
단일화방식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단지 지지율만 고려한다면 통합진보정당의 몫은 30%에서 50%사이가 될 것이다. 즉 100-150개 선거구에 단일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총선 때까지 여론의 큰 반전이 없다면 - 각하가 청와대에 있는 한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 최소 50석에서 최대 90석까지 가능하다. 공천 안배가 이뤄진다고 가정할 때 3당에 돌아가는 몫은 각각 15석에서 30석이다. 의석이 거의 없는 국민참여당과 진보신당은 물론 민주노동당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숫자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왜 이런 매력적인 정치실험을 논의조차 거부하는 것인가? 금배지가 너무 부르주아적이어서 혐오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당은 왜 만들었나? 진보신당은 “혁명적 전위정당”인가 아니면 누구의 지적처럼 “등대정당”인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승리를 두려워하지 말자
혹자는 이 같은 접근법을 지나치게 공학적이라고 힐난할지 모른다. 그런데 공학이 뭐가 문젠가? 공학도 못하면서 정치는 어떻게 하나? 공학만 하면 정치꾼이 되지만 공학도 못하면 정치는 당장 때려 치는 게 낫다. 공학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지만 필수과목은 맞다. 아무리 학점이 높아도 필수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집권)은 못 한다.
진보정당의 우경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면 진보정당이 우경화 될까?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적어도 진보정당의 우경화가 유시민 대표와 국민참여당원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노동당의 진성당원은 4만 명, 진보신당은 1만 명 안팎이다. 국민참여당은 1만 여 명이다. 국민참여당의 당원비율은 전체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통합진보정당이 진성당원제, 민주집중제로 운영된다면 - 이미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고 국민참여당도 이에 동의했다. - 국민참여당의 당내 영향력은 20%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최고위원과 중앙위원, 대의원의 20%이상을 점유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공천 안배가 이뤄진다고 해도 국회의원 숫자가 전체의 30%를 넘기 어렵다. 만일 당원직선제로 대선, 총선 후보를 선출한다면 국민참여당 후보 - 심지어 유시민 대표조차 - 가 당내 경선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점은 진보신당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통합진보정당은 반드시 소수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20%가 80%를 오른쪽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 그것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도부와 당직자, 당원들이 모두 머저리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당원들은 너무 똑똑해서 탈이다.
따라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유시민 대표와 국민참여당 당원들이 다시 자유주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탈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탈당이 가능할까? 유시민 대표는 자유주의로 회귀할 수 있을까?
국민참여당의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유시민 대표 스스로 인정한 바다. 분열주의자, 분열정당이라는 자랑스러운(?) 간판을 내건 자유주의적 도로참여당의 독자생존은 아마도 열 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럼 민주당으로 돌아갈까? 그때도 민주당에 유시민 대표의 자리가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유시민의 정치적 무덤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심지어 국민참여당 당원들조차 침을 뱉을 것이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이인제의 경우를 떠올리면 된다. 한국 정치사에서 기회주의자, 분열주의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해 성공한 사례는 없다.
물론 유시민 대표는 탁월한 책략가다. 노회하고 영리하다. 만일 지능지수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아마도 유시민 대표는 당선권에 가장 근접한 정치인 중 한 명 일 것이다. - 참고로 가장 거리가 먼 정치인은 오세훈이다. - 그래서 두렵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제 아무리 영리한 정치인이라고 해도 국민보다 똑똑할 수는 없다. 그래서 탈당 이후 유시민의 미래, 진보의 미래를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유권자들이 알아서 다 해결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탈당은 한겨울에 비키니 입고 시베리아로 해수욕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보다도 진보신당 지도부가 잘 알지 않나? 과연 그 똑똑한 유시민 대표가 개론 수준의 초보적인 정치공학도 모를까? 적어도 정치인 유시민은 그런 어리석은 도박에 인생을 걸만큼 순진한 인물은 아니다. 단언컨대 탈당은 결코 없다.
설령 탈당한다고 해도 손해 볼 건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참여당이 다시 자유주의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50-90석이 여전히 통합진보정당의 몫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다시 갈라서더라도 진보정당은 지금보다 두 배쯤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운가? 너무 많은 의석을 감당할 수 없어서 걱정인가? 강해지는 게 무섭나?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말로는 집권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집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승리를 꿈꾸다보니 계속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브라질노동자당의 룰라는 국민들에게 “행복해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다. 지금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승리를 두려워하면 행복해 질 수 없다. 행복해지려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정의 없는 권력이 재앙이라면 권력 없는 정의는 재난이다. 정의는 권력과 결합될 때 비로소 행복해 질 수 있다.
승리하려면 때론 모험도 필요하다. 모험 없는 창조는 없고 창조 없이 발전은 없다. 모험 없는 승리, 안전한 집권이란 세상에 없다. 만일 그런 파랑새를 찾고 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정치는 당장 때려 치는 게 낫다. 적어도 정치판에는 파랑새가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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