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협상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사실상 결렬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양당간 최종 쟁점인 당 운영방안과 국민참여당 문제에 대한 협상 결과에서 보수정치권의 밀실정치, 계파정치의 구태가 보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진보양당의 협상이라고 어디에 내놓기 부끄러울 지경이다.
우선 진보신당은 진보의 자존심마저 벗어던지고 과도한 지분 요구에 매달리고 있다. 패권주의 극복이니 민주적 당 운영이니 명분은 그럴 듯 했으나 사실상 지분 요구, 자리 구걸 협상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진보신당은 당대표, 대의기구를 비롯해 지역위원회까지 공동, 동수 구성을 요구하고 총선후보도 조정하자는 안을 관철시켰다. 통합정당의 당원들은 2012년 말까지 당직선거권 자체를 박탈당하고 공직선거권도 심대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진보신당은 대중의 통합열망을 악용해 자파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일종의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다. 진보신당의 지분 요구는 또 다른 패권주의이며, 패권의 방식으로 패권을 누르겠다는 ‘역패권주의’이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의 요구를 전폭 수용한 것도 문제다. 이대로 협상이 타결된다면 진성당원제의 원칙에 금이 가고 당원민주주의가 제약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차단한 채 쌓아놓은 어떤 협상 성과도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의 금과옥조를 허물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끝내 협상이 결렬된 쟁점은 국민참여당 문제였다. 진보신당은 일견 유연해 보이는 ‘창당 대회 때까지 논의 불가’라는 수를 들고 나왔다. 논리상 양당간 합당 이후 논의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얄팍한 잔꾀다. 무조건적 반대의 명분이 약하니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결국 참여당과의 통합 논의를 봉쇄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닥치고 양당통합이나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진보신당이 진정으로 참여당 문제를 논할 의지가 있다면 통합을 위해 함께 논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진보대통합의 근본 취지와 정신에서 출발한다면 오히려 참여당의 통합 참여 의사는 환영할 일이다. 논의의 장을 열고 그 안에서 동지가 될 것인지, 좋은 벗으로 남을 것인지 진지하게 따져보면 될 일이다.
3당통합, 새로운 진보적 대중정당에 대한 요구와 기대감은 갈수록 높고 강렬해지고 있다. 시간은 결코 진보신당의 편이 아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을 압박해 자신의 고집을 관철하려는 편협한 정치는 그만두는 것이 좋다. 손바닥으로 하늘의 해를 가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통합진보정당 건설이 막판에서 꽉 막힌 답답한 형국이다. 해법은 대중의 힘과 지혜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새롭게 제기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는 대중의 지향과 의사를 파악하고 종합하는 것을 기초로 해야 한다. 정당 상층부나 일부 사람들은 상황의 복잡함과 진보의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참여당 문제를 전면적 논의에 붙이는 것을 피하려 하는 듯하다. 심하게는 거론 자체를 하지 말라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당원들은 결코 수준이 낮지 않다. 상층이 협상전략과 정치공학적 논리들 때문에 오히려 대중의 현실과 멀어질 수 있다. 당원들은 피부로 느끼는 정치 현실과 자신의 실천 경험에 기초한 나름의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 개별 당원의 의견이야 부족함이 있겠지만 집단의 총의를 모아내면 거기에는 우리가 찾는 답과 해법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민주노동당은 수임기관의 결정 그대로 당원과 대중단체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총체적으로 수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추진하는 진보대통합은, 어떻게 성사되는가에 따라 한국의 정치지형을 뒤엎을 수도 있는 중대사안이다. 진보발 대지각 변동, 2012년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엄청난 변화다. 민주노동당의 결단에는 그 무엇에도 흔들림없는 단호함과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이런 추동력은 당원의 힘에 기초해야만 굳건해질 수 있다.
전 당원 여론조사, 중앙부터 분회까지 전 당조직 토론회 진행 등 방법은 찾을 수 있다. 통합정당 건설 과정에 변화된 조건을 고려해 타 정당이나 진보적 시민사회와 소통과 공감을 넓혀나가는 다양한 사업도 병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당직자들과 당조직들은 자기의 주장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중앙당 지휘 하에 전당적인 당원 의견 수렴 사업을 보장하는 데 합심협력해야 한다.
진보정당들을 비롯해 모든 진보세력의 단결과 분발을 기대한다.
2011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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